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람이야기 인터뷰 단신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자선과 개발 아닌 연대와 동행’NCCI 정의평화국장 크리스토퍼 목사 인터뷰
편집부 | 승인 2013.08.19 11:30

지난 6월 24일부터 7월 4일까지 한국 기독학생들의 인도 방문 프로그램은 뱅갈로르에 위치한 SCMI(Student Christian Movement of India)에서 진행한바 있다.

프로그램 기간 중 SCMI센터를 방문해 오디샤 현지 상황에 대해 설명한 NCCI(인도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국장 크리스토퍼 라주 쿠마르(Christopher Raj Kumar)목사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크리스토퍼 목사는 인터뷰를 통해 인도 기독교의 오디샤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크리스토퍼 목사는 오디샤 문제를 ‘정의의 신학’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한국교회에 자선과 개발의 선교모델을 넘어 연대와 동행의 선교모델로 나아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인터뷰는 KSCF 서재선 목사의 도움으로 진행됐으며 번역은 차경민 전도사가 맡았다.

 

   
▲ 인도기독교교회협의회(NCCI) 정의평화국장 크리스토퍼 라주 쿠마르(Christopher Raj Kumar)목사ⓒ에큐메니안

오디샤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포스코 문제에 대한 NCCI의 공식적인 입장은 무엇입니까?

NCCI는 국민들과 교회를 대변합니다. 그 특정 지역(오디샤주)의 국민들이 포스코를 반대합니다. NCCI는 국민들과 함께 하기에 포스코를 반대합니다. NCCI는 국민들이 말하는 것을 따릅니다. 그리고 NCCI는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주장합니다. 만약 국민들이 포스코를 원하면 NCCI는 포스코를 반대하지 않을 것이고, 국민들이 포스코를 반대하면 NCCI도 반대할 것입니다.


오디샤주에서 포스코를 찬성하는 교회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몇 가지 개발정책들이 번영신학을 믿는 교회들과 기독교인들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의의 신학”을 믿는 교회들은 정의의 마음을 갖는 사람들과 함께 합니다.

둘째로, 포스코를 찬성하는 것을 넘어서, 방법을 차치하고 사람들은 인도가 번영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정의의 측면에서 본다면, 하나님이 땅을 만드셨는데, 돈을 위하여 땅이 황폐하기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지지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과 회사와 정부가 땅을 파괴한다면 우리는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땅을 보호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개발의 미명하에 땅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고,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보존할 책임이 있습니다. 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에큐메니안
최근에 오디샤주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까?

1년 전에 방문했습니다.


한국교회에 오디샤의 상황에 대해 전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까?

저는 이 투쟁을 네 가지 측면에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신학입니다. 한 때는 오디샤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들이 해변의 뜨거운 모래를 품어 안았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포스코를 위한 모래(광물)를 취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먼저 모래를 취하고 그 후에 포스코가 취해라.” 흙을 품어 안는 것, 이것은 신학적 신념입니다. “나는 흙을 (포스코로) 보내기 위해 품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영성을 만듭니다. 이 영성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읍니다. 적은 사람이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지역사회 전체가 와서 “이 땅이 우리에게 속했다”고 단언합니다. 이것은 개별적으로 분리된 영성이 아닙니다. 이 영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의 목적을 위해 헌신하게 합니다.

둘째는 사회학적인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외부에서 돈을 가지고 들어와서, 우리의 자원을 착취하고 떠납니다. 하지만 분명히 나(오디샤 주민)는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나는 나의 땅을 잃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나는 주인이지만 내가 강제이주 당하면 새로운 땅에서 나는 낯선 사람이 될 것입니다.

셋째는 윤리적 문제입니다. 누구의 비용으로 개발이 이루어집니까? 오디샤 주의 달릿과 부족들을 착취함으로써 한국과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달릿과 부족들을 강제이주시킴으로써 누군가는 부자가 됩니다. 교회가 이러한 윤리적 불균형을 참을 수 있습니까? 만약 이익이 국민에게 돌아온다 하더라도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국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잃습니다. 경제적으로 볼 때, 포스코는 아주 적은 비용을 들이고 비싸게 물건을 팝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1%정도가 국민에게 돌아갈까요? 9-10%가 정부에게 돌아가고, 90%는 이해 당사자들에게 돌아갑니다. 분명히 기업은 점점 더 성장할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질 것입니다. 그들은 교육받지 못할 것이고, 결국 삶을 잃을 것입니다. 
    

   
▲ ⓒ에큐메니안
마지막으로 문화적인 문제입니다. 오디샤 주민들은 각자 토착신, 가족신과 예배할 신전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전을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그곳에는 다른 신과 신전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신전을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곳에서 다른 신들을 섬기도록 강요당하게 됩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문화를 갖습니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가면 다른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고, 자신들의 정체성과 전통과 문화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 가면 그들의 문화는 사라질 것입니다. 그들은 그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의복문화와 음식문화, 언어 등 모든 것을 잃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잃을 것입니다. 오디샤 그곳에서만이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갖습니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 그들은 정체성을 잃을 것입니다. 그들은 낯선 사람이나 주변인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단순히 철강회사가 들어와서 철강 캐내고 이윤을 얻는 정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신학으로부터 시작해서, 윤리학적, 사회학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생태학적 문제 등 수 많은 문제들이 함께 발생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문제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의의 문제입니다. 초기 교회들의 선교모델은 자선(charity model)을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즉, 사람들에게 돈이나 물건을 주는 방식입니다. 그 다음 모델은 개발(develoment model)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몇몇 개발관련 활동이 자선활동을 포함하기도 했습니다. 셋째 모델은 연대(solidarity model)이었습니다. 불의가 있는 곳에서 교회들은 “우리가 이들과 함께하고 있으며, 우리는 정의를 원한다!”라고 외쳤습니다. 이제 우리는 동행의 모델(accompaniment model)을 추구합니다.

오디샤 주는 제가 사는 곳과 1500km 떨어져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들과 함께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연대입니다. 하지만 동행은 오디샤주에 가서 그들과 함께 살면서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들이 동행모델을 받아들이도록 독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선에서 개발로, 개발에서 연대로, 그리고 연대에서 동행으로 이행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사람들과 동행하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따른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예수를 따른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동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삶의 모든 문제와 투쟁에 동행하셨습니다. 교회도 역시 그들과 동행해야 합니다.  

   
▲ 인터뷰는 KSCF 서재선 목사가 진행했다.ⓒ에큐메니안

편집부  webmaster@ecumenian.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편집부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김상옥로 30, 402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