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리 가도 산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끝도 없이 펼쳐진 넓은 평야,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 행렬이 보인다.ⓒ에큐메니안

모스크바에서 이르쿠츠크까지는 4박 5일 총 94시간을 좁은 기차 안에서 지내야 했다. 처음에는 아무리 가도 산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끝도 없이 펼쳐진 넓은 평야,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작나무 행렬, 낯선 풍경으로 인해 흥분하였다.

▲ 평화열차 참가자들은 이렇게 비좁은 객차안에서 4박 5일 94시간을 지냈다.ⓒ에큐메니안

▲ 좁은 침대 위애서 퍼즐기차를 만드는 모습ⓒ에큐메니안

그리고 참석자들은 서로 모르는 얼굴을 익히기고 성서연구와 묵상으로 평화에 대한 상호간의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지만, 폭 1.5m, 높이 2.5m, 면적 3.2m²의 좁은 공간에서 4명이 함께 지내야한다는 것은 무척 지루한 일정이 아닐 수 없다. 진행 측에서 열차퍼즐 만들기, 연에 그림 그리기, 정차하는 역마다 함께 평화노래 부르기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하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평화에 관련된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 영화 <간큰 가족> 포스터

4명이 정원인 방에서 8명이 어둠속에서 맨 처음 본 영화는 ‘간 큰 가족’ 조명남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이산가족이 겪는 외로움과 실향민 가족이 겪는 남과 북의 애환을 그린 영화다. 수십 년을 살아온 부인 앞에서 북에 두고 온 부인 타령만 하는 간 큰 남편 김 노인은 오매불망 북에 두고 온 아내와 딸을 만나는 게 소원이다. 통일부에 북한주민접촉 신청하고 돌아오던 김 노인은 사이렌소리에 놀라 발을 헛디뎌 병원에 입원하고, 가족들은 ‘간암말기’라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김 노인에게 50억 원의 자산이 있는데, “유산은 통일이 되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가족들이 알게 된다. 가족들은 “통일이 되었다”는 담화문을 실은 가짜 뉴스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가짜 통일 상황을 아버지가 믿게 만드는데….

▲ 노트북으로 영화보기ⓒ에큐메니안

‘지상최대사기극’이란 안내문이 보이듯 이 영화는 여러 가지 사건을 겪는다. 조작신문에  평양기예단 공연광고 때문에 가족들은 엄청난 노력으로 서커스공연도 하게 된다. 출연단의 교통사고로 가족들이 직접 공연을 하다가 사고를 일으키는 과정은 웃기기도 하면서 즐겁기까지 하다. 결국 우여곡절을 거쳐 김 노인 가족들은 북에 둔 이산가족을 만나게 된다. 얼굴도 전혀 모르는 두 아들이 북에서 온 외사촌을 만나 누나가 전해준 연필과 공책을 받고 눈물을 흘린다. 또한 외사촌 누나는 쓰러진 김 노인 앞에 가서 본인이 딸이라고 울먹이며 ‘아버지’를 부르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대부분 좁은 공간의 관람객은 눈물을 흘린다.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 앞에서 이것이 과연 같은 한민족이기 때문에  나오는 눈물인지, 아니면 몇 십 년 동안 겪어야 하는 분단가족의 아픔 때문인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간 큰 가족’은 영화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평화열차는 이산가족으로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보려고 참여한 분들이 있다. 독일 보쿰멜란톤 교회 인광삼 집사(64)는 평양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려고 평화열차를 탔다. 인집사는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데, 당시 두 언니만 남겨두고 가족들이 월남하였다. 인집사는 이후 1967년 독일에 간호사로 왔으며, 북의 두 언니를 만나려고 1988년 독일국적을 취득하였다. 다행이 인집사는 남북이산가족상봉을 처음 시작하던 1991년 9월 직접 해주를 방문하여 이미 결혼한 두 언니 집에서 일주일간 함께 지낼 수 있었다. 그 후 2005년에도 독일개신교회협의회 방문단과 함께 방문하여 언니들을 사리원호텔에서 세 시간 만날 수 있었는데, 끼니를 잇기 어려운 당시 언니들의 상황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고 눈물짓는다.

▲ 독일 보쿰멜란톤 교회 인광삼 집사(가운데)는 평양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려고 평화열차를 탔다.ⓒ에큐메니안

현재 인집사의 어머니는 91세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다시 한 번 언니들을 만나서 어머니에게 언니들의 소식을 전하고 싶어 이번 평화열차를 탔는데…. 이날 심양에서 남북 기독교 대표단이 만나서 비행기로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합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인집사의 얼굴은 밝아졌다. 그동안 열차에서는 북한 방문이 어렵게 되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는데 비행기라도 평양을 방문하면 언니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게 되었다. 인집사는 남북한 당국이 북한방문을 허락하도록 하는 청원서에 기쁘게 서명을 하였다. 현재 상태로는 통일이 언제 이루어질 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인집사의 어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에 통일이 불가능하게 보이는 상황에서, 인집사는 가족방문이라도 자유롭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최정의팔  euip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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