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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청와대”와 “자본주의”를 겨누었다화려한 액션 뒤에 숨겨져 있는 두 가지 코드
이정훈 기자 | 승인 2014.01.14 00:32

국가에서 시행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복지 정책 중에 <문화카드>라는 것이 있다. 매년 5만원씩 카드에 자동으로 적립이 되고, 이 카드와 제휴되어 있는 서점, 음식점, 극장에서 저 금액의 한도 내에서 사용이 가능한 제도이다. 이 카드 제도가 시행된지는 꽤 되었는데, 난 뒤늦게서야 작년(2013년) 5월 즈음에 발급을 받았다.

그런데 작년 11월말부터 이 카드의 잔액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월도 안 되고 소멸된다는 문자가 친절하게 여러 차례 왔다. 그렇게 문자를 받고 뭘 할까 궁리 끝에 2주 전에는 영화 <엔더스 게임>, 오늘은 영화 <용의자>를 관람했다. 그것도 2번 다 같은 시커먼 후배와 관람했다.

영화를 관람하고 난 한 마디로 영화 <용의자>에 대해 평을 하자면,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 중에 가장 수작”이다. 개인적인 느낌들이 다 다르겠지만,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그리고 만약 영화 <베를린> 보다 먼저 상영되었더라면 현재 관객수보다 훨씬 더 많은 인기를 얻었겠다는 아쉬움이 동시에 남는 영화였다.

   
▲ 영화 <용의자> 포스터
영화 <용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내가 텔레비전이나 극장에서 관람했던 북한을 직·간접적인 소재로 다룬 영화들을 나열해 보겠다. 1999년 <쉬리>, <간첩 리철진>,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 2003년 <실미도>,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 2005년 <웰컴 투 동막골>, <태풍>, 2010년 <의형제>, 2013년 <베를린>, <용의자>이다. 2006년에 개봉했던 <한반도>라는 영화도 있었다는데 난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지 구경도 못했다.

어쨌든 저 영화들을 나름대로 부등호를 매겨, 작품성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그저 내가 많이 느끼고 재미있었던 영화를 순서대로 나열해 본다. 그리고 부등호를 넣는데 또 하나 고려했던 것은 직접적으로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도 고려해 넣었다.

“실미도 < 태풍 < 태극기 휘날리며 < 웰컴 투 동막골 < 쉬리 < 베를린 < 간첩 리철진 < 의형제 < 공동경비구역 JSA < 용의자”

하지만 이렇게도 영화들을 분류할 수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웰컴 투 동막골>은 북한을 다루었다기보다는 한국전쟁과 탈이데올로기 문제를, <실미도>는 한국 전행 후에 겪어야했던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과 희생, 대립을 다루었다. 그리고 영화의 직접적인 원인이 북한의 어려운 처지, 즉 식량문제를 다룬 것은 <쉬리>와 <간철 리철진>이었다.

또한 <태풍>과 <용의자>는 탈북자 문제를 조명했다. 시대상황과 맞물려 <베를린>은 북한 내부의 정치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마지막으로 <공동경비구역 JSA>와 <의형제>는 어떤 이념을 떠나, 그런 면에서는 탈이데올로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보다는 그 안에 존재하고 있는 구체적인 인간 존재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언급해야 할 것이 있는데, 미국 헐리우드 영화가 미국의 적으로 규정된 상대편을 정형화 해서 표현하는 방식이 있듯이 한국의 충무로 또한 북한을 정형화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방식에 대해 일대 변화를 가한 것이 바로 <공동경비구역 JSA>이다. 사실 <쉬리>도 그런 면이 없지는 않으나 <공동경비구역 JSA>보다는 그 충격이 덜 했다.

쉽게 말해, <쉬리>나 <공동경비구역 JSA> 이전의 충무로 영화가 북한을 다룰 때는 남한 내의 정치적 상황과 더불어 북한은 도저히 어떤 여지가 없는 완벽한 적이었고 그들에게 돌아갈 것은 오직 가혹한 형별 뿐이라는 강한 이데올로기로 무장했었다. 그러나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가, 특히 <공동경비구역 JSA> 상영되면서 북한을 바라보는 남한 사람들의 시각, 특히 이념을 체제를 넘어 그 안에 존재하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을 바라보도록 시각 균열을 냈다. 이 시각 변화의 정점을 찍은 것이 <의형제>였는데, 그 이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간첩 리철진>이었다.

