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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체제를 넘어서야 한다”[에큐메니안 신년 특집 인터뷰] 김상근 목사와의 대화
이의진 | 승인 2015.01.01 13:38

겨울답지 않게 날씨는 포근한 날이었다. 갑오년(2014년)을 보내고, 을미년(2015년)새해를 맞이하는 길목에서 김상근 목사를 만났다. 3년 전부터 찾아 온 다리 통증 때문에 걷기조차 힘들 때가 있다고 하신다. 새해 을미년이면 희수(77세)를 맞이하는 김상근 목사. 30대 후반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를 맡은 시절을 회고하는 것으로부터 대화는 시작되었다. 푸릇푸릇한 젊은 시절, 사진을 보고서는 당신도 놀라신다고 했다. 너무도 아픈 2014년을 보낸지라 새해를 맞는 것조차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는데, 대화에 빠져들면서, 세상의 시름도 잡시 잊었다. ‘아직도 젊은 노목사와의 대화’라고 표제를 붙일까 잠시 생각했다. 시대와 교회,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이 각별하다. 이야기 내내 따뜻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다운 사람, 교회다운 교회, 살맛나는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을미년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에큐메니안 신년 특집 인터뷰 ‘김상근 목사와의 대화’를 소개한다.  

-윤인중 목사(에큐메니안 운영위원장)-

 

   
▲ ⓒ에큐메니안 이의진

윤인중(윤) : 바쁠실텐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2014년을 보내는 소회를 말씀해주세요.

김상근(김) : 어느 해든지 그랬을 거 같긴 한데, 굉장히 아픈 해였다. 4월 세월호 참사라고 하는 게  우리 마음에서 떠나지 않죠. 4월이니까 그걸로 올해를 시작했다고 말하기 조금 시간이 지났지만,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법재판소 해산결정 그걸로 마감되었잖습니까. 그것도 굉장히 아픈 것입니다. 앞에 것도, 뒤에 것도 우리에게 깊은 자성을 요구하는 그런 지점이지요. 지금도 굴뚝에 올라가 있는 노동자들, 전광판에 올라가있는 노동자들, 오체투지 하는 노동자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이명박 정부 시절에서부터 박근혜 정부의 올해에 이르기까지 진전이 없어요. 오히려 역행, 퇴행하고 있지요. 상당히 남북 간의 전투 이른바 냉전이 치열하게 지속된 그런 지점. 민족문제에 가서도 굉장히 아픈 거고, 사회문제에 가서도 아픈 거고 그렇습니다.

윤 : 한겨레 신문 표제에 ‘허수아비가 대통령을 하는 게 낫다.’ 라고 나왔습니다. 허수아비가 대통령이어도 그만큼 잘 할거다 라는 것인데, 저도 그런 표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목사님께서는 평소에 약속을 굉장히 중시하시는데, 우리 대통령께서 본인이 한 약속을 깨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요.

