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무려 여덟 번의 설득과 열 한번이나 되풀이 시도한 끝에...<정현진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⑦-1> 출애굽기 6장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 승인 2014.11.05 15:31
이번 <정현진 목사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일곱번째 순서는 분량상 두차례에 나눠서 싣습니다. - 편집자 주

1)  뼈대있는 가문 (6:14-27)

모세와 아론은 야곱의 12아들 가운데 레위의 후손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족보는 지나간 시간을 반성하는 동시에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내다보게 만든다. 이로써 각각의 인물의 정체성과 비중이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 나오는 족보는 출애굽기-민수기의 인물들이 창세기의 인물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아론과 그 후손의 역사적 위치와 이스라엘 안에서 그 역할이 밝혀진 것이 그런 예이다. 이로써 우리는 출애굽기의 이야기를 좀 더 넓고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족보는 이스라엘(야곱)로부터 레위를 거쳐 비느하스에 이르는 7대를 기록한 것이다. 그 내용은 족보의 내용은 레위지파에 관한 것이다. (이것이 요약압축된 것인지, 전체를 다 포괄하는 것인지에 대하여서 학자들 사이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V. Hamilton, Handbook on the Pentateuch (2005), 150-151쪽 참조).

여기 나오는 첫 이름은 야곱의 큰 아들 르우벤이다. 이로써 아론과 모세의 뿌리가 이스라엘 민족 전체와 연결되는 것이다. 레위의 아들 셋 가운데 오직 고핫의 후손만이 4대에 걸쳐 기록되었다. 모세와 아론은 그로부터 5대에 조상에 속한다. 그 중심축은 이스라엘(야곱), 레위, 크핫, 아므람, 아론, 엘리아살, 비느하스로 이어진다. 특히 마지막에 나오는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는 여호수아 시대를 거쳐 사사시대 사람으로(삿 20:28), 제사장 아론의 대가 성공적으로 이어짐을 보여주고 있다. 비느하스란 말은 ‘검은 피부를 가진 이’란 뜻이다. 그는 수 22:13, 30-32와 삿 20:28에서 지도자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등장하며, 하나님은 그에게 평화의 언약을 주실 뿐만 아니라,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도 주셨다(민 25:13). 
 

   
▲ 제사장 아론(두라 유로포스의 시나고그 벽화, 주후 3세기)
구약성경의 다른 족보와 달리 여기에는 여성의 이름도 나온다: 아므람의 아내 요게벳(아론과 모세의 어머니; LXX와 시리아역본인 페쉬타에는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의 이름도 들어 있다), 아론의 아내 엘리세바, 엘르아살의 익명의 아내 (브디엘의 딸, 아론의 며느리). 시므온의 아들인 사울의 어미가 가나안 여인이라 밝힘으로써(15절), 하나님 구원 사역의 범주가 유대인 남성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매우 폭넓은 것임을 암시해주고 있다(마 1:1-17에도 여성 5명 가운데 유대인 아닌 사람이 4명이다). 그리고 아론의 아내 엘리세바는 유다지파의 암미나답의 딸이다. 그녀의 남동생은 나손이다(23절). 이 두 사람 이름은 예수님의 족보에도 나온다(마 1:4; 눅 3:33 참조). 이는 레위지파와 유다지파가 결합하여(정치와 종교의 결합 또는 야합?) 이스라엘의 제사장직을 이어갔다는 뜻이다.

이 족보의 또 다른 특징은 모세가 아론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는 점이다. 이름이 기록된 순서도, 물론 아론이 장자인 탓도 있지만, 다른 곳들과는 달리, 아론이 모세보다 먼저 나온다(20, 26절). 아론의 아내와 아들들 이름은 기록되었으나, 모세의 식구 이름을 생략되었다. 이는 아마 예언자직분은 계승되지 않으나(후대 사람들에게 모세도 예언자로 불려졌다), 제사장 직분은 세습되었던 것을 반영하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이를 제사장문서(P문서)로 규정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진정한 제사장직에 향한 출애굽기의 높은 관심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물론 이사야의 아들들(사 7:3 스알야숩; 사 8:3 마헤르-샬랄-하스-바스)과 호세아의 자녀들 (호 1:4 이즈르엘; 1;6-7 로루하마; 1:8 로암미) 등의 이름이 기록되기는 하였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을 소개하려는 뜻보다는 예언적 의미를 강조하는 수단이었다. 성경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예언자로 활동한 경우가 하나도 없다. 

