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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은 사람만 사랑할 줄 안다<전순란의 휴천재일기-2015.1.9>
전순란 | 승인 2015.01.12 11:27

2015년 1월 9일 금요일, 흐림

미루씨도 막내를 논산 훈련소에 보내고 아마 마음 편히 잠을 못 잤으리라. 내가 한 강단 하는 엄마인데도, 그것도 가까운 태릉 훈련소에 몇 주 안 되는, 또 훈련 후에는 집에서 방위로 다닌다는 것을 알면서도 빵기를 훈련소에 보내고서 마치 어린애를 한데서 재우는 듯한 불안감이 수시로 엄습해 오곤 했었다. 2천만원 들여 아들을 방위로 빼냈다고 자랑하던 내 친구는 “그래도 아는 사람이 있어 싸게 들었다우.” 하면서 나더러 얼마 썼느냐고 넌지시 묻기도 했다. 그런데 빵기는 ‘우리 아들’이지 ‘신의 아들’이 아니어서 당당히 '노동의 대가'라고 큰소리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진 옆도 안 보고 공부를 하던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서는 놀아도 너무 잘 놀고 데모도 어지간히 하고 다니는지 집에 들어오면 옷에서 늘 최루탄 냄새가 났다(서강대에서는 수석 입학생들은 첫 학년 '학고'[학사경고]를 면치 못한다는 징크스까지 있었다). 그래서 “정 놀려면 군대 가서 놀아라.”하고는 내가 관공서에 찾아가서 자원입대서를 써서 제출하였다.  “아들은 뭐 하고 엄마가 오셨어요?” “공부는 안 하고 너무 놀기에 그 시간에 군대나 갔다오라구요.” “아니, 공부 안 하는 애 보내는 데가 군댄가요?” 접수창구 담당자와 이 극성엄마 사이에 오간 말이다.

   
▲ 문정리 풍경 1

여하튼 뜻밖에 신체검사통지서를 받고서 화를 내는 아들에게 “이왕 맞을 매 빨리 맞는 게 낫단다. 갔다 와서는 나한테 감사할 게다.”라고 버텼는데 우연히도 감사할 일이 생겼다. 1학년 여름방학에 농활을 갔다 신체검사 땜에 미처 농활을 못 끝내고 서울로 돌아왔다. 농활로 지칠 대로 지쳐 버스에서 잠이 든 게 시원한 에어컨에다 머리를 대고 잠들었단다.

이튿날 일어나더니 감기기운에 약간의 어지럼증에 눈앞이 흔들거린다기에 “신체검사 마치고 선내과에 들러 오렴.” 하고 보냈다. 신체검사를 하던 군의관이 “너 눈이 이렇게 흔들리는데 이걸로도 볼 수 있나?”하며 재검사를 서너 번이나 시켰고 “그래도 볼 건 다 봅니다.”라고 답변한 빵기는 “그 눈으로는 사격을 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아 방위로 가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선내과에서는 감기에 의한 일시적 안구경련이라면서 처방해준 약을 먹고 사흘만에 깨끗이 나았다. 농활의 대가라는 뜻에서 빵기는 방위근무를 ’노동의 대가‘라고 큰소리 친 것이다.

   
▲ 문정리 풍경 2
   
 
방위로 출퇴근하면서 성당 중고등부성가대도 지휘하고 학생운동도 하면서 이 엄마의 월권행위는 아들의 원망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졌고, 그때의 '군필(軍畢)' 덕분에  2학년 때의 인도여행도, 3학년 때의 서강대 교환학생으로 샌트루이스 대학 유학도, 우리 안식년에 맞춘 파리 유학도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었다.

작은아들 빵고야 신학교와 수도원에서 으레 하듯 대학 2학년 마치고 의무적으로 입대를 시켰는데 양구 2사단에서 근무하면서 하필 ‘신학생 영창보내기’로 악명 높은 군종신부 밑에서 어지간히 굴림을 당한 것만 빼면 두 아들 다 ‘군대미필’의 의혹을 벗어났다.

   
▲ 문정리 풍경 3

오늘은 서울행이다. 빵기가 일요일에 도착해서 다음 일요일에 출국하기까지 서울집에 머물기 땜에, 보스코가 월요일에 양주의 성가수녀회에서 강연을 하기 땜에, 내가 수요일에 눈꺼풀 수술을 다시 해야 하기 땜에 가는 길이다. 때마침 서울집 3대 집사 엽이를 보러가는 정옥씨를 싣고서 함께 올라가는 길이어서 아들을 보려는 설렘에 들떠 있는 그니와 모처럼 화기애애 말을 나누는 여행이 되었다.

보스코와 둘이서 가면 내가 주로 종알거리고 간간이 “응 그래?” 정도의 대답밖에 못 듣는, 그래서 심심하다 못해 라디오라도 틀면 보스코가 언짢아하는, 그러면서도 내가 아무리 졸려도 대여섯 시간의 운전대를 한 번도 보스코가 교대해 주지 않는 덤덤한 여행이어서 하는 말이다.

   
▲ 문정리 풍경 4

언젠가 사주를 보니 자기와 아들은 찰떡궁합이더라고 자랑할 만큼 정옥씨에게는 아들이 전부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나 뒤돌아보니 두 아들이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는 오로지 남편에게만 올인한 ‘불량엄마’였다는 판정이 단번에 내려진다.

엽이의 사람됨과 따스함이 모두 저 엄마가 쏟아준 사랑에서 기인함을 알겠다. 사랑받은 사람만 사랑할 줄 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엄마가 오셨다고 생선초밥을 사들고 들어와서는 밥 한 번 먹고 엄마 한 번 보고 하며 신이 난 모자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 문정리 풍경 5

   
 

 전순란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아내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http://donbosco.pe.kr/xe1/?mid=junprofiie

전순란  webmaster@ecumen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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