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소개

김희헌

한신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하고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미국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 미국클레어몬트 대학원대학교에서 종교철학과 조직신학으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신대학교와 성공회대학교에서 외래교수 및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낙산교회에서 담임목사로 목회하고 있다.

저서로는 『Minjung and Process』(2009), 『다시 민중신학이다』 (공저,2010), 『생명과 평화를 여는 그리스도인』(공저,2011)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위대한 두 진리: 과학적 자연주의와 기독교 신앙의 새로운 종합』(2010), 『폭력에로의 타락: 원죄에 대한 관계론적 신학의 새로운 이해』(2011), 『진화하는 종교 : 화이트헤드의 종교론』(2012)이 있다.

책소개

이 책은 신학자이자 개신교 목사였던 죽재 서남동의 생애와 사상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연구서이다. 특히 이책 에서는 그가 강조했던 민중신학을 보편적인 종교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그의 사상에 담긴 관계론적 생명신학의 면모를 재조명하고 있다.이것은 1980년대에 독보적인 한국 신학으로 세계에 소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답보 상태에 놓이게 된 민중신학의 재부흥을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민중신학은 1970년대에 서남동을 비롯한 몇몇 신학자들에 의해 시작된 개신교의 진보적 실천신학을 일컫는데, 이 책에서는 서남동의 민중신학이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원점을 철저하게 재해석하는 작업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기독교 신앙의 원점이란 구원의 열정을 지닌 신이 이 세계 속으로 성육신하여 모든 생명을 죽음의 질서에서 해방시킨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신앙의 학문인 신학은 역사와 우주에 임한 신의 현존을 증언 할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정의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새로운 경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서남동의 민중신학은 이 작업을 확실하게 해내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 기독교계의 문제점을 타개해나갈 하나의 처방으로서 서남동의 민중신학을 적극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서도 민중신학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서남동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서남동의 사상 연구에 새로운 장을 마련하고 있다. 그동안 서남동의 사상은 주로 그의 생애 후반 10년 동안 전개된 민중신학에만 국한되어 해석되었고, 그 이전 시기와의 사상적 단절을 강조하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의 민중신학이 그의 전 생애를 통한 사상적 고투 끝에 도달한 종국적 완성이라고 보고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서남동의 사상적 궤적을 전체적으로 그려보고 21세기의 다양한 사상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그의 민중신학에 담긴 철학적 면모를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머리말

민중신학에 이르다

개신교는 비교적 평온하게 한국 역사에 정착한 종교다. 가톨릭이 그보다 100여 년 전에 전래되었을 때 1세기 동안 박해와 침체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던 것과는 달리, 개신교는 구한말과 일제 시대의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근대화와 독립을 원했던 한민족으로부터 종교적 동의를 빠르게 얻었다. 서양 종교인 기독교가 제국주의라는 오명을 쓰지 않고 아시아 국가에 안착한 대표적인 사례가 한국 개신교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포교 1세기 만에 한국 개신교는 자신의 종교적 상징인 십자가를 동네마다 걸어놓을 만큼 성장했다.

성취의 자만이었을까, 이상의 타락이었을까? 오늘날 개신교는 스스로 혼탁의 도를 더해가면서 점점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축복과 성공이라는 미끼에 걸린 채 성경의 가르침과 십자가의 길에서 멀어져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고통당하는 피조물의 신음소리(롬 8:22)를 듣고 구원을 베풀던 신(神)은 교회의 늙은 우상이 되었고, 기독교의 진리 주장은 관념에서만 겨우 전능할 뿐 내면의 성찰과 사회적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힘을 잃었다. 군림하는 권력에 대한 찬양은 높지만 불의한 체제의 전복을 꿈꾸며 거리를 누비는 혁명의 기상은 메말랐고, 굴종하는 약자는 자선 대상으로 수용되지만 저항하는 민중은 신의 적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새 시대의 도래(막 1:15)를 알리는 참된 외침이 터져 나올 수 있을까?

