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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경험<안상님의 살아온 이야기-1996.2.9>
안상님 | 승인 2014.12.30 18:11

불이 난지 10일 만에 마지막 빨래를 세탁기에 넣었다. 첫날에는 전기가 나깠으니 빨래는 생각도 못했고 그저께는 수도가 끊어졌으니 할 수 없었고 나머지 7일간은 매일 두 번씩 빨아낸 셈이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10일 전에 불려 논 검은 콩이며 대추 호박오가리가 잔뜩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이구 저것들이 그냥 있네! 하기야 내 손이 안 갔는데 이 집안에서 움직일 일이 없지. 또 가슴이 울렁거린다. 불이 난 생각을 하려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이 모양이다.

그날은 모처럼 마음이 한가하니 기분이 좋았다. 오래전부터 독일에 보내려고 호박오가리를 해야 한다고 벼르던 일을 시작했다. 윗 층에 일 년 넘어 보관해 온 호박을 여덟으로 잘라서 반으로 자르니 16조각이 났다. 그것을 하나씩 씨 발려내서 접시에 벌여놓고 껍질을 벗기는데 여간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니다. 집에서 쓸 것이었으면 껍질째 쪄서 나중에 숟갈로 속을 떠내서 얼려두면 그만인데 말리려니까 이리 공이 많이 든다. 작년에 독일에 유학 가있는 후배가 자료 수집 차 귀국해서 두어 달 동안 우리 집에 머물다가 갔는데 그 때 이렇게 말린 호박을 보냈더니 그 아들이 호박죽을 그리 맛있게 먹었다는 말을 생각하며 내가 좀 힘이 들어도 또 해서 보내주려는 것이 이리 늦어졌다. 호박을 채반에다 셋이나 널었는데도 호박은 아직 반이나 남았다. 사실 그 반은 그냥 쪄서 두려다가 이왕에 보내는데 잔뜩 싸 보내고 싶어서 다 썰어놓았는데 채반이 모자란다. 안방에 신문을 두 겹 깔고 호박을 가지런히 빈틈없이 널었다. 방이 따듯하니 한 이틀이면 마를 것이라 생각하니 흐뭇했다. 물론 이것으로 호박죽을 쑬 그 후배와 맛있다고 먹을 그 아들을 떠올리고 아울러 그의 남편의 마음도 훈훈해 지리라 믿으며 혼자서 좋아했다.

며칠 있으면 내 환갑날이라고 남편이 몇 사람을 오라고 한 모양이다. 물론 음식점에서 시켜다 먹는다고는 했지만 요사이 돼지기름 사건으로 기사거리가 많았으니 중국음식을 달가워들 할 것 같지 않아서 몇 가지 메뉴를 써놓았다. 쌀이 많으니 절편이나 흰무리를 할까 하다가 이왕이면 좀 맛있는 떡을 하고 싶어졌다. 대추는 더운 물에 담갔다가 씻어 건져놓고 정희언니가 가져다 준 검은 콩은 일어서 물에 담가 놓고 시골 시누이가 보낸 생 땅콩이 있기에 씻어서 건져 놓았다. 이것들을 다 넣고 흰무리를 할 생각이었다. 저녁에 쌀을 물에 불려놓을까 하다가 천천히 해도 되겠기에 그만두었다. 대추도 씨를 발려낼까 하다가 일이 너무 많기도 하고 아직 며칠 남았는데 내가 왜 이리 서두르나 싶어서 주섬주섬 다 담아서 냉장고에 넣어버렸다. TV 뉴스와 드라마를 보고 느긋하니 자리에 누웠다.