   
▲ 김상근 목사(현 경기도 교육연구원 이사장)ⓒ에큐메니안 이의진
김 : 정치인의 약속을 여러 가지 나눠서 볼 수 있겠는데, 크게 봐서 선거 때 한 약속, 세월호 때 한 약속이 다 다르지요. 선거 때 한 약속은 많은 경우에 그 약속이 가지고 있는 함의가 뭔지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이게 ‘표가 된다’라는 선거 전략전술로 그 약속을 그냥 내놨던 거 같습니다. 그러고 대통령이 되고 그 약속을 깊이 들여다보고 설명도 듣고, 그리고 그 약속을 이행한다면 이러이러한 일이 이렇게 되어야 하고 라는 설명을 듣고 보니까 아! 이건 아닌 거야. 그러면 국민에게 그런 과정을 설명을 해야지. 내가 사실을 표될 거 같아서 했는데, 내용을 들어가 보니 이점은 내가 가지고 가기 어렵다 그래서 내려놓을 수밖에 없다. 미안하다. 이렇게 해야지요. 그런데 문제는 아주 시치미를 딱 떼는 거야. 언제 내가 그런 말 했는지. 누가 당신 그런 말 했지 않느냐 하는 말에 대꾸를 안 해버리는 거에요 그냥. 시치미를 딱 떼버리는 겁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사람이 저렇게 정직하지 않을 수 있나. 국민에게 한 약속에 대해 ‘솔직히 잘 모르겠다. 미안하다.’ 그래야지요. 예를 들면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내용 알아보고 어떻게 하겠다 이야기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 다음에 알아보니까 이러이러해서 당신들에게 해결해주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렇게 해야지 언제 그런 말 했냐 하고 시치미를 딱 뗀다고요. 이런 거는 선거 전술상 했던 것인데 그걸 거둬들이는 과정이 대단히 정직하지 못하다. 세월호의 경우는 당장에 현장에 쫓아갔을 때, 대통령이 청와대로 초청을 해서 만났을 때 그 때 심정까지 위선이었다 그렇게 말하기 까지는 좀 그렇고, 그 순간은 위선이 아니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근데 (박근혜 대통령이) 지나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보니까 정치적 부담이 생긴 거죠. 그래서 또 언제 내가 그런 약속 했더냐 하고 시치미를 딱 떼는 거죠. 그러니까 앞의 경우는 그런 진정성이 없고, 뒤에 경우는 진심이 있었는데 그 진심을 정치적인 이유로 지켜내지 못한 거죠. 한 나라의 대통령의 자리라고 하는 게 얼마나 무거운 자리인지 또 대통령이 말을 뱉었으면 반드시 이행해야 된다고 하는 게 그런 걸 못가진 거에요. 함부로 말하고 아주 신중하게 말하는 것 같지만 함부로 하는 거지요.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약속하고 그리고 그것을 항의할 때는 아무 설명도 없이, 얘기 없이. 그건 우선 지도자로서 안 되는 거지요. 인간의 어버이, 어머니, 아버지, 선배로서도 안 되는 거지만 대통령이면 어쨌든 나라의 지도자인데 저래서는 안 되는 겁니다.

윤 : 화제를 좀 돌리겠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 묻겠습니다. 신학교 입학하신 연도가 어떻게 되세요.

김 : 제가 58학번인데 학교 다니다가 그만두고 신학교를 59년에 갔어요.

