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진 (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본문 해설
1)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키신다 (출 1:1-14)
출애굽기와 창세기 사이에는 400여년의 공백이 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 기나긴 세월의 간격을 꿰뚫고 실현되었다. 곧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삭-야곱에게 주신 약속이 실현된 것이다. 우선 출 1:7을 창 1:28및 창 9:1, 7과 비교해 보자:
| 창 1:28 | 창 9:1, 7 | 출 1:7 |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파라) 번성하여(라바) 땅에 충만하라(말레), 땅을 정복하라(카바쉬),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다) 하시니라. | 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 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파라) 불어나(파라츠) 번성하고(라바) 매우 강하여(아참)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말레) |
위에서 엿보이듯이 창세기와 출애굽기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번성과 축복이 언어사슬로 엮어져있다.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매우 많고 강하고’(1:7),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갔으며’(1:12), ‘번성하고 엄청나게 강해졌다’(1:21). 이는 하나님께서 야곱을 축복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창 26:22; 28:14; 30:30 참조). 이런 현실에 대처하는 이집트왕 파라오의 모습은 그랄왕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아참) 우리를 떠나라’고 말하며, 박대(학대)하던 것을 연상시킨다(창 26:16). 물론 파라오는 아비멜렉보다 훨씬 더 파괴적으로 대응하였다.
하나님은 믿음의 조상들에게 자손의 번성과 땅의 수여를 되풀이 약속하셨다. 약속이 되풀이 되는 것은 그 실현을 향한 하나님의 의지도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다(참조 창 41:32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출애굽기에는 히브리(이스라엘) 민족이 아주 번성하고 강해졌다는 표현이 일곱 차례 되풀이 나온다(출 1:7[x3], 9, 10, 12, 20). 창세기 26:16과 이 부분을 이어서 읽으면,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히브리 민족에게 주시기로 정해 놓은 복이다. 그들은 단순히 파라오의 부림(노예) 혹은 박해의 대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창조사역과 복(福)내려주심에 참여하는 민족이었다.
2) 생명을 살리는 여인들 (출 1:15-2:10)
| 출애굽기 1장에는 히브리인이라는 표현이 세 번 나온다(출 1:15, 16, 19). 우선 파라오는 자기 동족과 산파들을 구별하여 이 말을 썼다. 여기서 이 말은 이집트인과 다른 인종, 곧 히브리인종이라는 뜻이다. 성경에 이런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두 번 있다(창 14:13; 욘 1:9). 두 번째로 파라오는 이 말을 노예신분을 가리키는 말로 썼다. 히브리인이 곧 노예이다. 이 말의 뿌리를 ‘건너오다(to cross over)’에서 찾는데, 이런 풀이는 대답보다는 문제를 더 많이 안겨준다. 어떤 학자들은 이 말의 뿌리를 아카드어 하삐루(ɧa-pi-ru)에서 찾는데, 사실 이것은 히브리말과 별로 관계가 없다. 그렇지만 여기 나오는 두 가지 의미, 곧 자신과 다른 민족(이방인)이며, 사회적 소외계층(노예신분)으로 자신이 조종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주변 나라에서 이스라엘 사람을 보는 주요한 시선이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고발하며 히브리인이라고 한 것이나(창 39:14, 17), 블레셋인이 이스라엘 사람을 가리켜 히브리인이라 한 것도(삼상 4:6, 9; 14:11, 21) 위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의 하나님이 되기를 자처하셨다(출 3:18; 5:3; 7:16; 9:1, 13; 10:3; 히 11: 16 참조). |
히브리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 실현되자 파라오는 불안을 느꼈다. 그는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출 1:9-10) 고 호들갑을 떨었다. 비록 과장된 반응이긴 하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실현되어, 이제 아무도 그들을 얕잡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에 그는 파괴적인 대응책을 세웠다. 첫 번째로 그는 히브리인들에게 아주 고된 노동을 시켰다(1:11-14). 그러나 이 수가 먹혀들지 않고, 오히려 히브리인의 숫자는 점점 더 불어났다. 이에 그는 두 번째 단계로 보다 고강도의 대응책을 마련하였다: “(히브리 산파에게)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니라(출 1:16).” 산파는 본디 생명 살리기를 본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한 생명이 세상에 나와 세상에 첫 울음을 터트리는 그 엄숙한 순간에 참여하는 사람의 긍지가 얼마나 클 것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숭고한 순간들 중에 하나를 손꼽으라면 아마 한 생명이 태어나는 바로 그 때일 것이다. 산파는, 그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첫 순간을 지키며 보호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그들은 필시 매우 높은 자긍심과 신앙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 산파 십브라(= 아름다움)와 부아(= 빛남, 찬란함)에게 내려진 파라오의 명령은 ‘자신의 생명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의 생명을 택할 것인가’하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그들 인생의 긍지를 잔인하게 짓밟는 행위였다.