갑자기 밖에서 탁 탁 하는 소리가 난다. 보일러에서 또 웬 소리가 나나 하고 나가보니 보일러는 아무 일이 없는데 저 뒤쪽의 심야전기 보일러 쪽이 환하니 번쩍번쩍한다. “어머 저게 뭐야?” 하고 뛰어가 보니 심야전기 보일러 스위치에 불이 나서 전기 줄에서 불똥이 튀고 있다. “여보, 불이야, 119에 전화 해.‘ 웨치고 물을 받아서 한 대야 붓는데 뒷집에서 불났다고 막 소리치며 담을 두드린다. 전화기를 든 남편은 뭐라고 말해야 하느냐며 나를 불러댄다. ”여기 심야전기에서 불이 났어요.“ ”거기 위치가 어디에요?“ ”여기 원서동인데요. 비원 담 끼고 들어오면 나나이발관이 있어요. 그 안집이에요.“”거기 큰 건물이 뭐예요.“ ”원서 수퍼 맞은 편 이에요.“ ”알았어요. 곧 가요“ 전화를 내던지고 마당으로 뛰어 내려갔다. 전기를 끊어야지. 두꺼비집으로 가야하는 데 근래에 두꺼비집을 만진 일이 없어서 어디였는지 생각이 안 난다. 대문 밖의 검침기 있는 데로 뛰어가 보니 너무 높아서 키가 닿지 않고 사다리는 바로 보일러실에 있으니 꺼내오기는 바쁘고. 길 가는 사람한테 전기 좀 끊어 달라고 소리쳤다. 얼른 뛰어 들어오니 보일러실에는 벌써 불길이 다 번져서 길길이 타오르는데 그 속에 사다리가 높다라니 버티고 있다. 사람들이 들어오려면 걸리적거리겠기에 얼른 끄집어내서 빨래방으로 밀어 넣었다. 복도에 있던 용 다리 상과 빨래걸이를 거둬치웠다. 소방차가 왔기에 이리오라고 소리치며 뛰어가니 뒷집에서는 그리로 오라고 끌어간다. 저 아래 소방차가 또 왔으니 나보고 그리로 가라면서.“여기에요.” 소리 지르며 소방차 쪽으로 뛰어가니 소방관들이 쫓아온다. 대문에서 마당을 건너질러 댓돌을 올라와서 툇마루로 들어와서 부엌을 지나 안방을 돌아 화장실 복도를 다 지나야 보일러실에 이른다. 소방소원들 여럿이 한꺼번에 들어와도 한 사람씩 상항을 보고 나가더니 한참 걸려서야 소방호스를 들여왔다. 전기를 끊는다고 하더니 갑자기 깜깜절벽이다. 화장실 벽장에서 전지를 꺼내 들고 나오는데 소방관이 귀중품 가은 것은 얼른 치우라고 귀띔을 한다. 위로 올라가는데 없느냐기에 이층으로 올라가는데 쳐둔 커튼을 마구 잡아 뜯었다. 소방관이 내 맨발을 보더니 다치니까 어서 신발을 신으란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직도 잠옷 바람이었다. 위에 코트를 걸치고 보니 남편도 구두를 신고 잠바도 입고 있었다. 불은 뒷집 쪽에서도 물이 쏟아져서 얼마 안 있어서 다 꺼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직도 계속 연기가 나니까 소방관이 지붕으로 올라가서 기와를 마구 헤치고 물을 쏟아 붓고 있다.

안방에 가보니 커다란 서치라이트가 있어서 환히 보이는데 천정 가장자리로 물이 막 스며 내려온다. 이부자리는 이미 부엌으로 끌어내 있다. 보료를 끌어내고 베개도 한쪽으로 밀어놓고 아까 펴 널어 놨던 호박오가리를 양푼에 주워 담다가 신문지 채 둘둘 말아 넣고 부엌으로 내갔다.

