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정현진 목사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네번째 순서는 분량이 많은 관계로 두차례에 나눠서 싣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 편집자 주 |
출애굽기 4장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기적(출 4:1-9), 머뭇대는 모세에게 아론, 그리고 지팡이를 붙여주시는 하나님 (출 4:10-17), 하나님의 신임장(출 4:18-23), 귀향길에 생긴 불가사의한 일(출 4:24-26), 모세의 소명에 대한 마무리 작업(출 4:27-31) 등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1)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기적(출 4:1-9)
출애굽기 4장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에 모세가 대답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모세가 대답하며 말하였다: ‘그런데 보소서! 그들이 나를 신뢰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 ”(직역). 여기서 ‘그런데 보소서’ 라는 부분(웨헨)을 ‘만일’ (= What if...; wenn...)으로 옮긴 성경들도 있다 (NASB, NIV, ELB 등). 이를 가정법으로 보는 것도, 비록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GK § 159w 참조). 그러나 우리는 보다 보편적인 입장에 따라, 이를 위와같이 옮길 것이다. 이로써 이스라엘 자손이 자신을 신뢰하지 않으며, 따라서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모세는 강하게 표현한 것이다.
출 4장에는 믿음을 가리키는 낱말 (아만/아멘의 히필형)이 5차례 나온다(1, 5, 8[X2], 9). 이것이 히필형으로 쓰일 때, 그 다음에 나오는 직접목적어는 곧바로 사람(또는 사람을 가리키는 대명사)이거나 전치사 르 또는 뻬를 앞세우고 인물 이름이 등장한다(그것이 하나님을 가리킬 때에는 출 14:31b; 19:9를 빼고는 항상 뻬). 특히 출 4:1에는 믿음(워헨 로 야아미누 리 = 그런데 보소서!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할 것이며 ....; 출 4:5, 8, 9; 출 2:14 참조)과 들음(워로 이쉬엠우 뻬콜리 그리고 나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리이다 ← 샤마으 뻬콜)의 관계가 나타나 있다. 이는 신 9:23; 시 106:24-25에도 보이는데, 하나님 말씀을 듣는(받아들이는) 것과 믿음의 상관관계를 가리키는 것이다(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출애굽기에서 여호와의 말씀과 그 계획을 믿는 믿음과 여호와를 아는 거룩한 지식 사이에는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출애굽기 4:1에는 출애굽기 4장에서는 소명을 둘러싸고 하나님과 모세가 나누는 대화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나는 ...이다, 나는 ...에 있다’ (에흐예; 에흐예 아세르 에흐예)’ 라고 자신을 소개하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명을 주시며, 이집트로 돌아가야 할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셨다(출 3:9, 13-15). 이에 모세는 “진실로 그들은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나타나시지 않았다’ 고 말할 것입니다” (출 4:1b) 라 말하여 뒷걸음질 쳤다.
어떤 역할이나 사명이 자신에게 주어질 때, 사람이 보이는 반응은 다양하리라. 만일 사람이 그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면, 자기 자신과 주변 환경에서 일이 되지 않을 근거를 얼마든지 들 수 있다. 그리고 분위기와 조건이 무르익었는데도 선뜻 나서지 않는다. ‘만일 ... 된다면...’ 하는 까닭모를 두려움과 불안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였고 주변 여건도 아직 조성되지 않았는데, 무모하게 뛰어든다. 이런 뜻에서 변화조급증이나 변화 모험주의는 매우 위험하다. 또 다른 사람은 반신반의하면서, 뛰어드는 것도 아니고, 물러서는 것도 아닌 엉거주춤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이는 매우 소극적이거나 소심한 사람에게 흔히 나타난다. 위와같은 것들은, 어떤 경우에나,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이나 생각에 다라 많이 좌우된다. 그러므로 태도와 행동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말씀과 신뢰할 만한 멘토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할 것이다.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하려는 의욕이 있다면, 투신(헌신)해야 할 이유와 근거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거기에는 일이나 상황이 쉽고 어려움이 문제가 아니라, 믿음과 의지가 관건인 것이다. 모세의 경우에도 그렇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못하였다. 사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머뭇거리며 반응하는 모습은 성경에서 전혀 낯설지 않다:
| 모세 | 기드온 | 사울 | 예레미야 | 성모 마리아 | |
| ① 하나님의 부르심 ② 사명을 주심 ③ 거절(망설임) ④ 하나님의 보증 ⑤ 징표(표적) |
출 3:4 출 3:10 출 3:11 출 3:12 출 3:12 |
삿 6:12 삿 6:14 삿 6:15 삿 6:16 삿 6:17 |
삼상 9:16 삼상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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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1:5 렘 1:5 렘 1:6 렘1:8, 19 (렘 1:9) |
눅 1:28 눅 1:28 눅 1:29-30 눅 1:30-33 눅 1:36-37 |
위에서 보듯이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당황하거나 머뭇거렸다. 이는, 역설적으로, 구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레이다. 비록 그들에게 주어진 상황과 조건은 구원과 해방을 절실히 요구하였을지 모르지만, 부름받는 순간까지도 그들은 이 일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마음과 몸도 역량도. 아니 그런 계획조차도 그의 인생에는 없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그 계획을 알려주실 때에도, 그들은 그 일에 자신이 쓰임받을 이라는 생각도 못하였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명 앞에 그들이 보여주는 놀람과 어정쩡한 태도, 거절과 뒷걸음질이 이런 사실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이런 현실이었지만, 하나님은 선택하신 백성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사람을 부르셨다. 사람이 자신의 역할과 사명을 알면서도 이런 저런 이유로 뒷걸음질 칠 때에도, 하나님은 개인과 공동체, 나라와 민족 등 인류의 구원계획을 반드시 관철시키셨다.
