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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랄 이야기 3 : “바흐가 표절했다?”<주대범의 교회음악 산책 11>
주대범 장로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지휘자) | 승인 2014.12.10 11:35

교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었다. 예수의 제자로 투철하게 살지 못했는데, 새로운 또 한 해를 우리게 허락하신 것이다. 참 부끄럽지만 고마운 일이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둘째주간을 보내고 있다. 교회력 색깔도 보라색이다. 보라색은 <참회>의 색깔이다. 보라색을 썼던 지난 수난절기 막바지인 성 수요일에 우리는 엄청난 충격과 슬픔에 맞닥뜨려졌다.

그저 잊으라 하여 잊혀질 절망이 아니다. 그냥 접으라 하여 가라앉을 분노가 아니다. 가던 길에서 완전히 돌아서는 것이 <회개>인데, 그냥 가던 길 계속 가자고 우기니 가슴이 더 아프다. 우리 모두 <회개>하여야 슬픔도 딛고 힘도 추스를 근거가 생기는데, 우리가 뭘 잘못했냐고 우겨대는 돈 있고 힘 있는 자들과, 대다수 기독교인들의 소리에 휩싸이면 다리에 힘이 풀리고 억장이 무너진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가시방석에 올려놓고는 그저 오늘도 이 사회 속에서 숨은 듯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또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는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하실 수 있으므로 오늘도 목이 빠지게 아기 예수를 기다리고, 심판주로 오실 그분을 기다린다. 그의 오심으로, 우리 사회의 불의와 오만이, 억압과 슬픔이, 빈곤과 질고(疾苦)가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면서 <빛>으로 오시는 그 분을 맞이하기 위하여, 다시 무릎을 세우고 손을 움켜쥔다.

지난 주일, 제단 위 대림절 화환에는 두 개의 초가 밝혀졌다. 1839년, 독일 루터교 목사인 비헤른(Johann H. Wichern, 1808~1881)은 자신이 운영하는 고아원 아이들을 위하여 대림절 화환을 만들어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통해 아이들이 큰 희망을 품도록 배려하였다. 나는 실용성을 감안하여 LED 전구 두 개가 들어가는 책상 머리등을 만들어 달았다. 자작나무 합판을 포개어 붙여 가운데를 파내고는 붉은 칠을 한 후, 소켓을 넣어 불을 밝혔다.

 

   
▲ 대림절2주

지난 번 청운동 기도회에 갔다가 얻어온 노란 리본을 달까 하다가, 다행히 나의 양심이 나의 위선을 막아 그만 두었다. <진붉은 포도주 빛>이 <보라색>보다 더욱 <참회>에 가깝다 생각하여 그 색을 칠했는데, 그것은 사순절기와 대림절기의 상징 꽃인 <붉은 장미> 때문이기도 하다.

차이코프스키의 사순절 찬송, <Legende, 聖史曲>에서는 “예수님께서 어렸을 때 정성껏 장미를 가꾸셨는데, 동무들이 붉은 꽃을 다 따가고, 결국 가시만 남은 가지로 관을 쓰시어, 그 붉은 장미꽃 같은 보혈의 피를 흘리셨다.”고 노래한다.

프레토리우스가 1609년 화성을 붙인 코랄, <Es Ist Ein’ Ros’ Entsprungen, 이새의 뿌리에서>에서는 “이새의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 옛 선지 노래대로 장미꽃 피었다.”고 노래하며, 독일의 민요로서 대림절 찬송인 <Maria Durch Ein’ Dornwald Ging, 마리아 가시숲길을 걸어갔네>에서도 결국 가시를 뚫고 붉은 장미가 피어남을 노래한다. 이 두 곡은 요즈음 듣기 적합한 뛰어난 노래들이다.

또한 대림절기에 한 번쯤 음미해보면 좋을 코랄도 소개한다. 루터가 4세기 교부였던 밀라노 감독 암부로스(Ambrose, 339~397. 그는 교회음악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의 라틴어 찬송을 수정하여 만든 코랄인 <구세주여 오시어, Nun Komm, der Heiden Heiland, 1523>에 나오는 “(마구간에서 나시어 승리의 빛이 되신 강생하신 주 예수를 본받아) 어두워진 세상에 믿음으로 빛내자”는 구절은 서두에서 이야기한대로 이 대림절·성탄절을 보내는 우리의 마음에 큰 도전과 격려가 된다.