그와 같은 문제의식을 정직하게 품은 기독교 정신이 있다. 197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민중신학이 바로 그것이다. 신음하는 피조물을 향해 십자가를 지고 돌진하는 신의 구원의 열정을 어떻게 다시 증언할 수 있을까? 갇힌 사고의 교조주의적 주장으로 자멸하지 않고, 생생한 역사 현장에서 “영과 진리”(요 4:24)로서 약동하며 신을 경배할 수 있는 종교 정신을 어떻게 다시 세울 수 있을까? 민중신학은 이런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세상의 고난 속으로 화육하는 신을 증언하고 그 신적 현실에 교회가 참여하도록 촉구했다.

민중신학이란 무엇인가? 그 핵심은 기독교 신앙의 ‘원점’에 대한 강조이다. 기독교 진리는 구원의 열정을 지닌 신이 이 세계 속으로 성육신하여 모든 생명을 죽음의 질서에서 해방시킨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기독교 신학이란 ‘역사(와 우주)에 임한 신의 현존’을 증언하는 학문으로서, 그 신학적 진실은 옛 질서에 갇혀 신음하는 모든 생명이 정의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새로운 경지에 관한 환상(욜 2:28)을 갖도록 불러일으키는 곳에서 발견된다. 기독교 신앙은 신과 세계가 합류되고 있는 지점에 관한 냉철한 묵상이요, 죽임의 세계에 불을 질러 참된 평화(shalom)를 이루려는 신(눅 12:49)의 뜻을 따르는 열렬한 헌신이다.

죽재 서남동의 민중신학은 한국 개신교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 신학의 본래적 이상을 활짝 피워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역사 속에 임한 신의 자취를 찾기 위해서 자신의 시대와 치열하게 대화하다가 마침내 연 새로운 신학적 지평이 민중신학이었다. 죽재는 당대의 신학적 지혜를 두루 섭렵한 “현대 신학의 안테나”였을 뿐만 아니라, 해직과 투옥을 감내하며 민중의 고난에 동참한 실천적 지식인이었다. 그가 벌인 사상 투쟁의 현장이 한국이었으니, 그의 민중신학이 한국적인 신학일 수밖에. 죽재와 그의 동료들이 전개한 민중신학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거의 유일한 한국의 신학이다.

이 책의 목적은 죽재의 사상을 개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동안 죽재의 사상은 상황신학 또는 정치신학의 관점에서 해석되었다. 그것은 죽재 스스로가 말년에 전통적인 신학적 방법론을 “유예(moratorium)”시키고 자신의 신학을 “탈(脫)신학” 또는 “반(反)신학”이라고 이름 짓고, 보다 한국적인 전통과 사회 상황에 주목하고자 했던 사실에 근거한 해석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죽재의 민중신학을 제3세계 신학이라는 특정한 관점보다는 보편적인 종교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한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의도가 담겨 있다. 그 하나는 죽재의 사상에 대한 항간의 오해를 일소하고 그가 추구했던 사상의 전모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스스로 고백했듯이 죽재는 기독교 신학의 “원점”을 되살려내고자 필생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는 진취적이고 선도적인 자신의 생각 때문에 기독교 신학으로부터 ‘이탈’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은 죽재가 걸어간 사상적 궤적을 일관되게 그려보고, 그가 결론으로 삼은 민중신학을 기독교 신앙의 중심에 정치시키고자 한다. 또 다른 하나는 민중신학의 지평을 확대하는 것이다. 그동안 민중신학에 부여된 명예이자 굴레였던 한국적 ‘상황’신학이라는 범주를 확장시켜, 21세기의 다양한 사상들과 대화할 수 있도록 죽재의 민중신학에 담긴 철학적 신학, 관계론적 생명신학의 면모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죽재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필자의 서술이다. 여기서는 죽재의 삶과 사상을 전체적으로 요약한 후, 그의 중심 사상을 다섯 개의 개념에 담아서 설명했다. 먼저 죽재의 민중신학을 특징짓는 “두 이야기의 합류”라는 개념을 존재ㆍ우주론적 차원으로 끌어올려 해석하고, 그 개념이 어떻게 기독교적 증언의 핵심을 꿰뚫고 있는지를 토론한다. 둘째로, 두 이야기의 합류를 증언할 수 있는 인식론으로 제시된 “성령론적ㆍ공시적 해석”이 전통적인 사유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서술한다. 셋째로, 민중을 “메시아”로 본 죽재의 독특한 사유를 범재신론(panentheism)이라는 유신론적 우주론에 담아서 재해석한 후, 그 사유에 담긴 포괄적이고도 역동적 특징을 소개한다. 넷째로, 계시가 역사의 지평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 하부 구조적 실상을 증언하고자 했던 “탈신학, 반신학”의 내용과 의의를 밝힌다. 마지막으로, 기독교 신앙과 교회의 과제를 “한의 사제”가 되는 것이라고 했던 죽재의 신학적 권고를 전한다. 2부는 죽재가 쓴 100여 편의 글 가운데 그의 사상적 특징을 잘 드러내주는 여섯 편을 골라서 독자들에게 그의 목소리를 직접 전달한다. 한문은 한글로 바꾸고 불필요한 부분은 잘라내어 가독성을 높였다.

