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에 들어와 영성적 삶의 일환으로 농사를 짓고 산지 벌써 15년째다. 그동안 가능한 경제보다 가치, 자족하는 삶, 말씀묵상과 성찰 그리고 기도에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살고자 했다. 홀로의 산골생활은 외롭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나에겐 참 은혜의 하루하루였고, 행복한 일 년 일 년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문제가 발생했다. 나의 자족하는 경제의 두 축인 산야초 효소 판매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더구나 벼농사가 망한 것이다. 물론 주변 농가도 더불어 소출이 적었지만, 나는 망해버린 수준인 것이다.
산골 삶의 경제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더구나 아무리 좋은 뜻의 삶이라 해도 농사가 망하는 것은 결코 이웃들에게 덕이 될 수도 없고, 자기 삶의 근거도 무너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 자신의 삶을 깊이 반성하는 심정으로 다시 돌이켜 성찰해 보았다. 성찰해 보니, 돈에 욕심을 비우는 것은 좋으나, 농사를 열심히는 지었으나, 잘 짓는 것엔 무척 소홀했고, 관성적으로 농사를 지어왔다는 것이 아프게 다가왔다. 
농사를 잘 지어 소출이 많고 돈을 버는 것을 떠나서, 자기가 뿌린 생명을 소중하게 모시고 잘 키우는 것은 가치 지향적 삶에서 핵심골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의식, 무의식적으로 바로 그 핵심을 놓치고 관성적으로 농사를 지어온 것이다. 주변 관행농 하시는 농민들의 농사에 대한 관심과 정성에 비하면 부끄럽기만 하다. 아무리 가치 지향적 삶이라도 현실 삶에 뿌리가 뽑히면, 철없는 관념놀음에 불과하다.
예수의 공생애 시작이 왜 그물이 찢어지는 물고기에서 시작됐는지, 예수의 말이 어찌 민중들에게 권위와 설득력과 감동이었는지 새삼 뼈저리게 다가왔다.
그래서 올해엔 새로운 각오로 농사에 임했다. 먼저 작년 농사의 실패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고, 자료와 책을 보고 배우며, 주변 농가들과의 소통과 정보교류에 힘썼다. 농사 그 자체에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영성과 농사의 통일이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벌써 올 한해 농사도 끝나고 겨울이라는 농한기에 접어든다. 지난 일 년 간 노력 끝에 그래도 관성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많은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벼농사도 대풍이고 밭농사도 작황이 아주 좋다. 무엇보다 벼농사는 그렇게 정성을 들였음에도 처음 출발은 논에 심은 모가 싹수가 노랬다. 일 년 농사 또 망쳤다 싶어 무척 힘들었다. 농사는 싹수가 노랗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다 때가 있으니깐. 늦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 돌보려했다. 그런데 수수께끼처럼 놀랍게도 잘 성장하여 대풍작을 이룬 것이다. 내가 산골에 들어와 산 이후로 가장 좋은 수확을 한 것이다. 올해엔 역설적으로 처음 출발이 좋았던 관행농 하시는 분들의 나중 수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생명을 키우는데 있어 자연과 사회적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줬다. 삶도 농사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참 많다고 생각된다. 물론 나의 노력과 농사실력보다 하늘의 덕이 크고도 크다.
주변 농민들의 칭찬과 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졌다. 참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다.
농한기엔 내년 농사를 더욱 철저히 준비하고 기도하리라 다짐해본다. 샬롬!

안태용  azaz0106@me.com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