부름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 모세같이 온갖 이유를 들이 댄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향해 ‘믿음이 없는(적은) 자’ 등의 비난을 퍼붓지 않으셨다. 그 대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행하실 표적(이적) 세 가지를 말씀하셨다. 그 가운데 두 가지 표적(지팡이가 뱀이 되는 것과 손에 한센씨병= 나병[초라아트, 메초라아트 = 피부병]이 들었다가 낫는 것)을 당장 그 자리에서 시행하시고, 또 한 가지 이적(나일강에서 떠온 물이 마른 땅[뭍]에서 피로 변하는 것)을 약속하며 남겨두셨다. 나중에 모세는 앞의 두 가지를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행하였으며 (출 4:30), 첫 번째와 세 번째 것은 파라오 앞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집트에 내리신 첫 번째와 두 번째 이적이 되었다. 여기 나오는 세 가지 표적 (이적)은 출애굽기 (또는 민수기) 안에서 다시 되풀이 나온다: ① 지팡이와 뱀의 표적 (출 7:8-13); ② 물과 피 (출 7:14-24); ③ 나병 (민 1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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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칼과 코브라가 끄는 배에 오른 태양신 레가 파도모양으로 등장하는 뱀신(아포피스)와 싸우는 세트신의 도움으로 어둠의 세계를 헤쳐나가는 장면(주전 1085-950 21왕조). | ||
사실 모세는 자기 손을 자신의 품속에 넣었다 바로 빼었다. 그런데 그 손은 마치 오래 전부터 나병에 걸려 있었다는 듯이 눈과 같이 희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의 손을 다시 그의 품에 넣었다가 빼라고 말씀하셨다. 모세가 그대로 행하니, ‘그런데 보라! 그것(손)이 그의 살로 되돌아왔다(출 4:7b 직역). 히브리성경은 그의 손에 나병이 생긴 것도, 나병에 걸렸던 손이 전과 같이 온전해 진 것도 모두 ’놀라움‘으로 받아들였다(웨힌네 = 그런데 보라!). 이 말이 여기에 두 차례나 되풀이 쓰인 것은 이런 이적은 매우 놀라운 것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일으키실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여기서 당장 시행은 되지 않았지만, 나일강에서 퍼온 물이 피로 변하는 표적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집트 뿐만 아니라, 그 주변 세계에서 나일강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종종 ‘신의 선물, 어머니, 생명의 젖줄’ 등으로 불리웠다. 그 선물이 이제 공포로 변하고, 그 생명이 죽음으로 변한다는 놀라운 경고가 여기에 들어 있는 것이다.
출 4:8-9에는 표적이란 말 (오트, 오토트 = sign, signs)이 세 차례 쓰였다(17절과 30절 참조). 이를 믿고 받아들이는 것과 관련하여 아만 (믿다) 이란 동사와 샤마 (듣다) 라는 동사가 같이 나온다: ‘르콜 하오트 = 표적의 소리를 듣다’ (개역개정엔 ‘표적의 표징’). 성경에는 표적(이적)을 가리키는 낱말이 몇 가지 있다.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일어나게 하신 목적은 ‘이는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 여호와가 네게 나타난 줄을 믿게 하려’ (출 4:5)는 데 있었다.