출 1:16에서 ‘살다, 살리다’는 말(카야)은 히브리 동사의 기본형(Qal)이 쓰였다. 이는 살리려 노력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버려두어도 살아나면 살게 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출 1:17에서는 이와 똑같은 낱말이 강의형(Piel)으로 쓰였다 (왓테카예나). 이는 히브리 산파들이 살려두지 말아야 할 아기를 살아남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물론 생명을 살려내는 이 행동은 그들 성격이 강인하거나, 양심이 바른데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출 1:21).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그 두렵고 떨리는 상황에서도 바르고 참된 길을 선택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이 세상에 하나님 보다 더 두려워할 것이 없기에, 그들은 세상 그 어떤 권력이나 금권이나 유혹 앞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무릎을 꿇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이런 입장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였을까?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 대부분이 아마,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파라오의 명령에 따르면서,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였을 것이다: ‘만일 내가 아이들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파라오의 손에 죽게 되고, 나를 죽인 그는 다시 다른 산파에게 명령하고, 결국 사내아이들은 어떤 산파에겐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 이라고. ‘불쌍하지만 그들은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것뿐이라’ 고. 그러나 히브리 산파들은 달랐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이 이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생명을 살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놀라서 묻는(어찌하여?) 파라오에게, 엄히 조사하면, 금방 드러날 말로 둘러댔다: “히브리 여인은 이집트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출 1:19).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이 말을 그대로 믿게 만드셨다. 신하들을 시켜 그 말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면 그 진위를 금방 알 수 있는데도, 하나님은 파라오가 그렇게 하지 않도록 막으셨다.
그래서 갓난아이들도 살았고, 산파들도 살았다. 파라오의 어마어마한 권력에 거슬러 그들이 이런 선택을 하였다는 것, 산파와 아이들이 모두 살아났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도록 만드셨다(= 하나님 은총)는 말 이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 둘 중에 하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은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제3의 길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셨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출 1:20-21).” 이로써 히브리족속의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막으려는 파라오의 두 번째 대책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산파들의 지혜로운 대처와 그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은혜 앞에 맥을 못 추었다. 이는 잠언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잠 14:27)” 는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 12:4-5; 마 10:28-31 참조).”
이제 파라오는 보다 악랄한 계책을 내놓았다(출 1:22). 하필 이럴 때 모세가 태어났다. 조금만 일찍 태어났더라면 살아날 길이 있을텐데, 지금은 사정이 여의치 못하다. 그 부모는 ‘아이가 하도 잘 생겨서(키 토브 후) 남이 모르게 석 달 동안이나 길렀다’(출 2:2). 여기서 잘 생겼다는 말을 원문 그대로 옮기면, “진실로 그가 좋았다(= 진정 그는 아름다웠다)”이다. 이는 창세기 1장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4 등 여러 차례; 키 토브)는 말씀과 같은 낱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모세의 생김새가 뛰어났다기보다는(삼상 16:12; 왕상 1:6 참조), 그 부모에게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귀하다는 뜻, 곧 “...에게 좋은 것, ...을 위해 아름다운 것” 이란 의미이다.
