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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한 징조<김구 칼럼> 사회와 자연이 공히 드러내는 현상
김구 | 승인 2014.09.19 12:24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놓이지 않을 것이라고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붕괴를 예고하셨을 때, 제자들은 무거운 침묵 속에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마 24.1,2). 일행은 감람산에 이르러서야 겨우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수는 그 때가 언제이고 징조는 무엇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을 받고, 몇 개 비유를 곁들이며 긴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 일이 시작되는 징조 가운데 하나는 지진이었다(마 24.7).

지진이란, 지구과학에 의거해서 전문적으로 자세하게 설명될 수도 있겠지만, 한마디로 줄이면 땅이 흔들리는 것이다. 지반이 흔들리면 땅에 기초한 건축물이 온전할 리 없다. 진도가 높은 지진이 일어나서 수많은 건물들이 부서지고 무너지는 것은 요즘에 자주 보는 일이다.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 붕괴의 징조들이 지진과 함께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말씀은 납득하기 그리 어렵지 않고,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기반이 흔들리면 무너지게 된다!

성전은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지진으로 붕괴되지는 않았다. 가까운 신약시대에는 유대전쟁 끝 무렵인 주후 70년에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한 다음 성전을 파괴하고 기물들을 전리품으로 탈취하였다. 그렇다면 성전 붕괴의 조짐으로 지진을 거론하신 예수의 말씀은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할 것인데, 말하자면 성전의 기반은 땅의 기초가 아닌 다른 것이어야 한다.

유다 왕국 말기에 성전 붕괴를 예언했던 예레미야는, 성전이 유지되는 조건을 길과 행위 단 두 낱말로 요약하였다(렘 7.3,5). 사람은 갈 곳을 향해 한걸음씩 발을 내디디며 걸어간다. 목적지가 설정될 때 길이 있다는 말이다.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여기저기 펼쳐있는 도로는 있어도 별 소용이 없다. 행선지가 정해졌더라도 길은 많다. 어느 길로 어떻게 가야 제대로 가게 되는가? 길은 방법과 일치된다. 예언에서 걸어가야 할 곳은 분명하다. 성전이다.

예언에서, 행위라고 번역되는 원어 ‘마알랄’은 자주 반복되는 동작을 지시하는 어근에서 파생되었다. 그래서 이 말은 지속되고 반복되는 활동으로 파악될 수 있고, 나아가 일상적이고 습관적인 행위로 풀이될 수 있다. 말하자면 일상생활을 가리킨다는 뜻이다. 따라서 “개선해야 한다.”는 길과 행위는 종합하면 생활태도 또는 생활표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이어지는 예언의 말씀에서 입증된다. 예언자는 길과 행위를 고치라고 전한 다음에, 십계명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이다(렘 7.9).

그러나 당시 유다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계명을 지키지 않았다. “이웃들 사이에서 정의”를 행하기는커녕, 오히려 낯선 이들, 돕고 보호해야 할 고아와 과부들을 억누르고, 죄 없는 이들의 피를 흘리게 했다. 그런 이유로 예루살렘 성전은, 실로가 이스라엘 자손들의 악행 때문에 무너졌던 것처럼,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예고되었던 것이다.

예언의 말씀에서, 성전이 온전히 서 있을 수 있는 기반은 땅의 기초가 아니라 성전을 드나들며 예배를 드리는 이들의 일상생활로 드러난다. 그러나 그들에게 수여되었던 생활표준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결국 있어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버렸다. 성전이 웅장한 건물로 지탱되고 있었음에도, 그것은 거짓이라고 판정되었다(렘 7.4). 계명에 따른 생활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며, 공동체를 유지할 정의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성전의 기반이 주저앉은 것이다.

   
 
오늘의 공동체 기반도 흔들리거나 무너지고 있지는 않은가? 생존의 밑바탕이 되는 직업은 얻기도 어렵다. 헌법이 명시한 직업선택의 자유는 이제 여건조차 허락되어 있지 않은 현실이다. 생존은 바닥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 사회적 갈등해소의 직무를 담당해야 할 정치는 오히려 갈등을 빈번하게 유발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 입으로 두 말을 거침없이 발설하며 약속을 손바닥보다 더 쉽게 뒤집으면서도 그 정당성을 강변하는 것이 오늘의 정치가 노출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회 기반을 흔드는 일일 것이다.

법은 사회의 한계선이다. 그래서 가장 구체적이고 또 분명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동일유형의 사건에 다른 법이 적용되거나 한 법규를 사건에 따라 다르게 해석한다면, 기반을 설정해주는 한계는 모호하게 된다. 나아가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법리를 내세우거나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우는 사법이 용인된다면, 그 위에 영위되어야 할 사회는 요동을 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의 사회현실은 여기저기 구멍이 크게 뚫리고 있지 않은가?

서울 석촌 호수 일대에서 뒤숭숭한 소문이 전해지더니, 급기야 땅속 구멍들이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소위 싱크홀이 국내 어느 곳에서 부분적으로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인 현상이라고 전한다. 기반이 무너지고 내려앉는 땅 꺼짐은 크고 작은 지진과 함께 이 시대를 규정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회와 자연이 공히 드러내는 이런 붕괴현상은, 마치 마지막을 알리는 시대의 징조라도 보는 것 같다.

김구(金丘)

김구  fonsjug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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