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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탑 켜면 주민들은 방공호로…도대체 왜 켜는가?”애기봉등탑 반대운동 벌이는 이적 목사 인터뷰
편집부 | 승인 2014.12.10 17:52

김포시 하성면에 위치한 애기봉 전망대에 세워진 등탑이 지난 10월 안전상의 문제로 철거되었다. 그러나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호통을 쳤고 국방부에서는 전광판을 설치하겠다는 등의 조치를 발표했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연말에 등탑을 새로 설치해 점등행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북한과 폭 3km 정도의 조강(한강과 임진강이 합류된 강)을 사이에 두고 있는 애기봉에서 등탑을 밝히면 개성시내에서도 볼 수 있어 남북한 간에 갈등 요소로 작용했던 이 철탑은 2004년 남북한의 합의하에 심리전관련 시설이 철거됨에 따라 7년간 전등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연평도 포격사건이 있던 2010년 12월 7년 만에 다시 점등행사를 강행했고 2011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2013년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매우 심각해 등탑행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올해 한기총에서 새로운 등탑을 세워 행사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국방부에서는 행사를 허가한 상태이다.

본지는 2010년부터 애기봉 등탑반대운동을 벌여온 이적 목사(민통선평화교회)를 만나 이와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목사는 북한 접경지역인 고양 파주 김포 연천 철원 지역 주민들과 함께 대북전단살포반대 및 애기봉등탑반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등탑 점등행사 반대와 대북전단살포 반대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는 “불을 밝혀 북한에 복음을 전하겠다는 논리는 한반도 긴장을 유지함으로 이익을 얻는 모든 분단세력들의 얄팍한 전쟁논리”라고 일갈했다.

아울러 김포지역 주민인 김대훈 씨로부터 접경지역 주민이 등탑으로 인해 느끼는 심정을 들을 수 있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이다.

지난 7년간 우리는 꿀잠을 잤다.

최근 애기봉 등탑 철거와 관련해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적 목사(이하 이):애기봉 등탑 철거된 것이 올해 10월이다. 2004년도에 남북고위급장성회담에서 종교탑, 전단살포, 대남대북방송 등 대북대남심리전과 관련된 일제의 모든 장비와 시설물을 철거하기로 합의한 이후 같은 해 6월 모든 장비와 시설물이 철거되고 대북대남방송이 중지되었다. 그 이후 6년 6개월간 북한 접경지역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 2010년부터 애기봉 등탑 반대운동을 벌여온 이적 목사. 그는 민통선안에 위치한 민통선평화교회를 18년째 맞고 있다.ⓒ에큐메니안
그러나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이후 이명박 정권에서는 2010년 12월 21일 애기봉 등탑에 불을 밝혔다. 형식은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점등행사를 신청하고 국방부가 승인하는 것이었다. 이번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신청하고 국방부에서 승인한 형태와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010년 4월 초파일 때에도 국방부에서는 조계종에 봉축탑을 켜라고 권유했으나 조계종에서는 남북관계를 악화시킨다는 이유로 거부한 바 있다.(애기봉 등탑은 석탄절에는 봉축탑으로 성탄절에는 성탄트리로 사용된다고 한다.)

그러자 국방부는 이름도 모르는 불교단체를 내세워 봉축탑 점등행사를 하려고 했지만 조계종에서 이름도 모르는 단체가 불교단체로 위장하는 것 아니냐라고 항의해 결국 초파일 점등행사가 취소된 적이 있었다.

2012년도에도 점등식을 했는데 김충립 목사가 사적으로 불을 켜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당시 김포지역에서 등탑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었고 2010년 등탑점등행사를 한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위상이 많이 나빠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충립 목사를 만나 협상을 시도했다. ‘북쪽에서 안 보이는 방향에서 불을 켜라. 그러면 우리도 동참 하겠다.’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결국 그들은 12월이 되자 소방차를 앞세우고 애기봉으로 올라와 점등행사를 강행했다. 우리는 차량을 막아섰지만 중과부족이었다. 결국 경찰에 의해 강제연행 되었고 그 과정에서 부상을 입기도 했다.

2011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으로 등탑행사를 하지 않았고 작년에는 한반도 정세가 매우 험악해서 안 켰던 것이다. 그리고 올해 또 켠다는 것이다. 2010년부터 지금까지 5년째인데 매년마다 ‘켠다, 안 켠다.’하면서 우리를 긴장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불은 안 켰지만 등탑은 계속 존재해왔고 등을 달게 되면 20만개 전구가 달린 전선줄을 등탑에 돌려가며 달아 내리는 것이다. 2010년 이후 등탑에 불이 켜지만 마을 주민들은 등탑의 불이 켜짐과 동시에 방공호에 들어가고 끄면 나오는 대피훈련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 애기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이 지역에서는 임진강과 한강이 만난 이 강을 조강이라고 부른다. 애기봉 등탑 불빛은 강건너 2,30km떨어진 개성시내에서도 보인다고 한다.ⓒ에큐메니안

전등탑 철거는 지자체와 국방부 합의사항

그러면 이번에는 어떻게 전등을 달겠다는 것입니까?

