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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틈새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자라나는 협동조합운동<권진관 칼럼>
권진관(성공회대학교 조직신학교수,한국민중신학회 회 | 승인 2014.12.26 22:22

역사 속에서 협동조합은 자본주의적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의 틈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자본주의의 경쟁 구도 안에서도 협동이라는 방법과 가치가 살아남을 수 있고 여전히 유효한 전략인 것이 확인된 것이다. 경쟁보다는 협동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며, 경쟁이 아니라 협동해야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원리를 인간의 역사, 특히 협동조합의 역사는 잘 보여주고 있다.
 
협동조합에서는 그 원리에서 경쟁과 갈등이 아니라, 협동이 우선시 된다는 점, 그리고 그 협력에서 나오는 여력과 잉여를 가지고 사회를 개혁하는 일에 투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강점을 가진다. 특히 협동조합의 정신이 확장되어 이웃과의 공동체를 형성할 뿐 아니라, 피조세계의 생명을 보호하는 운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21 세기의 새로운 대안적 삶을 위한 활로를 제공해 줄 것임에 틀림없다. 

   
 
필자가 종사하고 있는 대학을 보게 되면, 연구자를 위한 협동조합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실감할 수 있다. 한국의 대학은 자본주의적 시장 제도에 편입된 지 오래되었다. 수많은 연구자들이 대학이라고 하는 제도적 장치 밖으로 배제되고 소외되어 있다. 연구자들이 배타적 독점적인 대학제도에 의해서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또 이들은 대학 제도에 의해서 헐값으로 활용되고 착취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 연구자 협동조합이 만들어져야 한다.
 
협동조합이 가장 잘 이루어질 수 있는 지점이 농산물을 중심한 협동조합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 삶 속에서 협동적인 삶이 실현되어야 한다. 그리고 작은 땅에서라도 소출되는 것들을 모을 수 있는 그릇이 필요하다. 그것이 마을 공동체가 그러한 그릇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모아진 것을 도시의 회원들에게 판매하여 마을 공동체 일원들의 삶에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모든 농촌에 이러한 협동조합운동이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결국 오늘날의 한국의 농업문제, 생태계 문제, 농약문제, 건강한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협동조합운동은 도시에서도 가능하다. 골목에서도 몇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일할 수 있다. 함께 생태적 카페도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고, 탁아소, 공부방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협동조합의 사회적 확장은 참여적 복지사회, 복지국가로 이어진다.         
 
오늘날 한국의 사회변혁운동은 맘몬과 권력의 힘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경제생활을 그 기반으로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이나 사회변혁운동이 대도시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변혁세력의 물질적 토대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속에 편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존의 보수 반동세력과 거리를 둘 수 있는 물질적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DJ, 노무현 정부에서 오히려 신자유주의 경쟁제도가 더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의 변혁운동도 경제적 물질적인 토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변혁운동은 궁극적으로는 어떤 물질적 경제적 구조를 목표로 할 것인가로 귀결된다. 우리의 사회변혁운동의 경제제도적 지향이 무엇인가를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허한 이념과 구호의 투쟁으로 끝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협동조합이 우리 사회변혁운동에 이념적인 기반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것은 기독교적인 정신에도 적합한 것이라고 본다.
 
사실, 협동조합운동을 보면, 예수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 기독교인들의 움직임이었음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한 살림”운동도 원주 가톨릭운동에서 비롯되었고, 스페인의 몬드라곤도 가톨릭 신부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복지국가들인 북구라파 국가들도 기독교 정신의 협동조합이 많이 있으며, 기독교 국가인 영국은 근대 협동조합운동이 시작된 곳이었다. 협동조합운동의 역사에 기독교의 정신이 깃들어 있음을 볼 때 협동조합운동의 신학적인 근거가 없을 수 없다. 

