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세간에 화제가 되었지요?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이 전설적인 가수의 컴백을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고생물학자가 어느 날 갑자기 살아있는 공룡과 마주치게 된 것과 같다고, 바로 김추자입니다.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궁금하던 차에 그의 컴백을 알리는 음반 <It's Not Too Late>을 입수, 정확히는 음반이 아니고 오디오파일(mp3)입니다. 공식적인 유통경로로 내려 받았다 하더라도 음반으로 구매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합니다만, 게으르기도 하고, 컴퓨터에서 재생되는 mp3를 DAC에 물려서 PC-FI로 듣다보니 음원파일에 익숙해진 탓도 있습니다. 가요를 듣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아서 어지간한 음반은 시장에서 사라진지가 옛날이지요. 여기서 소개되는 음반도 온라인 음원사이트에서 접할 수 있는 것만을 대상으로 하고 음반리스트는 있어도 이런 저런 이유는 서비스되지 않는 음반 소위 ‘그림의 떡’은 아예 거론하지도 소개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 음원사이트에 가시면 검색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관련된 이미지 역시 링크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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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10월 김추자의 데뷔음반의 타이틀은 ‘늦기 전에’, 부재는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입니다. LP음반 기준으로 앞면에 실린 첫 번째 곡과 두 번째 곡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 음반은 먼저 김추자의 음반이고, 신중현과 그와 함께했던 분들의 음반이기도 하고, 모서리 한편에는 ‘신중현작곡집’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앞면 6곡은 김추자가 노래와 세련된 반주연주가 함께하고 있으며 뒷면은 신중현사단(당시 신중현을 중심으로 함께 활동하거나 인연이 있는 음악인들의 총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의 각기 다른 남성가수가 보컬을 맡고 있는데 앞면에 비해 대중성은 높지 않아 보이지만 작품성이 높은 4곡이 실려 있어 모두 10곡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음반 이미지를 보면 나무가 꽤 우거진 숲이 배경 전체를 덮고 있고, 김추자는 다른 음반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청순한 복장과 표정을 하고 있는데, 굳이 이 음반의 출반연도가 표시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녀가 입고 있는 반팔 원피스의 패션유행연대를 추적하면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자체가 시대의 기록이라고 할까요? 오리지널 음반을 본적이 없기 때문에 옷의 색깔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빨간 앵두 빛으로 보이는데 강한 포인트가 되고 있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아무런 표정은 없지만 뭔가 생각에 잠겨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시선은 전면 아래쪽 상하 8시 방향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딱히 뭘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고개는 약간 숙이고 있군요. 그녀는 바로 이듬해에 여러 장의 음반을 내고 있지만 여기에 견줄만한 이미지는 없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한국적 청순함과 옛스러움이 더해져서 보면 볼수록 숨겨진 비밀이 하나 둘씩 계속 나올 것만 같습니다.
앞면 1번째 트랙 ‘늦기 전에’는
찬! 하고 세게 한번 내려치는 기타 음으로 시작하는데 이건 전주라기보다는 이제 시작하자는 신호처럼 보이고, 마치 고수의 북 장단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 소리의 여운이 끝날 즈음 ‘늦기 전에~’하고 내어 지르는 소리는 나무 어딘가에 앉아 있던 새가 인기척에 놀라 창공을 가로 지르며 힘차게 날아오르듯이 그렇게 첫 소절이 시작됩니다. 이 순간은 짧지만 사실상 무반주입니다. 보컬의 육성만으로 곡의 스타트를 열어야 한다면 가수에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첫 소절의 한 순간이 곡의 전체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어지간히 자신 있는 보컬리스트가 아니고는 좀 피하고 싶지 않을까요? 그러나 청자를 압도하며 카리스마 있게 시작해 준다면 대단히 멋진 곡이 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감동도 크겠지요.
