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단은 교단장을 제비뽑기로 선출한다. 몹쓸 인간들의 명예욕이 일탈됨을 보다 못해 나온 고육지책(苦肉之策)이리라. 그러면 절대로 안 되는 개신교 상황인데, 실제로 감리교단은 교단장 선출 문제로 몇 년째 추하디 추한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교단장 한 번 해먹겠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 땅의 자칭 큰 목사들을 견제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도 모르실 거라는 생각이 들어 씁쓰레 혼자 웃는다.
그래도 제비뽑기는 요나와 맛디아를 들이대면서 성서적 합리성도 충족된다 우길 수 있다. 내가 속한 교단도 이 방법을 쓰는 것이 오히려 낫지 않을까 나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고, 지난 20년을 돌아보니 오히려 그것이 나았겠다 싶기도 하다.
장을 담그긴 해야 하는데, 그 놈의 구더기들이 무서워서……. 쯧!
1994년 5월에 통일찬송가 2편이 발간되었다. 발간을 앞두고, 포함될 138편의 한국 찬송가를 선별하기 위한 행사가 마포 가든호텔에서 있었다. 나도 루터교 대표로 참석하였다. 작사, 작곡자 이름을 완벽하게 가린 두꺼운 악보집을 주었고, 서울모테트합창단 일부 단원이 한 장씩 부르면 평가란에 개인적 안목과 취향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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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12년 1월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는 기독교회관에서 '찬송가 사유화 및 찬송가공회의 불법 법인화에 대한 간담회'를 열고 현 진행상황에 대한 보고와 향후 대응책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에큐메니안 | ||
한국인 찬송이 더 많이 불려져야 한다는 대의명분에 반대할 이는 별로 없을 것이나, 그 당시 발행된 찬송가 2편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당시 한국찬송가공회 총무였던 사람이 한국찬송가공회를 줄인 <한찬공>이란 익명으로 9곡이나 실었기 때문이었다. 그 곡들은 쓰여진 지 1~2년 밖에 안된 급조된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평가회 날, 그렇게 들러리를 섰던 것이다. 물론 그 통일찬송가 2편은 전량 폐기물로 처리되었다.
이런 뼈아픈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던 한명수 목사(전 찬송가공회 공동의장)는 21세기 새찬송가가 나오자 <신앙 양심이 있다면 할 수 없는 선곡>으로 편집된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예견된 일이긴 했지만, 이렇게 완벽한 범죄(?)로 재구성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 같다.
2004년 8월, 새찬송가 시제품 공청회가 열렸다. 이 때만 해도 찬송가공회 관계자나 편집 관계자들의 작품이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당시의 의견들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백효죽 <지나치게 상업성을 염두에 둔 편집이다.>
- 정장복 <예배용-집회용 찬송이 혼돈되어 있으며, 예배에 부적절한 가사가 다수 있다.>
- 이무경 <전체적으로 가사들의 문학적 수준이 매우 낮다.>
- 여신학자협회 등 <성차별적 표현이 많다.>
시제품 감수를 맡은 박재훈, 김이호 목사는 다음과 같은 <감수보고서>를 냈다.
- 시제품의 수준이 낮고, 이대로 발간하는 것은 안 된다.
- 수준 미달의 유치한 곡들이 많고, 가사와 곡의 부조화도 심하다.
- 외국곡의 가사 번역의 오류가 많고, 기존 찬송가 수정 시 오류도 심각하다.
- 따라서 감수할 가치조차 없으며, 출간되면 국제적 망신이다.
이런 결과에 따라 수준을 올리기 위한 방책으로, 아마도 찬송가공회 관계자들과 편집위원들의 작품을 대거 싣기로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새로 발간된 새찬송가의 곡 선정은 재야 전문가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개편찬송가에는 한국인 창작 찬송가가 27곡 수록되었었다. 획기적인 발전이었으나, 통일찬송가에는 17곡으로 줄어들었다. 21세기 새찬송가에 새로 포함된 한국 찬송가는 109편인데, 기반 없이 이루어지는 이런 급격한 팽창은 <편향된 편집>과 <질적 저하>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한국 개신교회가 무인가 신학교 출신, 자기들끼리의 목사들을 양산하여 그 덕에 팽창했지만, 요즈음 꾸역꾸역 터져나오는 그 많은 치부들을 보면서도, 왜 그런지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그 누구도 발설을 꺼리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먼저 <편향된 편집>의 구체적 예들을 들어 보자.
편집 관계자들의 작품이 빠졌던 2004년 시제품과 달리, 찬송가공회 임원과 편집 관계자들의 곡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갔다. 109곡 중 23곡으로, 적어도 5곡 중 하나는 그들의 곡이다.
당시 찬송가공회 공동의장 임태득 목사(193장)와 엄문용 장로의 곡(409장)은 당연히 포함되었다. 특히 임태득 목사는 2003년 총신 채플에서 “기저귀 차는 여성이 강단에 올라가? 안 돼!”라는 말과, 2007년 교계 언론 여성 기자에게 “아가씨는 어디 소속이냐?”란 표현으로 이 땅의 모든 여성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상식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충격을 준 사람이다.