| 3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오토타이= 표징들)과 내 이적(모프타이 = 이적들) 을 이집트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4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이집트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5 내가 내 손을 이집트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이집트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출 7:3-5; 출 6:7도 참조) |
표징(표적)과 이적은 대부분 의미의 구분없이 서로 바꿔가며 쓰이기도 한다. 이를 굳이 구별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곧 표적은 하나님의 사람(믿는 이)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에, 이적은 믿지 않는 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출 4:8에서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는 표적 (오트)은 모세를 설득하기 위해 것이었다. 그렇지만 같은 내용의 이야기가 출 7:9에서는 이적(모페트)이 파라오를 설득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로써 표적은 용기와 용기부여의 뉘앙스로, 이적은 상대방과 다투거나, 상대방에게 무릎을 꿇게 하는 수단으로 각각 사용되었다(고전 14:22-25 참조). 물론 하나남도 모세도 이 표적(이적)이 곧바로 믿음이나 순종으로 가기보다는 얼마 동안에는 의혹과 거절의 반응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V. Hamilton, 71쪽 참조). 표적에 관한 반응이 신약성경에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 4:48).”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대꾸하였다: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요 6:30)? 한편 사도 요한 성인은 예수님의 사역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 30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2)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0-31) |
2) 모세에게 아론, 그리고 지팡이를 붙여주시는 하나님 (출 4:10-17)
하나님은 이렇게 표적들을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필요하다면 표적을 보여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도 모세는 출 3:11, 13; 출 4:1에 이어 네번째로 자신을 사명의 길로 보내시는 하나님의 초청에 핑계를 대며 물러서려 하였다. 이를 나타나느라 출 4:10에서 모세가 한 첫마디는 ‘삐 아도나이 = 오 나의 주여! (제발 나의 주여!)’ 였다. 이는 항상 낮은 위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자기보다 더 우월하거나 높은 사람에게 쓰는 용어이다 (창 44:18; 출 4:13; 민 12:11; 삿 6:13, 15; 삼상 1:26). 이런 삐를 가리켜 간청(탄원)의 불변사 (a particle of entreaty)라 부른다. 이 말에는 굴복(순종), 간청(부탁), 탄원(기원) 등의 의미가 있는데(W. H. C. Propp, Exodus, 213쪽; V. Hamilton, Exodus, 72쪽), 공동번역 개정, 표준새번역, 천주교새번역은 이 부분을 ‘주님, 죄송합니다’라고 의역하였다. 이것이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이보다는 개역개정처럼, ‘오 주여’로 옮김으로써 다양한 뉘앙스로 해석할 길을 열어놓는 것이 더 좋으리라.
그가 내세운 첫 번째 핑계는 자신의 언변이 유창하지 못하고 어눌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말에 ‘본래’라고 옮겨진 말은 히브리어(깜 밋테몰 깜 밋쉴르숌)에서 깜은 ‘또한, 역시, 심지어’란 뜻을 지녔다. 여기에 이어지는 ‘밋테몰’은 본디 과거를 가리키는 말(테몰)에 ‘...으로부터’ 를 가리키는 전치사 민이 붙은 형태이다. 그 다음에 나오는 밋쉴르숌에는 숫자 3을 가리키는 말(샬로쉼)에 전치사 민이 들어 있다. 그러므로 이 부분을 직역하면, ‘과거에도 물론이고 심지어 3일 전부터도’ 라는 의미이다.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 (로 이쉬 뜨바림) 란 직역하면, ‘(나는) 말들의 사람이 아니다’인데, 여기서 복수형으로 쓰인 뜨바림은 능력 또는 충만의 복수형으로 말에 능통한, 말솜씨가 뛰어난 등 형용사처럼 쓰였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언변이 뛰어나지 못하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모세는 ‘나는 (진실로)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 (키 카바드 페 우케바드 라숀)라고 덧붙였다. 뻣뻣하다, 둔하다는 말(카베드)은 기본적으로 무겁다는 뜻이다. 이는 i) 태도(행동)에 관련해서는 느리다, 둔하다, 무자비하다를 뜻하는데, 특히 출애굽과 관련된 파라오의 완강한(완고한)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출 7:14; 8:15 9:7; 10:1 참조); ii) 어떤 사건이나 경험과 관련해서 이 말은 가혹하다, 너무 힘들다는 뉘앙스를 풍긴다(출 5:9; 삿 1:35; 왕상 12:4; 대하 10:4 참조); iii) 규모가 크거나 숫자가 엄청 많은 것을 의미한다(창 18:20; 시 38:4; 욥 6:3). 