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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뜻을 알려주는 표적<정현진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⓾-1> 출애굽기 9장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 승인 2015.01.13 12:18

이번 <정현진 목사의 출애굽기와 노닐기> 열 번째 순서는 분량상 두차례에 나눠서 싣습니다. - 편집자 주

   
▲ 이집트인이 숭배하는 각종 동물과 우상들(루브르 박물관 소장)

여섯 번째 표적: 가축의 떼죽음 (9:1-7)

여섯 번째 표적은 ‘파라오에게 가라’ (출 7:26, 10:1 참조) 하시는 하나님 말씀부터 시작된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씀,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두면’ (출 9:2) 에는 ‘계속’이란 의미가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만일 네가 그들을 내보내지 않고 그대로 붙잡아 두려고 한다면, (공개)
네가 그들을 보내기를 거절하고, 계속 그들을 붙잡아 둔다면, (표준)
만일 네가 내보내기를 거절하고, 또 그들을 계속(끈질기게) 붙잡아 두고자 한다면, (직역)

여기서 ‘억지로, 그대로, 계속’ 등으로 옮겨진 말(웨오데카)은 본디 ‘그리고(그런데) 네가 계속해서...’ 란 뜻이다. 반복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우드 dW[)에서 유래한 부사 오드 (dA[)는 반복하거나 계속되는 어떤 일이나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 가축의 떼죽음(구스타프 도레)

히필(사역형)로 쓰인 잡아둔다는 말(카자크)은 본디 강하다는 뜻이다. 이것이 사역형으로 쓰이면, 묶다 붙들다 붙잡다 고집하다는 뜻이다. 그 직접목적어가 사람일 경우에 이것은 잡다, 장악하다, 통제아래 두다, ...를 계속 붙들고 있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이를테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이 브엘세바 광에서 방황하다가 지쳤다. 하갈은 자기 아들 죽는 것을 눈뜨고 보지 못하겠다며, 화살 하나 날아가는 거리만큼 떨어진 곳에서 울고 있었다. 이 때 하나님께서 하갈에게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창 21:18) 라고 말씀하셨다(이 동사가 쓰이는 예는 신 22:25; 삿 19:25; 삼하 13:11 등을 참조하라). 예레미야서 50:33은 출애굽기 9:2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자손과 유다 자손이 함께 학대를 받는도다 그들을 사로잡은 자는 다 그들을 붙들고 놓아 주지 아니하리라 (렘 50:33).

여호와께서 주시는 여섯 번째 표적은 이집트인들이 그토록 숭배하는 가축에게 해당되었다. 이 표적에 관해 모세는 파라오에게 미리 통고하였다: ‘보아라, 여호와의 손이 들에 있는 네 가축 곧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에게 더하리니 심한 돌림병이 있을 것이다’ (9:3 직역). 여호와의 손이란 말은 ‘여호와의 손가락’ (출 8:19)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는 출 9:35의 ‘모세의 손’ 과 함께 출애굽기 9장에 나오는 표적 세 가지를 앞과 뒤에서 감싸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Inclusio). 동물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히브리인이나 고대근동의 다른 나라와는 달리, 이집트인은 각 색 동물들을 숭배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소를 숭배하는 인도인을 이상하게 느끼듯이, 그 당시 히브리인의 눈에도 이는 매우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출 8:25-26 참조).