또한 루터의 코랄 중에서 성탄절 찬송으로 1534년에 자녀들을 위해 쓴 <하늘에서 오신 주님, Vom Himmel hoch Komm ich her>은 천진난만하며 기쁘고 순수하게 성탄을 맞이하게 한다.

 

   
▲ 루터 가정의 성탄절, 1536

그리고 필립 니콜라이(P. Nicolai, 1556~1608)가 작사ㆍ작곡한 <깨어라 먼동이 튼다>도 이 절기에 부를 모범적인 코랄이다. 특히 이 곡은 바흐가 편곡하였다. 또한 파울 게르하르트(P. Gerhardt, 1607~1676)의 <즐거워라 이 밤>도 큰 은혜가 된다.

그러나 이 절기에 부르는 찬송 중, 최고의 가사는 역시 마그니피카트(Magnificat, 마리아의 노래, 누가복음 1:46b~55)이다. 워낙 많은 곡이 있지만, 역시 대 바흐와 그 아들들의 작품이 압권이며 백미이다. 나도 가장 좋아하는 이 찬가를 한 번 작곡해 교회력에 따라 대림절 셋째 주에 쓰자 했는데, 완성이 되질 않아 3년 후에나 연주를 할 것 같다.

 

   
▲ 주대범-MGNIFICAT

자, 이제 이번에 산책할 <코랄> 이야기로 본격적으로 들어가, 회중찬송 시대를 연 코랄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살펴보자.
 
코랄은 <키르헨리트, Kirhenlied>라고도 하는데 즉 ‘교회노래’란 뜻이다. 예배 때 회중들이 부르는 ‘유절 찬미가’로서 초기에는 한 절을 회중이 제창으로 부르면 그 다음 절을 성가대가 화음을 넣어 부르곤 하였으며 17세기 이후 오르간 반주와 간주도 포함되었다. 따라서 그 절수가 보통 7~8절 이상이다.

그 당시 코랄의 특징을 살펴보면, 운율적이었고 리듬이 느리며 평탄했으며 가톨릭 성가의 어구(語句)보다 강하고 명확하고 규칙적이었다. 또한 찬트식 선법 형식의 틀에서 벗어나 더 장ㆍ단조적이었고, 선율이 아름답게 발달되어 쉽게 부르며 외우기 좋았으며 또한 화성적이었다.

물론 코랄도 처음에는 단선율로 시작되었지만 바로 다성 합창곡으로 발전된다. 다른 교파들이 순수성을 이유로 다성음악이 활짝 피던 시절에, 다시 단선율 음악으로 되돌아 가자고 했을 때, 루터파 작곡자들은 그것이 음악적 퇴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가졌으며, 따라서 일찍부터 코랄을 다성으로 썼다.

그렇듯 여러 파트로 코랄을 작곡한 것은 회중보다 성가대를 위한 것이었다. 앞에서 이야기한대로 성가대가 기악 반주를 곁들여 다성으로 한 절을 부르면 회중들이 반주없이 제창으로 한 절을 부르는 형식을 위하여 다성 코랄 작곡은 필수적이었다.

이렇게 발전되는 코랄은 16세기와 17세기를 통하여 새로운 가사들이 무척 많이 쓰여졌으며, 또한 새롭고도 많은 선율이 개작되거나 창작되었다. 다성코랄에 쓰여지는 편곡 방법을 소위 칸티오날(cantional) 양식이라고 일컫는데, 이 양식은 주선율(melody)을 최상성부에 두고, 나머지 파트들을 수직화음으로 배치하였다. 멜로디가 엇갈려 나오는 <대위>적 방법에 비하여 그 리듬도 단순해지고 가사 전달도 명확하므로 회중찬송으로는 매우 적절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화음의 변화를 빈번하면서도 효과적으로 하여 그 음악적 완성도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이러한 코랄 선율과 화성은 나중에 바흐나 멘델스존 등에 의해 편곡되어 그들의 작품 중에 쓰이기도 하고, 나아가 교회음악의 품격을 높여주기도 하였다. 따라서 바흐의 칸타타와 수난곡 등에는 당시 다른 사람들의 코랄이 수도 없이 들어가 있다. 얼핏 생각하면 천재가 사사롭게 시중의 멜로디를 가져다 쓴 것인데, 누가 감히 표절이니, 도용이니 하는 예가 없다. 오늘날 대부분의 영어권 프로테스탄트 찬송가에서는 이러한 코랄이 여전히 다수 포함되어져 있다.