이 밖에도 이 말은 iv) 신체기관 중에 ‘간’을 가리키고, v) 긍정적인 뜻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때 쓰이기도 한다. 여기서는 물론 i) 번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자신은 말에 어눌한 사람이라는 이 표현을 우리는 네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V. Hamilton, 73쪽 참조): i)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명에 대한 완곡한 거절; ii) 그가 지금 앓고 있는 (원인모를) 언어장애 (미드라쉬 중 “출애굽 Rabbah 1.26” 참조); iii) 자신이 이집트왕궁과 미디안에서 오래 생활한 데서 오는 히브리인과의 소통장애; iv) 이스라엘 자손(대중)에게 나서서 말하는 것과 파라오(권력)를 대면하는 데 대한 두려움(불안심리); v) 과거에 겪은 어떤 일, 곧 성장환경에서 생겨난, 혹은 대인관계에서 온 상처로 인한 트라우마. 이런 상상들 가운데 어느 것에 더 큰 비중이 있는지, 아니면 이 보다 더 큰 다른 이유가 있는지, 그도 아니면 이 다섯 가지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지 우리는 모른다. 어느 쪽에 방범을 찍느냐는 결국 해석자(설교자)의 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물론 이 말에는 그의 솔직한 심정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모세는, 출애굽의 일꾼으로 쓰임받을 자격조건이 무엇보다도 우선 뛰어난 언변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 가르친다 (고전 4:20). 말주변이 좋은 것과 하나님 계획의 도구로 쓰임받는 것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고후 10:10; 11:6 참조). 스데반 집사가 모세를 가리켜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행 7:22)라고 한 것으로 보아, 모세 말은 겸손 또는 정중한 거절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런 사실은 행 7:22와 눅 24:19에 쓰인 용어들을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 προφήτης δυνατὸς ἐν ἔργῳ καὶ λόγῳ (눅 24:19) ἦν δὲ δυνατὸς ἐν λόγοις καὶ ἔργοις αὐτοῦ (행 7:22) |
이에 하나님은 수사학적 물음을 모세에게 던지셨다. 모세를 책망하는 투로 이해되는 이 물음에는 두 가지 의미가 들어있다: i) 여호와는 활동가 모세가 지닌 모든 약점과 부족을 능히 극복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다; ii) 모세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길에 합당하게 반응해야 한다. 이에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의 하나님이심을 모세에게 강조하셨다(출 4:11). 출 4:10-11에서 모세와 하나님은 각자 ‘나’ (아노키)라는 일인칭 대명사를 사용하여 명사문장으로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하였다. 모세가 10절에서 자신의 현재 상태를 묘사한 것에 상응하게, 하나님께서도 명사문장(하로 아노키 야웨, = 바로 내가 여호와 아니더냐? = 나는 이런 자, 곧 여호와가 아니더냐?)으로 자신이 창조주의 속성을 지닌 분이심을 강하게 피력하셨다. 하나님은 ‘그러니 이제 너는 가라 (웨-앗타 레크)’ 고 결론을 지으셨다. 하나님은 그를 그냥 막무가내로 가라 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모세의 입에 함께 하시겠다 (웨아노키 에흐예 임-피카) 하시며(창 26:3; 31:3; 출 3:12, 14 참조), 그 입에 할 말을 가르쳐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내시며 하신 말씀을 기억나게 한다:
|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18 또 너희가 나로 말미암아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그들과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20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마 10:16-20; 막 13:11; 눅 12:11-12 참조). |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직역: 보냄받을 만한 능력[손]으로 갖추어진 사람을 보내소서) 라고 말씀드렸다(출 4:13). 이 부분에는 매우 정교한 수사법이 구사되었다. 모세는 ‘보내다’ 라는 말 (샬라흐) 을 명령형(기원형 쉘라흐-나)과 미완료형으로 두 차례나 자기 아닌 다른 사람을 보내시라고 강력하게 대답하였다. 여기서 ‘보냄받을 만한 사람’이란 말은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을 보내달라는 뜻도 있고, 하나님의 계획과 일을 성취시킬 만한 자질과 능력을 갖춘 사람 또는 하나님과 손발이 맞는 사람을 가리킬 수도 있다. 세상 사람 중에 과연 누가 이런 사람일까? 그런 사람을 찾으려고 오늘날 사람들은 교회 안팎에서 자격증을 요구한다. 그러나 종이쪽지 적힌 내용이나 사람의 추천이 과연 그런 요구를 채워줄 지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보낼만한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이에 성경은 대답한다: ‘하나님이 보내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보낼만한 자이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자신의 능력이나 지혜로 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공급하시는 힘과 인도하시는 손으로 감당하는 것이기에.