협동/협력은 기독교 구원관의 중심

인간이 구원을 얻는 것은 완전히 타율적인 방법으로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전통적인 신학적 견해가 있다. 타율적인 구원관은 인간은 협력할 줄 모르는 죄인이고 무력한 존재이거나 아니면 욕심만 가득한 존재라고만 본다. 무기력한 죄인이거나, 욕심으로 뭉친 죄인이므로 협력은 불가능하며, 감히 하나님과 자기 구원을 놓고 협력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여기에 담겨 있다. 이것이 전통적인 구원관인데, 그러나 건강한 구원관은 인간은 협력, 협동할 줄 아는 존재라고 본다. 그리고 구원은 하나님의 구원 활동에 인간이 협력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본다. 즉 인간은 협력할 수 있는 존재라는 관점을 가진다.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 구조 속에서 인간이 탐욕만을 부리고, 경쟁만이 살길이라고 해서 남들을 짓밟는다고 한다면 본인은 성공할지 몰라도 그것은 결국 지옥과 죽음을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자연파괴, 건강파괴, 공동체 파괴, 미움으로 인간성의 마비로 귀결되므로 결국 죽음이 오게 되어 있다. 협동만이 인류의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다. 건강한 개인들이 각각 자기의 구원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추구한다면, 이웃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구원은 “함께 얻을 수 있는 구원”이다. 서로 협력해야만 내가 구원을 얻을 수 있다. 협동조합운동은 이러한 면에서 인류를 구원하는 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은 사랑의 끈으로 우리를 협동하게 한다

 성령은 역사를 둘로 나눈다. 하나는 옛 역사이고, 다른 하나는 새 역사다. 새 역사는 끝, 즉 종말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들어 가 있는 역사를 말한다. 새 역사는 과거와는 다른 새 시대를 연다. 현재는 종말론적이고 메시아적인 희망 안에서 용솟음친다. 선지자 요엘은 이렇게 말했다. ‘성령이 임하면 모든 사람들, 젊은이와 늙은이, 남자와 여자가 새 꿈을 꾸고 예언할 것’이라고···. 예수 그리스도는 새 시대를 시작했다. 성령은 새 시대의 담지자(주체)를 만들어서 주는 신적인 힘이요 사건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역사를 이끄는 진정한 힘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참여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와 상속자가 된다(갈 4:4-4). 성령이 역사 안에서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재림, 즉 세상에 군림하실 그리스도를 위한 길을 닦고, 하느님나라를 예비하는 일일 것이다(고전 15:24). 사도 바울은 주장했다. “하느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롬 14:17).” 우리는 성령에 의해 영감을 받고, 성령이 힘주시는 대로 정의와 평화, 그리고 기쁜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정의롭고 평화로우며 기쁨 가득한 사회를 세우기 위한 투쟁에 참여한다. 세상의 “육적인” 힘과 그 대행자들에 대항하는 것이다.
 
만약에 육적인 힘이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적 질서, 신자유주의적 질서라고 한다면, 성령은 협동하게 하는 힘이다. 우리를 주체로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서,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의 형제, 자매로 만드는 힘이다. 이 힘은 우리로 하여금 자주적이고 자율적인 인간으로 만들고 나아가서는 서로 협력하게 만든다. 경쟁을 넘어서서 협동하게 하는 힘이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온다. 이 영은 삼위일체를 성립시키는 분이다. 삼위일체는 사회적 협동을 상징한다. 성령은 우리들을 서로 연대하게 하고 서로 묶어 주는 끈으로서의 기능을 하신다. 성령은 삼위일체 하느님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사랑의 고리, 끈이며, 동시에 사회 속에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 연대하게 하는 생명의 힘이다.               
 
오늘날 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적 체제에서 협동조합은 우리들에게 신선한 성령의 바람을 일으켜 주고 있다. 우리들의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이러한 협동의 사건들이 일어나야 한다. 협동하려면 원수마저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따르면 된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정도라면, 어느 누구와도 연대하지 못할 일이 있을까?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여야 원수들이 가지고 있는, 그러나 우리들 안에는 없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원수와 연대할 수 있다면 어느 누구와도 연대할 수 있다. 협동만이 우리를 개인적으로 크게 만들고, 이렇게 커 가는 순간들 속에 성령이 함께 함으로써 우리를 창조적으로 만들며,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게 한다. 협동조합은 우리를 크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협동조합은 오늘날의 성령의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권진관(성공회대학교 조직신학교수,한국민중신학회 회  jkkwon@s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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