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납북문제,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야”

이두희(전 EYC총무, 나고야 거주)

본 기사는 일본 나고야에 거주하는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 이두희 전 총무가 기고한 글로 지난 2월 11일 나고야 교회에서 열린 ‘건국기념일 반대 나고야 기독자집회’에서 진행한 하이스케 도루 선생의 강연내용을 필자가 한글로 옮겨 본지에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 이두희 전 총무

필자가 사는 나고야에서는 매년 2월 기독교인들은 ‘건국기념일’ 반대집회를 개최한다. ‘건국기념일’은 천황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신격화하고 찬미한 일본제국주의의 ‘기원절’을 부활시킨 국가기념일이다.

군국주의 부활을 우려하고 종교, 사상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시작된 ‘건국기념일 반대 나고야기독자집회’는 매해 ‘건국기념일’ 당일인 2월11일 개최되어 올해로 48회째가 된다. 강연회 형식으로 진행된 집회는 이제까지 각 분야의 인사들이 강사로 참여하여왔고,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재일동포 인권운동가인 이인하 목사, 강상중 전 도쿄대 교수, 이종원 와세다대교수도 강사로 참여한 바 있다.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사건을 기억할까? 만약에 기억하고 있다면 가장 먼저 어떤 생각이 떠오를지 궁금하다. ‘북이 생존자를 모두 돌려보냈기 때문에 그 문제는 이미 해결이 되었다’, ‘북에 의한 반인권적 행위인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생존자에 대한 정보도 북이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다. 아직도 생존자가 분명히 북에 존재한다’ ‘사실 유무와 관계없이 일본의 우익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등등. 여러가지 주장과 생각들이 존재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이 문제는 많은 이들(적어도 한반도 남쪽사회의 사람들)에게는 잊혀진 일들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어느 쪽 주장을 지지하느냐와 상관없이, 적어도 북일관계 정상화를 위해서 이 ‘일본 납치자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지 해결해야만 하는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또한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통일을 바라는 이들에게 있어서도 북일 관계정상화는 가벼이 여길 수 없음도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문제는 2002년 북이 납치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뒤로도 해결은커녕 오히려 북일정상화의 발목을 잡기만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일본의 우익 세력들이 이 부분을 정치적으로 이용함으로써, 북에 대한 일방적 경제제재를 비롯한 강경론이 득세하는 데도 기여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여기에 납치 피해자 가족들이 전면에 있음은 물론이다.

그 가운데, 본인 스스로 납치피해자의 가족이면서 ‘납치피해자가족연락회’(이하 가족회) 사무국장과 부대표를 지내고, 강경론의 맨 앞자리에 섰던 인물이 있다. 바로 ‘하스이케 도루’라는 사람이다. 그는 북에 의해 납치되었다가 2002년 일본으로 귀환한 ‘하스이케 가오루’의 친형이다. 그 역시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북에 대한 강경론을 주장했지만, ‘가족회’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강경론으로는 사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다른 가족들과의 의견대립으로 결국 가족회에서 ‘제명’을 당하게 된다.

그 뒤로 ‘하스이케’는 북일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청산도 더불어 고려되어야만 한다는 견해를 바탕으로 더욱 더 대화와 타협을 통한 문제해결을 주장해왔다.

일본의 아베 정권 등장 이후로 가속화되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 경향 속에서, 또한 그런 우경화 흐름에 편승하기 쉬운 처지에 놓여 있음에도, 대립을 넘어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해결을 주장하는 것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생각을 취하고 있는 그에 대한 일본 사회의 공격은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러하기에 그의 발언은 더욱 소중하고 값진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논쟁의 여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 논쟁과 토론의 과정을 통해서 대립과 충돌 이외의 가능성을 찾아나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가치가 있는 일이지 않을까 싶다.


▲ 집회장인 일본기독교단 나고야교회 모습 ㅣ 사진제공 이두희

그가 지난 2월 11일 일본 나고야에서 있었던 ‘건국기념일 반대 48회 나고야 기독자대회’에 참석해 지금까지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납치문제 해결과 북일관계 정상화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다.

강연 후 이어진 뒷자리에서, 가능하다면 한국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동북아 평화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조금은 낯설지도 모르는 이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하나의 실마리가 되기를 하는 바람으로, 이하 강연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세상의 무관심 속에 흘러간 24년

정부에서 인정하는 납치피해자는 17명인데, 돌아오게 된 건 저희 동생을 비롯한 다섯 명입니다. 그로부터 12년. 12년이면 강산이 한 번 변하고도 남을 정도의 긴 시간입니다. 피해자들이 납치된 뒤로 벌써 35년, 36년이나 시간이 돼갑니다. 메구미씨가 벌써49세입니다. 피해자는 모두 고령입니다. 그 가족들은 더욱 고령입니다. 그러니까, 뜸 들일 여유가 없는데도 정부의 움직임은 굼뜨기만 합니다.

