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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방정맞은 캐롤이 있는가<이송학의 음반산책>
이송학 | 승인 2014.12.08 13:46

억척스럽게 살아온 일상과 새삼 놀랍게 여겨지는 어떤 일, 그 사이에는 긴 단절의 시간이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만들어진 지 불과 반세기도 안 된 음반 한 장이 놀라움과 감탄을 주는 경우도 있더군요. 
지난번에 들었던 「현경과 영애」가 선비와도 같은 결연하고도 담백한 면모를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는 없는’ 꾼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실은 11월에 소개하려고 했던 음반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연되면서 기회를 놓쳐 버리고,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음반은 크리스마스 캐롤입니다. 70년대에 음악을 꽤 즐기셨던 세대이거나 애호가라면 ‘혹시 이거 아닐까?’ 하고 감이 왔으리라 봅니다.

   
 
   
 
1971년도가 저물어 가던 이맘때 소개해 드릴 음반은 「라스트 챤스」의 앨범 <화이트크리스마스/징글벨> 이란 음반이고, ‘라스트 챤스의 폭발적인 싸운드’, ‘GO GO 춤을 위한 경음악’ 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이 음반은 이들의 전성기 시절에 만들어진 유일한 앨범입니다. 아쉽지만 이것 외에는 없습니다.
 

음원사이트에서는 아티스트 검색으로 하는 편이 빠를 듯합니다.

앞면(Side A)
   1. 화이트 크리스마스
   2. 노엘
   3. 고요한 밤
   4. 이별의 노래
 
뒷면(Side B)
   1. 징글벨


이렇게 모두 5곡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자켓 이미지에는 성탄절과 연관된 빨간색 바탕에 무대 위의 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 몇 장이 좌측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나열되어 있고 뒷면에도 몇 개의 이미지가 더 있습니다. 이들의 관련 자료가 흔치 않은 가운데 앨범 속 이미지들마저 귀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사진 속의 멤버들은 거의 흰옷을 입고 있는데 본래 흰색을 즐겨 입었는지, 크리스마스와 관련되어 특별히 흰색 차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들의 복장과 무대가 파격적이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초창기 라인업은 김태일(기타), 곽효성(베이스), 이순남(드럼), 나원탁(기타), 김태화(보컬) 이지만  김태화라는 훌륭한 보컬리스트는 아쉽게도 이 음반에 참여하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순수하게 악기 연주만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수록곡은 모두 우리에게 익숙한 캐럴이거나 연말 분위기에 어울리는 곡들로 채워져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한 시즌에만 듣고 지나갈 음악은 아닙니다. 이 앨범의 훌륭함은 시간적인 제약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라스트 챤스」는 센세이션(Sensation)이란 말처럼 당시에 선풍을 일으킵니다. 연주자들의 기량도 기량이지만 믿기지 않을 만큼 파워풀합니다. 이들의 독특함은 하드록을 구사하면서도 브라스가 참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드록이 전반적으로 강렬한 힘이 생명인 만큼 어쿠스틱 악기를 사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들은 하드한 브라스록을 선보입니다. 처음 이들의 연주를 들었을 때의 충격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브라스록 하면 일렉트릭 사운드와 각종 관악기가 완벽하게 융합되어 높은 경지의 소리를 들려주었던 「BLOOD, SWEAT & TEARS」나 「CHICAGO」가 참 부러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라스트 챤스」의 원형을 「RARE EARTH」란 당시 미국의 하드록 밴드에서 찾아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놀라운 일이지요.

앨범은 전체적으로 능숙한 솜씨에 맛깔스럽고, 힘차며, 옛 사운드가 주는 독특한 질감을 느끼게 합니다. 연주의 진행패턴이 자유분방하고 반전의 묘미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음반 뒷면을 꽉 채운 징글벨은 러닝타임 16분가량의 긴 곡으로 중심테마인 징글벨로 시작하다가 곧이어 전혀 다른 곡으로 바뀌는데 이 부분이 「RARE EARTH」의 Get Ready란 곡입니다. 본래는 흑인 소울(Soul)그룹 「THE TEMPTATIONS」의 짧은 곡인데 「RARE EARTH」에 의해서 편곡된 20분이 넘는 하드록으로 더 유명합니다.

아마도 당시 우리나라에서 한가락 한다는 밴드들은 이 곡과 더불어 「IRON BUTTERFLY」의 ‘In A Gadda Da Vida’란 곡을 즐겨 연주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멋들어지고 개성 있게 연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라스트 챤스」도 이 곡의 주요 부분을 재즈의 애드립과 같은 즉흥 변주처럼 각 악기마다 돌아가며 기량을 보여주다가 후반부에 이르면 징글벨 테마가 다시 등장해서 곡을 마무리 짓습니다.

일단, 주의할 것은 이 앨범을 들을 때는 처음부터 볼륨을 크게 올려놓지 마십시오. 처음부터 볼륨을 높여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첫 번째 곡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시작되면서 엄청난 고출력의 드럼 소리에 놀라서 곧장 볼륨을 내리게 될 것입니다.