감수위원인 박재훈 목사의 곡은 기존 4곡에, 4곡(17, 319, 561, 578)이 추가되어 8곡이 되었다. 후학으로서 그의 곡들을 늘 높이 평가하거니와, 워낙 독보적이라 그 분 곡이 많다하여 교계에서 뭐라 할 사람도 없겠지만, <감수>하는 일을 놓고 모종의 타협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을 접으려 애를 쓰고 있다. 특히 찬송가공회와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성서원의 김영진 사장이 2002년에 쓴 가사를, 박재훈 목사가 2004년에 작곡한 319장을 보면 의심이 쉬 가시질 않는다.
역시 감수위원인 나인용 2곡(45, 307), 음악분과위원인 문성모 3곡(48, 418, 556). 김정일 3곡(57, 76, 506), 주성희 2곡(476, 547), 김흥규 1곡(281), 가사분과 전문위원 도한호, 김동청, 김수진 각 1곡, 해설위원 박봉배 1곡, 편집분과위원 이보철, 전희준 각 1곡 등도 간택(揀擇)되었다.
교계, 교단 간판 스타들의 곡들도 넘친다. 특히 308, 614장이 실린 조용기 부부의 노래는 차라리 연민을 자아낸다. 찬송가공회 총무인 김상권 장로는 <교회 연합 차원에서 순복음 몫>이라고 표현했는데, 풀어서 이야기하면 <순복음 추천의 2곡을 안 넣어주면 장사가 안 되니까…>일 것이다.
물론 이들의 곡들이 하나같이 찬송가에 부적합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공적인 찬송가를 만들 때는 그 동안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어 검증받은 곡이라면 모를까, 자기들이 자기들 작품을 뽑는 이런 경우에는 작품의 객관적 우수성을 분명히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는 깊이에 있어 턱없이 부족한 가사들과, 천편일률적이며 어리숙한 곡들이 너무 많이 끼어 있다. 몇 곡은 표절 시비에 휩쓸리기도 했다.
특히 새로 포함된 한국곡 중에 2005~2006년에 만들어진 곡이 28곡, 21세기에 들어와 만들어진 곡을 더하면 48곡(44%)에 이른다. (그래서 이름에 21세기를 붙인 모양이다.) 여기에 창작된 지 10년이 안된 곡들까지 하면 69곡으로 전체의 2/3에 가깝다.
교인들에게 불려져 검증될 여유도 없었고, 전문가보다 목사들이 더 많은 찬송가공회 외에는 객관적 평가 기회도 없었다. 그냥 <영예로운 찬송가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 위한 <급조된 노래>에 불과하다. 대표성을 갖기에는 전혀 턱없다.
한국인 창작찬송을 열심히 만들어 어느 정도 공인된 운동이, 1977년부터 한국찬송가위원회가 주관한 <신작찬송> 운동이다. 안타깝게도 이 <신작 찬송> 운동은 21세기 새찬송가에 마주 미미한 영향을 끼치는데 그쳤다. 통일찬송가 2집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미우나 고우나, 왜 이런 전통을 폄하(貶下)하고, 급조된 노래들로 채웠는지는 독자 여러분이 누릴 상상의 자유이다.
<신작찬송> 운동을 가장 적극적으로 한 나운영 선생은 원불교 찬불가 작업에 관여했다 하여 평생 혹독한 곤욕을 치루었고 이번에도 예장 통합측에서 문제 제기를 했지만, 작곡자보다도 찬송작가들의 삶은 세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그들이 혹, 간통범, 횡령범, 사기꾼 등 어떻게 삶을 마감할지 모르므로, 될 수 있으면 세상 떠난 이들의 작품을 우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새찬송가의 작가 중 발행 당시 별세한 이들은 26명이다. 물론 그들이 모두 다 큰 과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새찬송가가 발행되기 전, 면밀한 연구 성과가 사회적 합의를 어느 정도 이끌어내어, 친일파 명단이 발표되었다. 그들은 모두 극렬한 친일 인사들이었다. 따라서 적어도 새찬송가에서는 김활란과 주요한과 이명직의 곡들을 제외시켜야 함이 마땅한 일이었다. 기독교인으로 그들의 공과의 크기를 계산하는 것은 만부당(萬不當)하다. 세상은 요즘 개신교인들에게 최소한의 도덕성이라도 갖추라지만, 순교는커녕, 신앙적 양심도 없이 영달(榮達)을 꾀한, 적극적 친일파 기독교인은 그 최소한의 도덕성도 지키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친일작가 춘원 이광수가 번역한 찬송 10여 곡은 그냥 번역이니까 그나마 수용한다 치자. 또 세상은 친일파의 작사일 수도 있고, 친일파가 작곡한 <애국가>를 부를지언정, 교회는 그 사람들의 찬송가를 부르면 옳지 않다는 것이 내가 믿은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친일 뿐 아니라 이모저모로 도덕적 문제가 심각한 사람들의 곡들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어, 뚜껑을 열었다가도 금세 닫게 되는 새찬송가 – 정말 가슴이 아프다. 50, 60년대 생 작가들의 작품이 수두룩한 것을 보며, 자생력이 있다 싶으면 20~30년 지난 후 검토하여 실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 곡들을 보며, 앞으로 어떤 사달이 교회에 누를 끼칠까 걱정하는 것은 나의 기우(杞憂)일까?
이런 면에서 찬송가도 <제비뽑기>로 선곡하는 것이 더 나을 뻔 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에는 새찬송가의 품격과 질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 새찬송가 이야기를 맺자.
주대범 장로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지휘자)
주대범 장로 bawee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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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대300에 씁쓸해 하는 동료들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