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 한국인과 이주노동자

지난 10월 6일부터 10일까지 이주인권을 위한 한일 국제심포지엄에 참석차 일본 히로시마에 다녀왔다. 심포지엄에 참석하는 동안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 온 이주노동자의 모습과 70여년 전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많이 닮아 있다는 것을 느꼈다.

히로시마에는 일본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많은 재일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 그 이유는 일본의 다국적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에서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그곳에 있는데, 2차 대전 당시 군수물자를 만들던 미쓰비시 회사에서 필요한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해 조선인들을 강제로 징용해서 히로시마로 끌고 갔기 때문이었다. 또한 전쟁이 끝나고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 일본의 각지에서 한국과 가까운 히로시마에서 배를 타기 위해 왔다가 한국전쟁이 나는 바람에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그냥 히로시마에 주저앉아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히로시마는 최초로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이며, 이 원폭으로 인한 피해자들은 아직까지 그 고통이 가시지 않고 있었으며, 피폭에 대한 보상운동이 지속되고 있다. 당시 강제 징용으로 끌려와 원폭 피해를 입은 재일 한국인들도 피폭의 원인이 미쓰비시 회사에서 강제로 끌고 왔기 때문이어서 미쓰비시 회사를 상대로 한 보상운동과 소송이 진행 중이다.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회사는 강제 징용을 부인하며, 원자폭탄을 미국이 투하했기 때문에 원폭 피해를 당한 재일 한국인들에 대해 자신들이 보상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이 히로시마에 온 것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강제 징용되었다는 증거들이 드러났다.
미쓰비시 공장으로 강제징용된 것은 1939년 국민징용령이 실시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일본 후생성의 문서가 발견되었는데, 그 문서에 따르면 8만5천명을 징용하여 일본에 이주시키려 목표가 있었다는 것이다. 강제 징용은 1945년까지 이어졌는데, 1944년만 해도 미쓰비시로 공장으로 징용당한 사람이 2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당시 조선 총독부는 조선의 각 도에 징용할 조선인의 할당량을 정하여 채우도록 했다. 즉, 조선총독부가 일본의 기업에 필요한 노동자 수를 신청을 받아 각 도에 징용 영장을 발부하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처벌하였기 때문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강제 징용되어 미쓰비시에서 일했던 조선인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살펴보면, 엄격한 감시 체제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외출도 마음대로 못하고 팀장의 허가가 있어야 외출할 수 있었다. 기숙사 공간도 다다미 하나에 한사람 꼴로 배정해서 거의 집단 수용소처럼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도 좁은 컨테이너에서 여러 명이 생활하거나, 농축산이주노동자들이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과 비교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쓰비시에서 일했던 조선인들의 근무 조건은 12시간씩 2교대로 근무를 했다고 하는데, 제조업에 종사하는 이주노동자들 중에서도 기계를 멈출 수 없는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12시간씩 2교대로 근무하는 현실과 비슷하다.

작업복도 처음 한번만 지급하고 더 이상 지급하지 않았으며, 특히 먹는 것에 대해 일본 노동자들과 차별이 심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자 조선인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어느 일요일 저녁에 배식된 음식이 상해서 조선인들이 구토와 설사를 하게 되었는데, 저항의 의미로 기숙사의 불을 모두 끄고 음식을 바닥에 던지면서 강력하게 항의를 하였다. 항의가 거세지자 헌병대와 경찰서에서 나와 조사를 하고 개선을 명령하였다.
한국의 이주노동자들도 산업연수생 시절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며 100일 넘게 천막 농성과 투쟁을 통해, 부족하지만 고용허가제가 실시되어 산업연수생에서 노동자의 자격을 갖게 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런가하면 미쓰비시는 월급에서 기숙사 비용을 빼고, 후생연금도 빼고, 강제 적금이 비일비재하게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선인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임금을 적게 받아도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그 돈을 보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임금이 적어도 참고 일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처음 징용될 때 조건이 조선에 남은 가족에게도 생활비를 보내주겠다고 해서 그 말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귀국해서 돌아가 보니 약속이 전혀 지켜지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가장이 없다보니 가족들이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사업주는 이주노동자의 월급에서 기숙사비, 가스나 전기 등 시설 사용료, 연금이나 보험료 등을 공제하고, 사업장 이탈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강제적금을 들게 하여 통장을 사업주가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들을 비교하면 과거 일본에 징용된 조선인들과 우리나라 이주노동자들이 너무나 닮아 있어 안타깝다.

해방 후 미쓰비시로 강제 징용된 재일 한국인들은 1968년 미쓰비시에 미지급 임금을 지불해 달라는 교섭 시작하였다. 그 결과 지난 2007년에 가서야 미지급 임금에 대해 일부 승소하였지만 강제징용에 대한 부분은 한일협정에 의해 기각되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 이주노동자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으며,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차별과 착취에 시달린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 있는 이주노동자의 모습을 볼 때 당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 이상 재일 한국인들이 겪었던 아픈 역사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되풀이 되지 않도록 이주노동자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고 국민의 인식도 향상되어야 할 것이다.

이재산 목사(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 jasonfi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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