여기서 ‘심한 돌림병’이라 번역된 구절(데베르 카베드 메오드)에는 무겁다, 중하다란 뜻의 형용사 ‘카베드’에 매우, 아주란 뜻의 부사 ‘메오드’가 덩달아 붙여졌다. 이는 돌림병(악질, 괴질)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법이다. 그리고 가축이란 말도 동물을 가리킬 때 흔히 사용되는 ‘브헴마’라는 낱말 대신에, 재산, 소유물이란 뜻을 지닌 용어 ‘미크네 (hn<q.mi)’가 쓰여졌다(9:3-4). 그 사정은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축산농가에게 짐승은 단순한 동물 또는 애완(반려)동물이 아니다. 이는 그 가정 살림의 기초이자 근거가 되는 재산이다. 이런 표현을 통해 출애굽기는 여섯 번째 표적이 이집트인의 재산에 얼마나 큰 손실을 가져왔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여섯 번째 표적(가축에게 일어난 돌림병)과 여덟 번째 표적(사람에게 생긴 악질)은 출애굽기 9장의 세 가지 표적을 감싸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도 다섯 번째 표적처럼(출 8:23 참조),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피해가 전혀 미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가축을 분리하여 치셨기 때문이다(4절 웨로 야무트 믹콜 = 모두[가축들] 중에서 전혀 죽지 않았다; 6절 로 메트 에카트 = 단 하나도 죽지 않았다). 이것 자체만으로 놀라운 표적(기적)이다. 이를 강조하느라 여기에는 그 사실이 두 번이나 되풀이 언급되었다. 하나님은 사람만 이스라엘 자손과 이집트인 사이를 구분하신 것이 아니라, 가축에게까지 그 둘 사이를 구별하였다(팔라 hlp). 히브리어에는 ‘구별하다’로 쓰이는 여러 개 있다(the verb for differntiate). 나자르 (rzn), 카다쉬 (vdq), 빠달 (ldb), 그리고 팔라가 그것이다. 물론 각각의 낱말에는 어감(뉘앙스)의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나자르는 나실인(민 6:2, 20-21; 삿 13:5, 7; 암 2;11)의 뿌리가 되는 말이다. 이는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기 위하여, 보통 사람과 구별된 것을 가리킨다. 카다쉬는 일상생활 및 세속생활에서 구별되는 생활모습(양식) 또는 하나님께 바쳐져 거룩하게 된 상태를 뜻한다. 이 분리 혹은 나누어놓음이 부정적으로 쓰인 예를 들면, ‘갈라놓다 차별하다’ 등이다. 그리고 이 말이 긍정적으로 쓰이는 예를 들면, ‘성별하다 분별하다 가닥을 잡다’ 등이다. 사람이 시간활용, 활동영역, 인간관계 등에서 분별력을 잃으면, 그 생활이 혼탁해지거나 혼란 속에 빠진다. 인생의 목표나 목적을 이룰 수도 없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나뉘어야만 할 것을 나누어놓고, 분리시켜야 할 것을 분리시키는 것 - 여기서 거룩한 구별(聖別)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카다쉬)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 2:3)

빠달은 어떤 실체에서 분리(구별)된 다른 존재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나눔과 채움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었다. 하나님은 첫째 날에 빛(낮)과 어둠(밤)을 분리하셨고, 둘째 날에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 곧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을 나누셨다. 셋째 날에 하늘 아래에서 땅과 물을 나누시고, 땅을 식물들로 채우셨다. 넷째 날에 낮과 밤을 나누시고, 하늘을 태양과 달과 별들로 채우셨다(창 1:4, 6, 7, 14, 18 참조). 이렇게 나누기도 하고 채우기도 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은 1장 2절에 나오는 혼돈스럽고 공허한 세상에 질서와 조화를 만들어냈으며, 생명이 살아갈 환경과 조건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의 창조는 생명이 생명답게 살 수 없게 만드는 장애물을 위와 같이 걸러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팔라는 구속(구원)의 맥락에서 쓰인다. 곧 억압(압제)에서 분리되어, 자유로워진 상태를 묘사한다. 이는 내부로부터가 아니라, 밖으로부터 오는 힘에 의해 분명한 목적의식 아래 분리되는 것이다. 출애굽기의 표적이야기에서 이 낱말은 8:22[18], 11:8에 쓰였다. 이집트에서 일어난 표적과 관련하여 이 동사가 사용된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특별한 구별(성별, 분리)의 은총에 따라 고센 지역에 사는 히브리 자손들이 이집트인들이 당하는 것과 같은 피해를 전혀 겪지 않았다는 맥락에서 쓰였다. 이 동사가 히필형으로 쓰인 곳을 몇 군데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시 4:3[4]a)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시 17:7a)

위와 발음이 비슷하면서 철자법이 다른, 곧 끝이 알레프로 끝나는 팔라(alp) 동사가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민 6:2)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견고한 성에서 그의 놀라운 사랑을 내게 보이셨음이로다 (시 31:21[22])

표적이 거듭될수록 이집트인에게는 점점 더 심각한 일이 생겨났다. 이는 가축들을 신성시하고, 신으로까지 숭배하는 이집트인에게 커다란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것이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영적(정신적)으로도 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래도 파라오는 협상에 나서지 않았다. 이 일에 기한을 정해진 것(9:5)을 아는 것일까, 아니면 신하를 보내 알아봤더니 이스라엘 자손의 가축은 하나도 손상을 입지 않은 것을 알고 배알이 꼴려서일까?