| 갈대상자(테바트 꼬메): 상자(테바)라는 말은 노아가 만든 방주와 같은 용어이다(창 6-9장에 26번 나옴). 다만 노아가 만든 것은 고페르 나무를 재료로 한 아주 큰 것이었는데 비해(창 6:14-9:18 테바트 아체 고페르), 모세의 부모가 만든 것은 갈대(파피루스)를 소재로 한 아주 귀여운 것이었다. 노아 방주의 길이는 약 137m(1 규빗을 52.6cm로 계산할 때), 배수량이 약 2만톤이다. 그러므로 비록 ‘상자’를 의미하는 같은 낱말이 쓰였더라도, 그 규모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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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대 상자. BC 5000년경, 대영박물관, 이집트 파윰(Fayum=El-Fayum) 출토.이집트 제1왕조 이전의 것이다. | ||
이로써 히브리인의 아들을 살려두지 않으려는 파라오의 계획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 자신의 딸로 인해 무산되고 말았다. 마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유대인을 구출하였듯이(눅 10:25-37), 모세는 보통 사람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손길을 통해 구출되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역설이 아닐 수 없다. 파라오의 공주는 이 아기에게 모세(모셰= 건져 냄)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출 2:10). 히브리성경은 이 이름에서 ‘끌어내다’(to draw out)는 뜻을 지닌 마샤와 연결시켰다. 모세는 이 낱말의 칼형 능동분사인데, 그러므로 모세는 ‘끌어내는 자, 끌어내는 것’을 뜻한다(사 63:11에서 “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라는 부분에서 ‘모셰 암모’를 직역하면, ‘그들이 옛적에 그의 백성을 이끌어 낸 자를 기억하였다’이다). 이런 뜻에서 다른 성경의 인물들(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처럼 이 이름도 어떤 한 인물을 가리키는 호칭일 뿐만 아니라, 그가 장차 무슨 일을 할 사람인지를 보여준다(그는 본디 강물에서 건져진 사람이므로 수동형으로 써야 할 것인데, 무의식적으로 능동형을 씀으로써 모세의 운명을 예고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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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세(고대 이집트말) | ||
출애굽기 1-2장에는 생명을 살리는 여인들의 이름 또는 신분이 나와 있다: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 모세의 어머니(요게벳)와 누이(미리암); 파라오의 딸(공주)과 그 시녀들, 그리고 모세의 아내 십보라 - 출 4:24-26).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참여하였다. 성경은 이 일을 높이 평가하여 파라오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으면서도 이들의 이름을 밝히 적어놓았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을 포함하여 이 여인들은, 그 옛날 요셉의 생명이 위태위태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보호하셨듯이, 자신들의 생명이 보호받는 은혜를 누렸던 것이다.
*설교를 위한 힌트
1)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
출애굽기 1:5-6이다: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이집트에 있었더라.” 이것은 요셉을 따라 이집트로 온 야곱 및 그 자손들이 그곳에서 400여년 생활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그 기나긴 기간 동안 하나님은 그들을 돌보시지 않고 무심하게 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출 1:1, 7, 9에 ‘이스라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되풀이 나온다. 1:1의 그것은 야곱의 아들과 그 자손을 뜻하는 반면에, 1:7, 9에서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히브리 민족)이라는 뉘앙스로 쓰였다. 이 뉘앙스의 차이, 곧 이집트 체류 400여년은 두 가지 깊은 뜻이 있다:
1) 야곱의 자손들(가족, 씨족)이 이스라엘(히브리) 민족으로 발전하였다;
2) 하나님께서 창조 때부터 주신, 그리고 아브라함-야곱에게 주신 자손번성의 약속이 실현되었다.