윤 : 일반대학을 다니다가 갑자기 진로변경을 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김 : 사실은 서울대를 보고 떨어진 거죠. 떨어지고 나니 집안에서는 취직을 빨리 해야 되니까 후기라도 가라는 거지. 난 가고 싶지 않았고.  근데 그때 벌써 내 마음이 막 흔들리고 있을 때야. 이게 내가 일생을 어떻게 살아야 되나. 내가 30, 40, 50 되었을 때 그 때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있을 까 이런 생각을 막 하고 있을 때에요. 그런데 전기공학과를 졸업을 하면 취직자리 얻기 쉬운 때였죠. 빨리 졸업하고 들어갈 수 있게. 그래야 어려운 살림이 좀 펴지니까. 그런 요구를 받고 있었는데 난 딴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1학기를 다니고 2학기 등록금을 받아가지고 등록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등록을 안했어요. 그리고 학교는 다녔어요. 안다닐 수 가 없잖아. 집에서 아니까. 등록금은 가방에 넣어놓고 그걸 한 학기동안 가방에 넣고 들고 다닌 거야. 그 때 나한테 은행계좌가 있는 것도 아니고 통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걸 한 학기 동안 가방 속에 넣어놓고 다니다가,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면 쉬는 시간에 나와서 혹은 점심시간 끝나면 나와서 잔디밭에 앉아서 혼자 생각하지요. 내 갈 길이 이게 아닌데.. 그러다가 김재준 목사님 책을 읽은 거에요. 눈이 번쩍 떠진 거에요! 김목사님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겁니다. 김재준 목사라는 분을 몰랐어요. 그 당시에는 복음교회를 다녔지요. 낙수유, 기독교의 기본원리. 등의 글을 읽은 것이지요. 기본원리는 이대에서 강의를 했던 거고, 이른바 학생부흥회 때, 그 때 했던 걸 인쇄물로 만들어서 낸 건데 그걸 보고 가슴이 막 터지고 막 뛰는거야. 아! 내가 김재준 이분한테 배워야겠구나! 한국신학대학이 어디에 있는 건지 그것도 몰랐으니까. 그래서 작정을 하고 집에다가 가출 신고를 한 거에요. 집에서 원하는 학교 다니지 않고 사실 등록도 안했다. 2학기 등록금도 안냈다. 등록금을  집에다 도로 내놓고. 대학교 들어갔다고 사 준 구두와 양복을 벗어놓고 나왔죠. 고등학교를 다닐 때 입고 있던 작업복.. 그때는 미군들 옷에 까만 물을 들여서 입고 다녔거든, 그 작업복 입고, 겨울이에요 이게, 입학시험 전이니까. 그거 입고 집에 작별하고 나온 겁니다. 나올 때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한국신학대학교를 물어물어 어디에 있는지 알았어요. 수유리 솔밭 건너가니까 있더라고요. 가서 서무과에 가서 내가 이 학교 시험 보려고 하는데 내 거처가 없다. 나한테 기숙사 방 하나 줄 수 없냐. 그 사람이 학생과장한테 가보라고 그러더라고. 그분이 김은희 선생이야 김은희 선생이라고 후일 장일조 교수와 부부가 된 분이죠. 그렇게 해서 만난 분이 박봉량 교수야. 그래서 내가 사실 이 학교 시험 보려고 하는데, 오고 갈 데가 없으니 기숙사 방 하나만 주십시오. 그랬더니 학교 기숙사 방을 하나 줘요. 그래서 용산역 부근 군수물품 파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 가서 닭털 슬립핑백 하나 사서 자고 시험을 본거에요. 학교 가서 방 달라는 사람도 그렇고, 그런다고 방 주는 학교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갔어요. 수중에 돈은 하나도 없는데 태연했지요. 내가 1등할 건 뻔하니까. 입학금 걱정도 안했지. 1등하면 등록금에, 기숙사 입학금 면제.. 다 있어. 그거 다 보장 됐으니까 걱정 안했지요. 그런데 내가 1등이 아닌 거야. 그때 그 절망은 아 하늘이 무너지고 앞이 캄캄한 거야. 김경재 교수가 1등 했지. 아이고, 이걸 어떡하나! 그 때 입학금이 6만 환이었습니다. 화폐개혁이 있기 전에 6만 환, 나에겐 천문학적인 숫자인데 이걸 어떻게 구하나. 정말 앞이 캄캄한거야. 과정은 그렇고요. 그 때 김재준 목사님한테 가서 배워야겠다고 생각한건 내가 생각하고 내가 겪은 기독교 교회 그게 아니더라고 기독교가. 이 역사에 책임지고 역사를 변혁시키고 그런 기독교도 있고. 그런 기독교의 지도력도 있고. 그게 나에게 탁! 와 닿는 거에요. 아 이거다. 내가 마흔 살 쉰 살 되어도 그런 삶을 살아야지
그런 마음 먹은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60년 전 이야기네.

윤 : 올해(2015) 연세가 희수, 77세입니다. 워낙 굵직한 사건과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이야기 나눌 것이 많지만은. 겪었던 일 가운데 목사님에게 가장 큰 여운을 준 사건이랄까, 목사님의 삶에 전기가 되었던 이야기 들려주세요.

김 : 가장 아프고 가장 충격적인 기억은 인혁당. 8명이 사형을 당했을 때입니다. 형을 확정 받은 다음날 사형 당했다는 것도 그렇고요. 어떤 분은 그냥 중앙정보부에서 가족에게 연락도 없이 화장터에서 화장을 해버리고 어떤 사람은 집으로 갔고 뭐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 중 한분 장례식에 갔었어요. 수도교회 목사로 시무할 때입니다. 장례식에 가서 장례식을 마치고 갈현동 경사진데 거기 사는 분이었어요. 운구행렬이 꽤 길었어요. 상당히 와야 버스를 타요. 근데 내려오는데 그 부인이 잘 걷지도 못하고 그러더라고. 내가 한쪽을 부축을 하고, 다른 쪽은 아마 최기식 신부가 부축을 하고 내려오는데, 비틀비틀 하고 내려와요. 그러다 갑자기 딱 힘을 주고 멈춰서는 겁니다. 온 몸에 힘을 모으더니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 이 개새끼야! 왜 천둥, 번개도 안쳐 이 개새끼야! 왜 하늘이 맑아 이 새끼야!” 하고 막 소리를 꽥꽥 질러요. 한쪽은 목사가 한쪽은 신부가 부축을 하고 있는데, 우연히 그렇게 된 거지요. 아이고 그게 가슴에 와서 가슴을 펑펑 찢는데요, 어 이건 견딜 수가 없어요. 화장터에 갈려고 했지요, 그랬다가 도저히 갈 수가 없어요 내 마음이. 아이고, 막 요동이 쳐서요 그래서 버스에 실어주고, 난 버스타고 버스장에 내려서 수도교회로 들어 갈려고요. 혼자 막 그 충격. “하나님 개새끼야~” 그 소리가 “목사, 이 개새끼야, 교회 이 개새끼야” 그렇게 들린다고.
충격이었지요. 그런 상태로 교회로 가는데, 뭐가 갑자기 화닥 오더니 나를 낚아채는 거예요. 그렇게 중앙정보부에 끌려간 거죠. 집에서는 장례식에 간다고 나갔는데, 며칠씩 안 들어오니까. 집에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그 때 그 일이 가장 아프게 기억됩니다. 마음으로는 같이 해야 된다. 해야 된다. 하면서도 하기가 어렵다고 느낄 때. 그럴 때 딱 그 사람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하나님이 개새끼야’ 하는 소리가 또 들려. 내 평생 그걸 잊지 못해요. 그 소리를. 그게 내 생애 가장 충격적인 일이었지요. 거기에 비하면 다른 것들은 다 약해요. 뭐 이런 저런 일을 많이 겪었지만.

