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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기독교 하락은 상류층에 머물렀기 때문'기장 서울노회 야마모토 유지 목사 초청해 특강 열어
한별 기자 | 승인 2013.08.25 22:34

   
▲ 지난 23일 오후2시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예가교회 3층 예배실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선교부가 주관하는 특강이 열렸다. ⓒ에큐메니안

지난 23일 오후2시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 예가교회 3층 예배실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서울노회 선교부가 주관하는 특강이 열렸다. ‘일본 기독교의 역사와 과제’라는 주제로 일본 기독교단 동경교구 북지구 지구장인 야마모토 유지 목사(니시카타마치교회 담임)를 초청해 진행됐다.

유지 목사는 현재 일본 NHK TV에서 방영중인 ‘야에의 벚꽃’이라는 드라마를 소개하며 일본에서의 전도 과정은 무사출신들을 가장 먼저 사로잡았음을 설명했다. 개신교는 스스로 성경을 읽도록 권장했는데 당시 한문 성경을 읽을 수 있던 사람은 지식층인 무사출신들이었다.

유지 목사에 의하면 일본 최초의 개신교 교회는 일본기독공회(훗날 일본 기독교회) 요코하마 해안교회였다고 한다. 이 교회는 네덜란드 개혁파 선교사 제임스 바라의 영어 학원을 모체로 1872년 3월10일에 조직되었으며, 학원에 들어온 소년 중에 막부의 신하의 아들인 우에무라 마사히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몰락하는 가운데 입신을 위해 영어를 배우다 결국 1873년 5월 세례를 받고, 후에는 일본 기독교회 최대의 지도자가 된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많은 무사들이 학원에서 공부를 하는 가운데 개신교를 접하게 되고 세례를 받아 개신교에 입교하게 된다.

당시 무사들이 개신교에 입교한 이유에 대해 일본의 사무라이인 시바 료우타로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메이지는 이상하리만큼 신교의 시대로군요. 에도기를 계승해온 메이지의 기질과 개신교의 정신이 잘 맞아 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근면과 자율자조 혹은 절약 이런 것들이 개신교의 특징이라면 메이지도 그랬습니다.” 이렇듯 개신교의 근면, 자율자조 정신은 무사들을 개신교에 끌어들이는 이유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메이지 유신(지역마다 독립국이 있어 제각각인 상태였던 일본을 하나의 국가로 모으기 위한 무사들의 혁명)은 일본국 통일을 위한 최대의 그리고 결정적인 정책으로 “국가 신도(神道)”를 창설한다. 일본에 원래 있던 신사신도와 황실신도를 결합시켜 신흥종교를 만든 것이다. 유럽은 기독교로 인해서 국민이 하나가 되는데, 그러한 권위가 없는 메이지 국가에서 권위 있는 종교가 필요했기에 스스로 국가 신도를 만들고 거기서 받들어 모신 것이 천황이었던 것이다.

   
▲ ‘일본 기독교의 역사와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는 일본 기독교단 동경교구 북지구 지구장인 야마모토 유지 목사(니시카타마치교회 담임). ⓒ에큐메니안

유지목사는 이때부터 개신교는 일본에서 여론의 공격을 받게 되고, 기독교계는 천황제 국가주의자가 주장하는 사상이 기독교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필사적으로 항변하면서 스스로 자기규제를 하고, 앞장서 천황제에 봉사하는 종교로 변질되어 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기독교 쇠퇴에 대해 일본의 신학자인 후루야의 말을 빌려 ‘일본에서는 막부 말기의 지식층 무사출신 등의 특권계급에 기독교가 전해졌고, 그 때문에 지나치게 진지하고 융통성 없는 사무라이 기질이 있어서 일반대중에게는 거리가 먼 곳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무사계급은 지식층이었기 때문에 일본 교회는 지식편중, 신학편중의 교회가 되어 예배설교도 매우 어려운 설교를 중히 여기고, 하층계급과 육체노동자층을 배제했다고 한다.

