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의 박영선 대표가 흔들리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 때문이다. 박 대표가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와 전격 합의한 세월호특별법에 대해 단식농성을 하던 유가족과 야권 지지층이 매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실과 박 대표 지역구 사무실이 분노한 이들에게 점거당했다. 재협상을 촉구하는 성난 목소리들이 국회에서, 광화문에서 터져나왔다. SNS에는 박 대표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계속 리트윗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들이 의원총회를 열어 ‘다시 협상’하기로 결의했다.

여야가 전격 합의한 세월호특별법의 내용은 미흡한 게 사실이다. 한국사회가 세월호 침몰 이전과 달라지려면, 그래서 다시는 이런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진상조사위원회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 조사위가 권력의 압력으로부터 필요한 권한을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유가족들이 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자고 요구한 것이다. 이게 힘들면 조사위가 특검추천권이라도 가져야 한다.

박영선 대표가 욕을 먹는 건 이 두 가지를 다 포기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박 대표는 다수당인 새누리당이 결사반대하는 한 수사권과 기소권 문제가 풀리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차선책은 당연히 조사위에 유가족 몫이라도 늘리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어차피 특검은 할 수 있으니 특검추천권보다 조사위에서 유가족의 요구를 밝힐 기회를 더 늘려주어야겠다는 판단이 아니었을까.

어찌됐건 많은 반발이 있고 새정치연합 의원총회에서도 결의했으니 박영선 대표는 새누리당과 협상을 다시 할 수밖에 없다. 어렵게 이룬 합의가 거부당한 셈이니 박 대표로서는 억울하기도 하고 힘도 빠졌겠지만 특별법 재협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새누리당이 이미 합의했으니 안 된다고 뻗댈 게 불을 보듯 훤하지만 유가족과 국민을 위해, 그리고 야당의 혁신을 위해서라도 재협상을 성공시켜야 한다. 재협상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새누리당이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일지도 확실치 않고, 재협상이 이뤄진다 해도 수사권, 기소권, 특검추천권을 진상조사위원회에 주자는데 동의할지 의문이다. 

재협상에서 성과를 거두려면 박영선 대표에게 힘이 실려야 한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다. 많은 비난과 비판이 박 대표에게 쏟아지고 있다. 협상주체로서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하지만 박 대표를 너무 몰아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제대로 싸워주지 못했고 협상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지만 박 대표로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부당한 물밑거래를 했거나 다른 뭔가를 합의 대가로 챙긴 야합으로는 볼 수 없다. 박 대표는 그 동안 올곧게 재별과 검찰의 개혁을 추진해왔다. 세월호 참사 대책 마련 과정에서도 유족들과 시민들의 이야기에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왔다.

판단 잘못이나 미숙한 협상, 조급한 합의를 비판할 수는 있으나 박영선 대표를 몰아부치는 게 최선은 아니다. 박 대표의 실책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박 대표를 욕하면 분은 풀릴지 모르나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자. 지금 필요한 건 재협상을 통해 진상조사위 수사권이나 특검추천권 등을 확보해내는 것이다. 문제는 원내 과반을 훌쩍 넘는 새누리당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새정치연합과 박 대표가 어떤 일을 해도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이다.

재협상의 성과를 기대한다면 박영선 대표를 욕하는 것보다 더 센 강도로 새누리당을 압박해야 한다. 유족과 지지자들의 배신감과 실망, 좌절과 분노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밉든 곱든 야당의 협상 책임자는 박 대표이다. 박 대표에게 힘이 실려야 새누리당과의 재협상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 박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최선의 길은 새누리당을 압박하는 것이다. 김무성 당 대표, 이완구 원내 대표와 세월호 진상위원회의 심재철 위원장과 조원진 새누리당 간사를 매우 강하게 압박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으로 따지면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책임이 훨씬 더 크다. 진상조사 등 사후 대책 마련에 더 영향력이 큰 것도 새누리당이다. 새누리당이 동의하지 않으면 세월호 협상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새누리당은 책임을 지기는커녕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리며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고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세월호 참사를 단순한 교통사고로 폄훼했고, 유족들을 막말로 대했으며, 목숨을 건 진실규명 요구를 무시했다. 새누리당 소속의 심재철 위원장과 조원진 간사는 진상위원회를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갔다. 심 위원장은 거짓 내용이 담긴 카톡 메시지를 여러 사람에게 전송해 민심을 오도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약속을 파기했다. 특별검사제는 야당에 양보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가 7.30 재보선에서 승리하자 말을 바꾼 것이다.

교황의 한국방문은 세월호로 시작됐고 세월호로 끝났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이 문제를 유야무야 끝내버리기에는 부담이 커졌다. 포스트 박 체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김무성 대표가 세월호 참사를 언제까지고 모르쇠할 수는 없는 까닭이다. 지금 당장 묻어두고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 정치적 부담은 고스란히 포스트 박 체제로 전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직접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김 대표에게는 계기가 주어지면 유족과 야권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김 대표는 이미 철도파업에서 능력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따라서 박영선 대표를 향한 비판의 강도만큼, 아니 더 세게 김무성 대표를 압박하는 게 재협상에 임하는 최선의 전략이 아닐까.

손혁재 교수(수원시정연구원장)  nurisonh@suwon.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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