이 족보에서 모세의 아버지 아므람(출 2:1에는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라고만 언급됨)은 친족인 요게벳(고모)과 결혼하였다. 이런 일은 후대에 금지되었으며(레 18:12 너는 네 고모의 하체를 범하지 말라 그는 네 아버지의 살붙이니라), 벌을 받을 사항이다(레  20:19 네 이모나 고모의 하체를 범하지 말지니 이는 살붙이의 하체인즉 그들이 그들의 죄를 담당하리라). 물론 이런 일들은 위와같은 율법이 제정되기 이전의 일이고, 그 당시 일반적인 풍속에도 저촉되지 않기에 전혀 문제되지 않은 듯하다(70인역은 이 난제를 피하려고, 요게벳[= 여호와 + 무겁다, 비중이 높다, 영화롭다]을 아므람의 고모가 아니라, 사촌[qugate,ra tou/ avdelfou/ tou/ patro.j auvtou/]으로 표기하였다). 출애굽기에는 요게벳이 레위의 딸이라 되어 있는데, 이는 레위집안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모세는 나중에 히브리 동족출신이 아닌 이디오피아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가, 형과 누이에게 비난을 받았다(민 12:1).

14절 맨 앞에는 “그들의 조상을 따라 집의 어른은...”이란 말(라쉐 베트-아보탐 = ‘그들 아버지들의 집안의 (우두)머리들’)이 나온다. 여기서 어른이라 옮겨진 말(로쉬)은 머리란 뜻인데, 그 뜻을 확장되어 ‘우두머리, 지도자, 으뜸’ 등을 의미한다. 이와같은 표현이 민 7:2에도 나온다. 거기서 이것은 이스라엘 각 지파의 대표자를 가리킨다. 14절 맨 뒤에 나오는 ‘이들은 르우벤의 족장이요’ (미쉬페호트 레우벤)에서 ‘족장’이라 옮겨진 말(미쉬파카ㅎ)은 본디 족속(대상 2:55), 종족(창 10:5), 가족(신 29:17) 을 뜻하는 말이다. 이는 부족이나 민족 같이 커다란 단위의 집단을 혈연관계에 따라 보다 작게 나눈 집단(씨족, 가족)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말은 ‘가족들, 씨족들’이라 옮겨야 마땅하다. 이 낱말은 14, 15, 17, 19, 24 25에 계속 나오는데, 가족 또는 족보라고 번역되었다.

뼈대있는 가문 출신이라고 그 사람이 저절로 훌륭하게 살거나 본보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고라같은 사람은 모세의 지도자 자리를 넘보며 대적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였다(민 16:1-3, 28-35). 아론의 두 아들은 제사장직에 오른 뒤에 하나님께서 지정하시지 않은 불로 제사를 드리다가 심판을 받았다(레 10:1-2). 모세의 누이 미리암은 모세를 비난하다가 문둥병에 걸렸다(민 12:9-10). 이런 뜻에서 오블리스 노블리제가 이들에게 더욱 철저히 적용되었던 것이다.

이 족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그대로 성취된 것을 보여준다(창 15: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 이스라엘 자손은 레위에서 아론까지 4세대만에 출애굽을 하였던 것이다(430년의 이집트 체류 출 12:40; 갈 3:17; 행 7:6 참조). 여기 나오는 4세대는 하나님의 징벌이 미치는 기간의 최대치를 가리킨다(출 20:15b = 신 5:9b). 성경에는 또한 이 4세대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기간의 최대치를 가리키기도 한다: i)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되돌아오는 세대(창 15:16); ii) 바빌론으로부터 가나안으로 되돌아 옴 - 모든 나라가 그와[1세대] 그의 아들과[2세대] 손자를[3세대] 그 땅의 기한이 이르기까지 섬기리라 또한 많은 나라들과 큰 왕들이 그 자신을[4세대] 섬기리라 (렘 27:7).

2) 되풀이되는 설득 (출 6:28-7:1)

출 6:1-13은 여호와가 누구인지를, 6,14-27은 아론이 누구인지를, 그리고 6:28-7:1은 여호와께서 강한 손으로 역사하시게 된 배경이 각각 언급되었다. 그리고 출 7:2-7은 모세와 아론을 하나님께서 새롭게 부르고, 보내시는 이야기이다.