멋쩍은 상황에서 기타로 첫 시작신호를 주고 있다면 갓 대학에 입학하고 노래를 해 보겠다고 마음을 낸 가녀린 여학생이 가수 생애 첫 음반의 첫 곡 첫 소절을 무반주로 열어야 하는 부담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한다면 이때의 녹음실의 긴장은 상당하지 않았을까요? 대게 1번 트랙은 그 음반 전체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특별히 멋진 인트로(Intro)가 자리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첫 소절은 그가 가진 저력과 카리스마를 충분히 보여줍니다. 타고난 보컬리스트임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지요. 이렇게 첫 마디를 열어 재치고 곧이어 반주와 함께 리듬을 타며 백 코러스의 지원을 받는 구조로 전개됩니다. 좀 더 주의해서 들어본다면 첫 마디 다음다음 마디 정도에서 ‘빨리 돌아와 주오’로 마치는 음이 약간 플랫이 된 느낌이 드는데 이건 다른 곡에서도 간간히 보이는 것이 아무래도 작곡자의 의도인 듯합니다. 그리고 노래의 1절을 ‘다시는 찾을 수 없어요’로 끝나면서 ‘요~~~’ 하면서 성대의 떨림을 이용한 특유의 창법이 넘실대는 물결처럼 국악의 창을 연상시킵니다. 왜? 국악느낌이 날까 했는데 공식 프로필에는 없지만 위키 백과사전의 짤막한 정보에 의하면 그녀가 춘천여자고등학교를 다녔으며 춘천향토제에 참가해서 <수심가>를 불러 3위를 했다고 하니 그녀의 타고난 재능을 입증하기에 충분하지 않나요? 신중현 역시도 이런 김추자의 장점을 살린 듯합니다. 이처럼 탁월한 재능은 그녀가 다가올 70년대의 가요계를 평정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기도 합니다.
앞면 2번째 트랙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는
군악대를 연상시키는 힘찬 북소리와 나팔소리로 김상사라는 군인아저씨에 걸 맞는 의도된 도입부로 시작하였다가 나팔소리의 여운이 계속되는 동안 북소리가 사라지면서 밴드 리듬반주로 바뀌고 나팔소리마저 끝나는 지점에서 김추자의 발랄하고 빠른 템포의 노래가 이국땅 월남에 파병되어 갔다가 오랜만에 돌아온 김상사를 반기는 동네 잔치집의 흥겨움을 전달합니다. 여기에는 어린 동생이 반가움도 들어있고, 무엇보다도 의젓하고 건강한 아들을 다시 보게 된 어머니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이미 알고 있듯이 월남파병은 1964년부터 비전투요원을 시작으로 1973년까지 근 10년 동안 약 5만 명의 병력이 파병되어 그 중 5천명 이상이 전사했다고 하니 열에 한명은 전사 했다는 말인데, 사지에서 멀쩡하게 돌아온 김상사를 맞이하는 그 가족과 동네 주민들의 잔치를 회화적으로 그리고 있으니 이 노래를 듣는 사람에게 김상사는 어떤 특정인이 아니라 상징화된 보통명사이면서 한 시대의 단면을 찍은 한 장의 흑백사진이 되겠습니다.
여기에 월남전에 대한 부정이니 긍정이니 하는 가치의 문제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아니 어떻게든 반전의 내용이 들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혹시 시대의 한계 아닌가요?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예술은 소극적이면서도 그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내재할 때 아름답습니다. 시대의 한 단면을 가감 없이 그려낸 것으로 족하고, 김상사를 다시 만난 어머니, 동생, 마을사람들의 기쁨의 순간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줌으로써 소임을 다 한건 아닐까요?
여기까지의 2곡이 이 음반에서 대중적 흥행을 고려한 대표곡이라 생각됩니다.
