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농한기엔 이러저러한 송년모임으로 서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대학 기독학생써클 송년모임에서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는데, 나는 "지금을 지금으로 살자. 현시대는 지금을 미래로 유보시키거나 유배 보내버리는데" 하였다. 그러자 한 후배가 형님은 그렇게 사시요? 묻길래 조금은 뜨끔하였지만 그렇다고 하였다. 그러자 앞자리에 제약회사에서 임원하고 있는 후배가 자기는 임원이 된 뒤로 더욱 지금이 없다고 하였다. 자기들의 임원회의는 땅콩리턴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몇 년 전 전교조 활동을 열심히 하던 후배가 우울증으로 충동적 자살을 하였다. 아주 아끼던 후배였는데 충격이 매우 컸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주변 후배들 정신적 육체적 상황들이 제2 제3의 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미 몇몇 후배는 우울증, 공황장애, 암으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시민운동가, 변호사, 교수, 교사, 사장, 노동자 등 직업불문이다.
어떤 가정은 남편이 우울증이 발작하면, 갑자기 칼 들고 설치니, 아내도 정신과 치료받고 있으며, 고등학생인 아들이 그런 부모를 포용하며 견뎌야 했다. 노동현장을 나온 노동자들은 쉽게 다단계에 빠지고, 구원파 등 이단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갔다.
그나마 건강한 친구들도 매일 밤늦게까지 주말도 없이 회사에 충성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자기도 가족도 없다.

도시는 겉으론 휘황찬란할 진 몰라도, 삶의 뿌리가 뽑혔고, 길을 잃었다. 이런 현실 때문에 살자고 적지 않은 분들이 영성수련하려 산을 찾는다. 그러나 다시 도시의 삶으로 가면 다시 화만 쌓인다. 나는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이제야 이해가 됐다.
그래서 일찍이 철학자 푸코는 현 자본주의 삶을 판옵티콘에 비유하지 않았던가. 누가 강제하지도 않지만, 스스로 강제하며 감옥 같은 삶을 자처하는 오늘의 현대인.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선행학습으로 자기 삶을 강탈 당하고, 대학은 직업훈련소가 되었으며, 가장 자유롭다는 교수직도 생존과 경쟁으로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에 나오기 갈수록 힘들다. 진정 지금! 자기!도 실종된 끔직한 현실.

나를 돌이켜보면 중학교 때까지 시골에서 살았는데, 그땐 대부분의 시간을 친구들과 골목에서 들과 산 강에서 놀며 해지는 줄 모르고 보냈다. 그땐 나라는 단어를 몰랐고 우리만 알았다. 의식적 노력 없이 자연스럽게 지금을 산 것이다.
그리고 지금을 의식적 노력에 의해 산 것이 나이 사십 넘어 선택한 산골생활이다. 내가 만약 도시에서 계속 살았다면, 운동을 계속했든 밥벌이를 했든 상관없이 지금을 살진 못했을 것이다. 그냥 세상에 자본주의 물살에 휩쓸렸을 것이다. 그래서 오랜 외출 후 다시 찾은 산골집은 나에겐 너무나 소중하며 감사하다.

새해 들어 다시 생각나는 말씀은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그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와 선불교 임제선사의 "수처작주, 입처개진"이다.
어디서든 삶의 주인으로 산다면, 바로 그자리가 진리의 자리요 천국이다. 바로 그 자리는 먼저 그 나라와 의를 오직 믿음으로 구함에 있음을 다시 다짐해본다. 궁극의 자리 절대자의 자리가 삶에 굳건히 설 때, 그때 삶은 뿌리를 내리고 생기를 얻어, 삶이 삶다워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온 세상은 어쩔 수 없지만, 미력하나마 내 주위 사람들에게라도 지금을 사는데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힘쓰는 새해가 되길 또한 간절히 기도해본다. 샬롬!

안태용  azaz0106@m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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