12년 전, 지금의 총리, 당시의 아베 관방 부장관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국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보증청구’를 하겠습니다”고. 그랬더니 아베씨는 비웃듯이 “하스이케씨, 국가의 잘못을 입증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지 알기나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총리가 된 아베씨는 “내 임기 중에 해결하겠다”라고 말하지만, 지금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질 않습니다. 오히려 관심이 전혀 다른 곳에 있는 느낌마저 듭니다.

동생은 대학 2학년(1978년), 고향인 니가타현 가시와자키에 여름방학을 보내러 왔습니다. 2주 정도 니가타에 있었는데, 그 때 납치를 당했습니다. 가시와자키시에 있는 바닷가에서 당시 여자친구인 부인과 납치를 당했습니다. 실종된 뒤10년 정도가 지나서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이 이었는데, 범인인 김현희라는 인물이 북한에서 납치된 일본인으로부터 교육을 받았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그 교육담당자가 저희 제수씨가 아닌가, 아니면 지무라씨 부인이 아닐까라는 말도 있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주간지 수준의 이야기일 뿐, 좀처럼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런 와중에 20년 정도가 흘러서 드디어 비슷한 경우에 처해있는 가족들이 모여보자는 마음으로 ‘가족회’를 만들었는데, 여러가지 이점이 있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갖고 있으니까, 조금이나마 슬픔이나 어려움이 누그러지기도 했고, ‘가족회’을 만들어서 서명운동이나 진정활동을 하다보니 쓸데없는 데 마음을 뺏길 시간이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함으로써, 반드시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는 것도 큰 힘이 됐습니다. 하지만, 2년이 흘러도 3년이 흘러도 별다른 진척없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세간에서는 “납치는 의혹이고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다”라고. 좀처럼 서명을 부탁해도 응해주지 않고. 혹시 이름 잘못 썼다가 북한에게 무슨 일이라도 당한다고 생각한 건지, 당시 도쿄 긴자에서 1시간 동안 서명운동을 해도 한 사람도 참여해주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 강사 하스이케 도루 선생 ㅣ 사진제공 이두희

북일정상회담으로 정세는 급변, 그러나…

그런 상황이 계속되고 ‘가족회’를 만들고 5년 지난 어느 날, 고이즈미 총리의 전격방북으로 정세는 급변했습니다. 북일정상회담이 열리고, 북일관계가 이후 급격히 가까워질 것 같이 보였습니다. ‘북일평양선언’이 체결되고, 양국은 국교정상화를 위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측이 납치사실을 인정하자, 여론도 급변했습니다. “의혹도 꾸며진 이야기도 아니라 사실이었다!”라며 큰 소란을 떨었습니다.

하지만, 뒤에 다시 말씀드리겠지만, 양국이 취한 납치문제에 대한 경시라고 할까, 그런 부분들이 원인이 되어, 양국간의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게 됩니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그 전에는 북한에 대해 전혀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북한 때리기’에 나선 것입니다. 납치는 인권문제입니다. 북한은 일본인의 인권을 침해했지만, 일본 정부도 납치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했습니다. 그것이 12년이나 교착상태에 빠뜨린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민주당이 제시한 과거 청산과 국교정상화

지금, 북일관계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이냐가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2년간 여러가지 움직임이 있었습니다만, 제가 가장 기대를 했던 것은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였습니다. 여러가지 정책에서 자민당, 공명당 정권과는 분명히 다른 대립점을 보여온 민주당이었기 때문에 과연 장기간에 걸쳐 정체에 빠져있는 대북외교에 대해 어떤 정책을 취할 것인가, 기대를 걸고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마저 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다만, 하토야마 총리를 비롯해 민주당정권은 북한과 대화를 하고자 하는 자세는 보였습니다.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유엔총회 일반연설에서 역대 민주당정권 총리의 연설이 있습니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런 발언을 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 미사일은 국제사회에 대한 위협이고, 따라서 북한은 안보리결의를 따를 것, 그리고 국제사회도 결의를 이행할 것.