다음의 3번 트랙부터 6번 트랙까지 김추자 노래 4곡과 뒷면의 곡들은 테크닉적 요소와 함께 이해되어야 할 부분이기도 합니다. 간단한 배경지식을 기반으로 각자가 느껴보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김추자의 초기음반을 얘기 할 때 간혹 사이키델릭(Psychedelic)이란 용어가 나오곤 하지요. 김추자 보다 더 몽환적인 창법이 강했던 김정미도 있었고, 이정화-김추자-김정미로 이어지는 사이키델릭 여성로커 3인방이라 해야 할까요? 더 근원적으로는 당시 신중현의 음악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신중현의 음악이 어떤 형태로든 사이키델릭 음악을 추구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예를 들면, 1969년 5월 17일 광화문 앞 서울시민회관(현재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실로 역사적인 그룹사운드 경연대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날의 공연에서 연주한 In-A-Kadda-Da-Vida란 곡은 음반의 한 면을 다 채울 정도로 긴 곡이고 원곡은 미국의 Iron Butterfly란 밴드의 연주곡인데 이들이 대표적인 사이키델릭 록그룹입니다.
사이키델릭이 왜 등장했을까요?
사이키델릭은 비단 록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분야에서도 일정한 표현방법을 일컫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등장 배경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 출처를 찾아 미국의 역사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보겠습니다.
1950년은 우리 현대사에서도 결정적인 사건이 발발했던 해 이지요. 바로 한국전쟁입니다. 이 불행한 사건이 오늘날까지도 우리사회의 의식을 근본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만 이것은 미국에도 심각한 영향을 줍니다. 한국전쟁이 중반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양상에 직면합니다. 중국이 개입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전쟁에 대처하는 방향을 두고 세계전쟁으로 확대하려는 강경파인 맥아더(Douglas MacArthur)와 전쟁의 한계선을 분명히 하려는 트루먼(Harry S. Truman)대통령 사이의 노선대립이 발생합니다. 정치권과 군부의 대립이라고도 하겠는데, 결국 트루먼은 맥아더를 해임시킵니다. 글쎄요, 인사권자의 승리일까요? 이 후에 전개되는 사태를 보면 민주당 트루먼의 최종승리는 아닌 듯합니다. 남한지역을 사수하는 선에서 전쟁을 빨리 마무리 짖고자 했던 트루먼의 계획은 휴전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장기화되고 전선의 고지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전사자를 쏟아내면서 미국인들의 공산진영에 대한 두려움은 더욱더 커져갑니다. 당연 반공여론이 확산 되겠지요 여기에다 알저 히스(Alger Hiss)란 국무부 고위관료가 간첩혐의로 체포됩니다. 다른 곳도 아닌 국무부내에서라니 굉장한 충격이지요. 그러니 여기저기서 간첩색출하자고 준동하고, 충성심사위원회라는 기관까지 만들어 간첩을 색출했다고 하니 당시의 사회분위기가 얼마나 험악했는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여파를 타고 그 유명한 공화당 매카시(Joseph Raymond McCarthy) 상원의원이 등장합니다. 비열하긴 하지만 메카시의 과격한 선동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새 정부는 기존의 민주당과는 다르게 공기업의 민영화, 친기업적인 관료의 대거등용, 기업에 대한 감세정책을 폅니다. 이런 것들이 이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 되었습니다만, 일련의 자유주의정책은 나름대로 성공을 거둡니다.
지금은 간혹 스크린의 한 장면 속에 유령도시가 된 디트로이트의 풍경이 나오곤 하지만 그 시절엔 대륙의 자동차 수요를 충족시키느라 생산라인이 바쁘게 돌아가던 시절이었겠지요. 이건 애써 한 단면을 찾아보았던 것뿐이고, 산업전반에 걸쳐 생산과 소비가 활발해지고 거대 기업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해 주니 ‘샐러리맨’ 즉 도시의 봉급생활자들이 급격히 늘어납니다. 안정적인 평생직장에 적절한 급여를 받고 있다면 각자의 장래를 충분히 예측하고 설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장밋빛 미래 말입니다. 아이들 가르치고 저축도 하고 나중에 퇴직금 받으면 도심의 소음공해에서 벗어나 근교의 한적한 곳에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을 일구며 여생을 보낼 수 있다는 그런 설계도 말입니다. 이렇게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1950년대의 미국을 풍요로운 시대로 이끌어 갑니다.
