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8일, 아침에 눈을 뜨니 6시, 숙소가 길옆에 위치해 있어서 지나가는 차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시끄러운 소리는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고성. 할 수 없이 피곤한 몸을 깨우려고 샤워를 하고 나니 일행 세 사람은 이미 마을을 산책하고 온다. 그들은 몇 가지의 먹을거리를 사왔는데 입에 당기지 않는다. 너무 음식이 달아서 그런 것 같다. 오른 쪽 이웃집에 가보니 그 집에서는 마침 체리상태의 커피를 물에 넣고 체리를 벗기고 있다. 시멘트로 커다랗게 만든 통에 체리커피를 넣고 발로 짓이긴다. 그리고 그 옆 마당에는 체리가 벗겨진 파치먼트를 말리고 있다. 카메라를 대니 웃으면서 포즈를 취해준다. 왼쪽 집에 가니 마침 술을 빚고 있다. 커다란 드럼통을 이용해서 불을 지펴 술을 만들고 있어서 한 모금 시음을 해보니 맛이 좋다. 길거리에 나서니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걸어서 가는 학생,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학생, 모두가 빨간 띠와 연결된 가방을 메고 가서 멀리서도 눈에 잘 뜨인다.

▲ 발로 커피열매를 짓이겨 체리를 벗기고 파치먼트 커피로 만들고 있다.

▲ 카페 무엉앙

모닝커피를 하려고 카페 ‘무엉앙’에 들렸다. 식당이나 커피숍에서 커피를 주문하면 즉석에서 커피원두를 우릴 수 있도록 알루미늄 필터를 커피 잔 위에 올려주는 것이 보통이다. 알루미늄 필터 안에 커피가루를 넣고 뜨거운 물을 넣어 천천히 커피가 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커피 향을 음미하며 알루미늄 필터에서 커피가 걸러지기를 여유롭게 기다리는 시간이 즐겁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일행이 건너편 가게에서 쌀전분말이와 계란반죽 그리고 곤달걀을 먹고 있다. 곤달걀은 부화된 계란을 삶아서 먹는 것인데,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다른 것들은 입맛이 당기지 않는다. 뱃속도 느글거려 다시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시는데 맛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베트남식 드립퍼로 커피를 내렸는데, 너무 식어서 그런 것 같다. 연유를 더 달라고 하고 뜨거운 물을 더 섞으니 그런 대로 마실만하다. 마침 카페 주인이 들어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페 주인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커피농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협동조합을 만들어 한국에도 한번 수출하였다고 한다. 원두가격을 물으니 1kg 당 4천 원 정도라고 하니 그렇게 비싼 값은 아닌 것 같다.

베트남은 브라질에 이어 세계 2위 커피 생산국으로, 아시아에서 커피 문화가 가장 발달된 나라 중 한 곳이다. 베트남 사람은 아침식사 전후에 커피를 마시며 갈증을 해소한다. 또한 커피에 연유를 넣어 차갑게 마시는 카페스어농(Ca Phe Sua Nong)을 즐겨 마신다. 대표적 커피 원두 브랜드는 쭝응우엔(Trung Nguyen)과 하이랜드(Highlands)라고 한다. 우리가 마시는 대부분의 인스턴트커피는 베트남에서 재배된 것이다. 실제로 베트남 커피가 우리나라 전체 커피 수입 물량의 40%를 차지한다.  인스턴트커피에 주로 쓰이는 로부스타 커피의 세계 최대 생산국으로, 세계 1위 커피생산국으로 도약하기 위하여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로부스타 종뿐만 아니라 훌륭한  아라비카 종 커피도 생산되고 있다.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다람쥐커피, 사향고양이커피는 잘 알려진 값비싼 최고급 원두이다.

▲ 학교에 다닐 어린이가 커피를 따고 있다.

승합차를 타고 포장도 되지 않은 골목골목을 지나 산 밑에 도달했다. 어느 정도 산을 올라가니 커피 밭이 눈에 확 들어온다. 사람 키 정도로 자란 커피나무들은 뜨거운 여름을 지난 탓인지 입들이 모두 짙푸른 녹색이다. 이 나무들에는 커피열매가 없는 것을 보아 이미 커피수확을 마친 모양이다. 농장주인의 안내를 받아 산을 넘으니 커피나무에 열매들이 달려있다. 그리고 그곳에 아이들과 아주머니들이 커피열매를 따고 있다. 우리도 바구니를 목에 걸고 커피열매를 따보았다. 그리고 통역을 통해 일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올해는 소금안개(안개가 짭짤한 맛을 보여 그렇게 부름)로 인해 작황이 안 좋다고 한다. 학교를 가야하는 학생 세 명이 학교는 못가고 커피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이 커피열매를 따서 농장건물까지 가져다놔야 1kg에 한화 120원을 받기 때문에 아주 일을 잘해야 하루 3,000원 정도 번다고 한다. 학생들이 돈벌이를 하지 않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 커피를 잘 따는 아주머니들