   
▲ ⓒ에큐메니안 이의진

윤 : 참으로 아프고 충격적인 이야깁니다. 벌써 40년이 지났습니다. 올해 인혁당 사건과 장준하 선생 암살 사건이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분위기를 바꾸죠. 요새 기분 좋은 일, 생각만 해도 기쁜 일 있으면 전해주시죠.
 
김 : 가장 기쁜 일은 사적인데, 예를 들면 지난 주일에 내가 설교를 했는데, 가장 기쁜 일이라고 말하기에는 그렇지만, 내가 설교를 한다고 하면 우리 손주들이 와요. 할아버지 설교 듣는다고.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 와서 듣는 것도 아니야 저 뒤에 있어. 스마트폰보고 장난하고 그러지요. 그런데 어저께는 딱 앞에 앉았어요. 내가 설교할 때는 설교 원고를 다 미리 주거든. 그 원고를 보고 설교를 듣는 거에요. 아 근데 이놈이 내 원고를 보면서 설교를 듣더라고. 그냥 할아버지 이야기 하는걸 듣는 것만 아니고 원고를 봐가면서 설교를 들어요. 아 마음이 굉장히 뿌듯하더라고요. 아 저놈 컸구나. 지금도 까불고 형편 없지만 예배시간에 설교 원고를 봐가면서 설교를 듣는다, 그러니까 이놈이 컸구나. 아들 키울 때는 잘 못 느꼈어요. 그런데 손자들을 키울 때 애들이 크고 성숙하는 걸 보는 게 그렇게 기뻐요. 이게 참 사적이지만 손주놈이 크는 거구나, 생각을 말할 때 뭐 그럴 때 아주 좋고요. 예를 들면 지난번 같이 세월호 집회가 있다 해서 시청광장에서. 그러면 나가서 복판에 앉아 있다가 오고 그런 거 보는 게. 성숙하고 가치관이 크는 과정을 보는 게 할아버지로서 그렇게 좋아요. 사적인 이야기해서 미안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래요. 아주 기뻐요.

윤 : 남북관계가 악화될 대로 악화되었고, 남한 사회 내부의 통합 문제도 사실 물 건너 간거 같고, 오히려 갈등이 심해지고, 그런 상황에서 문제는 민주화 운동 세력, 또는 양심 세력, 진보세력으로 통칭되는 우리들이 해야 될 일들 방향이나 방법들. 지혜가 모색되어야 하는 때입니다, 목사님은 혹시 품고 계신 생각 있으신지요.