방 가운데 있는 형광등 가운데로 물이 줄줄 흐른다. 사람들은 물이 떨어진다고 양자배기를 들여다 놓고 있다. 지붕에서 소방호스로 물을 붓고 있는데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천정을 쳐다보니 물을 잔뜩 안고 있는 듯하다. 그 순간에 장 위에 놓인 토기가 보인다. “아1 저 토기 꺼내세요.” 키 큰 남자들이 손쉽게 내려서 부엌으로 내다 놨다. 그 다음 순간에 천정이 철렁 내려앉으며 흙물이 장 위로 쏟아져 내려온다. 방바닥은 금방 물이 차고문지방까지 물이 철렁거린다. 지붕 위에서는 계속 물을 쏟고 있는데 석가래 아래쪽으로 불꽃이 살아나더니 새파란 불빛을 뻗치면서 계속 타들어간다. 이층으로 뛰어가서 호스를 방안으로 내려 보내라고 소리쳤다. 지붕사이로는 계속 연기가 나니까 소방관은 계속 기와를 꺼내면서 호스를 들이댄다. 석가래 사이로 밀려 내려온 호스로 방안에서 보이던 불길은 잡았다.

우리 집 손전등이 어디로 갔는지 없기에 초를 찾아서 불을 켜들고 다녔더니 소방서원이 그 불도 위험하니 끄라고 한다. 캄캄한 사이를 헤집고 돌아다니는데 부엌 한 가운데에 누가 줄곧 한 자리에 서 있다. 말을 물어도 대답도 없이 부동자세이다. 이상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정복 순경이다. 그 북새통에 꼼작도 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순경을 보니 마음이 든든해지면서 이렇게 시민을 지켜주고 있다는 것이 새삼 고마워졌다. 데모하다가 닭장차에도 실려 가고 유치장에서 구류까지 살아봐서 경찰이라면 무조건 싫던 내 마음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동안에 옆집 세탁소 아저씨는 자기 집에서 전기를 연결해서 불을 켜주었다. 우선 둘레를 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불길이 다 잡히고 연기 나는 데도 없어지니 소방서원들이 철수를 하면서 한 시간 후에 다시 점검을 하라고 일러준다. 사람들도 하나 둘 흩어져 나갔다. 우선 잘 데가 없을 테니 세탁소 방에 와서 자라고 한다. 이웃에 있는 젊은 여자가 깡통커피를 가져왔다. 밤이라서 커피를 안마시겠다고 했더니 마시라는 것이 아니고 우선 추우니까 그 깡통들을 뜨겁게 해왔으니 주머니에 넣으면 따듯해지는 것이란다. 아! 서민들의 지혜이구나.

옆집에서 끌어온 전기가 아무래도 좀 불안해 보여서 그냥 가져가게 하고 다시 촛불을 켰다. 우리 초가 조그만 것밖에 없다고 했더니 그는 집에 가서 기다란 초를 두 개 가져왔다.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서 촛불행사를 하느라고 샀던 것이란다. 내가 초를 컵에다 세우려니까 “쌀이 있어요?‘ 한다.”쌀은 왜요?“ 이 사람이 촛불을 켜놓고 월 빌려고 하나? 여기 처음 이사 왔을 때 이 동네 풍물패들이 몰려와서 소반에 쌀을 가져오라던 생각이 났다. 그 때 영문도 모르고 서 있던 나에게 정초에 복을 빌어주려고 한다기에 내가 질색을 하고 우리는 교회 다닌다는 말로 거절했던 일이 있었다. 이제 생각하면 그렇게 하늘 보고 복을 비는 것이 우리 민족의 오래된 전통이었는데 교회에서 타종교 배척에 젖어있던 나는 그렇게 동네사람들을 끊어버린 셈이다. 컵에다 쌀을 채우라더니 그 가운데로 초를 꾹 눌러 넣었는데 아주 안전한 촛대가 되었다. 또 다른 민초들의 지혜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다들 돌아가고 나니 새벽 2시가 넘었다. 한 세 시간 동안의 일인데 온 세상이 뒤집히는 경험을 한 것 같다. 우선 부엌 옆방 나의 서재에 잠자리를 폈다. 부엌에 있는 화초 잎들이 축 늘어져있다. 올 겨울에 제일 추운 밤이었다는데 몇 시간을 문을 열어 두었으니 방인들 따듯할 리가 없다 전기가 없으니 전기보일러도 가동을 못하고 꼼짝없이 추운 대로 지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직 방바닥은 미지근하다. 그 열이라도 보존하려면 빨리 자리를 깔아야 한다. 이불 위에 오리털 이불을 더 덮었다. 그래도 다 식어버린 이부자리를 덥히려면 사람의 온기 밖에는 없다. 아까 받아 넣어 둔 커피 깡통이 아직도 따끈하다. 그것들을 세타에다 싸서 이불 속 발치에 넣었다. 어릴 때 일제 말기에 밤이면 어머니가 유담쁘에 뜨거운 물을 넣어주던 생각이 나서였다.

