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는 기독교에서 중요하게 여기고,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하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생, 구원,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세 단어는 지금까지 기독교를 기독교 되게 하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임과 동시에, 타종교를 적대시하거나 무시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영생', 소유할 수 있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예수께 묻습니다.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유대 전통에서는 율법이나 지혜에 순종함으로써 장수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따라서 죽음 아닌 생명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랍비 유대교에 있어서 생명은 율법에 순종하여 그것을 지킴으로써 주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은 생명의 명령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어떤 사람은 유대의 전통에 따라 영원한 생명을 물려받는 유산으로, 행위에 대한 대가로 생각하고 예수님께 묻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물음 중에 ‘영생을 얻으려면’에서 얻다는 “상속받다, 몫으로 받다”입니다. 그 사람은 재산을 물려받은 것처럼 영원한 생명도 상속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고는 그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시에 유대교의 일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계명 중에 사람을 대하는 계명을 순서를 뒤바꾸고, ‘남을 속이지 말라’는 계명을 추가해서 대답합니다. 여기에 추가된 계명은 단순히 ‘남을 속이지 말라’가 아니라 “속여서 빼앗지 말라” 라는 의미입니다. 랍비 유대교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생명, 영원한 생명의 조건이라는 것은 당연시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계명 목록에 추가된 “속여서 빼앗지 말라”를 간과했는가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대답을 다른 랍비들과 비슷한 대답으로 들었는가 봅니다.

아마도 그 사람은 평범한 예수님의 대답을 못마땅하게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습관적인 일상이 재미없어서 더 자극적인 대답, 독자적인 대답을 기대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조금은 심드렁해진 표정으로 말합니다. “그런 것은 어렸을 때부터 쭉 지켜왔습니다.”

삶의 치열한 상황이 없이는...

전통적인 유대교 가정에서 자란 그 사람은 어려서부터 습관적으로 지켜왔던 계명들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애써 지키려하지 않아도 저절로 몸에 배어 있는 것을 말하는 예수님을 신통치 않게 보았겠지요. 그 속에 “속여서 빼앗지 말라” 라는 뼈가 들어간 것도 모르고.

예수님은 그를 눈여겨보시고 애처롭게 여기며 말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내가 말한 것 중에서 중요한 한 가지를 생각하지 않는군요. 당신이 그 계명들을 다 지키고도 아직 모자라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당신의 재산을 모두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시오.” 거기에다가 유대교의 평범한 윤리적 가치인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을 덧붙입니다.

랍비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때에 평생동안 자신의 전 재산의 1/5을 넘게 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하늘에 보물을 쌓는 데 지장이 없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습관적인 율법준수나 자선행위를 꿰뚫어 보시고 그에게 말합니다. “1/5이 아니라 모든 재산을 팔아서 나눠주시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은 당신도 모르게 가난한 사람들의 몫을 속여서 빼앗은 것이 아닐까요?”

모든 재산을 나눠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교 전통을 철저하게 따르면서 성실하게 모세의 계명을 실천해 왔으나, 어쩐지 그것만으로는 석연치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말은 생활의 실제에 부딪치지 않고서는 영원한 생명이니 하는 것을 문제삼을 수 없고, 그 문제로 아무리 고민한다고 해도 궁극적인 해답은 없다는 것입니다.

삶의 치열한 상황이 없이 습관적인 계명 준수, 앉아서 편안히 할 수 있는 사랑, 자기만을 위한 허울좋은 종교적 열심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요구합니다. “당신의 당신 됨을 지탱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것, 당신이 어려서부터 순조롭게 계명을 지킬 수 있었던 근거, 또한 계명을 지켰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 자존심의 근원을 포기하시오.”

누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라 가느냐?

오늘 본문은 마가복음의 두 번째 수난예고와 세 번째 수난예고 사이에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세 번의 수난 예고가 있는데, 수난예고는 ‘예수님이 가시는 십자가 길을 누가 진정으로 함께 할 수 있느냐’, ‘누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라 가느냐’ 하는 물음을 중간 중간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예수님을 찾아온 어떤 사람에게 그 길을 함께 가자고 제안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와서 나를 따라오시오.”

