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부활절이 우려한대로 ‘고통스런’ 한가위로 이어지고 말았다. 교종 방문 시(時)의 기대를 민족의 명절 한가위로 미뤄봤으나 권력자들은 여전히 백성에게 마음을 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틈을 이용해 장기집회 방지법을 발의하거나 상황 종료됐으니 넉넉한 명절 즐기라는 그들 식의 덕담만을 주고받는다. 인륜과 예의를 상실한 일베 집단의 횡포도 갑작스레 도를 넘어섰다. 한 정치가는 이를 보며 국가적인 정체 상태, 곧 불활성(Immobolism)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통(通)할 이치가 상실된 불인(不仁)이 이와 짝할 수 있는 동양적 표현일 것이다. 한마디로 이 땅이 죽음의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세계 자살률 최상위 국가라는 말도 이제는 조금도 어색치 않게 들린다. 세월호 유족 중 어머니 몇 분이 이런 정부에 절망하며 자식 곁으로 같다는 말도 회자된다. 참으로 슬프고 기막힌 일이 지속적으로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젊은 친구들을 물속에 수장시킨 채 부활을 맞았던 우리는 지금 유족들을 거리로 내몬 채 추석을 마주하고 있다. 고향방문, 차례 등을 이유로 그들 천막 곁을 잠시 떠나야만 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찢어지듯 아픈데 정작 대통령은 유족들 고통을 외면했고 하수인을 앞세워 광화문 현장을 덮을 궁리만 하고 있다. 특별법 서명 반대를 넘어 유족들을 향한 거짓, 날조된 정보를 유통시키는 주체가 몇몇 대형교회란 소식 또한 슬픔을 넘어 우리를 절망케 한다. 자식 잃고 거리에서 농성한다는 이유로 자신들 다니는 교회에서 조차 불편한 존재가 되어버린 유족들의 절규가 얼마나 애절한지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나라와 교회에서 버림받았다 여긴 이들에게 오히려 이웃 종교인들과 선한 시민들이 벗되고 있다. 한 생명을 실족케 하는 것이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물속에 잠길만한 죄악인 것을 교회가 모르지 않을 터, 왜 이리도 무지하고 완악해 졌는지 모를 일이다. 어찌 나라가 이리 되었고 교회가 이렇듯 못된 나라를 닮아 가고 있는 것인가? 나라가 무엇인지, 교회가 도대체 뭔가를 거듭 되묻게 한다.

가족들이 함께 만나야 할 중추절 절기에 아직도 목 놓아 불러야 할 이름들이 있다. 정부 지원마저 시들해진 텅 빈 공간에서 시신(주검)만이라도 만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가 있다. 흩어졌다가도 만나는 것이 가족인데 아직 품안에 있어야 할 자식들, 더욱이 형체조차 남기지 않았을 그들을 기다리는 부모 마음을 살피는 것, 이들의 마지막 구조를 기다려 주는 것이 그리도 힘든 일이었을까?

이제 우리는 내 가족들과의 만남에 앞서 실종자 10명의 이름을 불러내(招魂) 그들 부모, 형제 앞에 세워보자. 남현철, 박형인, 조은화, 함지현, 허다운, 이 친구들아 지금 어디 있는가? 고창석, 양승철 선생님, 남은 학생들 지키느라 아직 그곳에 머무시는가? 권재근, 이명수님 그리고 7살 박이 권혁규, 가족들 애타는 소리 들리지 않는가? 저마다 자신들 이름을 부르며 팽목 항을 떠나지 못하는 가족들 품에 이들 혼이 머물렀으면 좋겠다. 우리 역시도 금번 추석, 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아니 304명의 이름 모두를 떠올리며 하느님과 조상들 앞에 무릎 꿇어야 할 것이다. 명절 이후 개신교 목회자 304명이 저마다 이들이 되어 목 놓아 울부짖게 될 것이다.

저마다 방식으로 자식들과 굿바이 했던 부모일지라도 아직 그들은 자식을 보내지 않았고 보낼 수 없었다. 삶의 여유 없음으로, 기성세대의 시각에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못할 짓 했다 여겼던 탓이다. 필요한 것 사주지 못했고 내뱉은 말은 잔소리였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지난 아픔들 때문에 부모의 한(限)이 첩첩이 쌓여 있었다.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들, 더러 벗어난 이들도 있었겠으나 부모마음을 알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을 터, 부모는 자식에게 못해준 것만 기억되었을 것이다.