일본은 6자회담을 통해서 한반도의 비핵화를 달성해 가겠다”라는 것이 첫째. 둘째로 “북일관계는 평양선언에 따라서 납치, 핵, 미사일의 현안들을 포괄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불행한 과거를 진정성을 갖고 청산해 국교정상화를 이루어내겠다”. 셋째로 특히 납치문제에 대해서는 2008년의 합의, 즉 북측이 신속히 전면적 재조사를 한다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일본도 전향적으로 대응할 용의가 있다”라는 발언입니다. 핵, 미사일 문제는 국제적인 문제입니다만, 납치문제는 북일간 고유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핵, 미사일과는 따로 떼어서, 납치문제 단독으로 협의해 나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왠지 북한이라고 하면 쌍심지를 켜고 “당신네들이 뭔가 하면, 그 때 우리도 답을 주겠다”라는 식으로는 북한에 공이 있는 것 같은 말들을 하는데, 저는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베 총리의 중국, 한국에 대한 태도가 비슷한데, “문은 열려있다, 그러니까 들어와라!”라는 투입니다. 그래서는 몇 년이 흘러도 아무 진척도 없다고 봅니다. 공은 일본측에 있습니다. 일본측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습니다.

아베정권, ‘제재’이외 수단 아무 것도 없어

이와는 반대로, 제2차 아베 정권의 총리 유엔연설에는 ‘북일평양선언’, ‘불행한 과거’, ‘진정성을 갖고 청산’이라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 중국, 한국과의 관계도 좋지 않습니다. 오히려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만, 이들과도 좋은 관계를 갖지 못하면서 북한과 관계를 갖는 것이 가능할까?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베 정권이 해야 할 일은 2002년부터 이제까지의 과정을 진지하게 검증, 정리하는 것입니다. 어떤 대북정책을 취했고, 어떻게 납치 문제에 대응해 왔는지를 돌아봤으면 합니다.

왜 교착상태가 되었고, 잘못된 점은 없었는가 하는 점들을 생각하길 바랍니다. 지금까지 여러 정책이 취해졌지만, 그 중 하나가 경제제재입니다. 저는 그것도 하나의 수단이고 효과가 있길 바랬습니다. 다만, 경제제재라는 것은 평화적 해결과 무력사용 사이의 수단이기 때문에, 전쟁을 할 수 없는 일본에 있어서는 최후의 수단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실행할 때는 피해자의 귀환과 연결될 수 있도록 전략적이어야만 한다고 저는 주장했고, 정부에도 부탁을 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제재만 해서는, 북한의 감정을 악화시키고 그들의 결속력을 다지게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제재를 하면 어떻게 납치피해자가 돌아올 수 있을까에 대해 정부관계자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제재를 하면 북한은 피폐된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일본에게 도움을 청하러 온다” “무릎꿇고 잘못을 빈 다음 납치피해자들을 보내 줄 것이다”라고. 북한 사람들은 “일본에 사과할 거라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일본이 돈을 들고 와서 과거의 용서를 빌 것이다”라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이 돈을 가져오기는 커녕 경제제재를 한다면, 이건 오히려 반일교육의 재료가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일본정부가 경제제재를 고집한 이유는 납치문제에 대한 기본자세가 ‘회피’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회’는 ‘경제제재! 경제제재!’를 외쳤습니다. ’가족회’를 핑계삼아 제재를 하고 나서 한다는 말이, ‘힘으로 밀어부친다!’. 귀찮기만 한 대화, 협상 따위는 외면하고 책상 위에서 말만 하면 되는 경제제재라는 곳으로 도망쳐 버린 것입니다.

지금의 아베 총리를 보면 아시겠지만, 당시도 강경책은 인기가 좋았습니다. ‘건방진 북한! 일본은 굴복하지 않고 경제제재를 계속한다!” 그런 강경책은 정치적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앞으로 도대체 어찌 되는 겁니까? “제재가 아직도 부족하다. 추가제재! 선제공격! 집단적 자위권 사용!” 아니면, 핵무장인가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사고정지입니다. 아베 총리처럼 호불호로 외교를 해서는 곤란합니다.

아베는 아마 중국과 한국, 그리고 북한 모두 아주 싫어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감정으로 외교나 정치를 해서는 안됩니다. 언론도 사고정지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제재에 관한 보도만 해도, ‘북한이 어떤 영향을 받고 있나’라는 제재의 강도만을 기준으로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제재가 효과가 있다면 피해자가 돌아왔어야지요. 그런데 언론은 얼마나 북한 경제가 힘든지, 그들이 곤란해하는지를 가지고 “제재가 효과가 있다”라고. 그야말로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린 상황인 셈입니다.