이에 하나님은 짐짓 화까지 내시며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출 4:14). 14절 앞부분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란 말씀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구체적인 한 인간을 향해 진노하시는 첫 번째 구절이다. 아담-하와이나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에도 이렇게 강한 표현이 나타나지 않는다. 노하다는 말 (와잇카르 아프)은 노가 불타오르다는 뜻으로 마틴 루터 성경에 따라 (sehr zornig) 공동번역 개정판과 표준새번역은 이 부분을 ‘크게 화를 내시며, 크게 노하시어’ 로 각각 옮겼다. 성경에서 이와 비슷한 부분을 찾는다면, 삼하 6:7(= 대상 13:10)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이 두 본문에서 차이점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웃사처럼 죽게 만들지 않으셨다는 사실뿐이다.
다섯 차례나 계속 되풀이 되는 모세의 뒷걸음질에 하나님은 강경하게 말씀하셨다: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의역: 네가 네 형 레위 사람 아론이 있는 것을 정녕 생각하지 못하느냐?). 이 부분 역시 명사문장으로 된 수사학적 의문문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모세를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시바삐 구원역사의 시동을 걸려는 하나님의 마음이 표현된 것이다. 본디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출 34:6; 민 14:18; 시 86:15; 103:8; 145:8; 욜 2:13; 욘 4:2 참조) 하나님께서 이렇게 불같이 화를 내시는 것을 본 모세는 자신의 다섯 번째 항변을 거들어 들였다 (출 4:18).
하나님은 그 아론에게 모세를 ‘하나님과 같은 사람’(직역: 하나님)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출 4:16 웨앗타 타흐예-로 르엘로힘). 이는 참으로 대단한 약속이다. 이에 모세는 장인 이드로에게 가 작별을 고하고, 이집트를 향해 길을 떠났다.
3) 하나님의 신임장(출 4:18-23)
이집트로 향하는 모세의 손에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출 4:20). 사실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 지팡이에 관해 하나님은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복수형: 하오토트 = 그 이적들)을 행할지니라” (출 4:17) 고 말씀하셨다. 목자에게 지팡이는 필수품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가 이미 전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다. (칠십인역은 이 부분을 e;laben de. Mwush/j th.n r`a,bdon th.n para. tou/ qeou/ evn th/| ceiri. auvtou/ =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자기 손에 받은 지팡이를 잡았다' 라고 번역하였다.)
그런데 그것이 이제는 모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되었다 (출 17:9 참조). 모세는 ‘누군가에게 하나님 같은 사람이요, 그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쥔 사람’이 되었다. 이는 국가 원수가 대사나 사절단을 외국으로 파견할 때 건네주는 신임장과 같다. 이 신임장을 들고 아론, 히브리 원로들, 그리고 파라오를 만나는 모세에게 주어진 역할은 i) 하나님께서 그들의 처지를 돌보신다; (히브리 성경에 ‘파코드 파카드티’로 된 이 구절은 ‘내가 찾고 또 찾았다, 내가 돌보고 돌보았다, 내가 방문하고 방문하였다’ 라는 뜻으로, 그 내용을 매우 강조하는 문구이다. 이것은 창 50:25에 요셉의 입을 빌려 부정사 절대형 +미완료형(파코드 잎코드)으로 표현되었는데, 여기에는 부정사 절대형 +완료형으로 기록되면서, 그의 말이 성취될 때가 가까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변순복, 토라 (상), 71쪽, 460쪽). ii) 하나님은 그들이 이집트에서 당하는 일들을 아신다; iii)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하여 가나안으로 올라가게 하신다(출 3:16-17) 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다.
출 4:19에는 모세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죽었다는 사실을 보도한다(출 2:23 참조). 이는 모세가 이집트로 가기를 꺼리는 마지막 이유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마태복음도 이런 사실에 착안하여 예수님 가족이 이집트에서 갈릴리로 돌아온 이유로 본문을 인용하였다(마 2:20). 때로는 시간의 흐름이 장애물을 저절로 치워준다. 그래서 세월이 약이란 말이 있다.
| a;pelqe eivj Ai;gupton teqnh,kasin ga.r pa,ntej oi` zhtou/nte,j sou th.n yuch,n (LXX 이집트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노리던 자들이) 다 죽었느니라 출 4:19)
teqnh,kasin ga.r oi` zhtou/ntej th.n yuch.n tou/ paidi,ou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마 2:20) |
모세가 하나님에게 쓰임받는 사람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런 뜻에서 부름(사명)받은 사람은 자신에게 있는 것들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취득(획득)한 것으로 여기면 곤란하다. 자신의 사역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자신의 권능으로 착각하는 순간부터 그 은혜는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그 때부터 그 사람 인생도 바닥으로 내려앉기 시작하는 것이다.