청와대 앞 청운동 예배 시(時) 몇 몇 어머니의 증언을 들은 적이 있었다. 중학교 입학 후 4-5년 내내 갈등과 대립하다가 이제 막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는데 의지 하고픈 아들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부모들은 견딜 수 없어 했다. 그렇기에 잊을 수 없는 아이를 잊으라하는 것만큼 듣기 싫은 소리가 없다하였다. 교회 내 목사들의 천국 위로 역시 결코 위로가 아니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진실이 실종되었고 그를 실종시킨 정부와 교회 탓이다. 아직 어미에게 자식은 바다 속 깊은 곳에 잠겨져있다. 이들 한(限)이 풀어질 때 까지 이들의 눈물은 마르지 않을 것이고 그들 눈물이 있는 한 광화문 천막 역시 사라질 수 없다. 그곳에 유족이 있는 한 이 땅의 백성, 시민들의 삶도 그곳에 함께 할 것이다. 

▲ 지난 8월 26일 저녁 청운동 사무소앞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다.ⓒ에큐메니안

한 때는 권력의 가치와 존엄성을 인정하려고 애쓴 적이 있었다. 어느 경우는 주눅이 들어 움츠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정치권의 비인간적 행태를 보며 그들과 맞서고 싶은 생각만이 간절하다. 본말 전도된 시각을 갖고 기득권에만 집착하는 이들이 너무도 하찮게 보인다. 이런 내 주장이 감정에 치우친 언사만은 아닐 것이다. 법 전공자들의 정치적 논리에서 정작 법의 정신인 생명과 정의의 감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 편에서 방송 타는 소위 폴리패서(Poli-fessor)란 자들 역시 형식논리에 목숨을 걸뿐 인간적 고통에 대한 연민이 없다.

그들에겐 공직자의 자질인 겸손함이 없고 욕망과 처세 그리고 ‘말 빨’만이 있다. 자신이 붙든 나뭇가지 썩은 것을 모르고 눈앞의 달콤한 꿀(권력)에 혼을 빼앗긴 존재들일 뿐이다. 그들을 백성의 대표로 뽑은 우리들의 한계일 것이나 더 이상 영혼 없는 자들을 앞세울 수 없다. 정작 한반도 정세를 19세기 말과 같은 풍전등화의 상태로 만들어 놓고, 부정선거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면서, 4대강 실책의 죄과를 치러야 함에도 불구하고 약자들을 내치며 백성을 이간질 시켜 정권유지에만 급급한 정치가는 이 땅의 죄인들일 뿐 결코 통치권자가 될 수 없다.

아마도 정권을 잡은 이들은 추석 민심이 경제 쪽으로 흘러 갈 것을 내심 기대할 것이다. 특별법 반대여론으로 노랑 리본의 색깔이 점차 희미해지기를 바랄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 대학 뜰 나무들에 묶어 놓은 수많은 노랑리본들이 빛바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벌써 5달이 지나고 있으니 비바람, 폭우에 지쳐 그 본색을 잃어 버렸을 수밖에. 그러나 특별법 제정을 위해 서명한 5백만 명의 가슴 속에 민들레 홀씨처럼 그렇게 생명과 공감의 꽃이 졸지에 피어 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들은 대지를 가득 메운 노랑 꽃망울에 정신 줄 놓을 수 있으니 그날을 준비하길 바란다.

성서로부터 너무도 낯설게 변질된 대형교회, 그 속에 가만히 있던 사람들이 홀연히 뛰쳐나갈 순간도 멀지 않았다. 임계점이란 말이 있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겉잡을 수없는 기운이 솟구칠 것이다. 달리 말하면 하느님의 때, 카이로스이다. 세월호 참사를 예사롭게 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 참사는 하늘이 준 경고이자 기회이다. 팩트(fact)를 숨겨 정권을 유지키 보다 그를 밝혀 이 땅과 5천년 역사를 살려내는 용기와 결단이 이 정부에게 있기를 바란다. 그를 위해 교회들이여, 다시 예언자가 되고 야성을 회복하라. 기득권자가 아닌 약자, 영혼만이 아닌 인간 삶 전체를 위하여 성서 내 다른 본문들에 눈길을 돌려야 한다. 이 백성들에게 돌덩이가 아닌 생명의 빵을 줄 수 있으려면 말이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는 교회를 통해 정부에게 새 길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이정배 교수(감신대)  ljbae@m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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