따바르(= 말하다)란 낱말이 거듭 나오면서 출 6:28-29에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는 사실이 크게 강조되었다. 말씀하신 내용의 내 마디는 ‘나는 여호와라’ (아니 야ㅎ웨)이다.

출 6:28-7:1의 내용은 겉보기에 출 6:10-13과 많이 닮았다. 그렇지만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차이가 있다: i) 6:12에서 모세는 파라오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인데, 이는 자신에게 그를 설득할만한 언변이 부족하기(문자 그대로 하면, 할례를 받지 못한 입술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성경에는 할례받지 못한 입술이란 표현 말고도 '할례받지 못한 귀'(렘 6:10), '할례받지 못한 마음'(레 26:41;렘 9:26) 등이 나온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지 않는 태도를 가리키는 것이다. 6:30에서 모세는 그 순서를 바꾸어 자신의 입술이 할례를 받지 못하였기에 파라오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로써 모세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에 걸림돌의 핵심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강조하다가(6:12), 이제는 파라오에게 있다는 것으로 문제의 초점을 바꾸어 놓았다(Hamilton, Exodus 110); ii)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부대별로 편성하여’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라고 말씀하셨다. 차바는 아카드말 또는 이디오피아말에서 ‘싸우러 나가다, 전쟁에 나가다, 싸우다'는 뜻이다. 우가릿말에서는 이 말 자체로 ’전사, 군대‘를 가리키기에, 체바오트란 말이 동사에서 유래하였는지, 이 명사에서 나왔는지에 대해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어쨌든 이스라엘 자손을 부대로 편성하여 이집트땅에서 이끌어내라는 것은 전에 언급되지 않던 새로운 말씀이다. 이는 티게이와 헤밀턴이 적절하게 해석하였듯이, 이스라엘 자손은 노예가 몰래 도망쳐 나오듯 기죽은 모습으로 빠져나오지 말고, 마치 군대가 행진하듯이, 행렬을 갖추어 목적지(약속의 땅)를 향하여 당당하게 나가라는 뜻이다.

출 6:12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라’고 전하라”고 말씀하였다. 이에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듣겠습니까! 저는 입이 둔한 자입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 뒤에 아론과 모세의 족보가 나온다. 거기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서 모세와 아론을 출애굽의 도구로 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나타는 하나님의 말씀(출 6:13 + 출 6:26-27)이 그 앞과 뒤에 소개되었다. 그리고 출 6:28-30절에 출 6:12의 대화가 다시 이어지고 있다.

출 7:1을 개역개정 등 많은 성경은 ‘하나님과 같이 되게’ 또는 ‘신과 같이 되게’ 라고 옮겼다. 이는 모세가 파라오에게는 신과 같이 두려운 존재라는 뉘앙스를 풍기지만, 이것은 본문을 직역한 것이 아니다. 여호와는 모세에게 ‘내가 너를 바로에게 하나님(엘로힘)이 되게 하였다’ 라고 말씀하셨다(출 4:16 참조). 이 사실을 강조하려고, 출 7:1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볼지어다’ (르에 ⟵ 라아) 라며 주의를 강력하게 환기시키는 어구(ein Partikel der Aufmerksamkeitserregung)로 시작되었다. 이런 경우에 흔히 쓰이는 힌네(= 브힌네) 와 그 용법이 거의 같지만 굳이 구별하자면, 이 낱말은 주로 어떤 약속이나 지명(appointment)을 의미하곤 한다(출 31:2; 렘 1:10; 신 1:8, 21; 수 6:2 등 참조). 여기에 쓰인 동사 나탄은 성경에 천구백번 정도 나오는 낱말인데, 그 뜻은 대체로 i) 주다; ii) 두다, 놓다(창 1:17; 출 7:4; 미 3:5); iii) ...이 되게 하다, 만들다(창 17:5; 41:43이다. 본문에서 이 말(네탓티카)은 ‘내가 너를 (엘로힘)이 되게 하였다 또는 내가 너를 엘로힘의 위치에 올려놓았다’는 뜻으로 여호와께서 자신의 권위와 능력을 파라오 앞에 설 모세에게 완벽하게 부여하셨다는 뜻으로 쓰였다. 일찍이 하나님은 모세를 그 형 아론에게도 엘로힘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출 4:16).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론을 예언자로 붙여 주셨다(출 4:15; 행 14:11-13 사도 바울과 사도 바나바의 관계 참조). 개역개정은 이 부분에서 나비라는 히브리말을 예언자가 아니라, 대언자로 올바르게 번역하였다. 본디 아카드말 나부(= 부르다; 명사형은 나비투 = 부르는 사람)에서 온 이 말을 그동안 학자들은 올브라이트의 제안에 따라 수동형으로 해석해 왔다(부름받다, 부름받은 사람). 그렇지만 근래에는 이를 능동형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하나님 이름을) 부르다, (하나님께) 간구하다; 하나님께 간구하는 사람, 하나님 이름을 부르는 사람(D. E. Fleming, The etymological Origins of the Hebrew nābû: The one who invokes God, CBQ 55, 1993, 217-224쪽; Lester L. Grabbe, The Priests in the Prophets-The Portrayal of Priests, Prophets, 2004. 61-62쪽). 이로써 모세는 더 이상 망설이거나 두려워할 것 없이 곧바로 파라오에게 나갈 수 있는 조건이 채워진 것이다).