하나님은 이로써 대제국 이집트조차도 히브리민족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히브리인의 위상을 끌어올리셨다(출 1:9). 그러므로 400여년 세월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이제는 가나안 땅이 주어지면, 그 땅을 지켜나갈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백성의 숫자)이 갖추어진 것이다(행 7:17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출애굽기 1:7, 9, 10, 12이 이런 사실을 정확이 알려준다.
|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빠라) (창 1:22, 28; 8:17; 9:1, 7; 17:6, 20; 26:22; 28:3, 35:11; 41:52; 47:27; 48:4; 49:22.) 불어나(쉬라츠) 번성하고(라바) (창 1:22, 28; 8:17; 9:1, 17; 16:10; 17:2, 20; 22:17; 26:4; 28:3; 35:11; 47:27; 48:4.) 매우 강하여(아참)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알레; 말레) 9 ...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아춤) ... 10 ...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라바) 퍼져나가니(파라츠) ... |
여기 쓰인 주요 낱말들은 창 1:28; 9:1, 7을 떠올리게 한다. 야곱과 그 후손의 이집트 이주로 끝나는 창세기와 이스라엘 자손의 번성을 알리는 출애굽기 1장 사이에는 400여년의 세월이 가로놓여 있다. 이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서 족장들에게 주신 약속들, 특히 후손을 바다의 모래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불어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실현되었다. 곧 하나님은 아담(창 1:28), 노아(창 9:1, 7), 아브라함(창 13:16; 15:5; 17:2), 야곱(창 28:14; 46:3)을 통해 이스라엘민족에게 거듭 약속(축복)하신 것을 실현시키신 것이다. 이로써 주변 나라들이 히브리인(이스라엘 민족)을 함부로 얕잡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자손(후손)을 향한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은 이제 땅을 향한 약속을 지키시려고, 모세를 이 세상에 보냈으며, 그 큰 걸음(거보, 巨步)을 내딛게 하셨다(출 2:24-6장). 그래서 시편 기자는 출애굽의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하였다: “이는 그의 거룩한 말씀과 그의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 (시 105:42).”
2) 복주시는 주 하나님!
출애굽기는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된 복이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복을 가리키는 히브리말에 바라크(바락)가 있다. 본디 이 말은 고대 이디오피아, 이집트말로 ‘기도드리다’는 뜻이 있는데, 히브리말에는 “(사람이나 동물이) 무릎을 꿇다”는 뜻으로 쓰였다(사 45:23; 시 95:6). 이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곧 복이라는 뜻이다. 요즈음 같은 개성과 자유의 시대에 순종이라니, 도대체 그 무슨 시대착오적인 말이냐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실제로 무엇인가에 순종하며 (따라가며, 이끌리며) 살아간다. 이를테면 자기 생각이나 습관이나 지식이나 이데올로기나 시대풍조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것들에 이끌려 사는 것을 마치 개성을 살리는 양, 자유롭게 사는 양 그럴듯하게 포장하였을 뿐, 실제로 그 무엇인가에 따라 (순종하여) 살고 있다는 사실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자 주인이신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 분의 의지와 뜻을 따라 사는 것을 가리켜 복이라 부르는 이스라엘 민족은 참 지혜롭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주인이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분이다. 이런 분과 동행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기에 이 세상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무릎을 꿇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기에 이 세상 그 어떤 것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이를테면 다윗)가 된다면, 그 분은 몸과 마음에 영혼에 온갖 복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말한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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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 28:2-6) 12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 13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14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15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시 144:12-15) |
히브리말에서 복을 가리키는 다른 말은 에세르/ 아사르(아카드어 asaru)이다. 이를테면 시 1:1은 "복있는 사람..." 라고 시작된다. 이 말에는 본래 ① (하나님이) 돌보신다 (betreuen), ② 그 돌보시는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뜻(에티오피아어 'asra = den Spur folgen)이 있다. "하나님이 돌보신다"는 말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우호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뜻이다. 다시말해 히브리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계시며, 자신을 돌보아 주시고, 자신은 하나님의 발자취를 쫓아 살아가는 것을 가리켜 복이라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거나 깨지는 것을 불행 중의 불행으로 받아들였다. 하나님을 자기 아버지요, 자기 어머니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고, "나란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라고 물을 때, 대뜸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대답하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다:
|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 73:28).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시 100:3). |
3) 고난과 축복은 동전의 양면
거대한 제국 이집트를 다스리는 파라오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는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고난과 역경을 안겨 줄 힘이 있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지금 겪는 고난과 역경 은 이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아들들에게 주시는 복을 가로막을 힘이 그에게 없었다. 그것을 방해하려고 세 가지 계책을 내놓았으나,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바로 이 사실을 출 1:12a 첫 단어(와우 = 그러나!)가 매우 강하게 역설한다: “그러나 그들은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더 번성하였으며, 더욱 더 퍼져나갔다.” 한편에서는 점점 더 심해지는 고난, 다른 한편에서는 점점 더 풍성해지는 축복.