그러나 그 사람은 예수님의 요구에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자기가 누리고 있는 생명을 연장시키거나 단조롭고 습관적인 삶에 또 하나의 소일거리를 얻을까 하여 찾아왔으나, 원하는 대답 대신에 오히려 자기 생명을 뒤흔드는 요구, 지금 누리고 있는 것마저 포기하라는 요구에 근심하며 예수님의 길에 함께 하지 못하고 떠나갔습니다. 그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있어서 재산은 그의 생명과 같았기 때문이겠죠?

예수님의 요구는 “너의 생명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다른 생명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깨닫고 실천하라”는 요구입니다. 참된 생명은 삶을 영위하는 방법 안에서 실현되고, ‘어떻게 살 것인갗 하는 하느님 앞에서의 책임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생이라는 말이 너무 많은 오해의 소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참된 생명, 궁극적인 삶”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현상적인 덕목이 아니라 주체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요즘의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함께 사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한다는 것, 여럿이 함께 생활할 때에 내가 무엇을 해야 될지를 모른다는 것’ 입니다. 물론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면 아닐 수 있습니다. 요즘의 세태가 그러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세상이 그러니까 하고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지요.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물려주고 싶어하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재산뿐만 아니라 지금 누리고 있는 사회적 지위를 이어받게 하기 위하여 애를 쓰고, 혹은 그 지위를 상승시키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또한 신앙도 물려주기를 원합니다. 상속받은 신앙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어떤 사람처럼 습관적인 교회와 집의 왕복, 게다가 시험 때면 그것조차 하지 않는 것을 물려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 학교나 가정, 그리고 청소년 당사자가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요즘 교회교육은 뒷전으로 물러나 등한시되고 있습니다. 신앙을 물려줄 때에 우리가 쌓아 놓은 신앙의 덕목이나 교리들을 그대로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시대와 상황이 수시로 바뀌고 있습니다. 현상적인 덕목이 아니라 주체적인 그리스도인,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생활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됩니다. 그것이 교회 신앙교육의 중요한 과제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다? 그러나...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고 떠나간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둘러보시며 말합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그러자 제자들이 놀랍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놀라는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보다 어렵다.” 낙타나 코끼리가 바늘귀로 지나간다는 말은 당시에 불가능한 일을 표현하는 관용구처럼 랍비들에게 사용되어 탈무드에도 나옵니다. 이제 제자들은 깜짝 놀랍니다. 놀랐다기보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제자들이 왜 놀랐을까요? 왜 공포에 사로잡혔을까요?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이미 재물이 많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걱정할 것도 없었을 텐데. 제자들이 놀란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재물이 많은 사람’이라고 번역되었는데, 다시 정확하게 번역하면 “사용하거나 필요로 하는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살아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결국 예수님의 말은 ‘재물이 많은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가 아니고 ‘부자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어느 누구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가 됩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에 제자들은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놀란 제자들은 얼른 말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라왔습니다.” 아마 속으로는 ‘저 부자는 못했으나 우리는 당신을 따랐습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우리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나요? 우리는 어떻게 되나요?’라는 뉴앙스가 짙게 풍깁니다.

선을 긋는 것이 예수님의 뜻인가?

이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그래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은 너희가 바라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에 박해도 받겠지만 백 배나 보상을 받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여기에서 오는 세상이란 꼭 죽은 이후의 세계, 내세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종교적으로 채색된 관념에 따르면 내세가 될 수 있지만, 그 말의 뜻에 충실하자면 “변화된 새로운 세상”을 의미합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제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을 것입니다. 누구나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는 하나님 나라에서 참된 생명을 누리게 되는 특권을 보장받은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재산을 포기할 수 없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는 부자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온 제자들과 분명한 대조가 있습니다. 교회 역사에 있어서 대부분의 해석은 여기에서 그칩니다. 그리고 그 둘을 차별하여 강조합니다. 엄격한 기준을 만들어 분명한 선을 그어놓습니다.