3) 모세를 끝까지 설득하시는 하나님 (7:2-7)

‘그러나 내가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이집트 땅에서 많이 일으킬 것이다’(출 7:3 직역)의 의미를 밝혀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에 대한 학자들 의견도 여러 가지로 갈리는데, 몇 가지만 예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i) 이를 심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곧 모세의 요구사항을 듣는 순간 파라오는 심사가 뒤틀렸고, 그 얼굴을 보거나 그가 한 말을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감정이 꼬였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표적 열 한 가지 이야기 중에는 그렇게 추론할 여지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출 7:3은 분명히 이렇지 않다.
ii) 어떤 학자들은 이를 예정론 교리 또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는 신학적 입장에 따라 해석하기도 한다. 만일 그렇다면, 파라오는 단순히 인형극의 배우 역할만 하는 것이다. 예정론을 여기에 극단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지만 파라오의 자유의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전적으로 작용하였다는 주장도 성경과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iii) 다른 학자들은 이것이 분문의 발전과정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곧 후대 편집자(편찬자)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던 초자연적인 이적에 관한 예전의 전승을 당대의 사람들에게 설명해주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이를테면 Childs, Exodus, 174쪽; Janzen 97쪽 이하).
iv) 또 어떤 학자들은 위의 주장들 가운데 어느 부분을 확대-강조하며 받아들이는가 하면 다른 부분을 최소화-무시하며 받아들인다(Fretheim, Exodus, 96쪽 이하).

어려운 문제를 놓고 씨름하는 학자들의 이런 노력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설명을 들어도 우리 손에는 그 의미가 얼른 손에 잡히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마 출 4:24-26절처럼 이 구절의 의미도 안개 속에 가려져 있는 듯하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곧 파라오의 마음이 완강해진 것과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기적을 일으키시는 것이 매우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전달된  자신의 계획을 파라오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하시려고 이 표적을 일으키셨다. 출 7:5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유일하신 분이시기에, 파라오의 마음도 그 분의 통치권 아래 있는 것이다. 