우리 인생에도 시련과 축복이 중첩되곤 한다. 형통하기만 할 때도 있으나, 고난이 설상가상으로 찾아올 때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에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난다. 그래서 고난 속에 축복이 잉태되어 있고, 축복 속에 고난이 잉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신앙인은 고난(시련) 속에 잠재된 복의 씨앗을 정성껏 갈무리하는 한편(롬 8:16-18), 받은 복(성취, 성공) 속에 감추어진 재난의 씨앗을 미리 살펴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고전 10:12).
|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롬 8:16-18)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 10:12) |
4) 왕은 지고 어머니는 이긴다:
야곱의 허리(창 32:23-33; 35:11 참조)에서 나온 소수의 무리(70여명)가 무섭게 불어나 거대한 민족으로 변모되었다. 이들을 보고 거대한 제국을 한 손에 쥐고 흔드는 파라오가 두려워하였다. 거대한 왕국을 이룬 파라오의 우스꽝스러운 두려움과 그 왕국 안에서 노예로 사는 소수민족 히브리인의 끈질긴 생명력이 출 1-2장에 선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힘이나 숫자로 파라오 및 이집트왕국에 비할 바가 아니었지만, 히브리 민족은 하나님의 약속을 품은 민족이기에 하나님의 기억에 살아있는 민족이었으며, 하나님의 목적(뜻) 안에 포함된 민족이었다. 비록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세상 권력이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품고 태어난 생명을 자기 맘대로 할 수 없는 법이다(마 2:13-18 참조). 이들이 살아남는 과정이나 번성하는 모습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겨자씨 비유를 생각나게 한다:
| 30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막 4:40-32; 참조 마 13:31-32; 눅 13:18-19) |
더구나 이 일에 파라오의 딸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녀 시녀들과 함께 그곳에 목욕하러 왔다가 갈대상자에 담긴 아이를 발견하였다. 이에 그녀에게 있는 여성 본연의 본성이 발동하였다. 그래서 자기 시녀들 가운데 아주 가까운 측근을 불러 그 아기를 데려 오게 하였다. 그리고 히브리인의 아기임을 알면서도, 히브리 아기에 대한 아버지 파라오의 명령을 알면서도, 그 아기를 데려다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이리하여 그녀는 모세를 길러 준 어머니가 되었다. 그리고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기를 여인을 불러 오게 하였다(모세의 생모). 이리하여 ‘유아 학살명령을 내린 장본인’의 친딸의 손에,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의 길로 인도할 지도자 모세가 자라나는 기막힌 역설이 시작되었다. 그렇다. 자식의 생명에 관한 한 왕은 지고 어머니는 이긴다:
|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3). |
5) 생명을 살리는 사람과 함께하시는 하나님
만일 태어난 아이가 딸이면 살려두고, 사내아이면 죽이라는 파라오의 지엄한 명령에 거슬려 히브리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에 합당한 선택을 하였다. 이는 목숨을 건 선택이었다.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는 선택을 한 이들에게 복을 주셨다(출 1:20-21).
