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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하는 9개 마을 9년간 봉쇄 중"Anti Posco 운동단체 PPSS 파이크라이 대변인 인터뷰
편집부 | 승인 2013.09.03 14:35

지난 6월 24일부터 7월 4일까지 한국 기독학생들의 인도 방문 프로그램은 뱅갈로르에 위치한 SCMI(Student Christian Movement of India)에서 진행한바 있다.

프로그램 기간 중 오디샤에서 포스코 반대운동을 벌이는 활동가를 통해 오디샤 상황과 주민들의 투쟁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PPSS(Posco Pratirodh Sangram Samiti, 인도어 영문표기)라는 단체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Paikray씨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9년 넘게 봉쇄된 마을에서 어떻게 포스코 반대운동이 벌어지는지 상세한 현지 상황을 전해왔다. 또한 한국교회와 사회에 오디샤 주민의 포스코 반대운동에 함께 해줄 것을 간곡히 당부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 Anti Posco 운동단체 PPSS(Posco Pratirodh Sangram Samiti, 인도어 영문표기) 파이크라이 고하르 대변인ⓒ에큐메니안

저항하는 9개 마을 9년간 봉쇄


Paikray 선생님, 당신은 오디샤주 주민입니까?

아닙니다. 저는 강제이주반대 운동가입니다. 저는 그들을 대변합니다.

 

대변인으로서 당신은 다른 운동가들보다 주민들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까?

네 맞습니다. 제 역할은 9개 마을의 이슈들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다른 운동들과 연결하는 것입니다. 국가단체나, NGO, 정치정당들과 연결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오디샤주가 봉쇄되었다고 들었는데, 최근 상황은 어떻습니까?

아닙니다. 오디샤주 전체가 아니라, 오디샤주 안에서 반대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9개 지역만 봉쇄된 것입니다. 9개 마을이 9년 동안 봉쇄되었습니다.

 

   
▲ 마을 어귀에서 다르나(연좌시위)를 하고 있는 딩키아 마을 주민들

우리는 그 마을에 들어갈 수 없습니까?

다른 지역과 다른 나라의 운동가들이나 기자들은 그 지역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제 기억으로 2년 전에 한국에서 안티포스코운동에 연대하는 사람들이 그 지역을 방문하러 왔지만 경찰에 연행됐습니다. 그들은 몇 시간 동안 구금상태로 있다가 결국 추방당했습니다. 경찰이 그 지역사람들과 외국인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 곳은 봉쇄된 구역이 아님에도 경찰이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곳(오디샤 봉쇄지역)이 아니라 이곳(뱅갈로르)에 있습니다. 애초에 우리는 오디샤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매우 아쉽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습니다. 봉쇄지역의 경계에 오면 오디샤 사람들이 맞이하러 나올 것입니다. 그들은 당신들을 기쁘게 맞이할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제가 부탁합니다. 오디샤에 와주십시오. 봉쇄지역에 들어가지는 못하더라도, 그 주변지역으로 오시면 우리 사람들이 맞이하러 갈 겁니다. 특정 지역에 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200km 내의 지역은 여러분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오셔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역주민을 만나게 주선하겠습니다. 그들은 모두 기쁘게 만날 것입니다.    

 

지역이 봉쇄된 상황 속에서 운동가들은 어떻게 활동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열흘에 한번이나 일주일에 한번 꼴로 그 지역을 방문합니다. 직접 연결된 도로를 통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마을을 통해서 들어갑니다. 아무도 모르는 길입니다. 지역주민들을 만나기 위해 아주 조심히 그 지역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다른 사람들에게 지역주민들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편지나 전화로 메시지를 전합니다. 제 전화는 경찰에게 도청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전화로 다른 사람들과 통화합니다. 즉, 일반적인 통화는 도청당하는 전화로 하고, 비밀스런 통화는 다른 전화를 사용합니다.    

