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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테토칩은 먹어도 컴퓨터칩은 못 먹는다<전순란의 휴천재일기-2014.12.10>
전순란 | 승인 2014.12.15 12:01

2014년 12월 10일 수요일, 맑고 포근한 하루

아래층 진이엄마랑 함께 김장을 하면 역할분담을 해서 진이엄마는 마늘, 생강, 파, 갓 등을 다듬고 쓸고, 나는 배추 키우고 뽑고 다듬어 놓고 당일에는 멸치다시를 내고 거기다 무채, 찹쌀죽을 쑤고 한다. 어제 오후에 둘이서 배추를 절이고 늦잠이 많은 진이엄마가 자정 쯤에 한번 뒤집고 내가 새벽 4시경 한번 뒤집었다. 소나 배추는 함께 놓고 각자가 필요한 만큼씩 해 가는데 진이네 식구가 많아서, 나는 보내줄 친구들이 있어서 좀 여유 있게 하곤 한다.

작년에는 100여포기를 했으니 한 집에 50포기는 돌아갔다. 그런데 금년에는 포기 수만 세고 배추의 크기와 생김새를 안 본 까닭에 80포기를 했는데도 채가 작아 평소의 40여포기 분량밖에 안 된다. “십여 포기 더 구해다 장만해서 줄 사람 줘야지.” 했다 진이엄마한테 “형님, 이젠 좀 참아도 될 나이에요. 되레 얻어먹어야 할 나이란 말예요.”라고 일침을 맞았다.

   
 
   
 
   
 
   
 
1시가 넘어 점심을 차리려는데 느티나무 독서회 귀여운 동생들 셋이 우르르 몰려온다. 자기들은 점심을 먹고 왔다 하고 진이네와 우리 부부는 식사 전이어서 커피 한잔씩을 들려 손님들을 이층으로 보냈다. 나도 김장 팽개치고 이층으로 올라가서 친구들과 노닥거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식사를 마친 보스코더러 올라가서 그이들과 놀아주라 했더니만 여자들이 무리지어 모인 자리를 퍽 무서워하기는 그도 마찬가지인데 말없이 올라갔다. 무슨 얘기를 하면서 무슨 놀이를 했는지 모르지만 세 아우 다 만족한 표정으로 떠났으니 김장하는 아내 대신 보스코가 나름대로 역할을 한 듯하다.

   
 
   
 

네 시가 넘어 김장이 끝나고 뒷정릴 하고 나니까 다섯시. 장상무와 심화백에게 김치를 싸서 함양우체국에서 택배로 부치고 함양여중 학생회관에서 전교조선생들이 주최하는 ‘강수돌 교수 강의’를 들으러 갔다.

첫마디로 “교육이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를 물었다. 교육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말 아니냐니까, 그의 대답이 “사람이 바뀌려면 100년은 걸리니까 어려서부터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라면서 학교부터 줄서기로 서열화해서 경쟁시키지 말고, 주도적이고 주체성 있고 행복한 애들로 키우자는 요지로 얘기를 엮어갔다.

   
 
예컨대 디자인을 배우더라도 사회적 약자, 아이들과 노인들이 편하게 살만한 도시와 주택을 디자인한다든가, 영화감독이 되어도 어두운 것을 꺼내서 밝은 세상을 향하게 만들 아이들을 길러내자는 말은 보스코가 강연하고 다니는 ‘사회적 사랑’을 교육에서부터 반영하자는 말이어서 반가웠다. 그러려면 초중고에서 노는 게 자유로워 성장과정이 행복해야 한다, 사춘기에 꿈이 생길 적에 사회적 사랑을 펴려는 꿈을 꾸도록 이끌어줄 교사들이 필요하다, 행복하게 사는 부모 밑에 행복한 자녀들이 있다, “얘들아, 절대로 나처럼 살지 말아라!”라는 유언을 남기지 않게 살라는 강사의 말들이 기억에 남았다.

   
 
   
 
내 기억으로도 여고를 졸업하고 그해 처음으로 예비고사가 실시된 해여서 집안의 기대대로 이화여대를 지망하려던 나한테 교목으로 계시던 차목사님이 충고하셨다. “네가 꾸는 꿈이 다르니 평범한 여자가 되지 않게 신학을 공부하여라.” 당신은 감리교 신학대학 출신 목사이면서도 “한국신학대학을 가거라. 거기 가면 어떻게 꿈을 펼지 배울 거다.”라고 떠미시던 일도 기억난다.

한신에 가면서 과연 내가 "평범하지 않은 여자"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자라오던 환경에 비해서 가치관과 인생관 그리고 시국관이 크게 달라졌음은 사실이고 그 길잡이가 되어주신 차목사님께 늘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쇠락해가는 농촌에서 미시적으로나마 발버둥치는 분들이 있다는 것, 나라도 농촌을 살려야겠다고 발버둥 치다 보면 어느 임계점에 이르러 폭발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강수돌 선생의  격려가 고마웠다. 아무리 훌륭한 과학자도 배가 고프면 마지막엔 포테토칩이라도 먹어야지 컴퓨터칩은 못 먹을 거라는 말에 움직여 그가 쓴 「나부터 세상을 바꿀 순 없을까?」라는 책을 한 권 사갖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전순란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아내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http://donbosco.pe.kr/xe1/?mid=junprofiie

전순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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