내년이면 죽재 서남동이 이 땅을 떠난 지 30주년이 된다. 그의 제자들은 ‘민중교회’라는 흐름을 만들고 고난당하는 이 생명 세계에 정의와 평화의 씨앗을 심기 위해 노력해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중신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 분투해왔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가시화된 세계화의 과정에서 득세한 신자유주의는 인간의 정신마저 잠식하고 교회로 하여금 축복과 힐링이라는 즉자적인 해법이 동원된 성공주의에 취하도록 만들었다. 반대로 민중신학은 후퇴와 답보를 거듭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제 정직하게 묻자! 무엇이 이 세계를 구원할 참 종교의 목소리인가? 더 큰 소비의 풍요인가, 더 깊고 넓은 고통의 연대인가?

이 물음의 심각성이 날로 높아가는 때에 다시 죽재 서남동의 사상을 정리하여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고마운 마음이다. 그의 사상의 맥락을 읽다 보면, ‘드디어 민중신학에 이르다!’라는 감동을 얻게 된다. 신의 진리가 역사에 이르지 않고서는, 기독교의 이상이 민중의 고난과 희망에 이르지 않고서는, 철학적/종교적 사유가 생동하는 역사와 우주의 바다에 이르지 않고서는 자기 이야기를 써나가는 인간 실존의 핵심인 영혼에 결코 감동을 줄 수 없다. 죽재는 필생의 사상적 고투 끝에, 드디어 민중신학에 이르렀다. 그의 지혜를 밝히는 데 이 책이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2013년 9월 김희헌

차례

시리즈를 펴내며 4
머리말: 민중신학에 이르다 8

1| 서남동의 생애와 사상 13
1. 서남동의 생애 15
2. 서남동의 주요 사상의 맥락 29
3. 서남동의 중심 사상 해설 46
1) 두 이야기의 합류: 기독교 신학의 본성과 이상 46
2) 성령론적, 공시적 해석: “두 이야기의 합류”를 드러내는 신학적 해석학 66
3) 민중메시아론: 범재신론에 기초한 변혁적 신학 사상 86
4) 계시의 하부 구조: 탈신학과 반신학 104
5) 한의 사제: 죄, 한, 단,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과제 116
 

2|
서남동의 주요 저작 133
1. 현재적 그리스도 135
2. 자연에 관한 신학 157
3. 성령의 제3시대 175
4. 두 이야기의 합류 192
5. 민담에 관한 탈신학적 고찰 216
6. 대담: 민중신학을 말한다 232

연보 264
참고 문헌 268
찾아보기 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