김 : 여당의 상당히 고위층에 있는 최고위원으로 있는 분이 ‘국민대통합을 위해서 감옥살고 있는 기업총수들 가석방문제, 거기에 끼워 넣어서 생활사범 가석방 문제를 대통령한테 건의해야한다.’ 이런 얘기를 듣고 이 사람들이 국민대통합이라는 것을 뭐라고 생각하나 재벌 총수를 석방하는 게 국민 대통합일까? 정말 국민대통합이란 것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겁니다. 남북문제도 그렇습니다. 남북문제도 통일이 올 때를 준비하는 게 그게 길게 보는 게 아니고요. 민족의 평화통일이라고 하는, 언젠가 있을 저 뒤에 것을 보고 남북이 같이 가야 되는 거지요. 같이 가려고 노력해야 되고. 그게 통일을 준비하는 거지요. 근데 통일 준비위원회도 띄우고 그랬지만 그런 거 아니고 요새는 전부가 다 전투입니다.
사회 여러 면에 이렇게 부딪히고 있지요. 진보진영만이라도 조금은 저 뒤를 보자. 목표를 저 뒤에 두자. 우리가 지난 시기에 너무 눈앞에 오는 투쟁을 피할 수가 없었어요. 지난 시기에는 그냥 눈앞에 오는 것과 그냥 싸웠던 겁니다. 이게 우리한테 관성이 되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뭔가 눈앞에서 싸움하는 게 우리의 스타일이야. 그거 싸워야 될 때는 싸워야지요. 그런데 싸우면서도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 좀 더 큰 목표 달성을 위해서 뭐를 어떻게 가야할지 하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긴 안목을 가지고 현재의 문제를 봐야지요. 평화통일이라는 것을 놓고 볼 때, 지금 뭐를 해야 되는 건지. 진보진영은 조금은 거시적 안목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안에서 미시적인 행동 이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통합진보당 헌재 해산결정을 당하면서 우리가 87년에 새로운 체제를 시작했고, 헌법을 시작했는데, 거의 30년이 되어오는 동안에 87년 체제라고 하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우리가 안했어요. 그러니까 그 말은 87년 체제를 띄웠는데, ‘어! 민주주의 됐어.’ 라고 생각하고 지나왔단 말이지, 그런데 그 87년 체제를 좀 더 우리가 면밀하게 들여다봤어야 됩니다. 특별히 87년 체제는 남북 분단이라는 것을 상수로 가지고 있는 체제에요 그걸 30년 동안 우리가 그냥 놔뒀어요. 이 상수를. 지난 소위 민주정부 때 10년 동안에 평화로 가니까 평화통일로 다 가는 것 같고 깊은 성찰이 우리한테 없었어요. ‘이 87년이 가지고 있는 남북분단이라고 하는, 이 상수로서 존재하고 있는 이 체제를 어떻게 극복해 갈까?’ 그런 생각을 우리가 안하고 지냈어요. 그러고 이번에 빵 맞은 겁니다. 87년 체제의 이런 헛점이 있다. 종북, 빨갱이 하면 다 끝나는 그런 체제가 87년 체제입니다. 이걸 우리가 그냥 놓고 30년을 지나온 겁니다. 예를 들면, 지금부터는 우리가 미시적 싸움도 안할 수 없어요. 그러나 저 뒷대 우리 목표를 놓고 거기로 가는데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거기 갈수 있는 거냐 고민해야 합니다. 이 급박한 미시적 싸움을 하면서도 그걸 보고 우리의 싸움을 좀 더 넓은 싸움 좀 더 근본적인 싸움으로 가지고 가야된다. 지금 새해가 오면서 이 문제와 관련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현 정부,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갖고 오는 흡수통일 정책 그걸 넘어서는 그래서 남북 분단이라고 하는 걸 극복해 낼 수 있는 우리의 노력을 모아야 되고 그 노력으로 국민운동을 펼쳐야 되고 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윤 : 당면한 눈앞의 일에 관심을 가지면서도, 긴 호흡으로 민족 문제의 가장 큰 과제인 분단체제를 넘어선 평화체제 수립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을 지니고 현재 문제를 대해야 한다는 말씀을 귀하게 들었습니다. 연세도 있으시지만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계십니다. 2015년 을미년에 가장 주력하고 싶은 사업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김 : 사업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데 교회를 어떻게 교회되게 하느냐. 은퇴한 사람이, 현역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모양새가 맞지 않아요. 그래서 그거를 지금 나서서 이러고 저러고 할 수는 없지만. 아 정말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일에 내가 작은 거라도 보탬이 되어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지난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어떤 교회를 갔어요. 처음 가는 교회지요. 제법 주변에 알려진,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알고 있었던 건 그래도 괜찮은 교회다. 좋은 교회다. 그리고 큰 교회구요. 그 교회에 간 건 내 손주가 그 교회를 다녀요.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이브 예배에 무얼 맡아서 해요. 그놈 보고 싶어서 간 거야. 너무 깜짝 놀랬어요. 이전에는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는 내가 목회하던 교회에 갔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막내 손주 다니는 교회에 간 거에요. 그런데 교회를 가보니 ‘아! 이건 영업을 해도 너무한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인데 목사님 설교 다 보고 그냥 나와서 이런저런 하는걸 보니까 그 교회 평소 프로그램들이에요 이게. 말하자면 처음 예배 시작 전에 소위 식전행사 라는 게 있는데, 아, 이건 뭐. 비틀고 뛰고 춤을 추는데 배꼽을 내놓고. 그러니까 교회 강단을 빌려준 거지요. 그 교회에 애들이 평소에 그렇게 하는 거에요. 딱 TV오락프로, 연예프로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연예프로랑 거의 똑같아요. 