다만, 이러한 호황기의 수혜는 어디까지나 주류 백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앞에서 얘기된 이념에 대한 지나친 편향과 더불어, 이들이 기성질서에 순응하는 소시민이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안정된 삶의 가능성이 넓게 열려있으니 기성세대야 논할 필요도 없이 대개의 젊은이들 또한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이를 문제 삼는 지식인들이 생깁니다. 이들은 요즘 젊은 세대는 개성이 없고 획일화된 삶을 살아간다고,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모르고 굴러가는 거대한 산업사회의 부속품이 되었다고 한탄합니다. 1950년대 중반부터 이렇게 획일화된 사회를 비판하고 대안적인 삶을 문학작품에 투영한 이들을 비트 제너레이션(Beat Generation) 또는 비트세대라고 합니다. 영혼 없는 삶이 아니라 개성 있고 주체적인 삶으로, 산업사회가 아니라 자연 속으로, 경쟁과 욕망이 아니라 협력과 나눔의 공동체로, 맹목적이고 위선적인 윤리 보다는 진실한 마음과 박애정신을 추구합니다. 이들의 문제의식과 지향을 좀 더 실감나게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만한 영화 한 편을 소개하자면 당시의 소설가 잭 케루악(Jack Kerouac)의 <On The Road>란 소설을 영화로 만든 <온 더 로드>를 보시기 바랍니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감독 월터 살레스(Walter Salles)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른 대표적 인물로는 유명한 시인이자 동성애자로 알려진 앨런 긴즈버그(Allen Ginsberg)가 있는데 다음에 나올 히피(Hippie)들의 정신적 지주이기도 합니다.
역시 비슷한 원인으로 이 시기에 발생한 또 다른 사회현상을 들자면 당시의 사람들이 유독 종교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특히 미국의 개신교가 놀라운 성장을 하고, 수많은 군중이 운집한 대규모 부흥성회가 많이 열립니다. 당시 유명한 부흥목사로 빌리 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를 들 수 있겠고, 이 분은 우리나라에서도 명성에 걸맞게 엄청난 규모의 사람들을 집회장에 모이게 했었지요. 이러한 현상들이 획일주의 속에 단절된 개인의 소시민적 삶과 이러한 무미건조한 삶에 갈증을 채워 줄 무언가를 필요했다는 점에서 비트 제너레이션과 같은 맥락의 사회현상이겠지요.
자 그럼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1960년대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이 시대는 한 마디로 흑인민권운동과 베트남전쟁으로 특징지을 수 있겠고,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시대이지요. 사실 흑인문제는 어제오늘일이 아닌 만큼 이미 1950년대 중반부터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목사를 중심으로 흑인민권운동이 활발해지고 1960년에는 이를 지지하는 민주당의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운동의 지도자들이 백인에게 살해당하고 흑인교회에 대한 폭탄테러까지 자행됩니다. 1963년에는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에서 25만 명이 모여 부당한 차별에 반대하고 평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집회를 합니다.