▲ 이른바 ‘납치문제대책본부’의 홍보 포스터. ‘납치! 반드시 찾아오겠다!’ ‘부모의 사랑은 세상을 움직인다. 납치문제는 우리들 모두의 문제입니다’. 사진의 모델 얼굴만 봐도 섬찟한 정치선동을 보는 듯하다. 이들이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를 쉽게 알 수 있다. ㅣ 사진제공 이두희

정치적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는 일본 정부의 납치대책

그로부터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납치문제대책본부’라는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저희들은 납치문제는 국가적인 문제로 담당부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을 해왔기 때문에, 크게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책본부의 주된 업무는 납치문제의 국내용 계몽활동. TV광고 찍고, 포스터 만들고. 그리고 메구미씨 영화 DVD를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배포. 혹은 납치문제를 그린 만화를 여러 언어로 번역해서 세계각국에 배포. 여러 가지를 하고 있습니다만, 내용은 모두 “우리에게 포기는 없다!”따위의 추상적인 것뿐입니다.

귀환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결국, 감정적으로 “평화로운 일본 땅의 선량한 일본인을 납치한 부도덕한 범죄 국가 북한은 사죄하라!”라고 일본 국내를 향해서 선전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말 해결하고 싶은 걸까? 납치문제는 이제까지 정치적으로 이용당해온 것입니다. ‘가상적국 북한이 일본을 쳐들어온다’ 혹은 ‘미국을 공격한다. 납치국가 북한!’이라는 인상을 만드는 편이 정부 정책에 있어서는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가해국이었던 일본이 납치문제로 피해국이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납치문제는 오히려 해결되면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있는 것입니다.

납치피해자의 인권 따위 관심없는 일본 정부

2002년 9월 17일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는데, 저는 앞에서 일본정부도 납치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그 날은 납치가 만천하에 드러난 저희에게 있어서는 기념할만한 날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무서운 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이상 방치해온 문제를, 단 하루만에 끝내려고 한 ‘모략의 날’이었던 것입니다. 좀 더 알기 쉽게 말씀 드리자면, 국교정상화를 하는 데 있어서 납치문제는 장애물이었던 것입니다. 사전 물밑협상에서, 납치를 인정하고 사죄를 하면 국교정상화를 한다는 밀약을 교환한 것입니다.

계획대로 정상회담에서 김정일위원장은 납치를 인정하고 사죄했습니다. 그리고 북측은 납치피해자 5명 생존, 8명 사망이라는 사실을 통보했습니다. 이 일을 처리하는 과정이 아주 치졸하기 짝이 없습니다. 일본에서는 가족들에게 당시 후쿠다 관방장관이 한 가족씩 방으로 불러 “그 쪽 가족은 안타깝게도 사망했습니다”라고 단정, 선고했습니다. “왜? 언제? 어디서?”라고 물어도 “그건 잘 모르고 하여간 사망!”이라는 겁니다. 결국 이런 것이었습니다. “5명은 살아있긴 한데, 평양이 좋다고 하니까 만나고 싶으면 가족이 평양에 다녀와라” “8명은 유감스럽게도 사망” “장례식 치르고 포기해라” “이걸로 납치문제는 해결됐다, 그럼 국교정상화 협의합시다” 라는 시나리오였던 것입니다.

여기에 납치피해자의 인권, 인격, 혹은 존엄에 대한 배려 따위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일본정부가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했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8명이 죽었다면, 북한에선 죽었다고 하더라도, 일본정부는 “아직 무엇도 확인된 것이 없으니 희망을 가져봅시다”라고 해야 하는 게 아닌가요? 관방장관이라는 정부책임자가 가족에게 사망선고를 하면 바로 수긍할 거라는 유치한 시대착오적 시나리오였던 것입니다.