그걸 해요. 그리고 예배가 시작이 되는 거에요. 중간에 아이들이 나와서 영어로 읽고 영어로 말하고 영어로 하는데 그게 이제 그 교회 영어반이에요. 근데 내용은 예수하고는 아무 상관없고 크리스마스 하고도 아무 상관없고 평소에 자기들이 외우고 다 한 거에요. 단지 그거에요. 다른 걸 할 준비를 한 게 아니고 평소에 그걸 하고 그걸 나가서 하는 거에요. 동영상을 틀어놔요. 그것도 예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영어 동영상이에요. 그 애들 하는 시간에 그런 동영상이 돌아가는 거지요. 그건 그저 영어학원이죠. 그걸 내준 거에요 교회를. 그래야 애들이 교회에 오니까. 그 다음에 목사님이 강단에서 설교를 하고 하나님께 예수님께 찬양을 올리고 이렇게 하고 그 다음에 나온 첫 번째 순서가 첼로하고 플루트하고 협주인데 첫 곡이 아리랑, 두 번째 곡이 팝송, 세 번째 곡도 팝송. 팝송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것이 없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있을 수 있어요. 팝송 얼마든지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그 사람들이 아주 아마추어 중에 아마추어야. 연주하는 거 보니까. 그 교실이 또 있는 거에요. 내 짐작컨대. 그럼 그 사람들이 그거 평소에 아리랑 했고 팝송 했으니까 그날 나와서 그걸 목사님 말씀대로 아리랑 바치고, 팝송 바치고 그런 거에요. 아이고, 교회가 여기까지 갔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날 모인 사람 한 300명 앉은 사람이. 그런데 총 합하면 600~700명 됐을 거에요. 왜냐하면 무대 공연이 끝나면 쫙 빠져요. 그 엄마들이랑 사진 찍고 쫙 빠져나가요. 또 다음 오면 막 채우고 쫙 빠져나가요. 이게 무슨 크리스마스 예배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그걸 빌려준 거에요. 그럼 아이들이 또 와요. 아이들을 오게 하기 위한 수단이죠. 근데 거기에 정말 예수가 있나 아 너무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하면 말하자면 영업이지요. 영업유혹을 떨치고, 어떻게 하면 복음 유혹을 받도록 하나. 해야지요. 나와서 현관에 있는 헌금 봉투가 쫙 있더라고. 그 헌금봉투를 딱 보니까 ‘초하루 기도헌금’이라는 게 있어요. 초하루 기도헌금이라고 밑에 기도 내용을 쓰는 칸이 있고 성경말씀 몇 마디 있고 헌금 액수가 있어요. 그거 내면서 복 비는 거죠. 학교 수능 시험 볼 때도 우리 아들 붙게 해 주십시오 하면서 낼 거 아닙니까. 우리 하느님은 뇌물을 받고 있는 거에요 지금까지. 뇌물 받는 거 아닙니까 그게. 그리고 뇌물 공여죄, 뇌물수수죄에 걸리는 거 아니에요. 그거 받고 붙여 줬으니까 대가성 아닙니까 그게. (교회가) 어떻게 여기까지 가나. 우리가 자기 개인을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 아들딸 위해서 할 수 있어요. 근데 교회가 그 틈을 타고 들어가서 돈 내라 그리고 써라. 초하루 기도제목 써라. 이건 아니지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지요 목사가. 적어도 그것은 참고 극복 하고 넘어가야지요. 물욕, 명예욕. 다 걸리는 겁니다. 일천번제 헌금도 있더라고요. 솔로몬의 일천번제 제사를 드리면 내가 너에게 이러이러한 복을 주겠다 하고 얘기한 성경을 딱 써놓고, 그건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일천번제를 시작하면 천 번을 낸다는 건지, 만원씩 내면 천만원인데. 그거 가지고 이 교회가 뭘 하는 건지. 그 솔로몬은 그거 가지고 돈 받아서 첩 두고, 수 백 명, 수 천 명 첩을 두고, 호화 궁궐을 짓고 약자들을 짓밟고 했던 거 아닙니까. 가치관이 다른 거잖아요. 근데 어떻게 그걸 가지고 오용을 해서, 돈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야기가 좀 길어졌습니다만은. 내가 평생 삶을 교회에다 바쳤는데 어떻게 하면 이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데 내 작은 힘이라도 보탤까. 그런 게 내 마음에 하나 크게 있는 거구요.
아직 어떻게 해야 될지는 모르겠는데 이번 통합진보당 해산을 통해서 87년 체제에 대한 내 반성이 깊습니다. 나도 손 놓고 있었다 이건 그렇게 생각해요. 어쨌든 새해부터는 새로운 미래를 생각하고 새로운 사회체제, 정치체제, 경제체제를 생각하고 그걸 이루어내기 위해서 우리가 가야될 목표는 뭐고, 가야될 과정은 뭐냐 하는 것들을 짚어봐야죠. 내가 하겠다는 말은 아니고,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돕고 향상 시키는 일을 하고 싶어요. ‘하고 싶다’기 보다는 ‘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고요. 남북 문제에서도 좀 더 방향을 바로잡는 일 해야겠지요. 평화통일이라는 가치를 지니고, 잘못된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그리고 가야될 길이 어떤 길인지를 밝히고, 그거를 될 수 있으면 시민들 사이에, 또는 교회운동 사이에 하나의 운동으로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일 그런 일을 하고자 해요.
다만 앞에 서서 하는 건 안하겠다. 안해야 된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도력이라고 하는 게 누구나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죠. 50대 분들이 나서고 몇 년 지나다 보면 지도력도 생기는 것이지요. 조금 나이든 사람들이 보기에는 후배들이 미흡하게 보인다 해도 좀 참고 기다리고 도와주고 그런 선배로서의 역할을 할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윤 : 아까 87년 체제 얘기 했지만은 제가 보기에도 87년 이전에 기독교사회운동과 87년 이후의 기독교사회운동의 힘이랄까, 사회적 영향력이랄까 거꾸로 가는 형국입니다. 우리가 잘 성찰하고 평가해야겠습니다 만은, 기독교사회운동과 에큐메니칼 진영이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교회 내적으로도 힘이나 감동이 약해지는 느낌이 드는데 거기서 일하는 후배들한테 기대나 당부 같은 말씀 좀 해주십시오.

