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노성산 가자.”
“싫어요. 안 갈래요.”
“가기 싫으면 말아라. 우리끼리 갔다 올게”

지난 일요일에도 노성산에 소풍을 갔다 와서 그런지 더아모의 아이들이 이번에는 가기 싫단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이들의 의사는 여지없이 존중이 된다. 더아모에선 어른 아이를 불문하고 이런 일은 일상이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홀가분하게(?) 길을 나선다. 우리의 노성산을 향해서.

▲ 목사인 내가 삭발을 한 것만 봐도 대책없어 보이지 않는가. 그나마 나의 장점은 아내의 훌륭한 점을 진작부터 알아서 자랑(?)하고 다닌 다는 것이다. 아내가 준 시원한 오이를 한 입에 물고 '당신이 최고야'를 연발하고 있다.

아내와 나는 지나가는 봄이 아쉬워 오월의 마지막을 붙들고 그렇게 노성산 등산로에 몸을 싣는다. 나보다 더 건장한(?) 아내는 산에 오르자마자 “힘들어요 쉬었다 가요”를 연발한다. 그래서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그 주기가 10분도 채 안되지만, 그런 재미가 솔솔 하다. 우리는 행복할 만큼 발을 옮겨가는 여유를 부린다. 걷다가 조금이라도 힘들다고 느껴지면

“여보, 우리 쉬어 갈까”
“그러지, 뭐”

주저 없이 앉아서 쉬었다 가는 넉넉함이 우리에게 있다. 나와 아내가 14년간 맞춰온 팀워크가 빛나는 순간이다.

▲ 나는 단지 등산가자고만 했을 뿐인데, 아내는 동작도 빠르게 초컬릿, 오이, 얼음냉수, 휴지 등을 가방에 챙겨왔다. 나는 대책없이 늘 일을 벌리고, 아내는 늘 뒷처리 하는 것이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그래서 아내가 한없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여기는 산 정상 바로 밑 천연 바위 의자. 아내와 내가 잠시 쉼터로 점한 곳이다. 평평한 그 바위에 앉으니 우리 마음 속에 주위의 산이 하나둘씩 들어온다. “뻐꾹 뻐꾹” 5월의 뻐꾸기 소리가 정겹다. 산 아래에서 들려오는 산사의 염불 소리와 목탁 소리는 아기를 낮잠 재우는 할머니의 평화로운 자장가로 들려오는 듯. 뒤질 새라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 소리는 정신을 청아하게 만든다.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그 소리 사이로 봄바람이 솔잎을 스치며 내는 향긋한 소리가 귓가를 지나간다. 그제야 잊고 있었던 새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솔향기와 아카시아 향기가 산을 온통 차지 해버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렇게 5월의 산과 느릿느릿 하나가 되어 간다.

“야호, 야호”

갑자기 산 정상에서 들려오는 정상 정복자(?)들의 승리 세리모니에 산이 온통 흔들린다. “지나가는 산 다람쥐가 그 소리에 놀라 애 떨어지지 않을까”라는 농담이 내 입에서 나오자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웃는다. 그러더니 아내가 생각났다며 갑자기 명언 아닌 명언을 내 뱉는다. “산에 나무가 없으면, 산에 올라갈 일이 없다. 끝~~~”이라고. 가끔씩 생뚱맞게 던지는 아내의 짧은 명언(?)은 내가 글을 쓰는데 소재와 영감을 제공하는 샘물이 되기도 한다. 이러니 어찌 아내와 단 둘이서 산을 오르지 않을 소냐.

“여보, 이 오이 먹어봐요. 산에 오르면 오이가 좋대요.”

아내가 오이를 가방에서 꺼낸다. 시원한 오이를 꺼내주며 해맑게 웃는 아내를 보며 나는 또 한번 속으로 ‘역시 내가 아내는 잘 얻었어. 암. 그렇고말고.’ 라는 팔불출의 쾌재를 부른다. 그 오이가 다가 아니다. 나는 산에 가자고 말하기만 했는데, 아내는 어느새 ‘초콜릿, 얼음 생수, 오이, 휴지’ 등을 가방에 챙겨온 게 아닌가. 아내와 나는 늘 그런 식이다. 나는 대책 없이 일을 벌이고 아내는 차근차근 누님처럼 챙겨주는 식 말이다. 대책 없이 사는 내가 그래도 이때까지 버텨온 원동력이 무엇인지 여지없이 들통 나는 순간이다.

▲ 등산길에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던 쌍둥이 공주와 아빠다.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가 너무 보기 좋은 게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산 정상에서 구름을 벗삼아 본 아이들의 미소라 더욱 그러한 듯.

그렇게 쉬엄쉬엄 오르다보니 어느 새 산 정상에 우리의 발이 서 있다. 정상에 오르니 아까부터 우리와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쌍둥이 공주와 그들의 아빠가 도착을 한다. 딸들을 세워두고 사진 찍는 모습이 하도 좋아 보여 “우리 서로 사진 촬영을 교환합시다.”라는 제의가 절로 나온다. 쌍둥이 아빠도 쾌히 승낙하고, 번갈아 가며 사진을 찍어주니 난생 처음 만난 우리들은 산 정상에서 정겨운 이웃이 된다.

곧이어 정상에 도착한, 딸과 아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온 한 아빠는 “우리는 뱃살 가족이야. 많이 걸어야 해. 살 빼야지”라며 아이들과 우스갯소리를 한다. 쳐다보니 가히 그 뱃살이 장난이 아니다. 그 소리를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 해대니 아이들의 인상이 찌그러지는 것을 아빠는 눈치 채지 못한다.

아내와 내가 다만 눈치로 슬쩍슬쩍 도둑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노성산 등산로엔 부부가 함께 온 경우 보다는 배우자를 집에 떼어 놓고 자녀들과 함께 온 사람들이 꾀 눈에 띈다. 그런 팀들이 하나둘 우리 곁을 지나가니 우리는 그 속에서 즐거운 이단아(?)가 되어 버린 듯.

하여튼 아내와 나는 5월의 산속에서 사람들과 자연과 악수하며 마냥 행복한 아이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 우리는 '정상 내외'가 되었다. 땀흘리며 도착한 정상봉에서 사진 찍는데도 누구 머리 때문에 영 어색한 듯.

안성 일죽에 위치한 <더아모의 집>은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으로서 본인의 가정집. 마을 아이들의 쉼터와 놀이공간, 독거노인과 마을 어르신을 섬기는 센터, 교회당 등의 다목적용 집입니다. 더아모의 집 http://cafe.daum.net/duamo

송상호  shmh06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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