우리가 머물렀던 안이 선생이 자신의 농장에서 점심을 준비하시겠다고 한다. 커피농장을 나오다보니 길거리 논에 물이 가득 있다. 무엇인가 물어보았더니 양어장이라고 한다. 마침 한 부부가 커다란 그물로 물고기를 낚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베트남 논에 물이 차있으면 대부분 양어장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한다. 마을에 가까이오니 고기를 좌판에 내어놓고 팔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 더운 날씨에 고기가 상하지 않을까 물어보니 오늘 잡은 돼지고기라 상관이 없다고 한다. 냉장고가 없으니 그날 다 처분한다고 한다. 우리도 돼지고기와 약간의 채소를 사서 다시 고개를 넘어 안이 선생의 농장으로 향했다. 선생이라 그런지 마을과 집을 지날 때마다 큰 소리로 인사를 나누고 무엇인가 이야기를 한다. 안이 선생이 활달한 성격으로 마을의 유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안이 선생의 커피 농장은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고 앞이 확 튀어서 전망이 훌륭했다. 이곳은 타이족의 전통적 나무가옥이라 1층은 그냥 비어있고 2층을 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2층 널따란 집안에는 칸이 막혀 있지 않고 침대와 화덕이 모두 함께 있어서 이곳에서 생활을 다하고 있다. 전형적인 베트남 소수민족 식의 식사를 준비하였다. 먹을거리 비위가 좋은 필자는 맛있게 먹었다.  근처에 있는 마을 분들도 함께 어울려 식사하였고 증류주 및 리큐르를 내놓는데 알코올 도수가 상당한 것 같다. 술을 기본적으로 원샷이고 잔을 비운 후에 서로 악수를 하면서 덕담을 한다. 술을 안 마시는 경우 벌칙으로 밥을 세 공기나 먹어야 하는 것이 이곳의 관습이라고 하니….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하니 커피 파치먼트를 절구에 쪄서 벗기고 장작불에 로스팅을 한다. 중배전으로 로스팅 한 원두를 다시 절구에 넣고 빻아 가루커피를 뜨거운 물에 넣고 천으로 내린다. 프렌치프레스로 내린 커피 맛이라 아침에 마신 것보다 훨씬 훌륭하다.

▲ 파치먼트 커피를 말리는 모습

이곳에서 커피를 구입하려고 해도 파치먼트 상태의 커피만 있지 생두를 구입할 수가 없다. 그것은 커피농가에 파치먼트에서 껍질을 까는 기계가 없기 때문이다. 그 기계는 대략 3백 50만원에서, 쓸 만한 것은 1천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 그러니 가난한 커피농가에서는 그것을 구비하지 못하고 커피수집상에게 파치먼트 상태로 저렴하게 판매를 한다고 한다. 이들이 집에서 커피를 마실 때는 벼를 터는 탈곡기를 사용하는데 이렇게 하면 커피생두가 많이 손상되어 상품으로 가치가 떨어진다고 한다. 마을별로 협동조합을 만들어 공동으로 기계를 구입하여 사용하면 좋을 텐데 아직 아무도 그런 시도를 하지 않은 것 같다. 커피를 구하려고 갔던 우리들도 할 수 없이 파치먼트 커피를 소량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파치먼트에서  일일이 껍질을 벗긴다는 것이 만만한 일이 아닌 것 같아 교육용과 맛 평가 시험용으로 적은 양을 구입하였다.  금년에 딴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땅에 심으면 커피나무 싹이 나오기 때문에 정현석 농부만 기쁜 마음으로 파치먼트 커피를 자루에 담았다.  

오후에는 이곳 학교를 방문하였다. 한국에서 떠나기 전에 베트남 공동체 대표 원옥금 씨로부터 부탁을 받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공동체에서는 한국에 와서 어느 정도 살만하기 때문에 고국의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고자 한다. 베트남 공동체에서 행사를 하면서 수익금을 남겼고 또 추운 지방에 사는 분들을 위해 겨울옷을 모집하고 있다. 현재 도와주려고 하는 학교가 이미 다른 곳에서 지원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있어 꼭 도움이 필요한 학교를 찾아달라는 것이다. 마침 우리가 방문한 커피농장주의 부인이 반부아민속중학교 교사이기 때문에 그곳을 방문하였다. 반부아민속중학교는 산속마을에 위치해 있지만 의외로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교문을 들어서니 콘크리트로 교실이 잘 지어져 있었고, 손님 접대실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 우엔 반 텐 교장의 친절한 안내로 학교상황을 들었는데, 국가의 지원으로 별 다른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먼 곳에 사는 학생들이 학교 내에 기숙하고 있는데, 이들은 도움이 필요하고 또 산간지방이라 추워서 덮을 겨울이불이 필요하다고 한다. 교장선생님에게서 베트남어로 주소와 연락처를 받아서 원옥금 씨에게 전달하여 직접 통화하여 결정하기로 하였다.

▲ 우리가 방문한 반부아 민속중학교 수업광경

저녁은 우리를 재워준 안이 선생의 친정에서 대접한다고 한다. 그곳에 가니 정성으로 음식을 준비하였다. 돼지고기, 닭고기 등 진수성찬을 마련한 손길에 미안한 마음으로 준비해간 한국산 대병 소주를 전달하니 무척 좋아하신다. 돼지 선지피를 그대로 그릇에 담아내어 응고되었는데 한번 먹고는 손이 가지 않는다. 마당에 마련한 식탁에는 삼촌, 이웃식구, 아들도 함께 참여했는데 아들의 얼굴이 별로 내켜하지 않는 표정이다. 그냥 이야기도 없이 밥만 먹고 있다가 자리를 뜬다. 젊은 친구인데 경찰에 응모하여 오토바이훈련을 받던 중 사고가 나서 왼쪽 하지를 절단하였다고 한다. 사고 난 지가 두 달밖에 되지 않아 아직 병원에 다니고 있는데, 마음의 정리가 안 된 모양이다. 베트남은 오토바이천국이라 할 정도로 오토바이를 많이 탄다. 그런데 이렇게 사고가 적지 않아 젊은이들이 희망을 갑자기 잃고 힘들어 한다고 하니…. 어머니는 연신 음식을 나르고 아버지는 연신 술을 권하고. 이곳 풍습대로  잔을 비운 후 서로 손을 맞잡고 덕담을 나누다보니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 이층 화덕에서 요리를 하고 있는 안이선생

최의팔 목사  euip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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