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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안지성 '시민인문강좌'(10/14~12/4)
편집부 | 승인 2014.10.01 15:26

   
 
   
 
 

기독교대안지성 [시민인문강좌]

❚일시: 10월14일(월)부터 12월4일(목)까지 8주간

❚장소: 꽃재감리교회(왕십리 소재) & 빅퍼즐 문화연구소 (홍대 입구 소재)

❚강좌 개설 취지 및 개요

<기독교대안지성>은 기독교의 반-지성적인 현재 모습은 교회의 미래를 심각하게 잠식하고 있는 폐해임을 인식하고, 신앙과 지성 간의 균형있는 모습을 회복하기 위한 신학자들의 지적 운동 모임이다. 단지 신학자들끼리 모여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신학적 담론을 나누어가던 종래의 모습을 벗어나, 이제 열린 공간에서 교회 내외의 일반시민들과 더불어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라는 화두를 숙고하고자 한다. 이는 시대의 기득권을 추종하는 종교인이 아니라, 시대의 문제들 고민하며 시대의 대안을 열어가고 제시하는 기독교 지성인의 모습 속에 기독교와 교회의 미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현재의 반지성적 모습은 시대이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왜곡된 신앙의 모습으로는 기독교의 미래를 결코 장담할 수 없다는 심각한 위기 의식의 반영이기도 하다. 본 강좌는 그래서 교회 내 시민들과의 만남을 통해 ‘종교개혁’(the Reformation)을 주창하던 루터의 모습 뿐만 아니라, 산업혁명 이후 사회구조가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가던 시기에 정부와 사회가 돌보지 못한 사회의 계층들을 품고 신앙의 힘에 의지하던 웨슬리의 모습을 회복하고자 한다. 하지만 기독교대안지성의 강좌는 더 나아가 교회 바깥에 기독교에 호감은 있지만 교회는 혐오하는 계층들 까지 아울러 탈-기독교 시대 이후의 기독교를 추구하고자 한다. 이는 기존의 양적 성장 위주의 교회성장학의 시각을 탈피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본 시민강좌의 목적은 우선 기독교 개신교의 문화적 풍토 속에서 신앙의 지성적인 면을 다시금 회복시키고, 합리적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와 세계와 더불어 소통하는 기독교 교양인의 형성을 목표로 한다. 오늘날 즉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도착적으로 결합된 기묘한 정치경제 체제인 지구촌 소비자본주의의 시대에 우리에게 ‘결여’(lack)된 것은 아주 역설적으로 ‘믿음’이 아니라 ‘합리성’이다.

자본주의 시대라는 심리적 규정 하나 때문에 모든 것으로 돈으로 환산해서 평가하는 시스템이 사회 도처에 널려 있고, 삶의 불안정성이 무릇 ‘돈’ 하나 때문에 비롯된 것은 아닌데도 돈만 있으면 그 모든 불안을 해소할 수 있고,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돈을 안정적으로 벌을 수 있는 수단들을 확보함으로써 삶의 안정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피폐해진 영혼은 다시 돈을 가지고 소비를 함으로써, 영혼의 안정을 물질을 통해 추구하는 삶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유물론적 삶의 반복 속에서 정작 우리는 돈이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을 무의식적으로 진리처럼 믿고 산다. 정작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삶의 패턴은 종교인들 특별히 기독교인들조차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우리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유물론적 삶과 믿음을 가장 시대에 적합하게 결합시켜낸 사람들인 듯하다. 그들의 신앙적 삶은 자신들의 믿음을 위해 유물론적 풍조가 지배하는 이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에 저항하거나 승화시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도착적 환상의 꿈을 이루기 위해 신앙에 의지하여 기도하고 헌금하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외적으로는 기독교 신앙인이지만, 내적으로는 자본주의 세계를 살아가는 무신론자들보다 더 위선적인 삶의 방식을 수행하게 된다. 차라리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면, 인간의 동물적인 이기적 본성에 의존하여 살아간다고 말해 버릴 터인데, 불행히도 이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기독교인들은 당당하게 자신들이 기독교인임을 고백한다. 결과적으로 이는 기독교의 부패와 타락을 부추기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기독교가 그리고 그 교회들이 사회로부터 외면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살아가는 삶의 모습들은 이기적 무신론자들과 구별이 전혀 안될 뿐 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그들은 자신의 믿음이 그러한 삶을 살아가도록 한다고 당당하게 공언하기 때문이다. 이 유물론과 역설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영지주의적 믿음의 시대에 신앙의 진실의 한 자락이라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믿음이 아니라 ‘합리적 지성’이다. 이는 매사를 논리적으로 일관성 있게 따지고 드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를 감정이나 이데올로기나 타인들의 댓글이 아닌 자신만의 주체적인 사유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유 말이다. 이는 안셀무스가 말했던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faith seeking understanding)을 21세기 지구촌 자본주의의 세계 속에서 새롭게 회복하려는 시도이다.