어쨌거나 하나님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무시하면서, 돌이킬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외면한 결과는 이렇게 참담하였다.

일곱 번째 표적: 피부병(악성 종기 9:8-12)

   
▲ 악성종기(1411년, 톡겐부르크 성경의 삽화)

네 번째 표적처럼, 이 표적도 예고 없이 막 바로 진행되었다. 이 표적에는 특징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이집트의 마술사들이 완전히 무기력해진 것이다. 그들 자신이 종기에 걸려 모세 앞에 나오지도 못하였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대로(출 4:21; 7:3), 그의 마음을 이렇게 만드셨다(출 9:12). 이때마다 출애굽기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고 기록하였다(출 7:13, 22; 8:15, 19; 9:35 참조).

출 4:21b 출 7:22 출 9:12
...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애굽 요술사들도 자기들의 요술로 그와 같이 행하므로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qzx)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qzx)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심과 같더라

이런 내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결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출 7:22에 따르면 파라오는 천성이 완악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다. 그런 그에게 그런 마음을 돌이킬 기회가 여러 차례 주어졌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그분의 계획을 받아들이라는 신호를 직접 경험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스스로 자기 마음을 완악하고 굳어지게 하였다. 그에게 보여진 표적들은 그로 하여금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그의 마음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통제하기 시작하셨다. 곧 그가 자신의 완악함을 여러 차례 되풀이 드러내면서, 스스로 돌이킬 의사가 전혀 없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 준 뒤에,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통제하셨다(백철현, 121쪽). 출 9:12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파라오의 마음을 완강하게 만드셨다. 하나님은 출 4:21; 7:3-4에서 이미 이리 하시겠다고 예고하셨다. 이제 그 말씀대로 시행하신 것이다.

이와 비슷한 입장에서 어떤 학자들은 이를 놓고 타락한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은총의 선물인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하나님께 대항하며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완강하게 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막지 않고 내버려두셨다는 뜻으로 풀이하였다(생활성서, 어서 가거라, 163쪽). 성경은 타락한 인간이 반항하며 더욱 타락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냥 내버려두는 것 자체를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곤 한다(롬 1:21-32, 특히 24, 26, 28절 참조).

이것을 소극적인 의미로 풀든,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하든, 어느 경우에나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역사를 이끌어가는 섭리를 부각시키는 것에는 틀림이 없다. 이 부분이 자칫 인간의 자유의지를 극단적으로 강조하거나 또는 예정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지나치게 해석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B. S. Child, The book of. Exodus, 174쪽; 김이곤, 출애굽기의 신학, 119쪽).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 말씀대로 풀무에 있는 재를 두 움큼 가득 손에 쥐었다. 그것을 가지고 파라오에게 가 공중에 뿌렸다. 그것이 마치 티끌처럼 되어 흩날렸다(워하야 레아바크). 여기서 티끌이란 말(아바크)은 말이나 자동차가 비포장도로를 달릴 때 생기는 먼지 또는 산들바람에도 쉽게 떠다니는 아주 작은 가루 (미세먼지)를 가리킨다. 흔히 재는 소독제, 방충제 역할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그것을 사용하시니, 병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날아간 미세먼지는 그 피부에 독종(쉐인 아바뿌아, 욥 2:7; 계 16:2 참조)이 생기게 하였다.

이 표적은 피부병(독종)의 직접적인 원인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죄라고 지적하고 있다. 곧 인간의 신체건강도 말씀에 순종하는지 여부를 보시는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정현진(수도교회 담임목사, 한신대 대학원 외래교수)  psalm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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