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인으로부터 종종 듣는 질문이 있다. “농촌에서 심심하지 않으세요?”이다. 내가 시골에 내려가면서 (실재 생활의 측면에서) 고려해본 것이 크게 세 가지이다. 하나는 지금까지 도시에서 편하게 살던 내가 과연 시골에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실험이요. 둘째는 과연 나는 혼자 살 수 있는가? 특히 집사람의 도움 없이도 내 자신의 의식주 생활을 스스로 처리하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실험이다.(이에 대해서는 나의 둘째 글, “곱게 늙으려면 혼자 사는 것부터 배워라”를 참고바람.) 셋째는 농촌생활에서 인생의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을까이다.

▲ 집에서 가꾼 화분의 꽃들

첫 번째 질문의 농촌생활의 적응 문제,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농촌이란 외관상 참으로 아름답고 평온하다. 그러나 막상 자연과 농촌에서 사는 것은 보는 것과는 달리 매우 거칠다. 우리가 ‘친환경’ 혹은 ‘자연친화적’이란 표현을 유행어처럼 많이 쓰는데 자연은 결코 우리 인간에게 친화적이 아니다.

예를 들어, 늦은 봄에서 초가을 사이의 더운 날에는 모기와 전쟁을 해야한다. 거기다 가끔씩 방안으로 잠입해 들어오는 지네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조그마한 텃밭과 꽃밭을 가꾸고 있지만, 이곳은 잡초와의 전쟁터이다. 장마철에는 곰팡이와 싸워야 하고, 초가을 태풍이 밀려 올 때는 해변에서 몰아치는 소금기 섞인 비바람과 맞서야 한다.

작년 여름, 어찌나 더운지 결국 나는 거실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자연에 맨몸으로 적응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더위와 싸우다가 결국 패배한 것이다. 가끔 서울에 오면, 모기, 지네가 없지, 습하지 않지, 에어컨 돌아가지 정말 편하다. 편의시설의 측면에서 보면, 시골생활을 하다 서울에 오면 천국이다.

근데 왜 이 고생하면서 시골에 사는가? 일전에 텐트를 짊어지고 여수의 남쪽해안에 위치한 ‘소리도’(일명, 연도)에서 야영생활을 한 적이 있다. 이때 주민들이 혀를 차며 내게 했던 얘기가 기억난다. “참 서울사람들, 이 더운 여름에 편한 집 나두고 돈 써가며 왜 이곳까지 와서 생고생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하던 말이다. 이것은 사실이고, 옳은 얘기다. 왜 그래야 할까?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아직도 “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고싶다‘는 욕망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이 그 이유 중 하나가 된다.

“농촌에서 심심하지 않으세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의 대답은 “아니요”이다. 자연의 리듬에 따라 사는 것은 복잡한 생활이 아니다. 단순하다. 해 뜨는 것과 더불어 일어나고 해지는 것을 보며 하루 일과를 매듭짓는 생활이다. 나의 하루 일과는 단순하지만, 그런대로 나는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

▲ 필자와 부인이 집앞 방파제에서 낚시하는 모습

동녘이 밝아올 때 눈이 뜨이면 밤새 불을 찾아 헤매던 나방이며 벌레며 하루살이 등이 마당에 너절하게 널려있고, 나뭇잎과 꽃잎들이 곳곳에 흩틀어져 있는 것을 본다. 빗자루 들고 마당 청소를 시작으로, 꽃밭에 물주고, 그날 먹을 상추, 숫갓, 깻잎 등을 텃밭에서 따다 씻고서 냉장고에 넣고, 알 커피 갈아서 커피포트에 얹어 넣고 빵에다 아침식사하고, 설거지하고 방 청소하고, 인터넷 들여다 보고, 그날 먹을 반찬거리를 위해 방파제로 나가 낚시하고, 돌아와서 생선 포뜨고, 내장 제거하여 냄비에 지리 끓이고, 남은 것은 소금 간하여 냉장고에 넣고, 저녁 뉴스 보고 잠자고, 주말에는 빨래하고, 쓰레기 모아다가 소각하고 시장보고 등등. 이런 일을 하다보면 하루가 지나고 1주일이 지난다.

어느 면으로 나는 역사를 거슬러서 분업화 되기 이전시대로 돌아가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의식주 문제를 자급자족하며 해결했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 느낌이다. 현대인의 생활은 대부분 바깥일, 다시 말해 돈버는 곳이 되는 회사나 직장일에 대부분의 시간과 정력을 소비한다. 돈은 많이 벌겠지만 시간이 없다. 그러다 보니 밥은 식당에서 해결하고, 빨레는 세탁소에 맡기고, 청소는 파출부에 의존하는 등의 생활을 한다. 그렇다고 돈 나가는데가 많다 보니 그렇게 여유있는 생활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농촌생활과 도시생활 중, 어떤 생활이 더 가치있는 것인가? 그 경중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것이라 생각한다. 농촌이든 도시든 자기가 살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행복하면 되기 때문이다. 각자 자기 만족을 어디에서 무엇으로 발견하고 있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내가 시골로 내려올 때, 내 아들이 선물한 책이 있다. 헨리 데빗 소로우(H.D. Thoreau, 1817-1862)가 쓴 월든(Walden)이란 책이다. 저자 소로우는 1800년대 미국의 노예제도와 멕시코 전쟁을 반대하여 납세의무를 거부한 “시민 불복종”이란 책으로 알려진 분이기도 하다. 그의 삶의 스타일은 매우 특이한데,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나서, 그가 하버드 대학을 다닌 기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세월을 고향, 콩코드에서 보낸다. 월든은 콩코드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원시림이 있는 호숫가이다. 소로우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 2년간을 이곳,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살면서 현대 물질문명을 등진 원시적인 생활을 실험한 사람이다. 그의 말은 3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깊은 성찰의 기회를 준다. 그의 말을 인용한다.

“한 달 10만원이면 살 수 있는 인생인데, 왜 사람들은 죽자 살자 평생 ‘일의 노예’로 살고 있는가? 인디언들의 생활을 보아라! 그들은 수입이 없지만, 자급자족하고 자기 집을 가지고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 인생은 집 한 채 마련하기 위해 (어찌하여) 평생을 그 고생하며 살아가야 하나? 그렇다고 우리가 집 한 채라도 장만할 수 있었는가?” “사람들은 왜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의 리듬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는가? 사과나무와 떡갈나무가 같은 속도로 성장해야한다는 법칙은 없다. 왜 우리는 남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그의 책, 482쪽)

소로우는 자기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상궤”(常軌), 즉 틀에 박힌 생활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이라한다. 그는 자신의 일상적인 경험의 좁은 한계를 벗어나 멀리 나아가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면서 충고하기를 타고난 천성에 따라 고유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고, 이 일에 열중할 것을 권한다. 농촌에서 심심하지 않으세요? - 이 질문의 대답을 소로우의 말에서 찾아 봄은 어떨까?

2014년 8월 25일
고흥반도 해변의 시골집에서

박명철(전 연세대 교수)  mcpark@yonsei.ac.kr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