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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
박철 | 승인 2006.05.31 00:00

요즘 신문을 잘 안 보게 된다. 답답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사회면을 보아도, 정치면이나 경제면을 들여다보아도 그 어디에도 희망적인 소식은 없다. 그래도 이 사회의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알아야 하겠기에, 수박겉핥기식이라도 읽지만 온통 우울한 소식뿐이다. 민심이 흉흉하다. 살풍경한 기사거리로 넘쳐난다. 방화. 강도. 살인 등 흉악범죄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최근에는 돈 많은 사람들의 부동산 투기바람까지 가세함으로 일반 서민들의 생활고까지 가중시키고 있다.

지금 세상은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궤도이탈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서로가 바쁘다. 달리기 선수처럼 첫 새벽부터 자정이 넘도록 달리고 있지만, 그래도 시간이 모자란다. 다 제 잇속 챙기기에 급급하다.

세상은 힘이 세고 가진 것이 많아야 잘 살 수 있다고 한다. 세상은 죄를 짓고서라도 자기만, 자기 가족만 편히 살기위한 목적으로 온갖 수단과 편법이 등장하고 있다.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난다. 10년 전에는 인신매매가 유행이더니, 요즘은 '원조교제'니, '스와핑'이라는 들어보지 못한 신조어가 등장하여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과거 가난을 면해보자고 '잘 살아 보세'를 외쳤건만, '잘 살아 보세'의 끝은 쾌락의 탐닉으로 나타나고 있다. 시대의 변종(變種)들이 사회를 좀 먹고 있어도, 이 사회는 무책임, 무감각으로 치닫고 있다.

권위가 무너진 사회, 모두가 부르는 "그건 너"

   
▲ 우리교회 표어는 '받들며 섬기는 삶'이다. 사진은 지난 고난기도회 중 세족식에서.

지금 이 시대는 어른이 없다. 대통령이 국회에서 국정연설을 하겠다고 등단을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이 밥맛없다고 팔짱을 끼고 앉아 있다. 못 돼먹은 세상이다. 낯선 사람이 내 집을 찾아와도 방문을 열고 맞이하던 미풍양속이 허접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권위의 부재현상이 더욱 노골화되어 가고 있다. 서로 자기가 잘 났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상대방 이야기는 들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언성을 높이다. '총체적 위기'라는 말이 보편화된 사회개념이 되었다. 그렇게 사회문제를 잘 진단하면서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 원망과 탓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정치판이 원망과 탓의 모델하우스이다.

예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장희의 '그건 너'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그건 너, 그건 너, 바로 너, 너 때문이야' 자신의 무지와 잘못을 회피하고 모든 책임을 '너'(상대방)에게 뒤집어 씌우려는 심리와 꼭 맞아 떨어진다.

이런 판국에 종교,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예수께서는 "너희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선언하셨다. 아무리 칠흑 같은 어둠도 한 줄기 빛을 이기지 못한다. 소금 한 주먹이면 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 오늘의 교회가 제 구실을 다했으면 사회가 이 지경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내 탓이요" 나서야할 한국교회, 그러나 그럴 영성이 없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소위 '교회성장'이라는 이름으로 맘몬과 바벨이 혼재된 그릇된 신앙의 형태를 양산했다. 이 사회의 황금만능주의 사상이 교회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다. 그것을 거부하지 못하고 적당하게 타협했다. 부의 축척을 하느님의 축복으로 해석했다. 바벨이라고 하는 종교권력이 독버섯처럼 한국교회에 뿌리를 내렸다.

예수의 영성을 따르지 않았다. 예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아무런 내용을 담보하지 못한 채 겉만 화려하게 장식하여 프로그램화했다. 회칠한 무덤과 다름없다.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섬김의 영성을 한국교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또 한국교회는 나눔의 영성을 가르치지 않았다. 한국교회는 그런 실천이 부족했다. 교회만큼 부자가 있는가? 이 민족의 전도된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할 교회가 과도한 탐욕의 대상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듯하다. 예수는 물질에 대한 과도한 탐욕이 하느님을 부정하고 거절하는 원흉인 것을 일깨워 물질에 자신의 행복과 구원의 희망을 거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허망함을 '어리석은 부자의 예화'(루가 12.16-21)로 말씀하셨다.

2차 세계대전 본 훼퍼가 당시의 나치즘을 제동장치가 고장 난 자동차에 비유했다면, 오늘 이 사회의 총체적 위기에 대하여 적어도 '내 탓이요'하고 나서야 할 집단이 바로 기독교, 교회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조용히 겸손한 교회의 모습이 필요하다

   
▲ 교회는 언제나 섬김과 나눔을 지향해야 한다. 지난 성탄절 나눔행사에서.
교회는 이 사회의 문제에 대하여 총체적인 접근과 열린 시야를 갖고 대해야 한다. '새 포도즙은 새 가죽부대에'-라는 예수의 말씀처럼 교회는 진보적이어야 한다. 과거 분단체제에서 경험한 고루한 사상과 현실안보라는 잣대로 소경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듯이, 그런 근시안적인 자세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불의한 이 시대의 양심의 표상으로, 균형감각을 가진 건강한 대안세력으로 나서야 한다. 자신들의 집단적 도그마를 충족하고 과시하기 위한 실력행사는 자제되어야 한다. 교회는 어떤 목적으로든 군중심리를 이용해서는 안 된다.

예수는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루가 12,15)라고 말씀하셨다. 한국교회가 물신의 마력에 힘입어 자신과 이웃을 파멸의 길로 이끄는 부정한 인간탐욕을 만들어 내는 '위험한 천국'의 허상에 빠져서는 안 된다.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 교회는 겸손히 예수의 나눔과 사랑, 그리고 섬김의 정신을 본받아 소리 소문도 없이 흔적도 없이 이를 실천하면 한다. 광고할 필요가 없다. 그러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이 사회는 점진적 변화의 열매가 저절로 열리게 될 것이다.

박철  pakchol@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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