예수를 따른 사람과 따르지 못한 사람, 예수를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선택된 사람과 버림받은 사람, 구원받은 사람과 심판을 받을 사람, 기독교인과 타종교인(이방인), 교회 안의 사람과 교회 밖의 사람, 더 나아가 자기 종파 사람과 다른 종파의 사람, 심지어는 자기 교인과 다른 교회에 다니는 사람.

둘을 나누어 놓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적으로 간주합니다. 구원과 심판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 저 세상에 있는 천국과 이 세상을 갈라놓는 것은 오늘의 기독교를 배타적인 입장에 서게 하였습니다. 제자들의 입장은 ‘우리는 저 사람보다 더 낫지요?’ ‘저 사람은 따라오지 못했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지금 당신을 따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죠.

우리가 교회에서 일하다 보면 비교하게 됩니다. ‘나는 이런 저런 일을 하는데, 저 사람은 뭐야!’ ‘내가 이만큼 하면 저 사람은 어느 정도는 해야 되지 않나?’ 함께 일하다 보면, 조금 더 많은 일을 한다고 해서 그렇지 못하는 사람보다 우월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혹은 지금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그것에 안주하여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합니다.

기대 심리를 버리라!

그러나 예수님의 마지막 말은 이러한 우리들의 생각과 제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그러나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구절은 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서도 많이 인용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서 이 말을 사용합니까? 대부분 사람이 ‘죽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물론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저는 두 가지 의미를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와 꼴찌는 순서를 말합니다. 경쟁에 묻혀 사는 우리의 눈에는 그 차이가 무척 크게 보이고, 전혀 다른 상태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둘을 서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그 차이를 없애버립니다. 어떤 조건이 되지 못하면 첫째나 꼴찌가 오십보 백보, 도진 개진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첫째와 꼴찌는 순위를 말합니다. 등수를 메길 때에는 기대 심리가 있습니다. 기대를 하게 되면 그 속에서 욕망과 욕심이 일어납니다. 그 욕심은 나에게 돌아올 결과를 미리 바라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일을 할 때에 그 결과로 내게 돌아올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비추어 볼 때, 이 말은 많은 재산을 포기하지 못해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한 부자나 모든 것을 버리고 지금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이나 차이가 없을 수 있다고 암시합니다. 지금 너희들이 나를 따라온다고 하지만 그것에 만족하여 여기에서 머무른다면 언제라도 그 순서는 바뀔 수 있다고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행동하느냐 

오늘 우리 교회는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나 교회 내적으로나 모두가 그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갈라진 민족의 통일을 위해서, 억눌린 생명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힘쓰고 애쓰는 활동에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으니까 ‘나 하나쯤이야’ 하면서 만족하고 머무르지 맙시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말에 제자들이 깜짝 놀라서 공포에 사로잡힌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생명의 궁극적인 목적에 대하여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사용하는 말의 의미가 서로 다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어떤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라고 하고, 제자들은 “구원받는 것”이라고 하고,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부자는 영생을 마치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실체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상속받으려면 무엇을 해야하냐고 묻습니다.

요즘 우리 기독교인이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바치기만 하면, 충성하기만 하면, 전통도 아니고 목사의 말에 순종하기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혀 다른 의미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가 그 나라에 들어가서 존재하는 것이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통치에 함께 참여하는 행위가 중요합니다. 전통이나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과는 무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바로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하고 행동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새로운 하느님 나라의 질서

본문을 꼼꼼히 읽으신 분은 반문할 것입니다. 30절에 예수님도 ‘내세에서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했는데요? 그러나 예수님이 영생을 받다라고 말한 것은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받아들이다, 이해하다, 모으다”입니다. 어떤 사람의 물음에 영생을 ‘지금 상속받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미래로부터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 새로운 세상에서 취할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영생에 대한 기존의 가치와 전통을 뒤엎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신분과 재산으로 영생을 누리려는 사람에 대하여 새로운 하느님 나라의 질서를 선포하셨습니다.

