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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 사건’의 교훈 - 생존권과 일용할 양식히브리적 공공성과 한국 사회의 공공성
양대종(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생) | 승인 2014.10.30 11:11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개설된 “공공성의 신학과 윤리” 세미나(지도 : 강원돈 교수)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공공성을 실현하는 데 한국 교회가 어떤 공헌을 할 것인가를 연구하고 있다.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그리스-로마 전통의 공공성 개념과 히브리 전통의 공공성 개념을 서로 비교하는 기회가 있었다. 세미나 참여자들은 히브리적 공공성 개념을 잘 드러내는 성서 텍스트를 발굴하고 이를 해석하는 작업을 함께 진행하였다. 나는 만나 사건(출애 16:1-36)을 해석하면서 히브리적 공공성 개념의 성격을 밝히고자 했다. - 필자주

1. 이집트에서 탈출한 히브리인들이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할 때 그들에게 주어진 일용할 양식은 만나였다. 만나는 하늘에서 비같이 내렸다고 성서는 증언한다.(출16:4) 아침에 진 밖에 나가면 누구나 양식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만나를 쌓아둘 수는 없었다. 매일 필요한 만큼만 거두어 먹어야 했기에 만나는 문자 그대로 일용할 양식이었다. 그 누구도 일용할 양식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었다. 만나는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있어서 누구나 접근하여 거두어들일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이고, 그 누구에 의해서도 독점되거나 불필요하게 축적될 수 없는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공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여기에 더해서 만나는 인간이 호흡을 하도록 주어지는 공기처럼 하나님이 거저 준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일용할 양식, 곧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분이다.

히브리인들은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것에 공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지혜를 발휘하였다. 이와 같은 히브리인들의 공공성 개념은, 그 형식과 내용을 놓고 볼 때, 개인이나 가족을 넘어서서 시민공동체나 국가공동체에 관련된 사항을 공적인 것으로 보는 그리스-로마의 공공성 이해와는 분명히 다르다.  

2. 만나 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건강한 사회를 형성하는 데 고려하여야 할 여러 가지 교훈을 준다. 모세는 하루에 필요한 양식만을 구하라고 명령했다. 필요한 만큼, 먹을 만큼만 거두라는 것이다.(출16:16-18) 그러나 모세의 명령을 어기며,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결과는 부패였다.(출16:20) 만나에서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제시하는 사회가 공정한 분배와 빈부격차가 없는 사회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그 어떤 탐욕과 독점도 용납하지 않고자 하는 하나님의 강력한 의지도 읽을 수 있다. 사람들의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여겨야 할 터인데, 도리어 이를 특정인(집단)의 사적인 탐욕과 독점 아래 두게 될 때, 그런 사회는 부패하고, 썩을 수밖에 없다.

3. 만나 사건의 이야기는 생존권에 대한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온다.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인들은 이집트를 그리워하며, 그들을 이집트에서 끌어낸 모세를 원망하는 모습을 보였다.(출16:2) 그들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며, 고기 가마 옆에서 배불리 먹던 때를 회상했다.(출16:3) 그들은 일용할 양식을 얻지 못할까 불안해하면서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하늘에서 비를 내리듯이 만나를 내려주셨다. 만나는 ‘자비와 은총의 영역’에 속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일용할 양식이 노예처럼 일을 해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유무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거저 주어져야 마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나는 ‘공공의 영역’에 속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무조건적으로 허락되어야 한다는 것이 생존권의 핵심이다. 생존의 권리가 인정되고 실현되어야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을 얻는다. 따라서 생존권의 중요성이 인권 교육에서 크게 강조되어야 하고, 만인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공동체의 공적인 책임이 중시되어야 할 것이다.

4. 만나는 안식과도 직결된다. 광야의 히브리인들은 매일 만나를 거두었지만, 안식일에는 만나가 내리지 않았다. 그래서 여섯째 날에는 안식일(일곱째 날)에 필요한 양식까지 거두어 들여야 했다. 평소의 두 배인 두 오멜(1오멜=약 2리터)의 만나를 거둬들였던 것이다.(출16:22-26) 그 만나는 다른 때와는 달리 썩거나 부패하지 않았고, 안식일에 필요한 양식으로 먹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인간의 휴식에 관심을 갖고서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둬들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일용할 양식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이러한 만나 이야기는 이집트의 노예처럼 휴일에 노동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인간의 휴식과 일용할 양식을 함께 보장하는 사회, 따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생존권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자기개발의 기회도 부여하는 사회로 우리를 초대한다. 힘든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자신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는 그 무엇에 의해서도 침해받을 수 없는 모든 인간의 권리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대종(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생)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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