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 등교, 그 이후 한 달...

진보교육감의 정책들이 새롭고 혁신적이긴 하지만 현실은 모른다는 목소리가 있다. 이번에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의 9시 등교 문제도,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의 무상급식 문제도 그랬다. 무상급식의 문제는 꼭 비유를 들어도 이00 회장 손주 같은 사람에게 무상급식을 불필요하게 왜 하냐는 것이다. 이런 발언들이야 말로 교육현장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우리의 경제 수준에도 불구하고 보통의 학교에는 급식비를 내지 못하는 친구들이 상당수 있다. 기초생활 수급자는 지원을 받지만, 차 상위 계층들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법적으로는 부모님이 다 계시지만 사실상 한 부모 가정도 통계보다 훨씬 많으며, 평범한 가정이라도 사교육비의 부담에 급식비를 못 내거나 밀린다. 그래서 매 학기 말이면 행정실과 담임선생님들은 밥값을 내지 않은 학생에게 빚(?) 독촉을 하거나 장학위원회에서 급식비를 탕감해주기 위해 장학금 대상자로 가능한지를 의논하는 곤혹스러운 일이 번번이 일어나고 있다.

9시 등교 문제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무상급식을 먼저 생각해보자는 건 이런 이유이다. 정말 어떤 학생들을 중심으로 놓고 정책에 대하여 찬성하고 비판하는가? 무상급식은 ‘돈이 여유 있는 학생들에게 뭐 하러 급식비를 지원하냐’가 초점이 아니라, 급식비를 내지 못해서 패배감과 열등감을 가진 학생이 자신의 꿈과 배움의 기쁨을 그로인해 놓칠까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상급식 반대 주장을 했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학용품을 무상으로 하자고 제안을 했던 당사자이다. 밥은 안 되고 준비물은 된다?

학원 보다 밥이 중요한데 밥값을 안내고 학원비 내는 부모가 있을까? 안타깝게도 많은 게 현실이다. 급식비를 내지 않거나 밀린 학생들, 대 부분 학원에 다닌다. 그럼, 국가가 개인의 사교육비를 지원해 줄 용의가 있는가? 아마도 미쳤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한 가정 당 교육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도 무상급식은 필요했다. 그리고 급식비를 내지 못해서 밥을 얻어먹기 위해 친구에게 우정(?)을 과시하며 교실로 배식된 식판을 날라주며 숟가락만 들고 먹는 학생이나 급식실로 몰래 들어와 먹는 학생들, 그리고 때로는 눈물 나게도 이미 먹은 사람이 나가는 퇴실문으로 안전하게 들어와서 친구의 식판을 받아서 리필을 하는 학생들이다.

난, 이번 9시 등교 문제는 9시 등교를 통해서 얻어지는 효과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9시 등교의 취지는 잠이 부족한 학생들의 수면권을 늘려주고 동시에 아침을 먹지 못해서 학교에 오자마자 매점으로 달려가 빵을 입에 물고 사는 학생들에게 밥 먹을 시간을 주는 것, 그 이상이다. 나라와 정부와 시와 우리 어른들이 너희 학생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고민한다는 신뢰의 회복이다.

미안하지만 학생들의 등교시간을 통학셔틀을 위해 애쓰시는 분들을 위해 조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과도한 입시교육 현실을 문제제기 할 수 있지만, 당장 바꿀 수 없는 현실이다. 그 현실 속에서 돈이 없어서 급식을 못 하는 친구들을 위한 정책, 잠이 부족하고 그 시간이 부족해서 아침밥을 거르는 친구들을 위한 정책을 만든다는 것은 우리 학생들에게는 어른들이 우리 걱정을, 우리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리려고 한다는 신뢰의 회복이다. 그러한 정책이 다소 다른 불편함이 따른다고 그 학생들을 버리고 가야하겠는가 말이다.

9시 등교로 인한 이러 저러한 걱정을 하지만, 그 걱정이 진심 학생들을 위한 걱정인지 되묻고 싶다. 본교는 수원에 위치하고 있는데, 고등학교여서 9시 등교 설문을 조사할 때,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학생도 반대가 더 많았다. 고3의 경우는 압도적으로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그 반대의 이유가 중요하다. 그럼, 그 반대의 이유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어른들이 생각하는 그런 이유가 아니다. 학생들의 반대 이유는 크게 3 가지로 압축되었다.

첫째, 입시가 여전히 치열한 경쟁 구도에서 경기도만 한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
둘째, 하교가 그 만큼 늦어지면 저녁에 놀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본교는 40분 늦어짐)
셋째, 학원시간이 촉박해져서 뛰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의 이유 3 가지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원칙적인 반대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치열한 입시가 문제라는 것이고 다른 지역도 실시하면 불안하지 않다는 것이고, 학원시간이 새로운 등교시간에 맞추어서 시간을 옮기면 해결되는 일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토를 달아 말한다. 현실 때문에 반대는 하지만 9시 등교를 결정한 배경에 대해서는 너무 공감하고 그런 결정을 해 준 어른들에게 고맙게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 발야구 하는 여학생들 뒤로 편안하게 등교하는 학생들이 보인다

대부분의 학교는 기존처럼 8시 등교 하는 학생들을 위해서 몇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학습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자기주도적 학습과 협력학습을 병행한다든지, 자율동아리를 만들어서 토론 수업을 한다. 본 학교의 토론능력 성장을 위한 주제는 동물실험, 인간을 위해 필요한가, 멈춰야 하는가에 대한 것, 안락사의 문제, 그리고 아직 하지 않았지만 한 학생은 동성애 문제 등도 다루었으면 한다고 했다.

일반 수업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토론수업을 일찍 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고와 논리력 훈련을 자율 동아리에서 진행하는 것이다. 너무 바람직하지 않은가? 그리고 일찍 온 여학생 중에는 체육시간에 있을 발야구 시합을 미리 반 친구들과 약속해서 연습을(사진1) 한다든지, 남학생 두 명은 배드민턴을 하며(사진2) 아침운동을 하고 있고, 나무 밑에는 아침에 여유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8시 등교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라는 말이다.


▲ 남학생 둘은 베드민턴을 치고 나무 밑 의자에서 담소를 나누는 학생들

9시 등교 정책, 이제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았다. 학교도 학생도 학부모도 아직 적응하지 못할 수 있고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게 있어서 당장 기대 효과가 다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정책에서 우리 어른들이 어떠한 정책을 내놓을 때, 진심 학생을 위한 일인지, 부모와 어른의 편리함과 이기심 때문인지, 이번 기회에 발상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무너진 교실을 회복하고 무너진 교사-학생의 관계가 회복되고, 학부모와 학생의 관계만 강조되지 않고 그냥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로 9시 등교를 바라보기를 바란다.

이원표 목사(수원영생고등학교 교목) lwp415@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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