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化身이란 자의식을 갖고 살았던 선생님

선생님 가신 지 벌써 두해가 지났다. 일주기 때 소식 없어 기일을 놓친 것이 후회막급이었는데 오늘 선생님을 기억하는 자리에 함께 있음이 고맙고 좋다. 선생님 사후 그분이 했던 일을 지속하는 분들에게 머리 숙인다. 사실 선생님 가신 영전에서 슬픔보다 무거운 책무가 마음을 눌렀다. 우선 90수를 훌쩍 넘기셨고 ‘인생은 죽음으로부터’라는 말씀을 하셨기에 우리는 그의 죽음을 곧 부활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정말 그의 마지막 강연들 속에서 이 말씀을 참으로 여러 번 들었다. 그만큼 선생님에게 죽음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一道出生死’라 것이 선생님의 죽음을 지칭하는 말이라 할 것이다.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긴다’는 架上七言의 예수의 마지막을 보는 듯도 했다. 아침에 道를 깨치니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씀 역시 선생님의 마지막을 닮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선생을 잃었으나 결코 슬프지 않았다. 단지 그 없는 중에 그의 뭇 말씀을 들었던 사람들이 그분처럼 ‘깨끗’한 삶을 살아낼 수 있을 지가 염려될 뿐이었다. 선생님은 거룩을 ‘깨끗’으로 순 우리말로 풀었다. 한번 깨어져서 끝이 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라 여긴 것이다. 선생님의 죽음은 깨어져 끝이 난 것으로 진실로 거룩했다. 그의 스승 多夕께서 예수의 삶을 미정고(未定稿)로 보았듯 선생의 삶도 그럴 터인데 그의 말씀을 들었던 남은 자들의 몫이 그렇기에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 현재 김흥호

실상 선생님이 뿌린 말씀의 씨앗이 지금 곳곳에서 싹트고 있음을 본다. 스승 多夕을 좆아 평생 연경반을 이끄셨으니 그 없으나 經을 읽고 닦는 학습장은 지속되어야 옳다. 무엇보다 그와 마지막을 함께한 이곳의 제자들에게서 그 지난한 일들이 지속되어야만 할 것이다. 가르치고 배우는 일들이 끊어지지 않을뿐더러 무엇보다 선생이 그랬듯 교회와 시대를 위해 탈존(脫存)한 존재들, 곧 ‘선생’(先生)이 배출되어야 할 것이다. 가고 오는 세월 속에서 세상을 뚫고 하늘로 오른 존재, ‘가온 찍은’ 존재들이 탄생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선 목회 현장 곳곳에서 선생의 말씀이 가르쳐 실험되고 있는 것이 반갑고 고맙다. 이대 은퇴 후 一雅 변선환의 요청으로 감신에서 15년 가르쳐 키운 제자들이 목사가 되어 선생의 가르침을 지금 강단에서 펼치고 있는 중이다. 사람 접하는 것이 그들 일인 탓에 어린 신학생들에게 심겨졌던 씨앗이 지금 목회적 차원에서 열먀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 열매는 썪어 없어질 것이 아니라 뭇 생명에게 포도주처럼 영생을 선사할 것이다. 필자 역시도 선생님이 그랬듯 몇 년에 걸쳐 선생님 방에서 독대하며 가르침을 받았기에 소위 多夕학파의 끝자락에서 자그만 소임이라도 감당코자 노력할 것이다. 지금도 대학 강단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선생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함께했던 삶의 경험을 나누는 일들이 즐겁고 감사하다.

대략 선생님 귀천(歸天) 5-6년 전이라 기억되는 어느 해 가을, 연경반 모임 종료 후 ‘공동선’ 이란 잡지사의 주관으로 선생님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필자가 묻고 선생님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일체 질문지는 필자 임의로 작성할 수 있었다. 정확히 어느 질문 끝에 나온 답변인지 모르겠으나 선생께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성서 속 사도바울과 같은 존재로 명시화하셨다. 그 어투가 단호했고 바울적 자의식이 너무 강했기에 당시 필자로선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수백 수천 명의 선교사를 보내는 것 보다 바울 같은 존재 한 사람 만드는 것이 한국 교회의 급선무라 하시며 多夕이나 자신이 그 같은 역할 수행자임을 밝힌 것이다. 이는 나는 것이 본질인 새가 날기를 포기하고 해안가에서 썩은 물고기를 탐하는 모습처럼 변질된 오늘의 교회에 대한 질타이기도 했다. 절대(絶對)란 본래 마주하는 상대를 없이 하는 것인 바, 이런 선생의 언사는 동시에 상대를 품을 수 없는 작은 그릇처럼 된 이 땅의 기독교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또한 자신의 기독교성에 대한 재확인이라 할 것이다. 마주한 상대 일체를 끊을 수 있을 만큼 큰 그릇된 기독교인을 그분은 바울이라 했고 多夕이라 여겼으며 자신과 동일시 한 것이다. ‘排他’하는 기독교는 결코 바울을 알 수 없고 그것으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강의에서 선생은 내가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나를 믿는 경지가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세례를 받은 것으로 충족한 것이 아니라 多夕이 그랬듯 진짜 믿음에 들어간 이의 경지를 그리 표현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동시성을 살아내지 못하는 기독교는 예수를 한갓 신화나 이념으로 만들 뿐이라는 본회퍼의 지적과 살짝 중첩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상태는 인간의 知情意와 결코 무관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것이 충족히 실험되고 실현된 상태에서 창발되는 계시적 상태라 할 것이다. ‘줄탁동시’란 말이 바로 그를 이름 하는 것이 아니던가?