 

   
▲ 2011년 KBS에 보도된 PPSS 파이크라이 대변인의 모습

기업과 정부가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있다

 

안티포스코 운동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슬펐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저나, 우리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2005년 6월 22일 계약이 있은 지 8일 후, 우리는 지역주민들을 불러 모았던 때입니다. 그 때 9개 마을의 1000명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때는 포스코를 찬성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포스코도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계약이 있은 지 8일 후에 모든 주민들이 포스코를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 그리고 점차 1년이 지나고 포스코는 사람들을 분열하고 가로막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정당을 통하여, 돈을 이용하여, 경찰을 통하여 사람들을 분열했습니다. 처음 6-7개월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모든 사람과 모든 정당들이 무조건 포스코를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나, 슬펐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2007년 11월 29일 경찰이 딩끼아 마을을 제외한 그 지역의 모든 마을을 장악했었습니다. 하지만 2008년 4월 2일 대규모 집회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전국민대회(national rally)라고 불렀고, 그것은 발리톨(지역이름)로 들어가는 지점 인근에서 일어났습니다. 경찰이 바리케이트를 만들었지만,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그것을 이용했습니다. 그들은 경찰들이 설치한 바리케이트를 흩어버렸습니다. 아주 감정적인 사람들이 다른 길을 통해서 왔습니다. 그들은 경찰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이나 저항군의 말을 듣고 온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기쁘게 왔습니다. 그때 역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3명이 죽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집회가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다른 한쪽에서는 안티포스코운동의 지도자 3명이 죽었습니다. 두 사람은 형제였습니다. 2008년도에도 두 형제가 폭탄공격을 당하여 죽었습니다. 그 날은 아주 우울한 날이었습니다.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주민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집회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3명이 죽은 것이었습니다. 그중 한명은 고빙풀(지역이름)의 핵심지도자였습니다. 그 날은 안티포스코운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극적인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티포스코 운동은 다시 살아났고, 사람들은 철강회사 포스코와 싸우기 위해 여기저기서 다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사람들이 조직화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아주 비극적인 날이었습니다.   

 

   
▲ ⓒ에큐메니안

운동가들과 일부 지역주민들 간의 견해 차이는 없나요?

지난 13년 동안 우리 정부는 철강, IT, 전기 등 다양한 분야의 95개 회사와 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약 이후에 많은 반대운동이 있었다. 그 이유는 정부가 숲과 땅, 생계와 물 등 오디샤 주의 천연자원을 갈취할 것임을 사람들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계 각국에서 이곳에 거대한 공장(mega-plant)을 세우기 위해서 왔고, 그 목적은 숲과 광물, 물 등 천연자원을 갈취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사람들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회사들에 대항하여 다양한 반대운동이 진행 중입니다. 몇몇 반대운동은 회사와 정부에 의해 진압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반대운동의 경우에는, 정부가 기업이 사람들을 분열시키려고 합니다. 그들은 주민들을 포스코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로 분리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미 어느 지역은 90%의 주민들이 포스코를 찬성하고 오로지 10%의 주민들만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대게 돈 때문에 포스코를 찬성하게 됩니다. 어떠한 이데올로기나 윤리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돈 뿐입니다. 만약 포스코 찬성론자에게 ‘왜 포스코를 찬성하는가?’ 묻는다면, 그들은 그저 산업개발을 원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산업개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정부와 기업이 우리들을 돈으로 포섭하려고도 했지만 우리는 거절했습니다. 기업이 우리의 지도자를 돈으로 설득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돈 때문에 우리의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나에게도 뇌물을 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지도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를 포함한 모든 지도자들을 매수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이슈들에 대해서는 우리 안에서도 이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우리는 연합하여 포스코와 정부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가끔 이견이 발행하지만 그것은 아주 사소한 것입니다. 운동을 하면서 이견이 발생할 때도 있지만,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어 포스코에 대항하여 함께 싸울 것입니다.
         
주민들에게도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민들 간에는 항상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일상적인 것입니다. 그런 갈등은 그냥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갈등을 해소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한 갈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9년 동안 포스코에 대항하여 함께 싸웠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성과입니다.

 

오디샤에서 자행되는 기업의 범죄와 폭력에 주목해 주기를

 

마지막으로 한국 기독교에 전달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저는 한국과 다른 여러 나라의 기독교 지도자분들에게 부탁합니다. 환경, 폭력, 부패, 산림보호법 등과 관련한 안티포스코 운동의 여러 가지 이슈들을 함께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기업의 범죄, 기업의 폭력이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반대운동은 처음부터 다국적 기업에 대항한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운동이었습니다. 우리는 기업의 거대한 공장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평화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이 함께 포스코에 대항하여 국제적인 캠페인에 동참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기업적 폭력에 대항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국가지도자와 유엔까지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의 자유와 인간성 증진, 그리고 자연보존을 위해 모두가 하나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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