진성정이 곧 종교성, 종교적인 내면의 힘 갖자.

김 : 지난 시기에는 목사이기 때문에 또는 교회이기 때문에 다른 개인이나 다른 단체가 부딪히고 뚫고 나가기가 힘든 것을 우리가 뚫고 나갈 수 있는 좋은 조건을 우리가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사회적 진보적 담론도 내놓기도 하고 선점도 하고 그렇게 해왔는데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지요. 그러니까 지난 시기처럼 우리 기독교가 진보적 사회 가치를 선점하고, 또 내놓고, 어떤 막힌 걸 뚫고 나가고 하는 과거의 행태를 우리가 해야 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갖을 수도 있겠죠. 분명한 것은 그런 동력을 가진 사회단체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기독교운동) 우리는 너무 약하고요. 그게 사실 되지 않는 거지요. 나는 교회는 지금에 있어서는 교회라고 하는 것이 갖는 본래의 진정성, 그게 어떻게 말하면 종교성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진정성을 우리가 내면화시키고 내면화된 그것이 함께 힘으로 모여야 합니다. 그 집단적 내면화가 이루어지고 그것이 저쪽 아픔이 있는 쪽에 정말 진심으로 가 닿는, 종교인들만이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우리한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세월호 문제, 노동 문제, 이런 데에 사회단체들이 하는 것과 똑같은 행태로 우리도 똑같은 모양으로 하는 경우에 우리가 훨씬 약해요. 그런데 그런 문제에 가 닿을 때 종교인만이 갖는 그런 게 있다고 봅니다. 문익환 목사님을 보면 그런 면이 보이지요. 사람들은 시인이라고 그러는데, 그 양반은 종교적 감성이구요, 그 양반의 종교성이지요. 늘 누구를 보면 정말 아파하고 정말 슬퍼하고 정말 막 울고 하는 모습. 그래서 문익환, 문익환 그러는 거 아닙니까. 물론 그분의 행보가 다른 사람, 시민단체가 갖고 있는 거보다 훨씬 앞서 가지만 사실 그 바탕은 그거 거든. 그거를 우리가 지금 어떻게 집단적 내면화를 이룰 거냐 하는 그런 것도 깊이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가장 아픈 곳, 이 사회의 가장 아픈 곳을 설렁 설렁 찾아가는 게 아니고 정말 그것을 찾아가기 전에 우리들 내면이 가 닿을 수 있게 우리를 정화하고 우릴 성화하고 해서, 그 집단이 그런 정신적인 신앙적인 종교적인 내면적 힘을 갖게 되는 그런 상황에서 누굴 만나도 만나고 위로해도 위로 하고 그런 게 우리한테 있었으면 좋겠다. 똑같은 모양으로 소위 경쟁적 몸부림은 시대에 이미 지나간 행태라, 우리 기독교 쪽에서 보면 그렇게 생각해요.

