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3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광화문 '열린광장'에서 5월 4일과 5일에 벌어졌던 평택 대추리의 국가 폭력에 대해 항의하는 '국책과 공권력에 대한 사제들의 성찰과 참회를 위한 단식기도회'를 갖고 '삭발례'를 한 뒤 무기한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단식기도회 미사를 집전한 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는 "5월 17일은 힘으로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사람들이 힘에 의해 정권을 탈취했던 날로 26년 전 광주 항쟁을 불러일으킨 날이다. 긴 시간 동안 이에 대해 많은 성찰과 참회가 있었으나 아직 부족한 느낌이다"며 "권력에 물 들으면 누구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정권을 잡았으나 스스로 바뀌고 말았다. 권력을 잡으려고 스스로 변하고, 잡고 나면 또 변해버린다"고 정부를 강하게 비판햇다.

▲ 국책과 공권력에 대한 사제들의 성찰과 참회를 위한 단식기도회에서 김영식 신부, 전종훈 신부, 문규현 신부. ⓒ 임순혜

또 전 신부는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이제 성찰과 참회를 다시 시작하려 한다. 이 땅의 가지지 못한 약자들이 누릴 수 있는 참된 세상을 기원하면서 미사를 거행한다"고 밝혔다.

정의구현사제단 통일위원장 김영식 신부는 강론을 통해서 "지난번 노무현 대통령은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교회가 할 일에 대해 고민하던 저희들의 언 손을 꼭 잡고 '다시는 신부님들이 머리 깎고 단식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성토하며 "우리들은 믿었다. 이제 머리 깎지 않아도, 밥을 굶지 않아도 되겠다고 안심했으나 대추리, 도두리에 올해 농사짓겠다는 작은 소망의 농민들을 위해 삭발하고 단식하게 되었다"고 사제단의 입장을 밝혔다.

▲ 김영식 신부는 강론을 통해서 정부의 거짓된 행동에 대해 비난했다. ⓒ 임순혜

미사가 끝나고 정의구현사제단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성명서를 통해서 "국책이란 정부가 국민 모두의 공동선익을 위하여 신중하게 마련한 정책일 것이므로 각 개인은 마땅히 이를 존중해야할 것입니다"며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놓고 정부는 그런 의무에 성실하지도 않았고 신중하지도 않았고, 넓디넓은 농민들의 옥토를 빼앗아 미군을 위한 군사기지로 무상 헌납하는 일이 과연 국익을 위한 지혜로운 선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또한 정의구현사제단은 "이번 평택사건은 흔히 공권력이라는 사회적 강제력이 지닌 부정적인 면들을 낱낱이 보여주었다"고 국방부의 공권력을 비난했다.

이어 "단식기도회에 앞서 대통령과 정부에게 호소한다. ▲ 노무현 대통령은 공권력 행사에 대한 대추리 농민들에게 사과 ▲ 대추리의 철조망 제거, 주둔 병력 철수, 구속자 전원 석방 ▲ 대화와 설득에서 실패한 정부는 주민과는 물론이고 각계각층의 양식 있는 대표들이 참가하는 협의기구를 통하여 이 사태에 대한 합리적이고 평화적인 해결 방안 촉구한다"고 세 가지 안을 제시했다.

▲ 국책과 공권력에 대한 사제들의 성찰과 참회를 위한 단식기도회에 많은 신도들이 참석했다. ⓒ 임순혜

정의구현사제단은 성명서가 발표된 뒤 삭발식이 거행됐다.

이번 삭발식에는 서울 교구 전종훈 신부, 전주 교구 문규현 신부, 광주 교구 이영선 신부, 인천 교구 김인회 신부, 의정부 교구 정석현 신부, 안동 교구 배인호 신부, 안동 교구 정도영 신부, 안동 교구 김영식 신부가 참석했다.

삭발식이 진행되는 동안 신도들이 비통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전종훈 신부가 삭발을 단행하고 있다. ⓒ 임순혜

김영식 신부 강론 전문

지난번 노무현 대통령은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교화가 할 일에 대해 고민하던 저희들의 언 손을 꼭 잡고 ‘다시는 신부님들이 머리 깎고 단식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저희들은 믿었습니다. 이제 머리 깎지 않아도, 밥을 굶지 않아도 되겠다고 안심했으나 대추리, 도두리에 올해 농사짓겠다는 작은 소망의 농민들을 위해 삭발하고 단식하게 되었습니다.     ▲ 삭발을 하고 있는 문규현 신부. ⓒ 임순혜 노무현의 거짓말 때문에 거리에 나앉게 되고 참회의 눈물과 함께 밥을 굶게 돼, 신자들은 사제들의 안위 때문에 길거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대통령 노무현의 거짓 때문에, 위선 때문입니다. 그의 삐뚤어진 공권력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 285만평의 땅이 죽게 되어 갯벌은 빠르게 썩어가고, 볍씨 뿌린 논엔 파랗게 싹이 트나, 몇 배 넘는 철조망이 자라고 있습니다. 국가가 저지르는 무서운 생명 파괴에 대해, 별다른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에, 국가정책이라는 희한한 요술방망이에, 사람이라면 최소한 견지해야 할 상식마저 깊이 잠재워버려지고 말았습니다. 1980년대 대국민사기극 '평화의 땜'도 국책사업이었습니다. 국책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러진 폭력입니다. 자기문제 아니면 상관없다는 이기심을 부끄럽게 고백 안 할 수 없습니다. 5월4일, 미래의 꿈이 담겨있던 땅 위로 날던 헬리콥터의 굉음, 작은 생명을 짓밟으려고 노리고 있던 군인들의 살벌한 눈을 잊을 수 없습니다. 돕겠다는 시민단체와 이미 늙어 제대로 말할 수 없었던 연로한 주민들을 일거에 짓밟은 전투경찰들, 자기들이 대신 맡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천박한 자본에 의한 용역들, 모두 80년 5월, 핏빛 광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 왼쪽 눈이 터져 버렸습니다.     ▲ 마지막으로 삭발을 하고 있는 김영식 신부. ⓒ 임순혜 정당한 공권력으로 포장된 힘에 의해 무자비하게 맞고 연행되어가 26년 전 5·17 핏빛 광주를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나약한 우리들의 정의와 삶을 반성하면서 무도한 공권력에 가슴아파하면서 삭발단식을 하려 합니다. 세상을 놀라게 한 공권력에 대해 성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힘은 공동선이라는 목표를 위해 최후에, 최소로 행사되어야 합니다. 이런 기본 원칙이 쉽게 무시되고 있습니다. 올해도 제발 농사짓자는 갸륵한 농민들의 염원을 짓밟아버려, 역사는 26년 뒤에 또다시 반복되고 있습니다. 2006년 전의 십자가 예수는 '너희를 사랑하게 해 달라'는 작은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공권력의 사용에 대해 처벌과 단죄를 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대항하기에 우리는 너무 미약합니다.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이웃들이 괴로워하고 신음할 때마다 스스로 참회의 기도를 올렸던 것처럼 또다시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매일 오후 3시, 저희의 참회에 대해 응답하시기를 기도하여주시길 바랍니다. 함께 해서 올해도 농사짓자는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시다.     ▲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은 삭발식을 마치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임순혜

임순혜 위원  soonhea@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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