한 시간 쯤 지나서 한 바퀴 둘러보니 불은 완전히 꺼졌다. 이제 환갑을 며칠 앞두고 무엇을 못해서 불이 나는 경험을 다 하게 되었나? 하나님 아직도 제가 철이 덜 들었나 보죠? 둘이서 손을 잡고 언 몸을 눅이면서 잠이 드는 듯 마는 듯 했나 싶은데 먼동이 터온다. 이제 해가 나면 좀 따듯해지겠지. 우리가 9년 전에 이집으로 이사 오던 날도 그날까지 끝마치기로 했던 보일러 공사를 못해서 우리 세 식구는 꽁꽁 얼었었다. (그 때는 딸이 학생이라서 우리와 함께 있었다) 그 날 아침 햇볕이 그리도 따듯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던 듯했다. 그래서 오늘도 해가 날 때까지 만 견디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방 문을 열어놓으니 그 출렁이던 물이 다 없어졌다. 저 물을 어떻게 퍼내야 하나 걱정했었는데. 문갑 밑은 방을 늘려낸 곳이라서 나무마루로 틈새가 나 있었다. 언제고 거기를 고쳐야겠다고 했었는데 바로 그리로 물이 스며들어간 모양이다. 방바닥은 마치 진흙을 개어서 한 겹 발라 놓은 듯하다.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면서 호두와 잣으로 닦아놓은 먹감나무장은 온통 흙더미를 뒤집어썼다. 문갑이며 화장대 다리는 다 흙탕물에 잠겼던 표시들을 하고 있었다. 저 장이 마르면 나무가 다 뒤틀리면 어떻게 하지? 천정에서 떨어진 스트로프, 보드, 벽지나부랭이, 나무때기, 지푸라기, 늘어진 전기 줄, 등 홍수가 지나간 데가 이렇겠구나 싶었다. 옷장 위에 나란히 얹혀 있었던 토기 다섯 개가 그 홍수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천년이 넘게 간직되어온 우리 선조들의 손길이 서려있는 것인데! 우선 물을 퍼내지 않아도 되는 것만 해도 큰일을 덜은 셈이다. 전기가 끊겨서 커피 한잔도 끓일 수 없으니 어제 그 깡통커피를 자리 속에서 꺼내다 미지근한 채 마셨다. 이것이 회갑전의 마지막 경험이겠지.