주지하듯 선생님 생 말기에 우리는 가끔씩 종교다원주의와의 변별을 당신 고유의 신앙적 실존으로 여기는 선생님 말씀을 접하곤 했다. 때론 그렇듯 강경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터인데 다원주의를 부정, 거부하는 단호한 모습도 보이셨다. 제자가 전해주어 알게 된 일주기 추모강연의 주제 역시 이 점을 부각시켰다. 필자보기에 당시로선 그 이유가 분명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 여지가 여전히 남아있다. 多夕사상을 잇고 대중화 시킨 또 한분의 제자 박영호가 자기 스승을 선생 살아생전 뿐 아니라 지금껏 기독교를 넘어선 교회 밖 종교사상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탓이다. 바울을 부정하는 것을 넘어 예수를 왜곡시킨 장본인으로 그를 본 탓에 그의 기독교는 자신을 바울화신이라 여긴 선생의 그것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얼마 전 한 출판기념 모임에서도 가톨릭을 떠나 성공회에 몸담은 성서학자 정양모가 현재 선생의 기독교 중심적 多夕이해보다 그를 기독교를 넘어선 사상가로 본 박영호의 多夕이해가 옳다고 평한 적이 있었다. 청중들 앞에서의 공식적인 언사였고 더구나 성서학을 배경으로 한 신부님의 발언이었기에 그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필자는 이것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의 불가함을 역설했다. 그렇기에 살아생전 선생님은 이런 분위기를 걱정하셨고 그럴수록 多夕을 기독교적 실존으로 수용코자 했으며 본인 스스로도 기독교적 정체성을 강하게 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급기야 선생의 이런 마음은 ‘기독교식으로 장례를 치루는 것이 고인의 뜻이기에 절을 금한다’는 장례식장의 글귀를 통해서도 명백히 들어났다. 따라서 평소 선생과 교제하던 수많은 이웃종교인들이 장례식장에서 다소 의아해 했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인에 대해 예(禮)를 표하는 것쯤은 선생님에게 본래 상식이었을 터, 의외라는 반응을 조문을 다녀온 이들에게서 많이 접한 것이다. 하지만 죽음의 자리에서조차 선생께서는 기독교 울타리 -물론 큰 울타리 이었겠으나- 밖에서 자신과 자기 생각 나아가 多夕 사상이 논의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필자 역시도 多夕을 기독교 밖 사상가로 자리매김하는 것 이상으로 기독교 사상가로서, 교회를 위한 교사로 이해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두는 편이다. 전자보다는 후자의 작업이 지난할뿐더러 현실 속에서 구체적 힘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 다석 유영모

