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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당하는 사람의 행복<정현진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⑦-2> 출애굽기 6장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 승인 2014.11.18 11:32

이번 <정현진 목사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일곱번째 순서는 분량상 두차례에 나눠서 싣습니다. - 편집자 주

* 설교힌트

1) 신앙의 맥 이어가기:

출 6장에는 레위 가문의 족보가 나온다. 아론과 모세는 야곱과 레아 사이에 태어난 세째 아들 레위의 후손이다. 레위와 함께 르우벤과 시몬이 언급되는 것은 이들 세 사람의 자랑스럽지 못한 전력(창 49:3-7)을 생각나게 한다. 이로써 성경은 하나님의 선택이 그들 자신의 탁월함에 연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과 계획에 입각한 것임을 분명히 하려는 듯하다. 곧 아론과 모세는 그들 조상의 우수하고 뛰어난 혈통 때문에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 때문에 쓰임을 받은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족보에는 대를 이어 하나님 안에 거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와 있다. 이 족보는 대를 이어가며, 하나님을 섬기는 가족의 역사인 것이다.

2) 영적인 롤모델 되기:

족보는 자기 가문(문중)에서 본보기가 될 사람을 회상하고 본받게 하는 데 그 특성이 있다. 출 6장의 족보에 있는 인물들 중에도 영적인 롤 모델이 되는 사람과 반면교사가 되는 사람이 있다.

교회는 30년사, 50년사, 100년사 등 일정 기간에 역사책을 내곤 한다. 거기 새겨진 제직(목회자, 장로, 권사, 집사)의 이름(또는 사진)을 대할 때, 영적인 자녀들, 영적인 후배들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롤모델? 반면교사? 가정에서도 이와 같다. 자녀, 손자소녀, 또 그 후손이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를 어떤 인상으로 기억할까? 오늘 우리의 몸가짐을 후배와 후손이 보고 느끼며, 마음속에 인상을 새기곤 한다. 이런 뜻에서 오늘 우리의 몸가짐, 마음가짐은 참으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3) 가문이나 혈통의 자랑은 부질없는 것:

레위가문의 족보에는 아론과 모세같이 이스라엘 자손 대대로 본받을 아름다운 흔적을 남긴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라같이 부끄러운 유산을 남긴 사람도 있다. 이런 것은 아마 모든 가문에 다 똑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문이나 혈통의 자랑은 부질없는 짓이다. 사도 바울은 족보 이야기를 늘어놓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교훈하였다(딤전 1:4; 딛 3:9).

청장관(靑莊館) 이덕무는 사소절에서 ‘가문을 따지고 어느 가문이 높으니 낮으니, 어느 가문 출신이냐를 따지면서 은근히 가문을 자랑하는 것(家閥高下)’은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할 이야기 아니라고 하였다(士小節[下], 婦儀). 이는 자신이 그렇게 자랑할 경지에 이른 것인지를 스스로 살피기보다는, 조상의 음덕에 묻혀 무임승차하려는 검은 속셈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4) 열 번 찍어 (?)

우리 옛말에 ‘열 번 찍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고 하였다. 그런 경우가 아주 드물게 있기는 한 모양이다. 이집트의 파라오를 보면 ....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통해 그를 11번(12번?) 찍어서야 겨우 넘어갔던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을 홍해바다까지 뒤쫓아왔던 것을 감안하면, 무려 12번(13번?)이다. 아니다. 파라오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끝까지 완고(완강)하게 굴다가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역사 앞에 무릎을 꿇었을 뿐이다.

5) 설득당하는 사람의 행복

모세와 파라오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일까? 둘 다 어떤 사명(사역)이 주어질 때, 거절(거부)부터 하였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설득하시자 모세는 여덟 번 만에 고집을 꺾었다. 파라오는 끝까지 고집을 부리다가 11가지 표적으로 실컷 얻어터지고 나서야 마지못해 고집을 버렸다. 그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런 뜻에서 모세는 설득당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파라오는 설득당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은 사람들은 다 하나님과 말이 통하는 사람들, 곧 설득당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6) 하나님을 보여주며 사는 사람:

모세와 아론은 한편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다른 한편으로 이집트인(파라오)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가를 보여주는 통로로 쓰임을 받았다(출 7:1-2). 오늘의 우리도 이와 같다. 이런 뜻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지에 비유하였다(고후 3:3). 신앙인 우리가 말씀대로 사는 것을 보여줄 때, 우리 이웃은 ‘저 사람을 보니 진짜로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을 보여주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자기 생활에 적용하며 살아간다. 그는 ‘복음을 살아내는’ 사람인 것이다.

   
 
7) 겸손과 온유는 지도자의 필수요건: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두 번씩이나 하나님(엘로힘)이라고 불러 주셨다(출 4:16; 7:1). 그렇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아론을 향해 ‘형님, 여호와께서 나를 형님의 하나님으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오’ 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 모세는 이 세상에 사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욱 더 겸손한 사람이었다 (민 12:3 직역). 사실 그는 본질적으로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었다. 이런 뜻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하나님의 부름 받은 사람에게 영원한 본보기가 된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전 11;1)

겸손과 온유의 본보기는 우리 구주 예수이시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엡 6:7),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 3:23) 고 권면하였다.

8) 믿음의 동역자

아론과 모세는 형제 사이이다. 그 둘은 출애굽 구원역사에서 단짝이요, 동역자였다. 성경에 그 이름이 기록된 이유는 혈통 때문이 아니라, 둘이 다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았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두 사람이 이상이 동역자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 합력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사도 바나바와 바울, 사도 바울과 디모데 등등).

9) 뿌린 대로 거둔다

이집트 및 광야생활 중에 모세는 11번 이상의 반대와 저항에 부딪혔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 쓰시기까지 8번이나 설득하시고 11번이나 되풀이 시도하실 만큼, 그가 망설이거나 뒤로 물러나려 하였듯이. 이것이 우연일까? 세상만사가 반드시 뿌리대로 거두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세상의 진실(현실)인 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리라.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psalm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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