코랄이 발전하여 새롭고 독특한 다성음악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코랄 모테트>라고 한다. (모테트motet를 영어권에서는 앤덤Anthem이라 한다.) 코랄의 가사와 선율에 자유로운 예술성과 개인적인 해석을 추가하여 변화를 준 것인데 이 코랄 모테트의 출현으로 단순한 회중 찬미가와 정교한 성가대 음악 사이의 구분이 더욱 확실해지며, 이 모테트는 교회 음악의 위대한 유산으로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

이 시대 주요 작곡자이며 찬송가집 편집자로 요한 헤르만(J. Herrmann, 1515~1593, 정죄 당하신 주), 한스 레오 하슬러(H. L. Hassler, 1562~1612, 오 거룩하신 주님, 주기도), 요하네스 에카르트(J. Eccard, 1553~1611), 미카엘 프레토리우스(M. Praetorius, 1571~1621, 이새의 뿌리에서), 요한 헤르만 샤인(J. H. Schein, 1586~1630, 오 귀하신 주 오 예수 내 주), 하인리히 쉬츠(H. Schütz, 1585~1672)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코랄이라는 장르를 더욱 확고하게 정립함으로써, 루터교 음악이 100년 후 바하 때부터는 명실공히 서양음악 모든 장르에서 절정에 이르게 하는 구실을 했으며, 서양음악의 중심지가 이태리에서 독일로 옮겨지는 일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게 된다.

이렇듯 1650년부터 1750년에 이르는 기간은 루터교 음악의 황금 시기였다. 그 처절한 종교전쟁인 30년 전쟁 이후 독일의 루터파 지역에서는 교회의 상태가 빠르게 회복되었다. 이 때 음악은 교회 내부에서 일고 있는 두 가지 대립되는 경향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확립된 교리와 제도적으로 체계가 잡힌 공식적인 예배 형식에 따라 가능한 한 합창과 기악의 모든 수법을 예배에서 사용하는 것을 장려하는 정통파와, 신자들 각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여 예배 형식과 고도의 기교 같은 것에 회의를 품고 보다 단순한 음악으로 개인이 느끼는 신앙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는 경건파(Pietism)가 그것이다.

이 경건주의의 대두는 개신교 분파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만, 교회음악에도 변화를 준다. 즉 개인적 신앙을 단순한 성격의 음악으로 표현한 단순한 코랄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 당시 신앙적 노래가 놀랄 정도로 많이 창작된 반면, 시적으로나 음악적인 질은 대체로 떨어졌다. 경건파들의 가사 중에는 지나치게 감정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자기중심적이고 감각적인 신앙 태도를 표현한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현재 우리나라의 교회음악 상황과 아주 흡사한 일이다. 수많은 노래들이 교회에서 유행가처럼 불려지다 없어지는 것이나, <경배와 찬양>에 꽂힌 후 벗어날 줄 모르는 것, 성가대가 20세기 미국 성가곡에만 집착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종교개혁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거대한 코랄의 유산에 17세기 중엽, 중요한 작품들을 추가한 이가 최고의 찬송시인으로 불리는 파울 게르하르트(P. Gerhardt, 1607~1676, 내 영혼아 곧 깨어, 네 염려버리라)였다. 많은 곡을 작곡하였고, 또한 그의 많은 가사를 작곡자 요한 크뤼거(J. Crüger, 1598~1662, 다 감사 드리세, 주는 귀한 보배)가 작곡하였다.