이러한 흑인민권운동은 대학가의 백인청년들에게 영향을 주어 학생저항운동을 촉발시킵니다. 이 시기 청년들의 눈으로 기성세대를 본다면 그들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격고 50년대의 호황기를 이룩한 세대입니다. 우리사회로 얘기하면 전쟁 격고 70년대 경제성장 이룩한 세대? 쯤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반면 청년세대는 종전 이후에 출생하여 부모의 안정된 생활기반 위에 50년대에 초등학교나 중학교를 다녔을 세대이니 극단과 야만의 시대를 겪은 부모세대에 비해 개인의 양심과 이상에 따라 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이 지극히 정상 아니겠습니까? 전쟁이나 극단적인 가난과 같은 험난한 시대에는 양심이나 도덕을 운운하는 것이 사치일수 있겠습니다만, 야만의 시대에 형성된 비정상적인 가치관은 시대가 변해도 잘 바뀌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신세대를 철없는 세대라고 훈계하려 들지요. 우리에게도 세대갈등은 이념갈등까지 결합하여 자못 심각한데, 이 세대의 청년들 역시 옳지 않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에 옮기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에 1965년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전면적으로 개입하게 되고, 이에 대하여 학생운동은 반전운동으로서 본격화 됩니다.
또한 허버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와 같이 근본적인 사회변혁을 주장하는 진보적인 학자나 지식인들의 영향이 가세하여 기존의 반공보수적인 사회흐름에 맞서 신좌파운동(The New Left)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행동으로 나아가는 변혁의 길 보다는 그 사회로 부터 스스로 격리되어 자신들만의 공간에 작은 공동체(Commune)를 이루고 그 곳에서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시키고자하는 무리들이 있었으니 바로 이들이 히피들입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어느 시대에나 나타나는 저항의 두 가지 경향이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의 역사에서 왜? 히피들의 등장했고, 하필 그때 등장했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 먼 길을 돌아 왔습니다.
히피들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비트세대 지식인들의 생각을 그들의 중심사상으로 삼고, 실천적 차원에서는 평화를 사랑하는 비폭력 박애주의자로서 꽃(Flower)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습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간혹 사이키델릭이나 록음반의 표지에 꽃 이미지가 상징처럼 있다면 이런 배경과 연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또 이들은 소유의식에 기초한 거짓된 자아를 탈피하여 자연 본래의 진정한 자아를 찾는 수단으로 마약에 도취되곤 합니다. 이 점이 이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 한 몫 하는데 그 목적은 단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문명세계에서 정신상태가 느슨하게 되면 이해타산이 흐려져서 내 이익의 극대화는커녕 지킬 수도 없습니다. 코 베이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그래서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합니다. 성공한 기업가의 생활방식을 보면 바로 알 수 있지요. 물론 그 것이 잘 못 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너 나 할 것 없이 온 인류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맹렬하게 살아온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인류가 이렇게 경쟁적으로 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면 지금이라도 멈출 수 있습니다.
다시 히피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들의 문제는 또 있습니다. 소유의식을 버리고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극단적인 단계로까지 실현시키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재산을 공유하는데서 머물지 않고 애정과 자녀에 대해서도 공유하는 확대된 가정(Extended Family)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런 의문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들 속에서 합의된 사항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하나요? 글쎄요 나름대로 그런 우려들에 대비한 자족적 집단이라고 합니다.
사이키델릭은 위와 같은 히피문화가 록음악이라는 형태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록이죠? 다른 건 없나요? 당시의 젊은이들이 록음악에 열광하던 시절이기도 합니다만, 앞에서 히피가 저항의 한 방법이라고 했듯이 록의 정신적 기반이 저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겠지요.
사이키델릭 밴드들은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1969년 8월에 유명한 우드스톡 록페스티벌에 대거 참여하면서 최고 절정에 이르고 이후에는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음악적 특징은 딱히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보통은 마리화나 즉 대마초담배를 피워 몽롱한 상태에서 나른하고 몽환적인 연주와 노래 또는 환각적인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노랫말도 사람들의 위선과 사회에 대한 강한 비판을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소하다면 The Doors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들의 음반을 많이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외에도 Jefferson Airplane이나 The Grateful Dead의 1970년 이전 음반들과 Iron Butterfly 등이 있습니다.