마침 겨울방학 특강이 시작되는 날이었다. 남편은 그래도 아직 더운 물이 남아있다면서 세수를 하고는 “그래도 강의는 하러 가야지?” 한다. “그럼! 그래야 나도 당신이 벌어온 것으로 먹고 살지 않아?” 그가 대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눈이 안방 문에 멎어버렸다. 아! 저것들을 어떻게 치우지? 우선 지붕을 덮어야 되지 않아? 5년 전에 이집 벽이랑 천정에 방한용 보드랑 스트로프를 넣는 공사를 했던 목수가 생각났다. 그에게 전화를 해서, “김정숙 대목이시죠? 하니까 ”누구 신 데요?“ 사뭇 놀라는 음성이다. 사정을 듣더니 오늘은 마침 쉬는 날이라며 곧바로 왔다. 기와가 얼어서 지금은 손 댈 수 없으니 천막이라도 사다가 덮어야겠다며 바로 시장으로 갔다. 복덕방 아저씨가 이게 웬 일이냐며 허겁지겁 뛰어든다. 우리 집에서 좀 떨어진 그 집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고 미안해한다. 안방으로 들어서더니 양자배기에 들어있는 물을 퍼낸다. 이발소 아저씨도 또 와서 안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낯모르는 아저씨도 거들었다. 어떻게 잠이나 잤느냐며 들여다 보러들 온다. 동장이 와서 도울 일을 있느냐고 묻는다. 어제 커피 깡통을 가져온 여인이 또 왔다.”어제 그 커피를 아침에 마셨어요. 참 고마워요. 그런데 어디 사세요?“ ”요 옆이에요.“ ”어머, 그럼 비디오 집이에요?“ ”네“ 우리 집에 비디오가 없으니 그 가게에는 들어가 본 일이 없는데 젊은 사람이 그렇게 마음 쓰는 게 여간 고맙지 않다. 안방에서는 세 남자분이 손이 맞아서 농지거리까지 해가며 문갑이며 반닫이 등을 다 들어 내놓고 몇 시간 만에 그 험악하던 방을 말끔히 치워놨다. 그야말로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게 고마웠다. 내 남편이 집안일이라면 손가락 하나 까딱도 못하는 것을 보다가 남자들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방을 쓸고 걸레로 닦아내고 물을 뿌려가며 진흙더미를 씻어내는데 너무도 고마웠다. 물론 나도 찬물에 걸레 빨아대고 물 나르며 같이 했지만 나 혼자 하려면 며칠을 끙끙거렸을 일을 다 해냈으니 내가 감격할 수밖에. 그분들과 함께 저 아래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는데 세탁소 아저씨가 나를 부르러 왔다. 한전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것이다. 한전에서 와보기 전에는 전기공사를 할 수 없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한전 사람이 들어와 보더니 왜 공사도 안 해놓고 빨리 안 나온다고 전화만 해대느냐고 화를 낸다. 아침부터 육선생(마을 노인회 회장)이 어지간히 전화로 호통을 친 모양인데 무엇인가 의사소통이 잘못된 모양이다. 우선 전기상에 데려다 주고 상의해서 빨리 전기가 들어오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다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세탁소 아저씨는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인데도 아까 차를 갖다 대며 빨리 오자고 하더니 지금도 또 타래서 덕분에 차타고 오가며 호강을 한 셈이다.

남편이 전화를 했다.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나 얼굴 보는 것이 보통인데 집이 걱정인 모양이다. 자기는 가슴이 두근거려서 죽겠는데 나는 어떠냐는 것이다. 우선은 괜찮다고 안심을 시켰다. 그 동안에 전기상에서는 일을 시작했고 아까 왔던 한전직원이 전기 점검료를 내란다. 한전에서 점검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더니 이번에는 우리가 필요해서 요청한 것이라서 점검료를 내야 한단다. 그 점검을 했다는 증서가 있어야 전기를 다시 연결한다는데 당장 추워죽겠으니 한전이 잘못이라고 싸우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억울하기는 하지만 51,500원을 지불하고 점검증을 받았다. 우리 동네에 한전 직원이 한 분 사는데 전에도 심야전기 때문에 그 분이 몇 번이나 우리 집에 왔었다. 그 때마다 육선생 성화에 꽤 혼이 났는데 그 사람이 전기 넣는 사람까지 대동하고 와서는 우리 집은 심야전기와는 연때가 안 맞나보다고 하면서 육선생과 함께 이번에 심야전기를 아예 끊어버리란다. 우선 일반전기만 연결하고 심야전기는 내버려두었다. 전기공사를 하면서 또 여기저기 천정을 뚫어야 올라가서 작업을 할 수 있다기에 필요한 대로 뜯어내라고 했다. 어차피 고쳐야 할 집이고 아무래도 전기공사는 급한 대로 먼저 해야 하니까. 다 끝났다는데 80,000원이란다. 사실은 그 사람이 지난 번 심야전기 스위치를 바꿔달아 주었으니 화제책임을 물으려면 그 사람이 심문대상일 텐데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텐 데도 아침에 내가 그 가게에 가기까지 나타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심야전기는 건드릴 수도 없었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그런데 80,000원이나 다 받다니 이럴 수가 있나 싶었지만 나는 그런 것 모르는 척하고 아무 말 없이 그 돈을 다 주고 말았다. 천막 사다 쳐준 것도 50,000원. 불이 나니 당장 필요한 것이 돈이다. 우선 급하니까 은행에서 마이너스로 꺼내다가 쓰는 거다. 우선 바람 막고 전기 들어오니 살 것 같다. 전기 불을 다 켜보고 전기 기구를 다 켰다. 가스보일러가 돌아가니 이제 살았다 싶다. 나머지는 두고두고 하자. 내가 시집살이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두 식구 살기를 뭐 그리 걱정할 것이 있나? 되는 대로 살지 뭐. 다음 날에야 미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알렸다. 아들이 하는 말 “엄마, 그런데 왜 인제서 알려 줘?” “너희 알아야 걱정 만 하지 뭐 하니? 지금도 알려줄까 말까 하다 알려주는 건데.” ”그럼, 나도 이담에 사고치고 엄마한테 안 알려준다.“ ”아냐, 엄마한테는 알려 줘야지.“ 딸은 ”엄마, 어떻게 해?“를 연발한다. 이제는 다 끝났고 조그만 방에서 잘 지내니까 걱정 말라고 달랬다.