우선 출 7:3의 와우접속사를 ‘그리고’ (KJV)로 할 것이냐, ‘그러나’ (NASB, ESV)로 할 것이냐가 문제다. 문맥으로 보면, 뒤에 것이 더 알맞은 것 같다. 공동번역개정판과 표준새번역 및 대부분의 성경도 이를 ‘그러나’로 옮기고 있다. 여기 나오는 주어 ‘나’(아니 = 여호와)라는 인칭대명사는 출 7:1의 ‘너’(앗타 = 모세)와 대칭관계에 있다. 행동의 주체가 인칭대명사로 이렇게 강조된 것은 앞으로 여호와, 모세 및 아론이 만들어 나갈 새로운 역사를 긴장감어린 눈으로 살펴보게 만든다. 출 7:3-5에서 여호와는 되풀이 ‘나, 나의’ 라는 1인칭화법으로 이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집트에 새로 등장한 파라오가 요셉이 누구인지 몰랐었는데(출 1:8), 지금의 파라오는 여호와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출 7:5). 하나님은 출 6장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나는 여호와라’는 말씀을 5차례 쓰셨는데(6:2, 6, 7, 8, 29), 이집트인에게도 같은 것을 5차례 되풀이 하셨다(7:5, 17; 8:22; 14:4, 18). 이로써 하나님은 자신을 이스라엘 자손에게도, 이집트인에게도 똑같이 여호와(주님)로 알리고자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다는 말(카샤의 미완료 히필)은 출 13:15; 삼 19:44에도 나오는데, 비유적인 용법으로 쓰였다. 완악하다는 말(카사)는 본디 단단하다, 어렵다, 심하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쓰임새에 따라 그 뜻이 워낙 다양해져서, 문맥에 비추어 그 의미를 밝혀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마음(심장)’이란 낱말로 함께 나오는 경우는 여기 말고도 출 4:21; 겔 3:7; 시 95:8; 잠 28:14 등인데, 한결 같이 하나님 말씀(뜻)에 순종하지 않는 태도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심장(마음) 대신에 목과 함께 쓰여 ‘목이 굳은’이란 뜻(출 32:9; 33:3, 5; 34:9; 신 9:6, 13; 31:27), 얼굴과 함께 쓰여 ‘얼굴이 뻔뻔한’이란 뜻이 되기도 한다(겔 2:4a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 이는 아마도 신 10:16(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에서 유래한 표현일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거역하는 사람을 향해 손을 보내거나(출 7:4 나탄 야드 브), 펴시거나(7:5 삐느토티 에트- 야디), 뻗으신다(출 22:8; 삼상 24:10; 26:11; 시 55:20 샬라흐 야드 브) 또는 그 손을 그들에게 거슬려서(전치사 ) 또는 향하여(전치사 ) 치시거나(나타 야드) 뻗으신다(샬라흐 야드). 이런 표현들은 성경에 셀 수 없이 많이 나오는데, 여기서 손은 한결 같이 인간의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개입을 나타내고 있다. 그 개입의 내용은 구원이 아니라, 징계(심판)이다. 신명기에서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펴신 팔’은 구원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신 4:34; 5:15; 7:19; 11:2; 26:8). 이런 표현은 이집트 문헌에서도 낯설지 않다. 파라오 라므세스 II는 ‘강한 팔’로, 프사메티쿠스 II는 ‘강력한 팔’로, 그의 아들 아프리스는 ‘근육질의 팔을 가진 자’로 각각 불리곤 하였다(Lundbom, 2004, 102쪽; Hamilton, Exodus. 114쪽).

하나님의 설득을 모세와 아론은 결국 받아들였다(출 7:6). 이제 남은 것은 파라오가, 모세와 아론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계획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여기에는 이미 11가지 기적이 잉태되고 있다. 하나님 말씀(사명)을 받아들일 자가 모세와 아론일 뿐만 아니라, 이집트의 파라오라는 점에서.

모세의 소명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무려 여덟 차례에 걸쳐 그를 설득하신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T. E. Fretheim, Exodus, 1991, 52쪽):

모세의 거절(망설임) 하나님의 설득(약속)
3;11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3:12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3:13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3:14-22 ...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
4:1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4:2-9 ...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
4:10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직역:  ‘오 주여, 말씀의 사람(a man of words)이 저는 아니나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4: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4:13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 ‘셀라크-나 쁘야드-팃슬라크’ 인데, 이는 ‘진실로 구하옵나니, 보냄받을 만한 능력(손)이 있는 자를 보내주소서’ 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을 보내달라는 것이다) 4:14-16 ... 그가(아론이)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5:22-23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 6:1-8 ...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
6:12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6:13-29 ...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왕 바로에게 다 말하라
6:30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 7:1-5 ...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psalmen@hanmail.net

<저작권자 © 에큐메니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한국기독교회관 503호  |  제호 : 에큐메니안
대표전화 : 070-4252-0176  |  팩스 : 0303-3442-0176  |  등록번호 : 서울 자 00392  |  등록일 : 2012.10.22
발행인 : 홍인식  |  편집인 : 이정훈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인식  |  E-mail : webmaster@ecumenian.com
Copyright © 2023 에큐메니안.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