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2일 수요일, 맑음
어젯밤 늦게 들어온 빵기. 내가 사온 아이들 옷을 살펴보더니 너무 크단다. 한두 치수 작은 것으로 바꿔오란다. “여덟 살, 네 살 애들이 입을 옷이라고 점원이 내 준 건데?” “엄마, 시아와 시우 키가 자기 반에서 하위 10%엔 든다고 생각하세요.” 곁에서 듣고 있던 보스코가 한 마디. “나는 반에서 키가 최하위 1%였는데 걔들은 하위 10%에 든다니 우리 가계(家系)의 대단한 발전이군. 키 큰 게 발전인지는 잘 모르지만...”
태어나면서도 무엇이든 늦고 어수룩하던 시우 땜에 은근히 걱정하고 있을 며느리에게 빵고의 어렸을 적을 얘기해 줘야겠다. 유난히 몸집이 작고 피부가 까만데다 그 언행이 장난스럽기만 하여 한 집에 살던 지하엄마한테서 “토담 속의 생쥐 눈깔”이라고 놀림 받던 빵고. 그러나 정상이던 형보다 지금은 키도 더 크고 몸도 튼실하지 않은가? 하기야 빵기도 군대훈련을 마치고 사열하던 날 부대를 찾아가 보니 사열부대 맨 꽁지에 서 있었다! 그러니까 두 손주의 작은 키는 이 집안 대물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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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레사씨의 후한 인심으로 올 겨울도 군밤 호사를 누리겠다. 매년 11월 1일 “모든 성인의 축일”이면 트렌토의 쟌카를로 신부님이 당신 고향에서 가져온 알밤을 구워 카타콤바 식당에서 아이스와인(빠씨또 passito 라고 부르는 단 포도주)에 곁들여 우리 부부와 모든 살레시안에게 먹이시던 일이 생각난다. 눈 수술을 하필 오늘 받았으니 일주일 후 실밥을 뽑더라도 지리산에서 그날 군밤파티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더구나 포도주를 곁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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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으로 갈아입고 수술대에 누워 눈까풀에 마취를 하는 순간 잠들어버렸는데 깨어나서 보니까 양 눈에 널따란 테이프가 붙여져 있고 눈은 1mm정도만 남겨 더듬더듬 화장실을 겨우 찾아가게 만들어놓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라며 안과 진료실 옆방에 뉘어 놓고 얼음안대를 눈에 얹어주니까 세상이 전혀 안 보인다.
빵기가 병원으로 찾아와서 퇴원하는 차를 몰았다. 내 뒤에서 유모차라도 운전하는 기분인지 보스코는 “니 엄마 눈 안 보이니 당분간 잔소리도 안하겠지?”라며 신나는 음성이고, “아빠, 엄만요 눈이나 코 어느 것을 수술해도 입만 건재하다면 잔소리하시는데 지장이 없을 거에요.”라고 맞장구친다. 두 사람을 실눈으로 흘겨보면서 “에이~ 나도 모르겠다. 맘대로들 하셔, 성씨 남자들!”라고 했더니 빵기가 되받는 한 마디. “오늘 엄마가 하신 말씀 중에 제일 바람직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아들만 오면 뒷심을 받아선지 보스코가 나한테 한참 불손한(?) 힘을 발휘한다. (“그래, 일주일만 참자. 그런데 두 명밖에 없는 내 병사들 가운데 하나는 내일 제네바로 튈 텐데 보스코만 혼자 남아서 나한테 들볶이겠네? 좀 살살 굴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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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은 봉해졌지만 입은 봉해지지 않아서 여전히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보스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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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눈으로 일기를 쓰고 있는 이모 극성이 한참 신기하기만 한 엽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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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란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아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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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대300에 씁쓸해 하는 동료들에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