이: 임시철탑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기존 철탑은 땅에 고정시키는 볼트가 오래되어 위험하다는 진단에 의해 사단장이 철거하라고 한 것이다. 원래는 내년 3월에 철거하도록 되어있었다. 평화공원조성을 위해 3월에 철거하려고 했으나 5개월 먼저 철거한 셈이다. 그런데 박대통령이 화를 낸 것은 이러한 전후 사정을 몰랐을 것이다. 언론에서 철거에 대한 보도가 나오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화를 냈을 것으로 추정한다. 실제로는 김포시와 재경부와 국방부 국정원이 참여한 가운데 애기봉 등탑철거와 평화공원조성과 관련한 협약서를 맺은바 있다. 애기봉 평화공원조성하는 과정에서 대북심리전과 관련된 어떤 건축물이나 조형물을 만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협약했다. 이것은 김포시장이 직접 공언한 바 있다. 또한 김포시의회 조례로 ‘애기봉 평화공원내에는 대북심리전과 관련된 설치물을 금한다.’는 조례를 제정해도 된다는 내용을 협약서에 명시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철거가 진행된 것이다. 사단장이 무슨 힘이 있다고 독단으로 철거 했겠는가. 협약서라는 근거가 있으니 철거한 것이다. 10월 초에 올라가 보니 철거가 돼 있는 모습에 나도 깜짝 놀랐다. ‘남북관계를 발전적으로 바라보려고 말도 없이 철거 했구나.’ 이렇게 생각했고 매우 고무적이었다. SNS상으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그랬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언론에 애기봉 전등탑 철거소식이 돌자 박대통령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국방부가 알아서 기는 꼴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전에 맺었던 4자간의 협약은 깡그리 무시된 채 대북 전광판을 만들겠다고 얘기한 것이다. 정작 김포시에서는 전광판에 대한 계획조차 없고 전망대에 대한 예산도 없다. 김포시에서는 도무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평화공원조성 예산에는 전광판을 세울 예산이 없다. 평화공원책임자는 지자체인 김포시이다. 이번에 국방부에서 전광판을 세우겠다고 한 것은 김포시를 무시한 일방적인 처사이다.


애기봉 전등탑은 성탄트리 아닌 전쟁트리

애기봉 등탑 점등행사를 반대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 입니까?

   
▲ 이적 목사
이: 2010년부터 했다. 2004년 이전에는 그런 운동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북에서 ‘조준 격파하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으니까. 기존에 켜왔던 등탑이니 북에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근데 2004년도에 남북간 심리전 중단 합의로 이후 7년 동안 민통선 주민들은 꿀잠을 잤다. 대북대남방송을 안하니 얼마나 조용한가. 그전에는 시도 때도 없이 왕왕거렸다. 새벽부터 떠들기도 하는데 남풍이라도 부는 날이면 앞마당에서 떠드는 것 같았다. 시끄러워서 잠을 못잘 정도였다. 등탑행사도 안하고 방송도 끊긴 7년간은 정말 쥐죽은 듯했다. 얼마나 조용하고 평화스럽던지……. 너무 좋았던 시절이었다.

2010년도에 애기봉 등탑 불을 켜겠다는 소식을 서울에 볼일 보러 나간 사이 뉴스에서 이 소식을 접했다. 당시 나는 이것은 계약위반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북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 다음날 북에서 ‘조준 격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나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어서 등탑행사 반대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나는 ‘민통선 주민들을 교회가 지켜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주민들에게 선교할 책임과 명분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일을 우리 교회가 맡겠다.’고 선포했다. 현수막을 제작하고 성명서를 쓰고, 2010년 처음으로 6명이 시작했다. 그때는 언론에서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2010년 한겨레신문에 쓴 칼럼에 사람들의 반향이 컸다. 이후 언론사의 문의가 잇따랐다. ‘성탄트리를 왜 꺼야하는가’라고 묻기에 나는 애기봉 성탄트리는 성탄트리가 아니라 전쟁트리이다. 0.0001%라도 전쟁의 위험성이 있다면 그것은 성탄트리로서의 의미는 없는 것이다. 성탄트리는 낮고 천한고 예수님의 평화정신을 구현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이것이 상대로부터 포탄을 받게 된다면 결국 전쟁트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얻게 되었다. 2012년도에도 반대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김포시 전역에 50여개 현수막을 달았다. 여기에는 김포 시민사회단체가 항상 공조했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애기봉등탑 반대 대책위원회 대표로 활동하기도 했다.

