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죽음이 슬프지만,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 젊은이의 죽음은 더욱 비참하고 안타까운 한숨을 짓게 한다. 이를 테면,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젊은이들의 죽음이 그렇다. 선임병들의 집단구타로 사망한 28사단 윤 일병을 비롯해 상관의 지속적인 가혹행위와 성추행으로 목숨을 끊은 15사단 오 대위, 뇌종양으로 방치되어 숨진 11사단 신 상병이 바로 그들이다.

▲ 윤 일병의 가족들은 "군 헌병대와 검찰을 고발하기 위해 나왔다."며 사망 원인을 축소, 은폐하려는 군 사법체계를 지적했다. ⓒ에큐메니안 고수봉

국군의 날을 하루 앞둔 30일(화) 오후7시, 대한문 앞에서는 윤 일병, 신 상병, 오 대위를 비롯해 억울한 죽음을 맞은 수많은 장병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의 밤’이 개최됐다. 주최한 ‘군대 내 인권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은 행사의 이름을 ‘윤 일병과 또 다른 모든 윤 일병을 위한 추모의 밤’이라고 지었다.

생명보다 중요한 민생이 어디있나?

▲ 이해동 목사. ⓒ에큐메니안 고수봉

군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이해동 목사가 먼저 연단에 올라 추모사를 전했다. 그는 “군 의문사를 조사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가족들을 만나는 일이었다.”고 회고하며, “예수도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 것’이라고 했고, 석가모니도 비둘기의 생명과 인간의 생명이 동일한 천칭의 법칙을 얘기한다. 가족들은 모든 것을 잃은 것”이라고 전했다.

이 목사는 “윤 일병은 죽인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닌 귀한 생명을 때려죽일 수 있는 야만의 문화, 군대의 구조적 문제이며, 국가권력이 국민을 학살한 현대사의 문제”라고 지적하며, “전 사회적으로 국민의 목숨을 안보, 권력의 유지, 이권을 위해 무참히 죽음으로 내모는 학살이 빚어지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사건을 두고 ‘이제 그만하자, 민생이 어렵다’고 한다. 생명을 살리고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민생이 어디있나?”며 “우리 역사와 정권, 정부, 군대 안에 있는 구조적인 생명경시의 가치관과 철학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제2, 3의 윤일병이 생겨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국가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인 군 검찰과 헌병대 수사관, 대장 등은 지속적으로 윤 일병 가족을 기만해 왔다.”며 “공소장이 살인죄로 변경됐다고는 하지만 검찰관이 살인죄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려는 모습이 없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상식적으로 공소장이 살인죄로 변경됐다는 것은 수사와 기소가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도 책임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며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설명해 놓은 것이 헌법이며, 존재하는 이유임에도 진실을 가리고, 지휘관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를 판단하는 것이 지금의 군대”라고 설명했다.

억울한 죽음에 가해자는 적반하장

▲ 고 오혜란 대위의 고모와 고모부가 추모의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에큐메니안 고수봉

이날 ‘추모의 밤’에는 고 윤승주 일병의 가족들과 고 오혜란 대위의 고모와 고모부, 11사단 고 신성민 상병의 누나도 참석해 ‘추모의 편지’를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 대위의 고모부는 “나라를 위해 훌륭한 여군 장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국방대에 진학하려 했던 성실한 여군이었던 조카가 남자친구 때문에 죽음을 택할 어리석은 아이가 아니”라며, “성도착증 상관을 만나 10개월 동안 매일 업무로 포장한 간교한 성적 요구에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군복무에 성실히 임해온 조카에게 질책과 폭언은 월급이었고, 성희롱은 성과급이었다.”며 “피고인은 상당한 기간 동안 남군, 여군 가리지 않고, 폭언과 성추행을 해왔지만 전과가 없다는 이유로 1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상태이며, 반성은 커녕 피해자의 법률대리인과 군인권센터 소장, 오 대위 사건을 알린 언론사를 고소했다.”라고 호소했다.

▲ 사진에 떨어진 눈물을 닦는 것인지 신 상병의 누나는 연신 동생의 사진을 들여다 보았다. ⓒ에큐메니안 고수봉

동생의 억울한 사연을 낭독한 신 상병의 누나도 억울한 죽음에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가해자들에 대한 성토와 군 인권 개선을 위한 동참을 호소했다.

그는 “중대장으로부터 생긴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살려 달라는 아이에게 인분을 치우게 하고, 파병 근무 시키고, 휴가마저 연기시켰다.”며 “억장이 무너지는 건 가해자인 중대장은 장례식 날, 축구와 파티를 벌이고,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승진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일상생활을 하다 동생이 보고 싶으면 어떡하나’는 기자의 질문에 “24시간 아이 생각하다가 문득문득 다른 일 한다. 유가족은 그렇게 사는 거예요. 그게 유가족 삶”이라고 전하며,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어느 가족도 이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라고 말했다.

끝으로 윤 일병의 가족들이 연단에 올랐다. 아버지 윤 씨는 “승주는 마흔이 넘어서 낳은 귀한 아들”이라며 “비명마저 지를 수 없는 공포와 억압 속에서 죽어가야 했던 승주를 돕지 못한 제가 하늘나라에서 어떻게 승주를 볼 수 있을까 미안할 따름”이라고 고백했다.

윤 일병의 어머니는 면회갈 때 가져가려 했던 음식을 아직도 치우지 못했고, 마지막 통화 때, 눈치라도 챘으면 하는 후회로 매일을 보낸다고 한다. 게다가 아흔이 넘은 윤 일병의 조부모에게는 차마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억울한 심정을 “군에 들어갈 때 모습으로 돌려주지 않을 거면 왜 아들을 데려간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 가수 문진오 씨가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자 유가족들은 소리없이 울기 시작했다. ⓒ에큐메니안 고수봉

게다가 부대 관계자들은 ‘구타’를 강력히 부인했었고, 헌병대는 증인과 만나지 못하도록 거짓말에 조서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전하며, “앞으로 부모와 입대할 아이가 안심하기 위해서는 가해자를 일벌백계해서 구타 행위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추모의 밤을 개최한 ‘군대 내 인권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은 “지난 8월 27일 전문가 워크숍, 간담회를 통해 제도적 장치를 고민해 왔고, 24일 11개 단체가 참여한 가운데 공동행동이 발족했다.”며 “추모제를 첫 실천으로 군인들의 기본적 권리가 보장되는 ‘군인 권리 장전 만들기’, 군대 내 인권 상황을 감시할 수 있는 ‘군사 옴부즈맨’, 군 사법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개혁을 위한 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추모의 밤에 참석한 사람들은 ‘군 인권법 제정’, ‘국방 감독관제 도입’, ‘군 사법권 독립성 보장’, ‘축소, 은폐 책임자 처벌’ 등을 주장했으며, 군대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윤 일병’들을 위한 헌화의 시간을 가졌다.

▲ 평소 동생과 매우 각별했다던 둘째 누나가 윤 일병의 사진을 들고 있다. ⓒ에큐메니안 고수봉

▲ 참가자들은 윤 일병과 또 다른 윤 일병들을 위해 헌화의 시간을 가졌다. ⓒ에큐메니안 고수봉

고수봉 기자  gogo9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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