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외출을 했다. 산골 집에 오니, 집 마당 감나무 밑에 몇 분이 사진을 찍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사는 제각문중 사람들이란다. 부모산소 벌초하러 왔단다. 그러면서 이 감나무는 자기 아버지가 자기 사후에 자식들이 따먹으라고 심었단다. 그런데 감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풍성한 먹감을 주렁주렁 달렸지만, 자식들은 이 산골에 살지 않고 모두 도시로 떠났다. 생각지도 않은 객인 내가 그 풍성한 열매를 수확한다. 내가 감나무를 심고 이렇게 큰 감나무가 되어서 따먹는 데에는 수십 년의 세월과 돌봄, 기다림이 필요하다.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나하곤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참 감사할 일이다.
그리고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사는 이 집, 논밭 모두 나 아닌 타자가 피땀 흘려 가꾸어 놓은 것이다. 더 나아가 이 숲 저 하늘 돌멩이 하나, 아니 내가 세상에 온 것도 내가 땀 흘려 가꾼 것이 아니다. 그저 나는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올려놓은 것이다. 아! 다시 감사다.
인천에서 8-90년대 노동 선교할 때, 함께했던 동지들과 아이를 낳지 말자고 결의하였다. ‘이 변혁의 시대에 예수도 30대 초반에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그 각오로 살아야 하지 않나’이었다. 실제론 아무도 지키질 못했지만 그만큼 그 당시 정치사회적 모순 외에 다음세대나 자연에 대한 성찰은 부재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우리 오십대는 변혁의 시대를 살아왔지만, 사회경제적으론 고성장시대였고 부동산 가치가 급등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일자리걱정이 적었고, 부동산 혜택을 톡톡히 본 세대이기도 하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우리세대 몫을 넘어 다음세대 자원까지 약탈해 끌어다 소비해버렸고, 자연을 파괴하고 무너뜨렸단 얘기다. 그리고 거품경제로 호의호식하고 있단 얘기다. 운동도 그 시대과제에 올인 했다면, 사회경제도 자기 시대에 올인 한 것이다.
며칠 전 과거 80년대에 민중교회를 함께 다녔으나, 그 뒤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 사업가로 살면서 20년 가까이 보질 못했던 분의 부부가 산골에 찾아왔다. 행복하게 잘 살줄 알았는데, 노인이 되어왔다. 사업하느라 스트레스가 많고, 동업자의 배신과 법정소송으로 피가 마른단다. 암까지 걸려 수술했단다. 더 이상 이렇게 살다간 죽을 것 같아서 모든 걸 놓고 일 년간 요양할 곳을 찾고 있단다.
그래서 우리나이가 벌써 오십대 후반이고, 앞으로 인간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이 지구상에서 남은 시간은 길어야 20년 남짓이다. 이젠 인도 고대 삶의 오 단계 삶처럼, 자기와 가족을 떠나, 숲속으로 들어가 삶과 죽음과 자기성찰을 통해 지혜를 깨닫고, 사회로 돌아와 이웃과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삶으로의 전환에 대하여 깊이 숙고할 때라는 점에 서로 공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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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월호 투쟁도 사실은 지금과 다음의 싸움이다. 지금 당장 경제 부양하여 그동안 살아왔던 삶의 양식을 계속 지속시킬 것인가, 아니면 자연과 다음세대까지 고려하고 배려하는 삶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것인가의 싸움이다.
예수는 열매 맺지 못한 나무는 뽑아버리라고 하셨다(눅13/6-9). 우리세대가 이런 식으로 계속 가면, 우리도 망가지고 결국엔 뿌리 채 뽑혀버리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현 정치권이 그렇고, 경제가 그렇고, 우리의 삶이 그러함을 반증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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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후 고대에 진학하여 기독학생운동을 하였고 5.18광주민중투쟁과 관련하여 감옥에 잠깐 다녀왔다. 인천부평공단에서 노동선교문화원을 설립하여 총무로 일하였으며 그 뒤 산골에 내려와 농사와 영성을 추구하며 살아온지 14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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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용 azaz0106@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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