언어가 주는 피상적인 느낌이 가장 큰 말이 ‘고생’이란 단어가 아닐까 합니다. 겪어 보지 않으면 그 공감의 깊이가 크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데뷔하기까지 음악인들이 겪는 고생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라스트 챤스」도 훗날 일류 밴드가 되어 명동의 유명 클럽을 주름잡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들의 시작은 파주나 왜관의 미군부대 인근 기지촌의 클럽에서 무명 밴드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각지에 주둔하게 된 미군부대를 고대 로마군의 경우와 똑같이 볼 수는 없습니다만, 로마제국도 식민지의 변방 접경지역에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여러 곳에 대규모 군단 병력을 주둔시켰는데, 로마군의 군부대 인근에는 투구나 병기를 비롯해서 군인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만들고, 팔고, 수리하는 각종 상점들부터 매춘에 이르기까지 경제 활동이 활발한 하나의 도시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본국에서 오랫동안 떨어져 생활한 군인들 중에는 아예 현지에 정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그 도시는 단순히 군부대의 필요에 대응하기도 하지만, 제국의 먼 변방의 입장에서 보면 로마의 첨단문명을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굳이 옛 로마군 이야기까지 하는 것은 대규모 군부대 인근에는 반드시 배후 도시가 형성된다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미군 덕분에’라는 식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타오르는 장작불은 그저 열기를 발산할 뿐 몸을 따듯하게 해주려고 타오르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주한미군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중 어떤 것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긴 하지만 특정 분야에서 미군 부대가 미친 영향은 간과할 수 없습니다. 특히 전쟁의 폐허 속에서 서양의 대중문화가 들어오는 통로, 그 중에서도 미국 젊은이들의 팝음악, 공연 문화, 음향 장비, 악기, 음반 등 자료들의 유입은 이후 한국 대중음악의 형성과 발전에 거의 절대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라스트 챤스」가 활동을 시작하는 1960년대 후반기 대중음악인들은 직접 미군을 상대로 공연할 수 있는 무대 수요가 대폭 줄어든 상황에서, 잘나가는 클럽들도 난다 긴다 하는 기성 밴드들이 점령한 상태입니다.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에서 무명으로 밑바닥에서 시작한다는 것은 여간 힘든 상황이 아닐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모든 조건이 열악한 시절임을 감안하면 말입니다. 오직 쉼 없는 연습과 차별화를 통해 세인의 이목을 받는 것만이 살 길인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이들은 카리스마 넘치는 매니저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제 이들의 노고와 열정은 1970년의 그룹사운드 경연에서 우수상을 차지하기에 이릅니다. 우수상은 2등에 해당하는 상입니다. 경연이기에 순위가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기량 면에서 앞뒤의 등수 간에 어떤 기량 차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내로라하는 슈퍼 밴드들이 군웅할거 하던 전설의 시대임을 감안하면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지만 앨범에 붙은 ‘GO GO 춤을 위한 경음악’이라는 부제처럼 이 연주곡들의 목적이 고고춤을 추기 위한 것입니다.
크리스마스에 왠 고고춤이냐고요?
그 때는 젊은이들 사이에 고고춤이 유행이었으니 고고의 전성시대이지요. 하지만 야간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서둘러 귀가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지만 성탄절 하루만은 예외였지요. 12월 24일 밤에는 통금 시간 전 집에 가야한다는 부담 없이 실컷 즐길 수 있었지요. 고고클럽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날의 분위기를 한껏 띄우는 멋진 무대를 연출합니다. 이 공간에 허락된 묘한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지요. 몸이 저절로 들썩여지는 신나는 생음악 연주와 환각적인 사이키 조명이 연출하는 광란의 밤이었다고 합니다. 캐롤(Carol)이 본시 춤출 때 부르던 노래라고 하니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 때보다는 상대적으로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는 지금의 세대들이 보면 ‘뭘 저렇게까지’ 하면서 시큰둥한 표정을 지을 수 있겠지만 똑 같은 것도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듯 그 때는 그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락 음악이 누구나 즐기는 음악은 분명 아니었을 것입니다. 고작해야 도시문화의 혜택을 받는 젊은이들, 더 좁게는 서울의 번화가 명동을 중심으로 그곳에 모인 세련된 사람들만 즐겼을 것입니다. 밴드들 역시 클럽 밖으로 나와서 대중의 저변으로 스며들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을 삐딱하게 보는 기성세대의 차가운 시선, 사회 정서적 편견과 알 수 없는 권위들이 이들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귀가 시간에서부터 두발의 길이, 여성의 치마 길이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도 국가가 관여하던 때입니다.  
음악은 물론 의상과 무대 연출에 이르기까지 선풍을 일으킨 이들이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은 당시 정권으로부터 국민의 두발 상태를 내버려 두면 이런 식으로 된다고 보여주는 표본으로 지목되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수난의 시대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 음반은 그들의 처절한 삶에 대한 강렬한 살풀이를 크리스마스 캐롤에 담아서 풀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음반이 멀리서 우리에게 주는 이미지는 ‘자유’라고 붙여 보았습니다. 
2천 년 전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고백되어진 한 사람의 탄생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이제 문화가 되어서 자유를 갈망하는 그들의 몸부림 속에 들어 왔습니다. 
2014년 성탄절에 이 앨범을 듣는 여러분 속에게도 위로와 소통과 자유가 되어서 들어가길 바랍니다.

이송학  netls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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