계속해서 유지 목사는 일본 기독교의 쇠퇴의 이유 중 다른 하나로는 항상 교회를 따라다닌 천황제와의 싸움을 꼽았다. 초기의 일본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구하는 사회적 발언이나 실천이 있었으나 천황제가 강화됨에 따라 내향적으로 틀어박히게 되면서, ‘소금끼’없는 교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헌법을 개악하고 천황 원수화와 전쟁 포기를 의미하는 제9조의 골자를 빼고, 원자력 수출과 재가동을 호소하는 아베정권의 대두로 일본의 상황은 혼란이 깊어지고 있지만 일본교회는 안으로 들어간 채 우향화를 염려하는 시민들과의 연대나 그 기대에 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일본 개신교의 취약성, 신앙의 추상성, 내세적인 자세를 계속해온 일본교회의 상황을 설명한 유지목사는 이런 일본의 기독교 자세를 문제 삼아 온 사람으로 니시카타마치 교회의 스쯔기 마사히사 목사를 소개했다.

스쯔기 목사는 교단에 통합되기 전, <일본 감리교 신보> 편집자로써 독일의 반나치 교회 투쟁을 소개하기도 하고 일본의 전쟁정책을 교모하게 풍자하며 저항했던 사람이었다. 특히나 스쯔기 목사는 교단의 총회의장이 되었을 때, <제2차 대전에 있어서 일본기독교단의 책임에 대하여>를 발표하고 일본 기독교단이 전쟁에 협력한 것을 회개했었다.

제2차대전에 대한 일본 기독교단의 책임에 대한 고백

(전쟁책임 고백)

저희들은 1966년 10월, 제14회 교단총회를 통해 교단 창립 25주년을 기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저희들의 진정한 과제는 "내일(미래)의 교단" 인 것입니다. 저희들은 이것을 주제로 삼아, 교단이 일본과 세계의 장래에 대해 져야 할 영광스런 책임에 대해 생각하고 또한 기도하였습니다. 진정 이 시점이야말로 저희들은 교단성립과 거기에 이어진 전시하에, 교단의 이름으로 저질렀던 과오를, 이번에 고치고 깨달아서 주님의 자비와 이웃의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는 그 당시 전쟁수행의 필요에 의해 모든 종교단체에 통합과 전시협력을 국가정책으로서 요구하였습니다. 메이지 원년에 선교가 시작된 이래 우리나라 기독교 신자의 대부분은 진작부터 모든 교파를 정리하고 일본에서는 하나의 복음화 교회를 수립하고자 염원하였습니다. 당시의 교회 지도자들은 이러한 정부의 요청을 계기로 교회 합동으로 내딛게 되었고 여기서 교단이 성립되었습니다. 저희들은 본 교단의 성립과 존속을 두고 저희들의 나약함과 과오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역사의 주가 되시는 신의 섭리를 깨닫고 깊은 감사와 함께 두려움과 책임을 통감하는 바입니다.

"세상의 빛""이땅의 소금"인 교회는 그 전쟁에 동조해서는 안되었습니다. 진정 나라를 사랑한다면 기독교인의 양심적인 판단에 의해 국가의 행보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만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희들은 교단의 이름으로 그 전쟁을 인정하고, 지지하며, 승리를 위해 열심히 기도할 것을 안팎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참으로 저희 조국이 죄를 저질렀을 때 저희 교회도 그 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저희들은 지켜야 할 사명을 소홀히 하였습니다. 마음속 깊이 통감하며 이 죄를 참회하고 주님의 용서를 빌며 세계, 특히 아시아 제국, 그곳의 교회 및 형제 자매, 또한 우리 동포들에게 마음속 깊이 용서를 구하는 바입니다.

종전으로부터 20년 이상 지나, 저희들이 사랑하는 조국은 오늘날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세계 속에 있으며 두번 다시 우려해야 할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저희들은 교단이 다시 그러한 과오를 반복하지 않고 일본과 세계에 져야 할 사명을 올바르게 수행하도록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를 기도하며, 내일(미래)을 향해 결의를 표명하는 바입니다.

