상단여백
HOME 에큐메니칼소식 문화
스몰빌, 그 끝낼 수 없는 가족신화를 위하여드라마 '스몰빌'에 나타난 미국의 가족주의를 들여다보며!
오마이갓 | 승인 2005.07.05 00:00

 

영화와 드라마, 그 달콤한 당의정이여!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한번씩 무릎을 칠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지 하는 감탄사와 함께 말입니다. 겉보기에는 전혀 그런 내용이나 사상(영화나 드라마가 담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의 한계는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을 담을 수 없을 것 같은데 담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가장 겁내 하는 일들 중의 하나가 주사 맞는 것과 약 먹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제가 자랄 때나, 아니 요즘에도 감기나 유행병 같은 것이 알려지게 되면 가까운 보건소나 병원에서 아이들에게 예방 접종을 하기 위해 줄을 서거나, 주사를 맞기 전에 죽기라도 할 것처럼 무서워 우는 아이들의 장면은 흔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들께서 아이들에게 약을 먹이기 위해 처음 입안에 닿는 맛을 달콤한 하게 만든 약을 먹이십니다. 이것을 흔히 당의정이라고 일컫죠!

 

   ...^^;
저는 영화나 드라마가 현대 사회에 일상을 살아가는 다중들에게 아주 달콤한 당의정이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책으로 하면 몇 권이 되기도 하고, 읽을라 치면 몇 시간을 읽어도 이해도 되지 않는 어려운 이야기들을, 드라마는 짧게는 30분 길게는 50분, 영화는 짧게는 100분 길게는 180분이 넘는 대작을 통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가랑비에 옷 젖는 줄도 모르게 우리 뇌리에 확실한 지뢰밭을 심어 놓는 다는 것입니다. 일단 밟으면 흔적도 남지 않고 터지도록 말입니다.

작년부터 아마 모 방송사에서 토요일 오후에 방영되고 있는 미국 드라마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슈퍼맨의 어릴 적 살던 동네의 이름을 따서 제목을 붙인 ‘스몰빌’(Smallville)이라는 드라마입니다. 지금 미국에서는 가을에 5번째 시즌을 방영한다고 하니 뭐 인기야 두 말 하면 잔소리 쯤으로 치부되지 않을까 합니다. 한국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확인해 보니 제법 많은 네티즌들이 재미있다는 평을 내놓고 있습니다.

   
저도 가끔 고향 부산에 내려가면 심심함을 달래기 위해 시간 대가 맞으면 시청을 하고 해서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지만, 챙겨 볼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치 않게 제대로 한 번 시청할 기회가 생겨서 집중하고 봤드랬습니다. 혼자서 속으로 “오훗...+_+... 이거 괜찮네!” 하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음...’ 하는 결단의 신음 소리와 함께 인터넷을 뒤져서 지대루 드라마 첫 편부터 보기로 작정하고 단숨에 봐 버렸습니다. 현재까지 나온 4시즌까지 말입니다. 무지하게 재미있더군요!

그런데 문제는 시즌 3의 10편 정도까지 보게 되니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외연적으로 드러난 슈퍼맨 클락의 성장 드라마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 클락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헐리우드 식 가족주의에 대한 선전과 찬사가 당연한 것이기에 의심할 여지도 주지 않고 흘러가도록 만든 드라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클락을 슈퍼맨 되게 한 자궁은 켄트 家!

어느 날 외계의 유성들과 함께 지구에 떨어진 ‘칼 엘’을 입양해서 ‘클락 켄트’로 키우는 아버지 조나단 켄트와 어머니 마사 켄트는, 그 본래 사명이 미개하고 힘 없는 인간들을 지배하도록 보내진 클락이 완벽한 인간성을 갖춘 영웅이 되도록 교육시키는 완벽한 부모상으로 보여줍니다. 혀가 내둘러질 정도로 말입니다. 거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바른 판단과 희생을 통해 클락을 보호하고 양육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클락은 자기 본래의 파괴적 본성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고향과 지구를 지킬 영웅이 되어 갑니다. 그 클락을 품어주고 지켜주는 어머니의 자궁은 바로 캔사스의 작은 마을 스몰빌의 켄트 가(家)입니다.