그럼에도 多夕신학 속에 이 두 측면이 함께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평소 균형 잡아 강론하시던 선생께서 상술한 정황에서 삶의 후반기에 기독교적인 한 면을 취해 당신의 전적 입장으로 삼은 것이라 생각된다. 본래 多夕은 물론 함석헌 역시도 유불선 역시 하늘로부터 계시 받을 것은 다 받은 종교라 했고 인간 속에는 하늘의 씨앗(바탈)이 있어 누구라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성불할 수 있고 誠者일 수 있으며 예수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는 <천부경>의 三才論에 입각한 상경의 ‘歸一’ 사상과 하경의 ‘人中天地一’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주지하듯 多夕에게 이 책은 ‘하늘댛일 쪽월“로서 우리 민족을 하늘로 이끄는 서적이었다. 多夕에게 三才 곧 하늘-땅-인간’은 ’계소리-예소리-제소리‘, ’佛性-苦行-成佛‘, ’天命之謂性-率性之謂道-修道之謂敎‘를 일컬으며 또한 ’성부-성자(십자가)-성령‘로 언표된다. 각각 형태는 다르나 개별 종교는 시원의 하나(一)를 품어 결국 그 하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렇듯 多夕에게 하늘(天 혹은 一)의 급진적 내재화, 보편화가 가능했고 우리는 그것을 소위 ‘얼 기독론’이라 명명알 수 있겠다. 함석헌은 이를 ‘뜻의 존재론’이라 역사적으로 풀었고 김흥호는 실존이란 존재방식이라 하였다. 이럴 경우 多夕은 서구의 종교다원론자를 닮았다. 붓다, 예수, 공자와 우리 각자가 존재론적으로 차이가 없게 된 탓이다. 하지만 多夕은 붓다나 공자와 달리 이른 나이에 ‘제 뜻 버려 하늘 뜻 구한’ 예수를 유일무이한 자신의 스승 삼았기에 그의 ‘얼 기독론’은 ‘스승 기독론’으로 전이 되었고 그래서 더욱 힘이 있다. ‘얼’ 기독론으로서의 보편적이며 다원적인 길 대신-물론 그를 부정하지 않았으나- 특별하게 혹은 무제약적으로 예수의 제자가 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스승 기독론’은 서구의 ‘high Christology’와 달리 ‘길을 가다 길이 될 것’을 요구하는 즉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치라는 수행적 종교로서 동양(수행)적 기독교라 할 것이다. 일상이 대속(代贖) 아닌 것이 없으니 이제 네 몸을 바치라는(自贖) 말이다. ‘몸을 줄여 마음을 늘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얼’과 ‘스승’, 이 둘은 전후의 관계이자 선택사안일 뿐 결코 상호 배타적일 수는 없다. 단지 김흥호 선생은 후자의 길에 방점을 두고 자신의 존재를 그에 맞춰 기독교적으로 탈존(脫存)시킨 것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선생처럼 예수를 스승삼아 우리 자신을 탈존 시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多夕사상을 기독교 밖에서 귀일(歸一)의 종교로서 확대해석하는 시도와 더 이상 갈등관계에 놓일 필요가 없을 듯싶다.

2주기를 추모하는 자리에서 필자는 제목이 말하듯 선생을 바울적 자의식의 소유자로 명시했다. 선생에게 바울이 중요했던 것은 당시로선 세계 전체를 품었던 헬라의 보편적 지혜와 자신의 특별함(선민의식)을 보증했던 유대 율법에 정통한 사상가라는 사실 탓이다. 보편적 지혜와 특수주의를 야기 시킨 율법사유에 정통한 학자로서 바울은 회심이후 기독교를 전했고 그가 전한 복음은 그렇기에 유대인은 물론 이방 헬라 사람들에게도 설득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주지하듯 다메섹 체험이란 우선 바울적 정체성을 구성했던 보편성과 특수주의를 부정하는 것이었고 나아가 ‘as if’가 말하듯 각각의 존재들에게 저마다의 방식처럼 되는 삶-차이를 횡단하는 보편성-을 창발 시킨 것이다. 달리 말해 기독교가 그로인해 배타를 넘어 절대(絶對)의 종교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향후 중국, 인도 대륙으로 기독교를 전하기 위해 이 땅의 기독교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의당 유불선, 곧 동양종교에 대한 넘치는 지혜라 하겠다. 그들에게 그들처럼 되면서도 그들을 아우르고 너머서는 기독교 사상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시 바울과 같은 위상을 지닌 존재가 이 땅의 목사, 신학자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그는 연경반을 통해서 성서를 가르치며 동양경전을 설명했고 고전을 읽으며 성서말씀을 풀어냈던 것이다. 선생의 강의에선 성서가 경전으로, 경전이 성서의 가르침으로 자유자재로 풀어졌다. 하지만 그의 평생 노력은 지적 호기심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바울적 자의식을 지닌 존재를 가르쳐 키워내기 위함이었다.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이 누구인지 누가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는지를 묻는 일이 그래서 소중하다. 앞으로 전개될 기독교의 미래를 위해서 말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多夕사상을 기독교적 실존으로 풀어 낸 선새의 견해를 지금도 따르고 있다.