출 1-2, 4장에 나오는 여성들은 한결같이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달리 말하자면, 한 생명을 아끼는 행동으로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참여하였기에, 파라오의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곳에 그 이름이 기록으로 남겨졌다(성경해설 참조).
출애굽기 2장과 4장에 나오는 여성들의 활동, 특히 하나님 경외를 생명에의 경외로 이어가는 그들의 신앙,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복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여기서 만난다.
6)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선택은 생명살리기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온갖 생명을 창조하신 분이다. 그래서 성경은 생명의 근원이 여호와께 있으며, 각각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외하며 대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시편기자는 자기 자신의 생명을 향한 경외심(veneratio vitae)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 14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15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16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시 139:14-16). |
이런 뜻에서 파라오가 산파들에게 내린 명령의 바탕에는 생명을 경시하는 사고방식이 깔려 있다. 이는 생명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이다. 히브리 산파 십부라와 부아에게서 보듯이(출 1:17),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생명을 경외하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 시대에 신앙과 양심을 대표하는 사람들 중에 하나인 슈바이쳐 박사에게도 이 둘은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생명을 향한 경외심은 구체적인 생활영역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요일 3:14-16이다:
|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
7) 악이 비록 성하여도...
파라오는 히브리민족의 숫자가 하나님 약속대로 불어나자, 그것을 확대-과장하여 떠벌렸다(출 1:9-10). 그리고 자신의 막강한 권력과 지혜를 동원하여 하나님 약속이 실현되는 것을 저지시킬 계획을 단계별로 세웠다. 파라오의 이 횡포에 막설 힘이 히브리 민족에게는 없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다. 이 하나님이 무기력한 그들의 힘이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지혜(또는 소극적인 자기방어)는 매우 보잘 것 없어 보였지만, 하나님은 거기에 효과적인 능력을 불어넣으셨다. 이리하여 찬송가 가사(586장) 대로 ‘악이 비록 성하여도 진리 더욱 강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셨다. 그렇다. 인간의 힘이나 지혜 (잔머리)가 하나님의 목적이나 계획을 가로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고전 1:18-25 참조). 겉으로 볼 때에는 파라오의 악한 계획과 그 음모가 점점 더 크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믿음의 진가는 바로 이런 때에 빛나게 마련이다. 하나님은 무기력한 자의 보잘 것 없는 힘, 겨우 자기방어에 급급한 약한 자의 꾀를 외면하지 않는 분이다.
8) 갈대상자 둥둥둥
노아가 들어앉은 방주와 모세가 눕혀진 갈대상자는 물 위에 둥둥 떠올랐다. 그것들이 떠내려갈 방향을 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방향키를 쥐고 계셨다. 그것이 어디로 흘러가든지, 누구 손에 들어가는지를 결정할 힘이 그 배를 만든 사람에게는 전혀 없었다.
평소에 사람은 자기 인생을 자기 스스로 개척한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이 자기 인생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사는 사람보다 더 용감해 보이고, 더 주체적인 존재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얼마나 많은 순간 순간마다 우리는 우리 능력으로는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사람들, 우리 지식과 경험으로는 맘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일들과 직면하며 사는지를.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은 ‘내 인생의 열쇠는 내게 있지 않습니다’라고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시 31:15);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대상 29:12)’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일찍이 전도자가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 (전 9:1)고 한 것도 이같은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40일 주야로 내리붓는 대홍수의 물결에 둥둥둥 떠 있는 노아의 방주와 나일강에 둥둥둥 떠 있는 갈대상자와 그 안의 모세는 하나님 손에 의탁하는 인생이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산 증거이다.*
정현진 목사 psalm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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