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은 제주도 모슬포이다. 가파도와 마라도가 육안으로 보이는 한국의 최남단이다. 여기서 나는 태어났고, 소년시절을 보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유독 바다를 좋아했던 것 같다. 얼굴에 많은 상흔을 갖고 있는데 이것은 거의 모두 해변의 벼랑에 넘어져 다친 것들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오전 수업이 끝나면 책가방을 집에 팽개치고, 대나무 낚싯대와 깡통, 호미를 가지고 바닷가로 나갔다. 깡통과 호미는 갯지렁이를 파서 담기 위한 것들이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갯지렁이를 파고, 바닷물이 빠지는 것을 따라서 갯바위를 타며 낚시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맹이(제주도에서 흔한 놀래기 어종), 용치놀래기, 쏨뱅이가 주 어종이었고 어쩌다 붉바리(능성어)가 올라온 경우는 대박이었다. 어린 나이에 바위는 촉촉하게 젖어 있는데다 신발은 고무신을 신고 있었으니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다치는 것은 다반사이다. 마릿수로는 대개 5, 6 마리가 고작인데, 집에 가져오면 나를 위해 지리국을 끓여주곤 했다.

▲ 갯바위 풍경, 이곳은 낚시꾼이 즐겨 찾는 손죽도이다. 가파른 암벽과 직벽의 수심, 넘실거리는 파도가 보기에 시원스럽고 낚시꾼을 유혹한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살게 된다. 이때부터 나는 바다와 낚시와는 거리가 먼 것이 되었다. 바다와 가까이 대하게 된 것은 먼 훗날 독일의 생활에서다. 여름휴가는 의례 바다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여름휴가 중 나의 옛 추억, 낚시를 희미하게나마 상기시킨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큰 아들이 행한 어처구니없는 행동 때문이다. 내 아들이 5살쯤 되었을 때 우리는 덴마크의 어느 해변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하루는 내 아들이 막대기에 실을 달고 바다에 담가 놓고 있는 것이다. “뭐를 하느냐?”고 물으니, 고기 낚는 중이라는 것이다. 미끼도 없이 고기를 낚고 있는 것이다. 그 태도가 너무 진지하여 나는 아들에게 낚싯대(루어 낚싯대)를 사서 선물하고 낚시 채비법을 알려준 적이 있다. 그 후로 나는 낚시를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 나의 큰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때 남긴 그림이다. 해저에서 다양한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을 소재로 한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물고기들이 그물을 뚫고 빠져나와 서로 자기 멋을 드러내며 헴치고 있고, 일부의 고기들은 '물고기 세계'의 평화를 깨는 상어처럼 생긴 괴물을 공격하고 저항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1994년 독일에서 귀국하여 연세대에 취업하였지만 1, 2년은 정말 정신없이 보냈다. 18년이란 오랜 세월을 독일에서 보냈으니, 그 동안 변화된 한국생활에 적응하기란 여간 힘겨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강남이 개발되기 전에 한국을 떠났다. 그러기에 한강을 넘어서면 도시 여기가 어딘지 분간이 안 되는 형편이었다. 거기다 (서양에 비해) 좁은 도로 폭에 빽빽하게 꼬리를 물고 달려가는 자동차 행렬을 보노라면 운전은 엄두도 못 냈다. 차도 없고 지리도 잘 모르니 나의 서울 생활은 단순했다. 학교 갔다 집에 오고, 집에 왔다 학교 가는 단순반복 행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의 동료교수 H가 나에게 제안해 왔다.

 “날씨도 좋은데 낚시하러 나가보지 않으시렵니까?”
 “어디로요?”
 “강화입니다.”
 나는 민물낚시를 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선뜻 간다고 대답은 했지만 자신이 없었다. 더구나 어렸을 때 참대(대나무 낚싯대) 가지고 낚시해 본 경험은 있지만 릴을 가지고 원투(遠投) 낚시를 한다는데, 어떻게 던지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H 교수의 차를 타고 서울 시내를 벗어나 한강을 끼고 달리는 김포, 강화로 가는 길목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비단 철책선의 철조망이 흉물스럽기는 했지만.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는데, 왜 이걸 모르고 살았을까? 후회되기도 했다. 이날 조과는 없었지만, 오랜만에 맛본 해방감과 농촌의 전원, 풀벌레 소리, 고요와 적막 등 내가 상상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회를 받으며 귀가할 수 있었다. 이 일이 있었던 이후 나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강과 저수지를 중심으로 낚시를 다녔다. 내심에는 고기가 잡히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낚시가 내게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다. 다시 말해 낚시하는 동안 낚시에 몰입하는 것은 내 일상과의 단절을 가져와 심적 정신적 고뇌를 차단시켜주었다. 거기에다 누구의 간섭도 없는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너무 행복했다.
 귀국 후 3년간 우리 가족은 여름방학이 되면 제주도 화순해수욕장에서 보냈다. 백사장이 좋을 뿐만 아니라, 단물이 퀄퀄 솟아나는 곳이기에 피서지로는 적격인 곳이다. 이곳에서 내 아들은 방파제 낚시를 즐겼다. 덩달아 나도 동행하여 따라할 수밖에 없었다. 잡히는 어종은 보잘 것 없는 작은 고기들이다. 아이들은 낚는 것에 재미를 붙여 밥만 먹으면 바다로 나갔다.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케 하는 장면이다. 이것이 단초가 되어 그 후 나는 바다낚시에 손대게 되었다.
 어느 가을날 안산에 사는 나의 형이 신문쪽지를 오려서 나에게 보내줬다. 그것은 요즘 서해안에서 우럭 낚시가 성황이라는 것을 보도한 리포트 기사였다. 거기에는 친절하게 인천 남항과 연안부두를 중심한 낚싯배와 연락처를 소개하고 있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바다낚시에 발을 디뎌놓기 시작했다. 지금은 주로 고흥 지방에서 선상외줄 낚시보다 갯바위 찌낚시를 즐기고 있지만, 그 만큼 낚시 여정이 – 민물낚시, 바다낚시, 선상낚시, 갯바위낚시 등 - 복잡하고 길고 긴 행로를 거쳐 오늘에 이른 것이다.

▲ 나로도의 낙조, 나로도에서 갯바위 낚시를 하다보니 벌써 해가 서녘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낚시에 손댄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낚시의 문턱으로 안내해준 동료교수 H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배신자”라고 농담한다. “민물낚시에 동행하며 벗이 될 줄 알았더니, 혼자 바다낚시로 빠져 나갔다.”고. 바다에서 태어나 살았던 나에게 민물은 너무 조용한 듯하다. 거친 파도가 이는 바다와 험난한 갯바위가 내게는 더욱 매력적이고 어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낚시를 하며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아픔은 ‘나의 큰 아들이 살아 있다면 오늘 나와 함께 이 자리에 있었을 것을’ 하면서 잊혀지지 않는 상처를 달래 본다.

박명철(전 연세대교수)  mcpar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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