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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에서 아직 못 다한 이야기<박명철의 인생 삼모작 11>
박명철(전 연세대교수) | 승인 2014.12.22 12:57

‘자연은 아름답다. 그러나 인간의 작품은 조잡스럽다.’ 이것이 내가 고흥집에 와서 느낀 첫 소감이다. 남쪽으론 푸른 바다요, 북쪽으론 오돗하게 솟아오른 유주산과 언덕이다. 그 가운데 우리 집이 있으니, 자연 속에 푹 파묻힌 기분이다. 거기에 따뜻한 태양이 비쳐주는 날이면 나신이 되어 온 몸으로 그 열기를 품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주변을 주목해서 보면 인간의 손이 닿는 곳마다 자연의 상처는 앙상한 채 남아 있다. 산에는 태양광 사업을 한다며 암벽을 깎고 깨서 수풀 대신 속살을 들어내고 태양에너지 시설이 엉성하게 서 있다. 좁은 농로의 구석진 곳에는 쓰고 버린 비닐뭉치와 비료봉지들이 뒹굴거나 방치되어 있다. 잘 정돈된 나물제배와 밭농사의 전경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바닷가에는 관광수입을 올린다며 해안도로 개발을 위해 측량사들이 왔다 갔다 한다. 인위적인 작품이 아름다운 해안을 되려 망가뜨리지 않나 내심 걱정이 된다. 물론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자동차 투어 하는 분들에겐 신이 날지 모르지만.
 
내가 고흥집에 입주하면서 맨 먼저 한 것이 주변청소였다. 집안은 깨끗하고 멀쩡한데, 집 바깥은 쓰레기통이다. 가장 고약스러운 것은 시멘트 담벽을 허물어뜨려 약 2m 높이의 직벽 아래로 버려진 건축폐기물이다. 이것은 지금도 손대지 못하고 그냥 나두고 있다. 또 다른 골칫덩어리는 비닐봉지이다. 이것은 몇 년간 계속해서 버려졌는지 땅속까지 스며들어 묻혀 있다. 자연분해가 되지 않으니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땅이 숨 쉬고 식물과 미생물이 서식할 공간을 이것들이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니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제거했다. 아마 부대 자루로 5개 정도는 나왔을 것이다. 집안과 밖이 이렇게 다를 수가 없다. 돈이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차이와 차별도 유별나다. 돈벌이가 되는 것은 삐까삐까 광채가 나는데, 돈이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소모품이 되어 자연을 신음하게 하고 있다. 우리의 생각과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농촌에서 두드러진 모습 가운데 하나는 ‘농부는 노는 땅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농부들의 토지에 대한 애착은 대단하다. 작물을 심을 때 빈 공간이나 여백이 없이 빽빽하게 심는다. 돈으로 따진다면 몇 푼이 되지 않는다. 농작물에 의한 소득이라 해도 미미한 액수이다. 그런데 이들은 노는 땅을 곁에 두고 보지 못한다. 왜 그래야 할까? 나도 모른다. 아마 이것은 농경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형성된 무의식적인 행동인 것 같다. 나는 텃밭을 가꿀 때, 걸어 다닐 길부터 만들어 놓고 시작한다. 그런데 아랫집 주인아주머니는 나의 뜻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텃밭의 길에 까지 씨를 뿌려 작물을 제배하고 길을 없애버린다. 이런 현상은 공로(公路)인 노변, 다시 말해 도로를 보호하고, 위급할 때 자동차가 대피하거나 보행자가 걸어 다닐 수 있는 여백의 공간인데, 이 빈 공간에도 야채를 심고 제배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고흥집에 입주해서 적지 아니 신경을 쓴 것이 텃밭문제였다. 고흥 집의 옛 주인은 우리에게 속한 땅과 그의 토지 사이의 경계를 의식하지 않고 지금까지 해온 그대로 경작을 한다. 우리가 구입한 터가 몇 평되지 않아 옛 주인에겐 무시해도 될 만큼 작게 보였을지 모른다. 할 수 없이 나는 빈 공간을 찾아 꽃밭도 만들고, 주차장 앞과 마당 아래 돌담 밑의 공지를 골라 띄엄띄엄 개간해야 했다. 화분도 큰 것 몇 개를 구입 해다 토마토와 가지도 심었다. 내게는 처음 하는 농사가 되어서 아랫집 아주머니는 내가 하는 것이 딱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던지 얼굴에 미소 지으면서 하시는 말씀이, “고추와 상추를 그렇게 총총히 심으면 어떻게 해요? 텃밭에 이 모종들을 띄엄띄엄 심어 놓으라.” 하신다. 사실, 고추는 내 신체의 배꼽 위치만큼 높고 크게 자랐고 고춧대를 꽂아 놓고 받혀주어야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날 이일이 처음으로 옛 주인이 나에게 텃밭의 일부를 허락한 특혜였다. 어쨌든 이것은 나에게 큰 기쁨이었고 앞으로도 텃밭을 통해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희망의 단초였다.
 
내가 사는 동네는 상동, 하동으로 구분되어 명명된다.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한 곳은 상동이고, 아래는 하동이다. 그런데 기이한 것은 동네의 집들이 언덕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집으로 연결되는 도로도 차 한 대가 들어갈 정도로 비좁고 꼬불꼬불하다. 넓고 널널한 농촌에서 왜 이렇게 집을 따닥따닥 붙여 짓고 살아야 할까? 사연은 6, 70년대로 돼 돌아가야 이해가 된다. 이때만 해도 이 동네는 언덕 아래에 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염전과 어업을 중심으로 생업을 하고 있던 곳이라 한다. 그런데 60년대에서 70년대에 방대한 방조사업이 진행되어 이제는 바다는 없고 광활한 논밭이 언덕 아래로 펼쳐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해안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마을은 이제 조잡스러운 형상으로 남아 있게 된 것이다.

   
▲ 저녁 노을에 물들고 있는 고흥호. 사진 중앙에 방조제가 보이고 그 너머로 보성군의 팔봉과 오봉산 모습이 보인다.
고흥 반도에는 이 같은 방조사업이 곳곳에서 진행되었던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고흥반도의 대표적인 방조제라면 해창만 방조제와 고흥만 방조제를 들 수 있는데 그 규모가 – 세만금에는 비교가 되지 않지만 – 엄청나다. 방조제로 인해 만들어진 방대한 농경지는 잘 정비되어 주위의 산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참으로 아름답다. 나는 종종 고흥만 방조제를 찾아간다. 방조제를 가운데 두고 앞에는 호수같이 잔잔하고 광활한 득량만 해변이 전개되고 뒤로는 끝없이 펼쳐지는 농경지가 나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듯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방파제 낚시가 곁들이고, 방조제로 인해 만들어진 저습지대의 갈대밭 길을 따라 자전거 투어를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자연을 변형하여 편하게 만들어 놓은 포장된 도로며 편의시설은 우리를 안락하게 한다. 투어를 하면서 나의 머릿속에 맴도는 것은 방조제 사업 이전의 그 옛 모습은 어떠했을까? 옛 보다 나아진 것은 어떤 것일까?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쌀 수입 전면개방 하는 이때 새롭게 조성된 고흥의 방조제들과 전답들은 이제 폐허로 전락해 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엄습해 온다. 미래 예측이 불확실한 것은 자연 그대로 나두면 어떠할까, 조잡스러운 인위적 작품 말고... 이런 생각을 해보며 페달을 밟고 또 밟는다.

   
▲ 득량만에 지고 있는 태양.

박명철(전 연세대교수)  mcpark@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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