들어보시면 독특하기도 하고,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솜씨들도 상당하지만 새로운 소리에 대한 실험과 탐구의 노력을 강하게 느낄 수 있으며, 몽환적이면서 야릇한 매력을 발산하는 보컬리스트의 역할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본래적 의미의 극단적인 히피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저항정신과 평화, 박애, 협동과 공유의 이상은 남아 있어서 모든 Rock Group의 기본적인 정신적 지향이 되고 있으며, 여기에 흑인들의 고통스러운 삶과 애환을 담은 블루스음악의 진솔함과 자유의 정신을 합하여 록음악의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사이키델릭은 없고 사이키델릭적인 요소를 사용한’ 것이 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자, 배경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3번 트랙 ‘나무 잎이 떨어져서’는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곡입니다.
김추자는 기본적으로 성량이 풍부하고 힘이 있으며 음역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표현에 한계가 없기에 김추자를 특정한 장르의 가수로만 한정지을 수 없게 만듭니다. 이 음반에서도 김추자의 음색은 명료한 색채로만 일관하지는 않고 비음이 절묘하게 사용된 탁한 음색을 내는가 하면, 어느 순간에는 묘한 매력의 여릿한 음색을 들려줍니다. 이런 발성들이 사이키델릭한 요소를 살리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4번 트랙 ‘가버린 사람아’는 키보드의 독특한 사운드로 시작하여 국악적 분위가 강하게 느껴지는 곡입니다. 만일 이 곡에서 사이키델릭한 요소를 빼버리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는 <It's Not Too Late>에 실린 같은 곡으로 펑크하게 편곡되어 있는데 서로 비교 감상으로 들어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5번 트랙 ‘나를 버리지 말아요’는 특유의 플랫을 많이 느낄 수 있고, 이어서 6번 트랙 ‘알 수 없네’로 이어 집니다.
뒷면으로 넘어와서
7번 트랙 ‘잃어버린 친구’에서는 보컬의 가창력이 돋보이는 슬로우 템포의 곡으로 가사도 멜로디도 아주 멋진 곡입니다.
‘흐르는 물결 같이 세월은 흘러서 지나가고,
그 옛날의 그 친구들은 지금은 모두 다 떠나갔네’
노래에 자신 있는 중년이라면 연습해서 멋들어지게 부르면 박수 받을 수 있습니다.
8번 트랙 ‘떠나야 할 그 사람’은 보컬도 훌륭하고 4번 트랙처럼 키보드의 독특한 사운드로 시작하는 긴 전주가 계속됩니다. 러닝 타임 8분이 넘는 곡으로 이 음반에서 가장 실험적인 곡이자 사이키델릭을 뛰어 넘어 예술적인 록의 세계로 들어가 버린 느낌입니다. 이쯤 되면 ‘들어 주면 고맙지만. 뭐 굳이 안 들어도 나를 말릴 순 없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시장성 0%에 가까울 만한 곡이 음반에 실린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지요. 이 곡도 그냥 쉬운 노래의 솔(soul) 분위기로 펄시스터스의 음반에 실려 있고, 이후 여러 가수들에 의해 다시 불려 지게 됩니다. 역시 비교감상하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9번 트랙 ‘소야 어서가자’는 약 1분 50초 길이로 음반에서 가장 짧은 곡입니다. 10번 트랙 ‘웬일일까’ 요즘 노래에 비해 가사의 느낌이 수수하다고 할까요? 이 마지막 곡으로 앨범의 수록곡은 모두 끝납니다. 그리고 한가한 시간에 다시 또 다시 들어보세요. 듣고 난 후에는 앨범의 표지 그림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1969년의 진솔함과 열정의 결정체인 <늦기 전에>는 다시 만들어 질 수 없습니다. 설사 그 앨범의 주인공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타자가 되어 추억을 이야기 할 뿐입니다.
까마득한 옛 음반 하나를 놓고 먼 이야기 산책길을 걸었습니다.
어떤 것은 설명을 위해서 또 어떤 것은 이해를 돕자는 뜻에서 두서없이 길어져 버렸습니다.
이송학 netls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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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식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징계 사건에 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