그리고 현재 북남 상황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대립과 갈등의 원인을 북남이 각자 가지고 있는 정치적 문제 때문임을 이야기 하고 있는 영화가 <베를린>과 <용의자>이다. <태풍>과 <용의자>는 북남한, 특히 남한의 관심사였던 탈북자 문제를 다루어 또 다른 시각 변화를 주었다. 그런 면에서 내 나름대로 영화의 부등호를 매겼을 때 두 거물 배우 외에 작품성이라고는 거의 바닥이었지만 소재 변화의 차원에서는 성공한 영화였다.

이제 이야기를 조금 좁혀 보도록 하자. 결국 <베를린>과 <용의자>, 두 영화이다. 이 영화 두 편은 다른 어떤 영화들 보다 영화 관객들이 살아가고 있는 시공간을 똑같이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는데, 물론 두 영화 모두 언급한 바와 같이 북남의 정치적 상황을 다루고 있지만, <베를린>이 북한 내부의 정치적 상황에 더 무게를 두었다면, <용의자>는 남한 내부의 사회와 정치적 작동 원리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영화의 주된 갈등 원인이 이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말이다. <베를린>이 북한 체제 내의 정권 교체 때문이라면, <용의자>는 한 발 더 나아가 남한 사회 내의 어떤 요소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 어떤 구체적인 요소가 무엇일까? 난 남한 내의 “정치 체제”와 “자본주의”라고 읽었다. 영화의 주연이라고 해야 할 “김실장”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내가 보험을 얼마나 들어놨는지 알아? 그 위에, 그 위에, 또 그 위에.”

결국 이 영화에서 주인공 “지동철”이 당겼던 마지막 총알은 정치 체제의 중심인 “청와대”와 삶의 중심인 “자본주의”를 향하고 있었다. 특히 지동철을 최후까지 몰아갔던 “김실장”의 모든 내적인 동기는 바로 “자본주의”였다. 그가 가지고 있던 탐욕과 탈북한 북한 요원들을 모아 특수부대를 만든 것은 이것을 받아줄 정치 체제의 비호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것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북남을 그려왔던 그 어떤 영화들보다 <용의자>는 북한을 다루었다기보다는 오히려 남한 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현재 북남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남한의 정치 체제와 자본주의임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었다. 동시에 그 주된 원인들에게는 총을 겨눌 수 없다는 한계도 분명하게 보여주었는데, 일개 “김실장”을 처리하는 것을 끝을 냈으니 말이다.

내가 영화 <용의자>를 이렇게 내 나름 추겨 세우는 것은 바로 이 점들을 화려한 액션 속에 감추어 두었기 때문이다. 그 동안 북남 문제의 원인을 늘 북한에서 찾았던 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시각을 돌려 남한 내의 문제를 짚어보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코드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이 영화의 아쉬움이다. 영화가 시작하고 숨쉴 틈 없이 몰아치는 그리고 전혀 강도도 낮아지지 않고 진행되는 액션 장면에 지쳐버리게 한다. 그렇게 기진맥진해 버리면 이 두 가지 요소는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 흐름 자체가 너무 여러 영화들을 겹쳐 보이게 한다. “민대령”이 “지동철”을 도피하도록 방치하는 장면은 영화 <베를린>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액션 장면들 자체는 헐리우드 <본 얼티메이텀>에 대한 오마주로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딸을 찾으러간 중국 어딘가의 장면은 <글레디에이터>의 마지막 장면과 거의 유사했다.

그럼에도 액션 장면에 특수효과를 넣지 않았고 대역배우들이 맡았던 것도 아니라 모든 연기를 등장 배우들이 해냈다는 것이 대단하다. 그리고 이런 액션 영화가 주연 배우 하나에만 초점이 맞춰져 다른 배우들의 성격은 보이지 않는데 반해, 모든 배우들의 모습을 거의 살려내고 담아냈다는 사실은 감독의 굉장한 연출력이라고 칭찬하고 싶다. 다만 과도한 액션 장면들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코드를 놓치게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점을 다시 한 번 지적하고 싶다.

결국 <용의자>는 “청와대”와 “자본주의”를 겨누었고, 일정 부분 성공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칭찬해 주고 싶다. 정말 잘 만드셨다.>

 

이정훈 기자  typolog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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