주일이 되었다. 아! 교회를 가야 하는구나! 천막으로 지붕을 덮었는데도 그 천막이 투명한 비닐 같아서 석가래 사이로 하늘이 보이니 더 을씨년스럽다. 심야전기 쪽 난방이 끊어지니 안방 마루 건넌방은 너무나 추워서 가까이 가기도 싫다. 마루의 화초들은 죽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 은 아직 살아있다. 나도 겨우 운신할 공간만 있으니 그것들을 건사할 공간은 없기에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라.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선언해 놨다. 그래도 안방 장에 가서 옷을 꺼내다 입고 교회를 갔다. 아 교회에다 알렸어야 했나? 주일 점심은 얼마 전에 언니네와 환갑으로 먹자고 약속이 되어 있었다. 언니가 놀랠까 봐 미리 불이 났다는 말을 해두었었다. “불이 났는데 무슨 점심이니? 그만 두자.” “아무래도 먹을 점심인데 그냥 먹지 뭐.” 한일관에서 점심을 먹고 모두들 집으로 화재현장을 보고 놀라워했다. “이만하기를 천만 다행이지. 역시 목사님 댁이라 하나님이 도우신 거야”하면서 위로해 주었다. 여전한 기복사상이다. 오후 늦게 느닷없이 고등학교 선배인 마리아회 회장이 전화를 했다. 아! 우리 소식을 들었나 보다. 그러면 그렇지! 그러나 내용인즉 다음 주일에 마리아회에서 신임권사를 환영하는 회식이 있으니 꼭 참석하라는 것이다. 내가 마리아회 회원이 아니기 때문에 빠질까봐서 미리 부탁하는 것이다. 그 전도사에게서는 아무 소식도 없다.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교회라는 곳이 이렇게 교인이 어려울 때 모른 체 할 수 있나? 그런데 내가 왜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 내가 그렇게 관심을 받고 싶은 거야? 혼자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웃었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을 나만 혼자 당한 일이라고 굉장하게 생각하나 보다.

그런데 왜 이렇게 가슴이 뛰지? 며칠이 지난 다음부터 자꾸 가슴이 두근거린다. 누군가가 우황청심환을 먹었느냐고 했다. 전에도 아주 기운이 없고 쓰러질 것 같을 때 먹어본 적이 있어서 그 약의 효험을 알고 있는 터였다. 정말 우황청심환을 몇 개 먹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 나도 별 수 없는 얼간이구나. 하기야 평생에 처음 당한 일인데 어찌 탈이 나지 않으랴.

안상님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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