1647년 크뤼거에 의해 편찬된 ‘노래에 의한 신앙 실천’이란 표제의 찬송집은 17세기 후반의 가장 영향력 있는 루터교 노래집인데, 본래 가정용이었던 것이 18세기에 와서 예배용으로 편입된다. 이 시대 본격적으로 회중이 오르간 반주에 맞춰 코랄을 노래하는 관습이 생겨났으며 위에서 이야기한 칸티오날 양식의 편곡이 더욱 촉진되었다. 또한 옛 선율의 불규칙한 박자가 정리되어 갔으며, 악구가 끝날 때마다 늘임표가 붙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 바하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랄 편곡 형태가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 당시의 찬송작가로서 우리 찬송가에 실려져 있는 이로는 마르틴 링카르트(M. Rinkart, 1586~1649, 다 감사드리자 온 맘을 주께 바쳐), 게오르크 노이마르크(G. Neumark, 1621~81,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요한 쉐플러(J. Scheffler, 1624~1677, 너 나를 따라오라, 주님만 사랑하오니), 요아킴 네안더(J. Neander, 1650~1737, 다 찬양하여라, 하나님이 친히 여기 계시오니), 에르드만 노이마스터(E. Neumeister, 1671-1756, 천성 길을 버리고), 베냐민 슈몰크(B. Schmolk, 1672~1737, 아름다운 시온성아, 내 주여 뜻대로)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렇듯 당대 코랄이라는 장르는 교회 음악가들에게 도전이면서 과업이었다. 코랄을 토대로 오르간 코랄, 프렐류드(전주곡)과 토카타 등의 오르간 음악이 발전하게 되고, 합창음악에서도칸타타와 오라토리오, 또한 수난곡 등이 활짝 꽃피게 되는 것이다.

 

   
▲ 멘델스존 코랄 앨토-육필악보

이 일에는 당시 음악의 거장들인 하인리히 쉬츠(바흐에게는 세례자 요한과도 같다)와 더불어 루터교 3S인 샤인, 샤이트, 텔레만과 파헬벨,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헨델, 멘델스존과 브람스 등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음악가들이 큰 기여를 한다.

즉 코랄이라는 회중찬송의 시작은 결국 모든 교회음악의 대표적인 장르들로 발전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오는데, 이것은 코랄이 모든 교회음악의 원전이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장신대 홍정수 박사가 정리한 루터의 음악관을 통해 첫 회중찬송인 <코랄>이 어떻게 이런 놀라운 열매를 맺게 되었는지에 대해, 그 시작을 거듭 살펴보고 오늘의 산책을 마치자.

1. 루터에게 음악은 창조물이다. 하나님이 창조한 음악에는 ‘자연의 소리(새소리 등)’, ‘사람의 목소리’, ‘예술음악’의 단계가 있다.
2. 루터는 모든 음악을 하나님의 창조물로 파악하여 기악도 교회에서 허락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3. 루터는 음악을 듣고 느끼는 기쁨이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 “음악이 들리면 마귀는 신학의 말씀을 들을 때처럼 도망간다.” - 따라서 음악은 신학과 매우 가깝다.
4. 음악은 세상을 묶는 ‘힘’과 ‘질서’를 가져오며, 이 질서는 ‘신적인 질서(Ordinationes Dei)’라고 말한다.
5. 음악은 사람의 생각ㆍ감각ㆍ마음ㆍ감정을 다스린다.
6. 루터는 하나님이 음악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신다고 말한다.
7. 음악은 깊은 인간 내면에 있는 것을 불러일으킨다.
8. 음악의 감정적 능력이 정신적·영적 침체를 없앨 수 있다.
9. 루터는 찬양이 언어를 뛰어 넘어서서 환성이나 환호의 외침과 비슷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10. 루터는 음악이 교육(특히 경건 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필자소개

   
▲ 주대범 장로

1955년 서울에서 출생, 교육에 종사한다.

대학에서 문학을, 개인적으론 작곡을 공부했다.

고등학교 국어교사를 10년 한 후, 출판사를 운영 했었다.

교회합창곡도 작곡하고, 글도 쓰면서

누가 부탁하면 목수 일도 하고, 시각디자인도 한다.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생활을 39년째 하고 있다.

주대범 장로 (중앙루터교회 성가대 지휘자)  bawee10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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