그 하느님 나라의 질서를 위해서 예수님은 지금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람의 아들이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죽게 될 것이라고 두 번씩이나 예고를 했습니다. 두 번째 수난예고를 들었을 때에도 제자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워했습니다(마르 9,32). 기득권을 유지하고 누리려는 질서의 근본을 흔들고 새로운 하느님의 통치를 역설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 공포에 사로잡혀 수군거립니다. 하느님의 계명을 어려서부터 잘 지켜온 그 사람이 구원받지 못하면 과연 누가 구원받겠는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왔는데, 우리도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구원받는다고 말하는데, 그 의미는 ‘구조하다, 놓아주다, 보존하다’ 입니다.

하느님의 통치에 참여하고 함께 행동해야 하는 것은 죽음을 자처하는 길

로마와 성전 지배자들의 압제에서 해방되고 생명을 보존해야 하는데, 하느님 나라를 위하여 죽으러 하느님 나라에 올라가는 예수님을 제자들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의 통치에 참여하고 함께 행동해야 하는 것, 그것은 죽음을 자처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똑바로 보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하실 수 있는 일이다. 하느님은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 여기에서 para는 속격을 취하여 행위의 주체를 나타내지만, 여격을 취하여 공간적 접근성(with; --와 함께)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는 여격을 취하여 이렇게[with] 번역할 수 있습니다. “사람과 함께라면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과 함께라면 그렇지 않다. 하느님과 함께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사람과 함께’라고 하는 것은 사람의 의지와 욕망대로 하고 그것을 하느님께 돌리려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하느님과 함께 할 때 가능합니다. 하느님의 통치는 인간이 하느님과 함께 이루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느님 나라를 향한 길을 하느님과 함께 갈 때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구원의 삶, 참된 생명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지만 하느님과 함께라면 가능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과 구체적인 삶의 상황 속에 있는 나의 뜻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0년을 살면서 깨달은 사명을 하느님의 뜻에 일치시키기 위하여 세례자 요한을 따라다니며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처음 선포하신 말씀이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이 완전히 실천되고 실현되는 구원의 세계

예수님의 수세를 떠올리면 우리나라 근대사의 최제우를 생각하게 됩니다. 동학하면 떠오르는 경구들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吳心卽汝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동경대전의 논학문에 나오는데, 천도교에서나 다른 종단에서도 동학을 연구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구절을 신과 인간의 신비적 합일로 해석합니다. 요즘 기독교에서도 영성을 말하기 위해 이 구절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신비적 합일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최제우의 세상을 구제하려는 의지가 일치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름을 스스로 ‘濟愚’라 고치고 수도하던 중에 하느님이 찾아왔습니다. 황망한 중에 정신을 차려 최제우가 하느님께 묻습니다. “어찌하여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이 때에 하느님이 대답한 말이 “내 뜻이 곧 네 뜻이기 때문이다”입니다. 세상을 구제하려는 의지에서 최제우와 하느님이 일치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하느님의 통치를 위해 하느님과 함께 행동하는 과정을 수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참된 생명, 구원은 그것이 목적이 아니라(--로부터의 구원), 하느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과정입니다(--을 향한 구원).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 만들어갈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 사랑과 인간 사랑이 완전히 실천되고 실현되는 구원의 세계를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라고 불렀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던 자가 뉘우치고 돌이켜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존재로 변화됨으로써 하느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세상을 가리킵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러한 사랑의 통치입니다.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에 막혔던 담이 허물어지고 사랑과 용서와 화해가 넘치는 평화의 세계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역사를 이어가도록 부름 받은 존재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바로 예수님이 시작한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역사를 이어나가도록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부름에 응답한 우리의 구원은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향한, 하느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구원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다른 인간, 다른 생명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느님 나라를 향한 구체적인 삶이 참된 생명을 얻은 자의 삶입니다.

예수님이 당당하게 걸어가셨던 그 길, 언제나 갈릴리의 예언자로 하느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셨던 그 길을 지금 우리가 걷고 있습니다. 그 길을 걸어갈 때에 현재에 만족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져서 머뭇거리지 맙시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그 길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함께라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할 때에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병일  dotorikey@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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