본 시민강좌 기획은 둘째로 (혹은 기독교회 바깥을 향해) 종교를 경멸하는 교양인들에게 종교적 사유의 필요성을 다시금 주지시키고자 함이다. 오늘날 우리는 종교가 경멸당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종교인들이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을만한 모범적인 삶을 (사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쩌면 이는 당연한 귀결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경멸받는 종교적 사유들 속에서 최근 바디우와 지젝 같은 철학자들은 세상을 변혁할 본래적 사유의 원천을 재수입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종교인이건 비종교인이건 간에, 모두 유물론적 삶의 방식에 철저히 지배당하고 있다. 본래 ‘유물론’(materialism)은 칼 마르크스의 이론을 통해 알려졌듯이, 영적 삶의 지혜를 전하는 종교를 현실 비판을 억제하기 위한 인민의 아편으로 규정하고, 이제 바로 지금 여기에서 현실을 변혁해 나아가자는 의도로 사용된 용어이기도 했지만, 이제 마르크스의 현실 변혁적 의도는 탈각된 채, 자본은 민주주의라는 형식적 허울과 성공적으로 결합하여 지구촌 모든 곳을 장악하고 있다. 지식조차 상품이 되어, 대학에서 상품 가치가 없는 지식 분야들이 퇴출되고 있는 형편을 고려한다면, 가히 우리에게 자본 혹은 돈으로 대변되는 ‘물적 토대’말고 무엇이 있는지 회의하게 된다. 이에 기독교대안지성이라는 이름하에 우리 시대 지성인들이 모여 이제 자본의 점령당한 대학과 신학교들을 우회하여, 우리 시대를 위한 사유와 실천적 지혜를 소통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는 시대를 변혁하는 원초적 에너지로서 종교의 본래적 힘을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이기도 하다.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영적인 것은 물질적인 것을 언제나 앞선다’고 말했다. 이 돈과 자본에 미친 사회에 정의와 아름다움과 인간의 선함을 회복할 가치는 어디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들의 삶이 이토록 주변의 물질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고 예속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래서 입으로는 ‘신’을 말하지만, 그 마음은 이미 돈이 그 신이라고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인가? 성서는 ‘하나님이 온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다’고 고백한다. 이는 과학적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것이 자본과 권력의 힘에 이끌려 살아가는 우리시대에는 더 더욱 절실한 신앙의 고백이라 여겨진다. 하이데거는 일찍이 “Only God can save us”라는 말을 던졌다. 신을 믿지 않는 무신론 철학자의 입에서 왜 ‘신’ 혹은 ‘하나님’의 이름이 회자되는가? 바로 거기에 우리 시대 지성이 결여하고 있는 것이 기표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정신적 가치’의 결여이고,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 정신적인 것의 결여를 표기하는 기표로 작용한다. 이 자본주의적 상징계에서 하나님이라는 기표를 통해 시대의 결여를 표기하는 것만으로는 시대를 변혁해 나갈 동력으로 충분치 못하다고 여겨진다. 기독교대안지성은 기독교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가, 우리 시대가 결여한 지성을 대안적으로 제시할 방법을 모색하는 모임으로서, 시민강좌를 통해 정의와 선함과 아름다움의 가치와 이념들을 개신교적 신앙의 바탕 위에서 모색하고자 한다.

본 기독교대안지성 시민인문강좌의 특이성은 바로 “교회와 함께 하는 인문학”이라는 점에 있다. 단순히 목회자들의 지적 재교육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간헐적으로 있기는 하지만, 교회 전체의 지적운동을 주창하는 ‘교회 인문학 프로그램’은 거의 전무했다. 더구나 그 대상이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하고, 교회 교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가 교회에서 열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 여겨진다.

이 강좌에 참여하는 강사들은 전부 미국이나 독일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선생님들이거나 혹은 국내 대학에서 신학 혹은 종교철학으로 학위를 마친 선생님들로 구성되었다. 개별적인 인문학 강좌를 여는 시도들은 자주 있었지만, 이번 프로그램처럼 전체 10여 개에 이르는 강좌 프로그램이 개설되는 것도 처음 있는 의미있는 시도라 여겨진다. 취업이라는 현실에 내몰려 대학에서 더 이상 인문학이 심화되지 못하고 학점을 따기 위한 과목들로 전락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인문학적 사유의 뿌리와 깊이를 심화시키는 공부가 필요하다. 그 공부를 교회와 함께 한다는 것, 자체로 개신교적 시민운동에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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