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 아빠 김영오님의 스러져 가는 모습을 실시간 접하며 우리는 미안하고 또 미안해야만 했다. 예수나 석가에게서나 가능한 단식 40일이 눈앞인 지금 그의 몸은 근육까지 소비하며 힘겹게 지탱되고 있다. 그런 그를 보며 우리는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죄스러워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어 광화문을 서성이거나 이렇듯 글이나 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의 생명을 살리려면 진실이 밝혀져야 할 것이고 그 드러남을 위해 교종 방한 시처럼 사람들이 모여야만 할 터이다. 그러려면 유족들의 소망대로 세월호 사태가 잊혀 지면 아니 될 것인데 사람들은 피로해하고 정부는 유족들 이간질에 얼굴 부끄러운 줄 모른다. 하지만 억울하게 죽은 딸만을 생각하는 유민 아빠의 생사를 건 투쟁, 그를 지켜보는 우리는 피로감이란 말조차 잊고 살아야 사람의 탈을 썼다 할 것이다. 정권의 무능과 타락, 방임으로 배와 함께 가라앉는 자식들을 생생하게 목도한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말이다.

여야를 막론한 주변의 정치가란 자들은 온통 자신들 실리 챙기느라 자식 잃은 부모의 한 맺힌 절규를 외면하며 아비의 목숨마저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본래 진실이 두려운 자들로부터 아무 것도 기대치 않았으나 그래도 친구라 여긴 다른 류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유족들은 희망을 품었다. 대통령의 눈물이 거짓인 것이 드러났어도 슬프지 않았지만 마지막 순간 정치적 이해타산을 앞세운 그들의 배반으로 유족들은 피눈물(漏血)을 흘려야만 했다.

사실을 감추려는 통수권자의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진실을 위해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거는 두 세 사람의 정치인만 있어도 세상은 달라 질 수 있다. 그런 그를 백성들이 다시 살려낼 것인데 그런 확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백성의 힘과 판단을 믿지 못하는 자라면 일찌감치 정치 일선에서 떠나야 옳다. 이처럼 유족들을 버림받게 하면서 민중의 공복이 되겠다는 당신들 실체를 우리가 명백히 알게 된 것이다.

단식 40일 째 되는 날 우리 모두는 긴장했다. 기독교적으로 의미 있는 숫자였기에 이 날을 예사롭지 않게 지켜보았고 광화문 그 곁으로 모이자고 했다. 주치의로부터 최악의 몸 상태란 말도 들은 터였기 때문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그곳에서 조차 김영호 님은 단식의사를 밝히며 세월호 진실만을 요구했다. 필자는 그가 처음 단식을 시작하던 때를 기억한다. 광화문 천막에서 본래 유족 세 사람이 단식을 시작한 것 같다. 다른 두 분이 많은 말을 쏟아내며 방문자를 맞고 있을 때 그는 한걸음 뒤에 머물며 이들과 어떤 말도 섞지 않았다.

그런 그를 필자는 오랜 시간 지켜보았고 기회 되는대로 대화를 시도했다. 연약한 체구의 그는 겸손하고 온유했으며 결코 말을 많이 뱉지 않았다. 하지만 함께 한 동료들이 쓰러진 후 그는 의연하게 홀로 40일을 견디며 맞서 싸웠다. 대통령과 자신을 진리싸움을 위한 대대(待對)적 관계로 설정했던 것이다. 억울한 민중은 자신의 한을 풀기 위해 어떤 권력도 두렵게 생각지 않는다.

병상에서 자신 곁에 누운 어린 딸을 보면서 그가 무슨 생각으로 여전히 단식만을 고집하는 가를 헤아려 본다. 자신마저 어찌되면 홀로 남게 될 언니 잃은 딸의 앞날이 얼마나 걱정될 것인가? 아빠만을 바라보는 딸은 침상에서 뼈만 남은 그의 몸을 만지고 껴안으며 해복해 한다. 이쯤 되면 생사를 건 그의 단식은 개인적 고집을 넘어 진리를 위한 숭고한 희생의 차원을 갖는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말이 이에 해당되어도 좋고 진리만이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예수의 선언을 떠올려도 좋겠다.

그의 투쟁은 인간성을 잃어버린 국가와 사회에 대한 저항이며 옳음에 둔감해진 이 땅 종교들에 대한 의분이 아니겠는가? 그렇기에 그는 마지막 몸을 불태우면서도 오히려 자신을 걱정하지 말고 세월호 진실만을 밝혀달라고 호소했던 것이다. 세월호 진실은 이 땅의 미래를 위해서도 결코 묻혀서는 아니 될 중차대한 사안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을 통째로 삼켜버릴 싱크 홀과도 같다. 그렇기에 세월호 특별법은 애시 당초 축소, 은폐의 여지가 없이 탄탄하게 만들어져야만 할 것이다.