돌아온 사람들도 ‘일시귀국’이라고 앞에 ‘일시’라는 말이 붙어있었습니다. “왜 납치된 사람이 일시귀국인가?” 돌아온 게 아닙니다. 일본을 방문한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도 5명을 돌려보내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언론도 “언제 돌아갑니까? 언제 돌아갑니까?”라는 질문 뿐입니다. TV를 본 많은 분들도 2주 정도 있다가 돌아가겠지 하고 여겼을 거라 생각합니다. ‘가족회’도 지원조직도 아무도 말리지를 않습니다. 붙든 것은 저뿐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정말 외롭고 슬펐습니다. 개인과 국가권력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생은 일본에 남아서 부모와 있을까, 돌아가서 아이들과 지낼까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몰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걸 어떻게 고르라고? 양쪽 다 포기 못 해. 고향에 남아서 몇 만분의 일이라도 아이들이 일본에 오기를 기다릴거라고”라고 가슴이 찢어지는 결단을 해야만 했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아이들이 올 리가 없지’라고 생각했다고 나중에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일본에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고이즈미 총리의 재방북을 통해 실현된 것인데, 고이즈미측의 노림은 ‘아이들이 돌아오면 납치문제도 차분해질 거고 그렇게 되면 국교정상화교섭도 가능해지겠지’였던 것 같은데, 그 고이즈미에게 ‘가족회’는 오히려 거센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오늘은 최악의 날입니다. 총리는 아이들 심부름꾼입니까? 자존심도 없나요?” 지금 와서 이야기해도 늦은 일입니다만, 저희들은 그 날 총리를 칭찬하고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은 저희들의 차례이군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라고 이야기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랬다면 2번이고 3번이고 북한에 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 고이즈미씨의 납치문제에 관한 열의, 정열, 관심은 전부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북일간 교착상태는, 납치문제를 가벼이 여기고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한 채, ‘국교정상화만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납치문제를 장애물 취급해 온 결과입니다. 그 결과, 일본에서는 가족에 대한 동정과 북한에 대한 분노가 상승작용을 일으켜 ‘북한타도론’까지 등장할 정도로 여론은 끓어오릅니다. 하지만, ‘타도! 타도!’라는 외침 속에 먼저 무너진 건 자민당 정권이었지만요. 한편 북한에서 보면, “일본은 약속을 안 지키는 나라다. 더 이상 믿을 수가 없다”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을 겁니다. 그 이후, 북일 사이에는 더욱 큰 틈이 생기고, “빨리 돌려줘라!”라는 일본과 “할만한 건 다 했다”라는 북한이 대치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 양자의 주장에 접점이 있을 리가 없고, 그 사이에 긴 교착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베 총리는 이런 경위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니까, 거기서 교훈을 얻었으면 합니다.

다시 합의의 정신으로 돌아갈 때

지금 일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성적으로, 전략적으로 지혜를 짜길 바랍니다. 원칙론만 내세운 경제제재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순진하다고 할 지 모르지만, 대화・협상노선, 이것의 실행이 필요합니다. 납치문제는 국제문제, 외교문제, 정치문제로까지 확대되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된 이상 납치문제만을 쏙 빼내서 일방적인 주장을 해서만은 문제해결이 될 수 없습니다. 일본과 한반도의 역사를 살피면서, 그 안에서 납치문제를 자리 매김하고, 전체로서 어떻게 움직여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 차원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정부가 생각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요? 먼저, ‘납치문제 해결! 해결!’이라고 쉽게 말들을 하는데, ‘해결’이라는 말의 정의를 해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정의에 대해서 양국이 합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해결’인가를 정확히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아베 총리는 평양선언을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베 총리 본인도 고이즈미 전총리가 사인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당사자인만큼, 평양선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주길 바랍니다.

제 생각으로는, 역시 하토야마 전총리가 유엔에서 말한 바대로 2008년의 합의로 돌아가는 것이 실마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합의내용은 북한이 납치피해자문제를 재조사한다는 내용입니다. 그에 대해 일본은 제재를 일부 완화한다. 이 동시행동이 2008년의 합의입니다. “핵, 미사일이 있으니까 제재완화는 말도 안 된다”라고 한다면, 인도지원은 어떻습니까? 그것이 실마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경제지원을 하자는 것입니다. 평양선언에도 과거의 청산이라고 분명히 써 있습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구체적 내용이 잘 안 보입니다. 이것을 구체화시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도로정비, 댐 건설, 교량건설, 공장건설 등등,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이상 여러 가지 말씀 드렸는데,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북일간에 자기들만의 정당성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반복한 결과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꼴이 돼버린 모양새입니다. 양측이 신뢰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원점으로 돌아가 역시 서로 대화와 협상, 필요에 따라서는 서로 반성하고 양보하는, 그런 태도가 필요한 시기가 되었습니다. 아니 그런 시기도 이미 지나버렸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대화와 협상이 필요합니다.

최근 납치문제에 대해 관심이 멀어지고 있다는 말씀들도 듣게 됩니다만, 이것은 잊혀져서도 안되고, 그만큼 오래 시간을 끌어서도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요즘 같은 시절에 이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기회를 허락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두희 EYC 전 총무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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