   
▲ ⓒ에큐메니안 이의진

윤 : 시간이 꽤 되었습니다. 마무리를 해야 할 때입니다. 새누리신문을 발행한 적이 있는 선배로서 에큐메니안에 대해서, 기독교 언론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김 : 새누리 신문이라고 하는 게 벌써 1990년대 초 에 있었던 거니까 오래된 옛날 이야기죠. 그 때 그 일을 실제로 하게 된 동기가 있었죠. 김관석 목사님이 발행인이었는데, 김관석 목사님이 신학을 하다가 언론학을 공부하고 왔거든, 그래서 은퇴하고 나서 이분이 남북언론문화연구원이라는 것을 만들었지. 김관석 목사님이 이사장이고 내가 부이사장이에요. 근데 그때 그분은 ‘평화통일을 끌어오려면 언론이라는 것이 남북을 아우르는 그런 자리에서 언론행위를 하는 그런 선도적인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러는 거에요. 그러니까 벌써 옛날 이야기인데, 그분이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혹시 남북교류가 있는 그런 시대가 오면 그 시대에 또 역시 남북 평화라고 하는 그런 시점, 전망을 가지고 언론활동을 하는 게 필요하다 해서 남북언론문화연구원을 만들고 그리고 그 바탕에서 새누리 신문이 나왔던 겁니다. 또 하나 정치적인 동인도 있었지요. 지금의 집권여당 그쪽에서부터 민주평화세력으로 정치적 주도권이 와야 된다 교회가 중요하다. 교회의 각성과 교회의 의견일치를 어떻게 이룰 거냐 그래서 이제 신문을 하자. 종이신문을 한 겁니다. 그런데 성공 못했지요. 성공 못하고, 주식회사로 시작해서 주식 모집도 하고, 이렇게 했다가 성공 못했는데, 이유가 외연을 넓히지 못한 거에요. 에큐메니안 같은 경우 똑같은 건데 저희 집안 잔치, 집안 언론이 아니고 말하자면 과격한 얘기를 하는 게 중심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외연을 넓혀가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좀 더 많아지게 할 수 있겠나 하는 그런 고민을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아주 우리들 보기에 어이 시원하다 좋다 그런 것도 있어야 되지만, 약간 우리 주변, 변두리에 있는 그런 사람들이 동의를 보내고 할 수 있는 정도의 외연을 넓히고 좀 더 넓히고 하는 그런 아주 치밀한 노력이 교회신문에 필요하고 특히 에큐메니안 같은데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제 경영상 문제 같은 게 큰 문제겠지만, 어쨌든 그런데 관점을 두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윤 : 귀한 시간 내 주신 것 감사하구요,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의진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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