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문

절대적 한계는 지켜져야 옳다

-창세기 3장 1-3절

이정배 교수(감신대)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한국 그리스도인 연대가 꾸려져서 오늘 이렇듯 희망버스를 타고 밀양에 오게 된 것을 기쁘고 고맙게 생각합니다. 얼마 전까지 밀양은 이창동감독의 영화로 유명한 곳이었으나 지금 이곳은 송전탑으로 야기된 탈핵, 반핵의 상징처가 되었습니다. 이로인해 밀양은 우리 기독교와 너무도 친근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화가 기독교가 말하는 용서를 주제로 우리 크리스챤을 부끄럽게 했다면 오늘의 송전탑은 그자체로 하느님 창조 및 생명의 주제와 맞닥트리게 한 까닭입니다. 며칠 전 서울 부암동 나눔문화 공간에서 이곳 주민 두 분 여성을 만나 뵌 적이 있었습니다. 2012년 74세 되신 이치우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불붙기 시작한 밀양 송전탑 투쟁이 처음에는 생존 터를 지킬 목적에서였으나 이제는 핵 자체가 이 땅에서 사라져야 마땅한 일 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무리 인권을 유린당하고 폭력에 노출되고 편 가름 당하며 회유가 지속되더라도 자신들의 저항은 중단되지 않을 것임을 눈물로 호소하였던 것이지요.

주지하듯 삶의 터전을 앗아가는 송전탑 사태는 발전과 개발의 명분하에 박정희 정권 시절 만들어진 전원개발 촉진법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 법을 집행하는 무소불위의 기관이 바로 지식 경제부 산하의 한전이지요. 이런 이유로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밀양 뿐 아니라 현재 수십 곳에서 이런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벌써 정권이 수없이 바뀌었고 정치적 민주화의 길을 이뤘다는 지금도 이렇듯 민의를 무시하고 생존권을 박탈하는 강제법이 실행되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사실 우리들 중에도 밀양사태가 발발하기 이전에는 산과 들, 논과 밭을 가로질러 세워진 흉물스런 송전탑에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던 분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든 송전탑이수 많은 이 땅의 약자들의 눈물위에 세워진 것을 밀양의 주민들이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했습니다. 우리들 대다수가 살고 있는 도시가 더욱 밝고 시원하고 안락, 풍요로움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눈물이 뿌려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송전탑 건설을 중단시키려면 우리들 삶에서도 멈춰져야 할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밖을 향한 투쟁이상으로 우리들 욕망에 대한 저항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높은 산을 오르내리며 생존 터를 지켜내려는 할머니들의 고통과 눈물이 20층 아파트 두 배만한 높이의 송전탑은 물론 아니 그 보다 더 놓은 우리 속의 욕망을 그치게 할 것입니다.

송전탑 투쟁으로 시작된 밀양 주민들의 눈물의 역사가 탈핵, 탈 원전의 가치로 이어진 것은 이 땅을 위해서 크나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낙후된 원전, 그래서 고장이 잦았고 -1978년부터 지금까지 225회나 오 작동되었다- 온간 비리로 얽힌 고리발전소와 밀양의 송전탑은 동전의 양면처럼 얽혀져 있지요. 최근 코리아 타임즈(2013년 7월 23일자)에 실린 그린피스의 보고에 의하면 만약 고리원전에 후쿠시마와 같은 사건이 터졌을 때 한국은 그곳보다 훨씬 취약한 구조를 지녔다고 경고합니다. 고리를 기점으로 반경 30킬로 이내에 거주하는 인구가 350만 명에 달하는데 이들 모두가 방사능 오염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 중 5% 내외의 사람에게만 약물치료가 가능한 상황이라 하니 대다수 사람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될 것입니다. 방사능 오염의 후폭풍으로 입게 될 경제적 손실도 한국으로선 회생 불가능한 수준이 될 것이라 예측합니다. 이렇듯 그린피스의 경고를 귀담아 듣고 지금부터 핵 없는 세상을 준비하는 것이 여기 밀양에 모인 우리 기독인들의 사명일 것입니다. 지금 인터넷 상에 떠도는 후쿠시마 사건이후 일본의 실상을 접하신 분들이 적지 않으실 것입니다. 과장된 부분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영토의 절반이 핵에 오염된 일본의 미래를 누구도 낙관하지 않습니다. 다시금 남의 땅을 차지하려는 야욕을 느낄 수 있을 정도라 하니 결국 핵으로 동북아의 평화가 위협되는 현실을 맞게 될 것 같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기 위하여 저희는 오늘 창세기 3장의 말씀을 찾아 읽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인간에게 맡기시되 오직 동산 한 가운데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고 하신 것에 주목해 봅니다. 일찍이 <순수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란 책을 썼던 칸트는 성서 첫머리에 ‘--하지 말라’는 신적 명령이 있는 것을 눈여겨보았습니다. 종교란 인간 삶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데 행복의 조건으로서 절대적 한계에 대한 통찰을 적시 한 것입니다. 지금껏 인류는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능사로 알았으나 자연의 한계 안에서 사는 것이야 말로 인간을 성숙시키는 지름길임을 가르친 것이지요. 뭇 생명은 자연의 한계 안에서 자신을 적응시키며 잘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인간만이 한계를 벗고자 했고 그렇기에 본래 자연에 없던 플루토늄을 만들어 핵무기와 원전을 인류의 미래인양 선전해 왔던 것이지요. 유력 기독교인들 중에 핵 마피아가 상당수란 것도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정말 그들이 창조신앙을 고백하면서도 과연 핵 마피아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절대적 한계 안에서 사는 삶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금한 바벨탑을 쌓고 멸망한 인류를 대신하여 새롭게 노아가 하느님의 파트너가 되었을 때 신은 그에게 한계 안에서 사는 법을 명하셨지요. 사람들 눈에서 억울한 눈물을 흘리지 말 것과 동물을 피 채로 먹지 말라는 근원적 한계를 적시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독교인은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신념주의자가 되기보다는 좋은 세상을 위해 한계 안에서 사른 삶을 택하는 존재인 것을 명심할 일입니다.

밀양의 어르신들은 이제 송전탑이 다른 마을로 옮겨 진다해도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송전탑은 이제 삶을 달리 생각하는 세계관의 핵심문제가 되었고 전기 식민주의에 물들고 에너지 중독에 빠진 우리들에게는 생명의 하느님을 바라보도록 하는 신앙적 주제가 된 까닭입니다. 대안적 에너지 정책을 비웃는 핵 마피아들에게, 여전히 박정희 시대의 법을 강요하는 행정가들에게 민중들 바닥의 힘과 기독교적 신앙의 열정이 강력히 전달되는 오늘의 모임이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말씀을 마감합니다.(2013년 7월 30일 밀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