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늦은 저녁, 인천공항에서 마닐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은 나는 선교봉사에 큰 기대나 설렘은 없었다. 해외 선교에 동행하거나 참가한 경험이 없는 초짜이기도 했거니와 어지러운 국내 사정이 더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본지에서 홀로 참가하는 해외 취재는 여러모로 부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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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들은 고된 노동에 지친 선교봉사단의 훌륭한 방해자(?)가 되어 주었다. ⓒ에큐메니안 고수봉 | ||
바닷가에서 수상가옥을 짓고 살던 가난한 사람들은 수해의 가장 큰 피해자였으며, 한 가족이 모조리 몰살당하고 70세 할머니만 살아남은 곳도 있다고 한다. 선교단에서 이 할머니에게 집을 지어줬다고 한다. 건축 자재가 비싸지니 사람들은 폐허를 뒤져 쓸 만한 양철, 나무판으로 얼기설기 집을 보수해 살고 있다.
필리핀 UCCP에서 일하고 있는 선교사 정해동 목사의 말에 따르면, “대피한 초등학교에 폭풍해일이 덮쳐 많은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많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해일은 2층 가옥을 넘어 선박을 뭍에 올려놓을 정도로 높았으며, 원래 큰 파도가 없던 이 지역 사람들은 필리핀 기상당국이 경고한 ‘폭풍해일’에 대해 큰 경각심을 갖지 못했던 것이다.
태풍 하이옌에 의한 피해는 바닷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태풍은 본지 기자가 동행한 5기 선교봉사단의 주 활동 지역이었던 바라용까지 피해를 입혔다. 바닷가에서 떨어진 팔로의 바라용은 산간 지역에 있는 마을로 코코넛 재배가 주요 수입원이다. 태풍은 코코넛 나무를 무참히 짓밟았고, 앞으로 5년은 쓸 수 없게 됐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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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indok,Barayong!'을 외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나를 놀라게 했다. ⓒ에큐메니안 고수봉 | ||
우리의 ‘구호’가 그 이름처럼 근사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무렵, 훌륭한 방해자로 나타난 아이들을 보게 됐다. 교회 건축에 필요한 모래와 자갈을 자루에 담아 올리는 고된 노동 사이에 맛보는 휴식 시간에 나타난 아이들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우리가 하던 일을 빼앗았다. 어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기도 한다.
또한, 교회 바닥이 완성된 무렵에는 ‘Tindok, Barayong’(일어나라, 바라용)을 외치며 흙 바닥을 다지기도 했다. 그 소리는 매우 우렁차고 신비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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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d is always with you', 우리는 이 사실의 목격자, 증언자이다. ⓒ에큐메니안 고수봉 | ||
우리는 이 광경을 목격하러온 증언자이다. 거창한 ‘구호’나 ‘도움’을 주러온 자들이 아닌 절망한 사람들 속에서 생명으로 움터오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건을 배우기 위한 제자들이 됐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발견하기 위한 약간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을 뿐이다.
돌아오는 비행기는 처음과 달랐다. 얼굴도 현지인처럼 검게 변해버렸고, 열악한 수도시설로 빨래를 하지 못해 후줄근한 차림새, 고된 노동으로 곳곳에 상처가 났지만 자랑스러웠다. 필리핀에서 선교를 마치고 돌아가는 다른 선교단의 모습과 비교하며 스스로 만족감을 얻기도 했다.
6박7일의 짧은 일정, 이곳에서 얻은 소중한 체험과 여운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른다. 그러나 귀중한 경험 속에서 한 가지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고난의 현장에 하나님이 계시며, 그 하나님을 발견하는 열쇠는 작은 관심과 사랑’이라는 점이다.
고수봉 기자 gogo9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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