이렇듯 선생이 바울적 자의식을 키워 나감에 있어 각 종교를 대변하는 역사적 인물 세 사람이 있다. 하나는 불교의 바탕에서 유교를 섭렵한 승려 ‘종밀’, 그리고 이후 주자학을 비판하며 ‘심즉리(心卽理)’설, 즉 신유학의 바탕 하에 불교는 물론 도교까지 섭렵한 ‘양명’, 그리고 그의 직계 스승으로서 유불선을 통섭한 多夕 유영모가 바로 그들이었다. 앞서 말한대로 평생 스승 多夕은 말할 것도 없고 선생은 종말과 양명을 좋아했고 감신대서 강의 할 시, 이들 사상을 번갈아가며 학생들에게 강조, 역설하였다. 유교를 다 숙지한 불교만이 유교를 이길 수 있고 불교를 송두리 채 담을 수 있는 유교, 心卽理의 양명학을 통해 불교를 넘을 수 있는 것이며 多夕의 기독교가 유불선을 품음으로써 선생님 말씀대로 기독교(복음) 하나만 알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마주하는 것을 끊는 ‘절대’(絶對)의 종교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흥호에게 바로 이런 존재들이 선생이자 스승이었고 바울 역시 이런 선상에서 선생의 탈존(脫存)을 도왔던 인물이었다. 선생님의 바울적 자의식은 이런 동양적 사상풍토 속에서 형성되었고 그 자의식이야말로 세상을 구할 힘인 것을 부정할 수 없겠다. 그렇다면 유불선을 품을 수 있는 복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 선생은 이를 ‘一座食一言仁’이라 풀은 적도 있다. 多夕의 수행(自贖)적 기독론을 그리 정리한 것이다. 이것은 소위 케리그마의 문제이다. 향후 더욱 치열하게 非신화화를 넘어 非케리그마화를 거쳐 再케리그마화의 과정이 요구될 것이다. 향후 선생을 좆는 우리가 일본 내 교토학파의 신학적 작업을 학습하여 그를 너머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는 15년간을 선생과 옆방에서 지냈으며 그 탓에 선생과 독대하며 多夕을 배웠다. 자신이 多夕에게 많은 시간 홀로 배웠듯 자신도 그리 하는 것이라 말하며 우둔한 제자를 거둬 주셨다. 때론 학생들과 교실에서 그 분 강의를 청강한 적도 있었고 가끔 씩 연경반을 찾아 배운 바 있었다. 언젠가는 붓글씨도 가르쳐 주셨고 선생님 가정의 대소사에 목사로서 부르시어 예식을 집행토록 하신 적도 있다. 지금껏 감동으로 남는 것은 정초 세배가면 아침부터 일만 이천페이지에 달하는 <多夕日誌> 원고를 교정하던 모습이다. 팔순을 넘기신 선생께서 정초 벽두부터 스승의 유고를 정리하고 계신 것에 더 이상 할 말을 잃었다. 스승과 제자라면 이분들의 모습을 배워 이런 관계여야 하겠다는 생각이 지금도 마음 속 가득하다. 여하튼 선생 덕에 多夕을 배웠고 부족하나마 몇 권의 책도 낼 수 있었다. 함석헌 학회에도 기웃거리며 자주는 아니나 박영호, 정양모 신부등과 더불어 多夕의 시(詩)를 순수 한글로 번역하는 일에도 참여 중이다. 그러면서 多夕의 제자, 함석헌 써클의 관계자들과 교제하게 되었고 그리고 오늘과 같이 현재 김흥호 선생님의 흔적도 접하고 있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하나를 제시함으로 오늘 선생님을 추모하는 글을 마감할 생각이다.

앞서 언급했듯 일본에 교토 학파가 있듯 한국에서 사상적 계보, 더구나 기독교 영역에서 그런 틀거지가 형성되어야한다는 것이 多夕을 공부하며 느낀 필자의 소감이다. 하지만 지금 多夕 이후 그를 토대로 형성된 다양한 흐름들이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있다. 이들 그룹간의 사상적 교류는 물론 인간적 유대역시 형성되어 있지 않다. 어느 경우는 상호 적대적 입장을 표하며 이들 그룹들을 상호 엮고자 하는 필자의 시각을 매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필자는 이 땅에 소위 ‘多夕학파’의 기독교가 굳게 뿌리내려야 한다고 믿는다. 이 말에도 이의가 제기 될 수 있다. 굳이 이름 한다면 ‘씨알 학파’라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는 탓이다. 초기 多夕에게 배운 안병무를 비롯한 민중신학 계열에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부차적 문제일 것이며 각 그룹의 직계 스승의 생각을 따르고 연구하면서도 전체를 통섭하는 시각을 위해 저마다 노력해야 옳다. 多夕에게 연원을 둔 독창적이며 통섭적인 기독교가 모두의 협력 속에서 새롭게 연구, 토론된다면, 뭣보다 종교개혁 500년을 3년 앞둔 시점에서 그 작업이 시작될 수 있다면 우리는 2017년을 가장 값지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고인이 되신 선생님께서도 우둔한 제자의 이런 마음을 헤아리실 줄 믿고 감히 2주기를 맞아 선생님 앞에서 이런 제안을 올려 본다. 바울적 자의식을 지닌 선생님의 마음이 스승을 따르는 제자들 속 부활되어 이 땅의 기독교, 교회를 명실공히 절대(絶對)의 종교로 만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글을 그친다.

이정배 교수(감신대) ljbae@m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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