인생을 때 묻혀 살아온 어른들일수록 피로감에 젖어 빨리 일상으로 복귀하고자 한다. 하여 그들은 유민 아빠 보다 자갈치 시장을 찾은 대통령에게 더 많은 눈길을 주는 듯하다. 빨리 보상 하고 사태를 종료하는 것이 유족과 국가 모두에게 좋을 것이란 말이 정치권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그러나 소위 ‘세월호 세대’라 불리는 학생들의 경우 어른과 달랐고 이런 정치권을 무색케 했다.

유람선을 탄 수학여행을 꿈꾸며 최소한의 일탈을 즐기던 그들의 생각은 오히려 유민아빠와 같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정부의 태도를 보며 자신의 미래뿐 아니라 이 땅의 미래를 포기해 버렸다. 김영오님의 희망의 끈을 오히려 절망으로 붙든 것이다. 한겨레(8월 21일) 조사에 의하면 90% 넘는 학생들이 성역 없는 진상 규명에 대해 절망적이라 응답했고 재발방지를 위한 국가적 대책 수립에도 거지반 같은 비율로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자신들이 위기에 처할 시(時) 국가가 방패막이 될 수 있겠는가의 물음에도 단 7%만이 그럴 것이라 답했다고 한다.

▲ 지난 22일 단식 19일차에 접어든 가수 김장훈 씨가 광화문을 방문한 중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에큐메니안

▲ ⓒ에큐메니안

한 세대 이후 이 땅의 주역이 될 세월호 세대의 이런 반응은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음을 적시한 것이다. 그들 나름대로 이것이 국가인가를 지금 묻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당리당략차원에서 접근하는 정부를 보며 국민의 자존감을 이 어린 세대들이 자발적으로 내 팽개친 것이다. 이로써 우리의 미래는 사라졌다.

한 나라의 미래는 옳은 기억에서 비롯하는 법이다. 옳은 기억 없이 한 치의 발걸음도 미래를 향할 수 없는 노릇이다. 세월호 세대들의 의식 조사가 바로 이를 정확히 고지하고 있다. 우리가 과거사를 잃은 일본을 지탄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일본에게 그들 과거를 기억하여 사죄할 것을 요구하는 정부가 여론을 조장하여 사실을 파묻고자 한다면 정당치 않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백성들을 분리시켜 지배하려 드는지, 상호 무관심한 존재로 타락시키려 하는지 알 수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세월호 진실을 덮는다면, 김영오님의 단식을 하찮게 여긴다면 30년 후 이 땅의 모습은 위와 같이 변하고 말 것이다. 자신들 정권을 위해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망치는 누(累)를 범하지 말라. 우리가 그의 단식을 지지하는 것은 당신들 이상으로 민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함이다. 세월호 세대를 이처럼 절망시키면서, 미래를 볼모로 삼으면서까지 그대들의 억지를 백성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가해자들에게 가해자들의 심사를 맡길 수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더 이상의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책임자가 책임 있게 매듭을 풀라.

김영오님 없는 광화문 천막이 너무도 허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 백성들은 그 공간을 그리 만들지 않았다. 수만 명의 단식 동조자들이 생겨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천막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김영오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종교인들의 각오가 새로워 졌다. 세월호 진실을 지키는 것이 그를 살리는 길이라 믿고 그가 했듯 단식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이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 땅을 떠난 교종 역시도 한국 방문의 키워드로 기억과 희망이란 단어를 들었다 한다. 그 역시 기억 없이 희망 없음을 증언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라 여긴 탓이다. 이제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과 그것을 잊고자 하는 이들의 본격적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결코 정치적 투쟁이 아니다. 참으로 자유롭기 위한, 이 땅의 미래를 위한 종교(신앙)적 투쟁이다. 그렇기에 모두가 지치고 힘든 이 때 종교인 모두는 잊기를 바라는 언론의 낙수를 거슬러 올라가야만 것이다. 이 땅에 더 이상의 싱크 홀이 발생치 않도록 깨어 성찰할 것을 그의 단식 40일을 지켜보며 무엇보다 기독교 신앙인들에게 간절히 호소한다.

이정배 교수(감신대)  ljbae@m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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