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에 인천에서 노동선교하다 생명사상으로 터닝포인트하여, 새로운 삶을 배우고자 산골에 들어왔다.
그전 도시에서의 삶과 운동은 목적지향적이고 조직적이며 계획적이었다. 그래서 무언가 하나님 나라 확장에 사회변혁에 의미가 있어야 삶과 실천에 힘이 생겼다.
그런데 산골의 삶은 그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출발이 가능했다. 그전 도시에서의 가치, 삶, 운동방식으론 하나님 나라도 사회변혁도 가능치 않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에 그래서 터닝포인트인 것이다.

그러나 막상 산골생활 속에선, 도시에서의 의식 무의식적 습성을 털어내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방황이 있었으며, 그래서 많은 세월을 보내야했다.
산골생활에선 대부분의 시간이 자연과 더불어 홀로 보내고, 농사일뿐 아니라 가사일도 혼자하게 되며, 동물들을 보살핀다. 그동안 도시생활에선 항상 하찮게 무시되고 버려졌던 것들과 일들이 나의 삶의 중심에 들어왔다. 도시문명, 사람, 정치, 운동 등 모든 것이 사라졌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도전이 심각하게 다가왔다.

이젠 ‘삶이 곧 운동이다.’라는 믿음으로, 내가 서 있는 황폐하고 버려진 이 자리에 꽃과 생명을 피우는 것이 새로운 미래라는 희망으로 버티고 견뎠다. 저 고대의 시지프스처럼 매일 바윗돌을 굴리고 또다시 시작하고 기도했다. 매일 성서말씀을 묵상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렸다. 어느 순간 하찮은 것들, 하찮은 일속에서 거룩함이 다가왔다. 온전함이 깨달음으로 느껴졌다. 자연과 동물들과 가사일 속에서 생명의 움틈을 보았고, 서로 소통됨과 사랑을 체험했다. 산골생활 10여년 만에 비로소 내가 산골식구가 된 것이다. 가치의 육화. 바로 여기가 참 자리 즉 천국이구나. (이러한 삶에 있어 노장사상이나 불교수행법등 동양철학이 또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오랜만에 나를 본 사람들은 내가 많이 편해 보인다고 한다. 그 비결을 묻는다. 그 비결은 아주 단순하다. 밑바닥에 있다. 바로 하찮은 것 속에 참이 있고, 그 믿음으로 살며, 가슴 속에 사랑이 싹트니, 얼굴에 생기가 돌고 편안해지는 것이라고.

사실 지금 인류의 물질적 풍요도 바로 하찮은 것들의 희생 위에서 가능하지 않나. 위기의 지구화시대에 그 희망도 하찮은 것 속에 있지 않나 싶다. 어떤 여성신학자는 아름다움이 결국엔 우리를 구원하리라 하였다지만, 나는 하찮은 것에 구원이 있지 않을까 싶다. (마태5/48)

산골에 월동준비로 나무하기와 김장 담그기를 마치고, 한가한 마음으로 겨울비를 바라보며. 샬롬!

안태용  azaz0106@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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