4) 귀향길에 생긴 불가사의한 일(출 4:24-26)
단지 3절에 불과하지만, 출애굽기의 이 부분에서 그 내용과 뜻을 찾아내기가 아주 어렵다. 이 일이 일어난 시점이 밤이었듯이, 그 의미와 배경도 어둠 속에 묻혀 있다(창 32:23 이하 참조). 구약성경에는 그런 대목이 몇 군데 있다. 이를테면 하나님은 야곱에게 가나안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 따라 가나안으로 향하던 야곱은 얍복강 가에 이르렀다. 종과 가족과 재산을 다 딸려 강 건너로 보내고, 혼자 남은 그에게 하나님(하나님의 천사?)은 그와 씨름을 하다가 그의 허벅지 관절(고관절?) 쳐 다리를 절게 만드셨다(창 32:22-32).
모압 광야에 이른 출애굽 한 이스라엘 민족을 본 모압왕 발락의 가슴은 폭풍을 만난 가랑잎처럼 흔들렸다. 이에 브돌(Petor)에 사는 선지자 발람을 불러다가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하였다. 왕이 보낸 사신을 맞은 발람은 하나님께 갈지 말지를 여쭈어 보고는 그들을 그냥 돌려보냈다. 왕이 포기하지 않고 두 차례 더 사신을 보내자, 발람은 융숭한 대우를 받고 싶은 나머지 여호와께 가야할지 가지 말아야 할지를 재차 물었다. 나중에서야 하나님 허락이 떨어졌다. 이에 길을 떠나는 발람에 대해 민 22:21-22절은 이렇게 보도한다:
|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 자기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모압 고관들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러나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폭발하였다. 그래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길에 섰다 ... (직역) |
하나님은 발람에게 가도 좋다고 이미 허락하셨다. 다른 한편 하나님은 발람을 죽일 천사를 보내셨다. 모압으로 가는 발람은 이 불길한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나귀가 이를 미리 알고 피하였다.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 자리에서 죽었으리라.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 진노는 무슨 뜻일까? 여호수아가 하나님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때,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나타나 그 앞길을 가로막았다(수 5:13). 이것은 또 무슨 의미일까?
다시 출애굽기로 돌아와 보자.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듭 사양하는 모세를 간신히 설득하여 이집트로 가게 하신 하나님은 도중에 그를 만나 죽이려 하셨다(출 4:24). 만일 이 본문을 그 앞의 구절들과 이어서 읽는다면, 다음과 같은 낱말에 주목할 수 있다: i) 아들 - ‘내 아들, 내 장자’(22절). ‘네 아들 네 장자’ (23절), ‘그녀의 아들’(25절); ii) 죽인다 - ‘네 목숨을 노리던 자들’(바카쉬 에트 네페쉬 19절), ‘죽이리라’(하라그 23절), ‘죽이려 하셨다’(무트 24절); iii) 그 밖에도 ‘만나다’(파가쉬)는 말이 쓰였다(24절, 27절).
본문에는 ‘여호와’와 ‘십보라’를 빼고 등장인물이 모두 다 3인칭 대명사로 나오고, 또 낱말의 표현들도 다중의미라서 그 내용을 알아내기가 어렵다. 여호와가 죽이려 한 대상이 모세인지, 그 아들인지도 알 수 없다. 우선 본문을 직역해 보자:
| 24 그리고 그 길, 야영하는 그곳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를 죽이려고 찾으셨다. 25 그러자 십보라가 돌칼(한글 개역은 차돌로, 수 5:2는 부싯돌로 번역)을 취하였다. 그리고 자기 아들의 양피를 잘랐다. 그리고 그의 발아래 갖다 대었다. 그리고 그녀는 ‘진정으로 내게 피 남편은 당신뿐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26 그러자 그가 그를 치유하였다(놓아주었다). 그때 그 할례들을 위하여 그녀는 그를 가리켜 피 남편(혹은 피 친척)이라고 말한 것이다. |
여기서 만나다는 말(파가쉬)은 히브리성경에 14번 나온다. 그 대부분이 적대적인 또는 재앙적인 대면을 가리킨다(봐이프께쉐후 24절; 출 27:2; 삼하 2:13; 욥 5:14; 잠 17:12; 사 34:14; 렘 41:6; 호 13:8). 또는 만남의 당사자 중 한 쪽이 좋지 않는 일을 예상하며 만나는 것을 가리킨다 (창 32:17[18]; 33:18; 삼상 25:20). 여기에 이 말이 쓰인 것은 여호와가 작심을 하시고 모세를 만나셨다는 뜻이다. 물론 이 말 자체는 카라 동사(= 부르다)와 함께 우호적인 분위기로 만나는 때에도 쓰인다 (27절).
