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는 늘 빚진 마음이 있다. 내 나이 또래의 친구들이 70년대 소위 ‘월남전’에 파송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 통일전쟁에 가서 미국의 용병으로 수많은 베트남인들을 무고하게  학살했으니 어떻게 그 피값을 갚을지 항상 죄송한 마음뿐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베트남전쟁 파병에 대해 사과하였고, 베트남 사람들도 더 이상 이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고 하지만. 현재 베트남 사람들은 과거를 잊고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을뿐더러 이주민 중에서 중국 다음으로 많은 베트남인들이 한국에  와있다.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에도 베트남공동체가 함께 사무실을 쓰면서 베트남에서 국제 결혼하여 한국에 온 원옥금이라는 분이 베트남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죄송한 마음으로 베트남을 좀 더 알기 위해, 그리고 베트남의 가난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트립티 식구들과 함께 디엔비엔푸로 커피열매를 따러 갔다. 

▲ 커피나무에 열린 커피열매

지난 6월 미얀마에서 귀국하면서 베트남 하이롱에 소재한 트립티 카페에 들른 적이 있다. 베트남 트립티 카페는 한국에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트립티에서 커피 교육을 받은 황반 씨가 5월에 개설한 곳이다. 개업을 축하하고 또한 상호협력과 지원을 논의하기 위해서 방문하였다. 황반 씨는 한국에서 힘들게 번 돈을 모두 투자해서 3층 건물을 짓고 그곳에 트립티 카페를 열었다. 아직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직접 커피를 로스팅 하는 등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었다. 우리는 해외 트립티 카페 1호인 태국 치앙마이점 개소식에서 받은 감사헌금을 이곳 2호점에 전달하였다.  카페운영 전반에 대해 지도를 하면서 디엔비엔푸에서 생산되는 아라비카 종의 커피가 뛰어난 향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커피열매를 수확하는 10월에 함께 디엔비엔푸를 방문하여 열매를 따기로 약속하였다.

▲ 베트남 트립티의 황반씨에게 기술 지도를 하는 필자

10월 27일 11시02분 비엣젯 항공기를 타고 하노이로 출발하였다. 일행은 모두 5명. 트립티를 운영하는 필자와 박미성 상임이사, 최헌규 감사, 김헌래 목사와 정현석 대표 등이다. 김헌래 목사는 카페 외할머니의 대표로 기독교 매스컴에서 수없이 보도된, 나름 커피목회를 하는 전문가이고 정현석 대표는 직접 커피묘목을 파주에서 재배하는 농부로서 모두 트립티 식구이다.  우리는 경제적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 가장  저렴한 비엣젯 항공표를 구입했다. 일인당 왕복 비행기표 값이 27만 원 정도이고 모든 경비를 60만원으로 책정했으니 다른 일반 여행과 비교도 안 되는 알뜰한 예산이었다. 비엣젯 항공은 저가항공이지만, 다른 국내 저가항공과는 달리 식수와 식사를 제공하는 편의를 제공해주어 저가항공지만 전혀 불편한 점이 없었다. 더구나 식사가 부족하다고 하니 한 그릇을 더 주는 친절함도 있으니….

▲ 비엣젯 항공기

하노이 공항에 2시10분에 도착하여 짐을 찾고 공항 밖으로 나가니 황반 씨가 15인승 승합차를 빌려서 기다리고 있었다. 베트남은 무비자로 출입국신고서도 작성하지 않고 곧바로 나올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3시경 곧장 디엔비엔푸로 출발하였다. 하노이는 한국과 달리 늦여름 날씨라 겉옷을 벗고 널찍하게 앉아 편안한 자세로 창밖을 보았다.  베트남의 수도답게 도로는 시원시원하게 뚫려 있고, 고층빌딩도 높게 솟아서 굉장히 번화한 큰 도시로 느껴졌다. 롯데에서 지은 62층 쌍둥이빌딩을 지나면서 베트남의 경제성장과 한국의 경제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하노이 외곽으로 들어서서 잠시 저녁식사를 하려고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탁이 몇 개뿐이라서 우리가 앉으니 홀이 가득 찬 기분이다. 포(pho)는 국수 전문집이라 모두 쌀국수를 시켜서 먹었다. 역시 베트남 쌀국수는 맛있다.

▲ 하노이 시내에 있는 62층 롯데빌딩

차가 하노이를 벗어나자 금방 어둡기 시작했다. 한국과 베트남은 2시간의 시차가 있어서 더 빨리 어두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차를 운전하는 분은 티엔이라는 분인데, 그 분은 매우 침착하고 운전베테랑이다. 이곳을 수없이 많이 운행하였다고 하니 안심하고 잠을 청하였다. 배가 고파 눈을 뜨니 사방이 컴컴하다. 오랫동안 잠을 잔 것 같아 시간을 보니 9시였다. 우리는 길가에 허름한 음식점에 차를 댔다. 하늘은 온통 별빛으로 검은 헝겊에 수를 놓고 있다. 이 집은 밥을 파는 집(com)이다. 돼지고기와 야채볶음 등을 주문했다. 아이는 식당 한 옆에 단잠을 잔다. 부부는 매우 빠른 손놀림으로 음식을 만든다. 특히 남편이 어둔 주방에서 시뻘건 불에 야채를 볶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금방 센 불로 조리된 음식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식당 주인장은 늦은 시간 찾아온 손님이 고마웠는지 양귀비꽃으로 담은 이 지방의 토속주를 내온다. 이곳에서는 양귀비가 야생으로 자라고 있어서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술에 넣는다고 한다.

▲ 우리가 탄 15인승 승합차가 안이 선생님 집에 주차해 있다

우리가 목적지로 삼은 디엔 비엔(Bản Nà Tấu, Điện Biên)지방은 베트남 북서부에 위치한 곳으로 라오스와 국경을 인접하고 있다. 대부분 산악지대라 승합차가 몸부림을 친다. 더구나 고개를 수없이 넘다보니 차가 속력을 내지 못한다. 길옆을 내려다보니 깎아지른 절벽이고 그 밑 저 멀리 불빛이 보인다. 낮이면 절벽과 저 멀리 마을을 감상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는 버스로 12시간, 차를 임대할 경우는 8시간이 걸린다고 하여 비용이 들더라고 차를 임대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거의 쉬지 않고 달렸는데도 목적지에 도착하니 새벽 2시나 되었다. 학교선생님이자 작은 커피농장 주인인 안이 씨가 내어준 집에 짐을 풀었다. 집주인이 비워준 방 하나와 거실에 각자 알아서 잠자리를 폈다. 긴 여행에 지친 나는 잠자리를 살피지 못한 체 그냥 곯아떨어졌다.

최의팔 목사  euip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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