1967년 3월26일 부활주일  총회의장 스즈키 마사히사

 

第二次大戦下における日本基督教団の責任についての告白

『戦争責任告白』

わたくしどもは、1966年10月、第14回教団総会において、教団創立25周年を記念いたしました。今やわたくしどもの真剣な課題は「明日の教団」であります。わたくしどもは、これを主題として、教団が日本及び世界の将来に対して負っている光栄ある責任について考え、また祈りました。まさにこのときにおいてこそ、わたくしどもは、教団成立とそれに続く戦時下に、教団の名において犯した過ちを、今一度改めて自覚し、主の憐れみと隣人の赦しとを請い求めるものであります。

わが国の政府は、そのころ戦争遂行の必要から、諸宗教団体に統合と戦争への協力を、国策として要請いたしました。明治初年の宣教開始以来、我が国のキリスト者の多くは、かねがね諸教派を解消して日本における一つの福音的教会を樹立したく願ってはおりましたが、当時の教会の指導者たちはこの政府の要請を契機に教会合同に踏み切り、ここに教団が成立いたしました。私どもはこの教団の成立と存続において、わたくしどもの弱さと過ちにもかかわらず働かれる歴史の主なる神の摂理を覚え、深い感謝とともにおそれと責任を痛感するものであります。

「世の光」「地の塩」である教会は、あの戦争に同調すべきではありませんでした。まさに国を愛する故にこそ、キリスト者の良心的判断によって、祖国の歩みに対し正しい判断をなすべきでありました。しかるにわたくしどもは、教団の名において、あの戦争を是認し、支持し、その勝利のために祈り努めることを内外にむかって声明いたしました。まことにわたくしどもの祖国が罪を犯したとき、わたくしどもの教会もまたその罪におちいりました。わたくしどもは「見張り」の使命をないがしろにいたしました。心の深い痛みをもって、この罪を懺悔し、主にゆるしを願うと共に、世界の、ことにアジアの諸国、そこにある教会と兄弟姉妹、また我が国の同胞に心からのゆるしを請う次第であります。

終戦から20年余を経過し、わたくしどもの愛する祖国は、今日多くの問題をはらむ世界の中にあって、ふたたび憂慮すべき方向にむかっていることを恐れます。この時点においてわたくしどもは、教団が再びその過ちを繰り返すことなく、日本と世界に負っている使命を正しく果たすことができるように、主の助けと導きを祈り求めつつ、明日にむかっての決意を表明するものであります。

 
1967年3月26日 復活主日 総会議長 鈴木正久

그러나 이 스쯔기 의장이 주도한 일본기독교단 개혁 노선은 결국 교단을 이분화 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책임에 대한 고백’에 반발하던 사람들과 ‘만국 박람회’ 사건, ‘동경신학대학 기동대 도입문제’를 둘러싸고 좌파와 우파, 교회파와 사회파의 대립이 뚜렷해져 서로 접근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분쟁 이후 30년은 세력이 서로 팽팽했으나 1996년 이후 교회파가 주도권을 잡은 후 사회적 활동은 멈추고 오로지 ‘전도에 불타는 교회’라는 슬로건 아래 매진하고 있다.

유지 목사는 마지막으로 일본 기독교단의 교세 하락의 원인으로 “대중, 민중에게 기독교가 스며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가족 특히 아이들에 대한 전도가 실패했기 때문이며, 교세가 밑에서 맴돌고 있는 것을 전쟁책임 고백이나 사회파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 보수파들이 전도를 강조한지 15년 이상 경과했지만 여전히 교세가 하락되는 것은 훌륭한 선생님을 초청한 전도 집회나 전도지 배부로 문제가 타개될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비해 일본 교세가 하락하는 이유는 희생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조선 기독교인은 신사참배에 대한 저항과 순교로 교회가 성장했으며, 70년대 한국 민주화투쟁의 담당자가 되었는데, 일본의 주류 개신교회는 순교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일본의 교세 하락 원인을 분석한 유지 목사는 “지금이야말로 주 예수께서 주신 교회 밖에 할 수 없는 사명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이러한 한일교회의 차이로 인해 주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여긴다.”면서 요한복음 12장25절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를 낭독하며 강연을 마쳤다.

이날 강연을 한 야마모토 유지 목사는 안식년을 맞아 한달간의 일정으로 한국에 들어와 있으며, 유지목사가 담임목사로 시무중인 니시카타마치교회는 서울제일교회(담임목사 정진우)와 30년 넘게 자매교회로써 관계를 맺고 있다.

   
▲ ⓒ에큐메니안

 

한별 기자  ektlgof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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