출 4:23에 ‘죽이다’는 말(하라그)은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일과 관련하여 성경에 처음 등장한다 (창 4:8, 25). 그리고 죽임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가인과 그를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 말씀에도 나온다(창 4:14-15). 출애굽기 2장에는 모세가 이집트 사람을 죽이는 것(출 2:14)과 파라오가 모세를 죽이려 찾는 데에 이 말이 쓰였다 (출 2:15). 이 낱말의 주어가 하나님인 것은 그랄왕 아비멜렉이 하나님께 항의하는 때에 성경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창 20:4). 여기서 이 말은 칼 분사형으로 쓰였다: ‘그런데 네[파라오]가 그를 보내기 거부하니 (또는 만일 네가 그를 보내기 거부한다면). 보라,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여기에서 성경은 굳이 쓰지 않아도 뜻이 통하는데도, ‘보라’ (힌네)라는 강조사와 1인칭 대명사(아노키)를 사용하였다. 이로써, 하나님의 굳센 의지를 강조하는 한편, 그 생황이 매급 긴급한 것을 생생하게 표현해 주었다(출애굽기에는 이런 표현이 11번째 표적, 이집트인 장자의 죽음을 언급할 때 다시 나온다).
출 4:24에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시려 한다는 말(무트)이 찾다, 시도하다는 뜻의 동사 바카쉬와 함께 히필 부정사 연계형으로 쓰였다. 예레미야 26:21; 삼상 19:2; 왕상 11:40 등에서 이 말(무트)은 전치사 (르)와 함께 쓰여 그 의미가 한층 강화되었다. 여기서 하나님은 모세를 죽인 것이 아니라, 죽이려 시도하셨다 (way-ḇaq-qêš). 죽이려 시도하는 것과 죽인 것 사이에는 분명히 시간의 차이가 있다. Fretheim 과 Hamilton은 이 사실에 주목하여 다음과 같이 풀이하였다:
| 이것은 하나님의 행위를 한결 부드럽게 한다 ... 하나님은 단순히 시도하셨을 뿐, ‘직접 치는’ 것을 실행으로 옮기지 않으셨다... 그분은 십보라에게 중재할 여지를, 그리고 행동할 시간을 주셨다. 비록 그것이 매우 짧은 시간 안이었지만 ... 십보라는 하나님께서 시도하는 사이에 행동할 시간을 벌었다. 이렇게 하나님은 위협을 가하셨을 뿐, 실제로 그를 죽이려 하지 않으신 것이다(프레트하임 79쪽; 해밀턴 83쪽). |
이 이야기를 출 1-2장과 연결시켜 읽으면,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여성들 곧 히브리인 산파들, 파라오의 딸, 모세의 어머니와 누이 등은 파라오의 분노와 살해의도에 대응하여 항상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여기서 십보라도 그 대열에 합류하였다(프레트하임 79쪽; 해밀턴 83쪽). 보수적인 학자들 가운데에는 십보라의 악역을 상상해 내기도 하였다. 이를테멘 카일-델리취는 “모세가 그 아들들의 할례를 시행하지 않은 것은 십보라 때문이었다. 미디안의 전통에서 자란 그녀는 이를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Keil-Delitsch, 1865. 459쪽). 이런 상상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것 을 뿐만 아니라, 전혀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 이야기의 뜻을 다음과 같이 풀어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완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i) 할례의식이 이 본문의 주제로 부각되었다. 할례의식은 아브라함과 여호와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징표이며, 이스라엘 백성을 다른 민족으로부터 구별하는 표식으로 난 지 8일 만에 반드시 행해야 하는 것이었다(창 17:9-14; 수 5:2-7 참조). 이런 뜻에서 이 사건은 지도자로 나서는 사람은 먼저 자기 가정 안에서부터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점을 알려 준다(修身齊家治國平天下 - 大學). 실로 신앙으로 바로 서지 못한 자가 신앙 공동체를 지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우습게 보는 처사이며,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비신앙적인 행위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 (딤전 4:12b) 라고 교훈하였다.
ii) 만일 여호와가 죽이시려 한 사람이 모세가 아니라 그 아들 게르솜이라면(출 24:4 참조), 이 말씀은 출 4:21-23에 나오는 이집트인 장자의 죽음 예고(열 번째 재앙)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 사건은 모세에게 사명의식을 다시 일깨우는 이야기가 된다.