 

   
예전에는 스몰빌이라는 시골 마을에 클락이 보내진 것은 그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 적당한 장소이기 때문이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 드라마를 보면서는 그것이 아니다는 생각입니다. 사실 서양이건 동양이건 가장 보수적인 전통과 가치관을 보존하는 곳은 바로 도시가 아닌 평범한 시골 마을입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외부의 적들로부터 그들의 전통과 가치관이 파괴된다는 위기감이 들이닥칠 때는 도시의 교육받고 먹물든 범생이들보다 땀범벅에 흙투성이인 시골 농부들이 투사가 되어 분연히 일어났다는 것은 역사가 보여주는 아이러니한 이야기들입니다. 여담이지만 서남동 선생님은 이것을 “두 이야기의 합류”라는 용어를 쓰시면서 신학화시키셨습니다.

 

   
하여간 이야기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갔네요! 하여간 메트로폴리스라는 거대하고 음모와 죄악으로 가득찬 도시에 비해 스몰빌이라는 시골과 켄트 가정은 클락을 수많은 시련으로부터 강인하게 키우는 곳으로 그려내면서, 그렇기 때문에 지키고 아껴야 할 곳으로 아름답게 그려냅니다. 우리의 뿌리가 그곳에 있다는 강한 확신을 주면서 말입니다. 아니 한편의 아름다운 신화로 그려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비평을 읽게 되면 ‘헐리우드 식 가족주의가 가득찬’ 영화나 드라마라는 구절들이 보입니다. 이런 구절들을 읽게 되면 ‘그래? 그런데 가족주의가 왜 나쁘지?’ 하는 반감 아닌 반감을 가져 본 적도 많이 있습니다. 정말 헐리우드 식이건 충무로 식이건 가족주의는 나쁜 것일까요? 나쁘다면 뭐 때문에 나쁠까요?

 

헐리우드의 사명 - 아버지를 만들라!

9·11 테러 사건 이후에 헐리우드의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이렇게 말하면 좀 심할 수도 있지만, 그 아버지가 장애를 가졌건 직업이 없는 무능한 아버지가 됐건 간에 자녀와 가정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는 부성애가 철철 넘치는 아버지 상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I am Sam’과 ‘John Q’ (전 이 영화 처음에 제목만 보고 SF 영화인 줄 알았습니다...ㅡㅡ^)같은 영화입니다. 스포일러 성 영화 내용들을 줄줄이 읊어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미국의 정신과 심성 세계를 그대로 반영하는 헐리우드는 이런 부성애 넘치는 아버지를 만들지 못해 안달일까요? 테러 직후에 불안 국가와 사회를 지탱해 줄 아버지가 필요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을 지켜 줄 가정의 울타리의 아버지가 부재하다는 절규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강력한 지도자, 대통령이 필요하다는 역설이 됩니다. 거기에 부시는 아주 적당한 인물일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아주 적합합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부시는 재선을 하게 됩니다.

 

가족주의 그것은 야만이다!

함께 방을 쓰는 동갑내기 친구에게 가족주의는 왜 나쁠까 하고 물어보았드랬습니다. 그 친구 특이하게 마씨 성을 가진 광주에 있는 외노 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전도사입니다. 그랬더니 대뜸 이주 노동자들의 문제를 끄집어 냈습니다. 저는 큰 소리로 그 자리에서 ‘와~ 하하~ 정답이다!’ 하고 외쳤습니다. 잘못된 가족주의는 그들만의 리그를 위해 가족의 범위를 만들어 내고 그 범위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타자를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가장 좋은 구실입니다. 아니 그들만의 신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입니다.

또한 가족 신화는 그대로 국가 신화로 나아가게 됩니다. 가족 울타리가 국가 울타리가 되고 그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가족을 위협하는 허구의 적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그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선재 공격도 불싸할 수 있는 좋은 밑바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가족 신화를 해체하기 위해 육체를 입으신 분!

46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실 때에 그 모친과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섰더니 47 한 사람이 예수께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께 말하려고 밖에 섰나이다 하니 48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마태복음 12:48~50, 마가복음 3:31~35, 누가복음 8:19~21)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태복음 10:34~39, 누가복음 12:51~53)

 

 

오마이갓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마이갓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