올해에도 한기총에서 등탑점등 행사를 한다고 하는데 김포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이: 올해 YTN에서 애기봉에 성탄등탑을 켠다는 보도에 기독교를 비난하는 댓글이 폭주했다. 이제는 국민들이 바뀌었다. 김포 북한접경지역 주민들도 마찬가지이다. 연천에서 대북전단 살포할 때 북한이 조준사격 한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주민들 스스로 반대플래카드를 걸었다. 지난 10월에는 보수적인 종교단체서 애기봉에서 행사를 하려고하자 지역 주민들이 고함치며 막기도 했다. 이것은 김포시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 전역의 문제이다. 남북간의 뒤틀린 문제는 남북전체의 문제이다. 국방부에서 발표한 대로 전광판을 만들게 되면 북한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전광판은 대북심리전술이다. 이것은 전쟁이다. 심리전도 국제적으로 전쟁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험한 시도는 당장 멈추어야 한다.


등탑이 켜지면 접경지역 군부대는 준전시상태…노인들도 등탑행사 반대해

김포 접경지역 주민으로서 애기봉 등탑이 주민들에게 주는 영향은 무엇이었습니까?

김대훈: 애기봉 등탑(철탑)이 세워진 것은 1971년도에 국기 게양대로 세워졌다.(최초로 세워진 것은 1954년도) 높이는 18미터이다. 43년 동안 등탑이라는 이름으로 석탄일과 성탄절 때 등을 키는 용도로 사용되면서 ‘등탑’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애기봉 등탑은 2004년도 대북선전 시설이 철거됨과 동시에 사용되지 않았다. 그 후 7년 동안은 꿈같은 평화가 찾아왔다. 김포 북한 접경지역은 아주 고요한 평화로운 동네가 됐다. 남한 접경지역 전체에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 김포 지역 주민인 김대훈 씨는 김포시와 국방부가 합의한 사항이 대통령 한마디에 뒤집어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에큐메니안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협약을 깨고 등탑점등식을 하게 됐다. 2010년도에 김포 접경지역주민의 의사와 반하는 등탑전등을 하게 됐고 그 이후 올해도 켜진다면 세 번째가 된다. 들려오는 소식에 따르면 올해에도 켜지게 되는 상황 같다. 이 지역에는 남북관계를 자극하는 행동을 자제하는 분위기인데 걱정이다.

등탑이 켜지면 접경지역 전체 군부대는 비상이 걸린다. 휴가와 외출, 외박도 전면금지 되고 등탑이 켜지는 2주 정도는 준전시상태가 된다. 등탑을 켜면 북한은 애기봉 등탑을 공격하겠다고 공언을 한다. 대북심리전의 상징인 애기봉등탑을 공격하겠다는 것이다.
 
한기총에서 이번에 임시로 세우겠다는 등탑은 기존 18미터에서 대폭 줄인 9미터라고 하는데 애기봉자체가 자연전망대이기 때문에 그 위에 조형물을 설치하게 되면 개성시내에서도 보인다고 한다. 전력난이 심한 북한에게 반짝거리는 등탑은 대북심리전의 도구로 생각할 것은 자명하다.
 
더구나 등탑이 켜지면 김포 접경지역 주민들은 방공호 대피훈련을 한다. 불시에 사이렌이 울리면 방공호로 대피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농사도 제대로 지을 수 없고 아주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더구나 심리적으로 우리 마을에 포탄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공포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것 하지 말자고 해서 그동안 너무 좋았는데 왜 굳이 연말이 되면 이 난리를 떠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역주민들 대부분이 시골 노인들인데 대부분 전쟁을 경험한 세대이고 정부의 정책에 대해 상대적으로 무감각한 분들인데 이들도 많이 변했다. 2010년 이후 등탑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하고 있다. ‘애기봉 등탑을 재건축 하지 말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 달 부로 접경지역 지원법이 특별법으로 격상됐다. 이유는 세 가지인데 접경지역에 그나마 보존된 환경을 보존하겠다는 것과 지역주민 소외당한 권리와 복지문제를 향상시키고 건축도 못하고 소유권행사도 못하는 지역주민들에게 보상차원에서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놓고 한편으로는 접경지역을 이용한 대북심리전도 계속하겠다는 이중적인 태도가 매우 한심스럽다.

지난달 애기봉 등탑이 철거된 것은 건축물 점검결과 D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군인들과 관광객들에게 안전상 문제가 있어서 철거한 것이다. 그 권한은 사단장에게 있는데 그것을 대통령이 나서서 노발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지 않는다. 철거에 대한 것은 이미 지자체와 국방부가 합의를 본 상태였다. 더구나 평화공원조성계획과 맞물려 철거한 것인데 대통령한마디로 모든 게 뒤집히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 애기봉으로 올라가는 진입로에는 지역주민들의 등탑 재설치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에큐메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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