iii) 출 4:25에서 십보라는 자기 아들 앙피를 베었다. 그리고 그것을 누군가의 발 아래 갖다 대었다(나가의 히필형). 이 낱말이 출애굽기 안에서 히필형으로 쓰는 곳이 또 한 군데 있다. 출 12:22이다. 거기서 이스라엘 백성은 유월절 양을 잡아 그 피를 우슬초에 묻혀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라(나가)는 명령을 받았다. 물론 이것만으로 출 4장과 12장을 곧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두 경우가 다 i) 피와 관련이 있으며, ii) 피묻은 것에 접촉함으로 화를 면하였다는 사실을 놓칠 이유가 없다. 그리고 할례여부는 유월절 행사에 참여하는데 필수적인 요건이었다(출 12:43-49). 이런 뜻에서 본문을 열 번째 재앙및 유월절에 연결시켜, 곧 피에 들어있는 생명의 근원, 보호, 정화의 개념으로 풀어볼 수 있으리라(김이곤, 출애굽기의 신학, 94-97; 박철현, 출애굽기 산책, 95-96; 차준희, 출애굽기 다시보기, 76-77 참조).
iv)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람의 목숨도 하나님 손에 달려 있다는 평범한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안내한다. 하나님의 사람은 한번 부름을 받았다고 해서 철 밥통을 찼다고 방심할 것이 아니라, 늘 자신을 돌아보며 삼가고 조심하는 태도로 주의 일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이런 이야기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도 하나님의 은총과 인도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 아래 놓여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왕대일, 민수기, 507). 만일 발람이 모압으로 가는 길목에서 칼을 든 하나님의 천사와 대면하지 않았더라도, 모압 왕 발락의 뜻에 거듭 거슬리면서까지, 자신에게 돌아올 가시적인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일관되게 하나님 말씀만 전할 수 있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야곱, 모세, 발람, 여호수아 등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의 일을 수행해야겠다고 단단히 다짐하였을 것이고, 이런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 본보기가 된다.
| ...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 (사 52:1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딤후 2:21; 요일 3:3 참조) |
v) 사람은 누구나, 언제든지 돌발적인 사고・사건을 만날 수 있다. 그것도 매우 뜻밖에,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도 못하는 순간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그 발생과정도, 이유도, 목적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이런 놀랍고도 참담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하나님과 긴 대화를 마치고(출 3:11-4:17), 또 도중에 일어난 돌발사건을 극복하고 모세는 이집트로 돌아왔다(출 4:27-31). 실로 40여년 만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심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노예로 부리는 심사와 노예생활, 노예근성에 젖어있는 인간의 심성을 바꾸면서 믿음의 조상들에게 주었던 약속을 실현시키기 시작하신 것이다.
5) 사명받은 자가 갈 길을 닦아주시는 하나님 (출 4:27-31)
이 부분으로 모세의 소명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제 모세에게는 그 소명을 실행에 옮길 일만 남았다. 그 일에 직접 뛰어들기 전, 하나님은 출 4:14에서 언급하신 대로 그의 소명을 돕기 위한 마무리를 지으셨다. 곧 그의 형 아론을 부르신 하나님은 그를 모세가 가는 길에 동행자가 되게 하심으로 출 4:15-16의 말씀을 완성시키셨다. 이제부터 아론도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자손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한 팀이 되어 나서게 되었다. 물론 모세와 아론 사이에는 나이에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과 직분에 따른 서열이 분명하게 설정되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주도적이면서 중요한 역할을, 아론에게 보조적이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각각 맡기신 것이다 (민 12:1-2 참조).
반갑게 만난 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들을 불러 모았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해방시킬 계획을 세우신 것과 자신을 그 일의 도구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말하였다. 그리고 아론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신 표적들(이적들)을 시행하였다. 이에 그들은 하나님께 경배드리며, 모세와 아론의 말을 믿고 받아들였다. 이로써 모세는 한시름 놓았다. 그가 염려하던 일들 가운데 하나가 다행스럽게도 기우(杞憂)로 끝나며 일단 해소되었다(4:1, 8 참조). 출애굽기에는 믿다는 말(아만)이 8번 나온다. 그 가운데 4:1, 8［2X］, 9에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1절과 8절은 히필형 ＋ 부정어 로; 9절은 히필형 ＋ 부정어 로 ＋ 전치사 르 = 믿기를 거절하다).
출 4:30에서 기적을 행한 사람이 모세인가 (루터성경), 아론인가? 우리말 성경과 대부분의 성경은, 히브리성경에 3인칭 단수 대명사로 나오는 것을 그 앞에 주어로 등장하는 아론으로 받아들여, 그가 표적을 행한 것으로 옮겼다.
출 4:31에 나오는 ‘머리숙여 경배하였다’는 표현(way·yiq·qə·ḏū way·yiš·ta·ḥăw·wū)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곧 문자 그대로 두 동사를 다 동사형으로 옮길 것인가, 아니면 앞의 것을 부사적인 의미로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계속)
정현진 (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정현진 목사(수도교회) psalm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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