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주변에 죽음이 만연해 있습니다. 우리 감각의 현실적 삶에서도 그렇고, 과거의 기억의 세계에도 그러하며, 또한 요사이 더 한층 우리 삶에 가까이 들어와 있는 드라마와 게임과 상상적 놀이의 미래적 삶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사이 죽음에 무뎌지게 되었고, 그 죽음에 무뎌지니 우리 삶이 그토록 추구하고 얻고자 하는 생과 행복과 즐거움도 함께 시들해졌습니다. 우리가 다 죽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많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지금까지 저에게 효순과 미선양의 죽음은 거의 그와 같은 수준이었습니다. 2002년 온 나라가 월드컵 축구의 열기로 뜨거웠을 때 그 일이 있었고, 참으로 안타깝고 억울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저에게 그 죽음은 더 이상 크게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평소 존경하는 박상희 목사님이 두 소녀의 죽음을 추모하는 일을 계속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저의 마음이 거기에까지 닿지 못했고, 그래서 오늘 한없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섰습니다.

▲ 2002년 6월 13일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신효순, 심미선 양의 추모 조형물인 "소녀의 꿈". 지난 2012년 10주년을 맞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선교교육원 앞마당에서 제막식과 함께 세워졌다.ⓒ에큐메니안

그런 가운데 오늘의 이 일을 위해서 미선과 효순양의 죽음을 다시 생각해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일찍이 함석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우리 민족은 예전부터 사람의 이름에 善이나 順, 孝, 誠 등을 많이 써 왔고, 그 일은 바로 우리 민족의 오래된 “착함”의 성격을 드러내주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미선양과 효순양의 이름을 다시 새겨보니 그 이름이야말로-제가 그 한자를 분명히 확인하지 않아서 혹시 아닐 수도 있겠으나- 다른 어떤 이름보다도 그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런 착함과 선함, 인간성의 오랜 소망과 체현인 두 여중생의 죽음에 대해 대극으로 서있는 것은 거대한 세계 최대의 제국이고, 남성 어른이며, 일상과 생일축하라는 생명성의 기쁨에 대한 군대와 전쟁 연습과 장갑차였습니다. 이보다 더 극한 대극과 대립이 어디 있겠으며, 그래서 일종의 희극과도 같은 대극 앞에서 왜 이 땅에 그러한 대극이 있었어야 하며, 또한 오늘도 여전히 그치지 않는 것일까 하고 묻게 됩니다. 미선과 효순의 생명과 일상과 즐거움과 천진난만의 착함은 그렇게 믿기 어려운, 현실 같지 않은, 그래서 한편으로 멍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게도 하는 그런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런 극한 대극 때문이었을까요? 미선 양과 효선 양의 죽음은 12년이 흐른 오늘에도 결코 약해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강해져만 가는, 그래서 우리 삶을 통째로 위협하는 거대한 죽임의 세력에 대한 ‘촛불’이 켜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그 기적으로 그나마 한국 사회의 숨통이 완전히 막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늘은 그 두 소녀의 착함으로 여전히 노를 참고 계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12년 동안 한국 사회에는 거대한 제국과, 그 제국주의 군대와 장갑차의 힘에 편승해서 자국민조차도 식민지로 삼는 정부와, 그것을 하늘의 뜻으로 미화시키고 상승시키면서 축복을 비는 종교와, 모든 것 중의 모든 것을 돈으로 치부하는 경제가 야합하여서 숱한 죽임과 죽음을 불러왔습니다. 바로 지난 4월16일에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는 미선과 효순 양의 경우와 같은 대극적 형태의 죽음이 이 땅에서 결코 그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웅변해줍니다.

이번에도 어린 학생들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친구 생일파티 대신에 수학여행이라는 기쁨 앞에서 들떠서 한없이 순수해지고, 착해지고, 서로 배려하는 인간성을 한껏 베풀며 즐거워하던 아이들의 일상에 대한 거대한 함선이었습니다. 해경이었습니다. 이익과 편당과 권력에 찌든 힘센 어른들의 정치와 경제, 종교와 언론이었습니다. 일상의 걷는 길보다는 군대와 장갑차가 더 우선이고, 신뢰와 기쁨보다는 싸움과 긴장을 강조하면서 거기서 얻어지는 독점적 이익을 위해 반생명의 화신이 되어버린 어른들의 학살이었습니다. 

“한 사회의 품격과 인간성은 죽은 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그들을 대하는 태도가 곧 살아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준다.” 여기 아주 미약한 두 소녀의 죽음을 잊지 않고 지금도 기억하며 그 의미와 씨름하는 참으로 인간적인 품격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일을 통해서 우리 시대에 절망하면서  흩어지는 사람들을 다시 어우르고, 시대와 사회의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촛불의 기적으로 다시 살려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두운 시대의 (빛의) 사람들’(men in dark times)입니다.

거대한 제국의 ‘가만히 있으라’는 테러 앞에서 민중과 다중의 작지만 ‘무수한 촛불’(聖의 다양성)과 아무리 억누르고 제거하려고 해도 다시 일어서는 촛불 생명의 ‘자발성’(性의 자발성), 그 억누르는 죽임의 폭력과 테러가 강할지라도 생명과 정의와 평화의 뜻이 실현될 때까지 그냥 주저앉지 않는 생명 촛불의 ‘지속성’(誠의 지속성과 일상성)이 그래서 오늘도 우리 신뢰의 그루터기가 됩니다.

그 그루터기에서 어떤 거대한 제국이라도, 아무리 철저히 가리고 속이는 거짓과 불의도 결국은 물리쳐질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의 싹이 돋아납니다. 그 일을 위해서 지금까지 애써온 여러분들의 수고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합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를 보다 강력하게 그와 같은 인간적인 일에로 부르고, 그러한 함께 함을 통해서만이 우리 사회의 야만과 폭력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지시합니다.

이은선 교수(세종대)  leeus@sejo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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